2030 여성들이 민주주의 정치의 ‘주체’임을 잊지 말라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응원봉과 ‘성평등 민주주의’

갈토 | 기사입력 2024/12/11 [21:28]

2030 여성들이 민주주의 정치의 ‘주체’임을 잊지 말라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응원봉과 ‘성평등 민주주의’

갈토 | 입력 : 2024/12/11 [21:28]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6일 금요일 국회의사당 인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밤 11시쯤 국회 정문을 지나 여의2교 방향으로 걸어가던 중 10명 남짓의 사람들이 정문 앞에 응원봉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예전에 본 적이 있는 KBS 정문 앞에 서서 연예인을 기다리는 팬들의 뒷모습과 흡사했다. 하지만 이 날은 국회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새로운데’라고 생각했다.

 

걷다 보니, 국회 담장 아래에 대부분 20대 여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그 옆에 60대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계셨고, 한 분은 파란색 우비를 입고 두꺼운 점퍼를 그 위에 입으며 추위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 분들은 오늘 여기서 밤을 새는 것인가?’ 조직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어느 정당이나 조직 이름이 적힌 깃발 아래 모인 것이 아닌, 삼삼오오 국회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앉아있는 여성들, 서서 국회를 바라보고 있는 여성들은 20~30명 정도로 많지 않은 숫자였다.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하고 싶었고 인터뷰도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렇게 금요일은 집으로 돌아왔다.

 

탄핵소추안 부결된 7일 국회 담장너머 ‘여성들이 밤새 여기 있었다’

 

그리고 7일, 군대를 동원한 불법 비상계엄의 전말이 속속 드러났음에도, 국가와 시민들의 안전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보다 자신들의 이해타산만 계산하는 여당 때문에 탄핵소추안은 부결되었다. 나와 친구들은 분노하여 국민의힘 당사 앞으로 가서 “탄핵!”을 한참 외치고 국회 앞으로 돌아왔다. 밤 11시가 넘어있었다.

 

▲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12월 7일 자정을 앞둔 시각, 국회 앞에서 다양한 응원봉을 든 여성들이 전날인 6일 밤과 마찬가지로 국회를 보며 시위하고 있는 모습. ⓒ갈토


자정을 20분쯤 남기고 친구들과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다시 여의2교로 향했다. 국회 정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탄핵을 외쳤지만, 지하철 국회의사당역 6번 출구를 지나고 국회 정문에서 멀어질수록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폐문”이라고 적힌 하얀 문 앞에 이르렀을 때는 1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다양한 응원봉을 든 여성들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국회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갑자기 하얀 문이 열리고 경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놀란 사람들이 인도 쪽으로 올라가는 사이, 몇몇은 그대로 앉고 몇몇은 누웠다. 경찰들이 그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인도로 올라온 시민들은 공권력 남용을 감시하기 위해 바로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경찰들은 ‘길에서 이러면 불법’이라며 인도로 올라가라고 이야기했고, 이미 인도로 밀려난 사람들이 차도를 막지 못하게 경비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국회에서 차들이 밀려 나왔다.

 

경찰이 말했다. “길에서 이러시면 불법입니다. 이러면 차가 못 지나가요.” 시위하는 사람들이 대답했다. “옆으로 차가 나가고 있잖아요. 우리가 먼저 여기에 있었어요.” 실제로 한 차선만 통제되고 있었고, 다른 차선으로 차가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남성 경찰들이 ‘추운데 입 돌아간다’며, 걱정인지 조롱인지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길에 앉아있던 한 분이 “이미 입 돌아갔어요!”라며 받아쳤다. 경찰이 계속 ‘불법’이라고 겁을 주자, “지금 대한민국이 온통 불법이에요. 내란범들도 안 잡으면서!”라고 누군가 대답했다. 그쯤 되자 더 이상 시민들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경찰들 스스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윤석열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했고,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탄핵을 요구하며, 각자의 일을 평화롭게 하려고 애썼다.

