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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정국이 혼란과 위험에 휩싸였지만,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한 시민들의 힘으로 내란 사태를 막아냈다. 곧바로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었으나, 여당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무책임한 불참으로 부결됐다. 국회로, 광장으로, 거리로 쏟아져나온 시민들이 탄핵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탄핵 그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시기 이미 대통령 탄핵 과정과 그 이후의 정치를 겪어보았다.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나아가길 원한다. 