 

▲ 12월 8일 00시 24분, 국회를 빠져나가는 차량들을 향해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시민들. ⓒ갈토


당시 지위가 있어 보이는 경찰이 길에 맨몸으로 눕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이러고 있는 게 “의미 없다”고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올라온 묵직한 분노를 꾹 참아 눌렀다. 그리고 경찰에게 “의미 없다”, “불법”이라고 명명된 이 여성들을 기록하기로 마음 먹었다. 지금까지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삭제하고, 의미 없다고 평가했기 때문에 그 동안 여성들은 기록되지 않았고, 스스로를 검열하고 위축되었다.

 

하지만 12월 7일 자정 무렵, 그 차가운 아스팔트에 깔개조차 깔 시간도 없이 눕고 앉아 있던 여성들은 남성 경찰들의 경고, 조언(?)에도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시민들이 이 모습을 보고 조금씩 모여들었고, 15명도 안 되던 사람들은 어느새 1백명 정도의 군중이 되어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한 시간을 꼬박, 하얀 문으로 차가 끊임없이 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한 번도 쉬지 않고 탄핵을 외쳤다. 목소리가 작아지면 다른 이들이 목소리를 보탰다. 국회를 나가는 차들과 들어오는 차들을 향해 제대로 항의도 하지 못했고, 경찰에 둘러싸인 상태였다. 과연 이들이 그 추운 길바닥에서 탄핵을 외친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공권력을 불편하게 만든 존재들이다.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탄핵을 외쳤고,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었기 때문에 경찰들은 긴장해야 했고, 국회를 나가는 차들은 빠르게 이동하기 어려웠다. 이미 표결은 부결되었으나,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피켓을 들고 윤석열 탄핵을 외친 시민들이 있다는 것,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분노의 밤을 보내며 오늘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정치인들과 현장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분명히 전달하였을 것이다.

 

▲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시민들 사이에 “페미니스트가 요구한다 윤석열은 물러나라”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갈토


현장에 있으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석열 탄핵!” 단 한 가지 구호만 외치는데도 어느새 1시간이 지나 있었다.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강추위를 버티며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누구는 자기 몸의 절반 크기의 피켓을 머리 위로 들고, 누구는 계속해서 응원봉을 흔들고, 함께 온몸으로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나갈 차가 다 나갔는지, 경찰들이 문을 다시 굳게 닫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 때, 국회 담벼락에 앉기 시작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애초에 집에 갈 생각이 없었던 거구나.’ 준비해 온 두터운 모자를 쓰기도 하고, 한 손에는 꺼지지 않는 응원봉을 들고, 각자 밤을 새기 위한 방한 복장으로 준비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데 울컥했다. 이 위대한 여성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이 추운 날 얇은 돗자리 하나 깔고 앉아 밤을 새며 시위를 한다니, 이건 기록해야겠다. 나는 기억해야겠다.

 

12월 7일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하려고 집을 나선 시간은 오후 2시 반이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12월 8일 새벽 1시 반이 되었다. 나는 11시간을 길 위에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직도 그 추운 길 위에 맨몸으로 있다.

 

▲ 12월 8일 0시 55분, 국회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있는 여성들. ⓒ 갈토


탄핵 시위를 주도하는 여성들, 그러나 그만큼의 정치적 발언권이 있는가?

필요할 때만 ‘도와달라’, 위기 지나면 ‘성평등은 나중으로’

 

12월 8일 아침에 일어나, 어젯밤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유튜브를 클릭하였더니 반가운 댓글들이 보였다. 102030 여성들을 광장에서 많이 만났다는 내용과, 당사자들의 글들이었다. 이 댓글들은 홍사훈 기자가 12월 7일 탄핵 촉구 집회에서 막 돌아와 생방송에 출연하여 복받치는 감정을 겨우 추스르며 소감을 이야기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홍사훈 기자는 자신의 “딸내미” 또래 여성들의 모습을 보며 기성세대로서의 반성과 동시에 다음 세대의 희망을 보았다고 말하며, 온 국민이 이 광경을 현장에서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성’들만으로 패널이 가득 채워진 뉴스공장 유튜브에 102030 여성들이 스스로 댓글을 달아 자신들을, 여성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마치 “여기, 여성들이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지워지지 않으려는 몸부림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주류 기성세대 남성들이 마이크를 잡는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들의 이야기가 등장하자 여성들은 서로를 위해 반짝이는 글들을 남겼다.

 

▲ 2024년 12월 7일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스트리밍된 “[겸공 뉴스특보] 윤석열 탄핵 김건희 특검 국회 생중계” 화면 및 댓글 일부. *출처: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유튜브 채널 @gyeomsonisnothing


사실 나는 홍사훈 기자가 느낀 것과는 다른, 울컥함이 있었다. 12월 8일 새벽 집으로 돌아오며 느낀 감정은 ‘이 여성들에게는 다른 세계가 과연 열릴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2017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도 정말 많은 여성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우리 집만 봐도 아빠는 한 번 나갔지만, 나와 엄마는 수도 없이, 거의 매번 나갔다. 그러나 탄핵 이후에 정치는 ‘성평등’을 추구하였는가? 정치인들은 촛불을 들고 탄핵을 한 대한민국 여성들을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생각했는가?

 

12월 7일 자정에서 8일로 넘어가는 새벽, 경찰과 대치하며 국회를 나가는 차들을 향해 한 번도 쉬지 않고 탄핵을 외쳤던 다수의 여성들, 국회를 지키겠다고 밤을 새우는 이 여성들을 특히 민주당이 기억해야 한다. 민주당은 필요할 때면 여성 시민들에게 도와달라, 믿어달라 이야기하지만, 막상 위기가 지나면 여성들을 위한 정책은 ‘나중으로’ 미뤄왔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공석인 채 10개월이 되어가고, 일상에서 여성들은 딥페이크, 성폭력, 성차별에 놓여 있으며, 살해 위협과 실제 살해당하기도 한다. 윤 정권 탓만 하지 말고 여성이 안전하게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더불어민주당을 콕 집어 이야기하는 것은 여당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확신도 없고 기대도 없기 때문이며, 제1당인 민주당의 책임의 무게가 크기 때문이다.)

 

남성만을 위한 민주주의는 반드시 실패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여성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성평등은 민주주의 기본이다. 성평등하지 못한 민주주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번에는 부디 민주주의를 지키는 이 수많은 여성들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이제 다른 세상이 열려야 한다. ‘성평등을 나중으로’ 미루는 정치인들은 국회 담벼락에서 맨몸으로 밤을 새는 시민들에게 빚지고 있다. 2024년 집회에 나와 윤석열 탄핵을 외치고 있는 여성들이 민주주의를 남성들과 동등하게 누리길 바란다.

 

다양한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나온 이들의 ‘다양성’이 새로운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목소리를 만들 수 있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이 젊은 여성들이 단지 아이돌 응원봉, K-pop의 흥겨운 집회 문화를 만들어 낸 집단으로만 명명되고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실질적으로 성평등하게 정치/사회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누릴 수 있기를, 여성혐오와 여성폭력 위협으로부터 안전이 보장되는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열정을 펼칠 수 있길 바란다. 

 

지난 시간 속에서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민주주의로 인해 내가 느낀 좌절감과 배신감을, 이 여성들이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성평등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나는 꿈꾼다. 남성만을 위한 민주주의는 위험하며, 반드시 실패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여기, 민주주의를 위해 여성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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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뭘봐 2024/12/12 [19:04] 수정 | 삭제
  • 많은 사람들, 정치인들, 특히 민주당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 리안 2024/12/12 [18:14] 수정 | 삭제
  • 감동적인 기록 고맙습니다.
  • ㅇㅇ 2024/12/12 [12:34] 수정 | 삭제
  • 용기는 우리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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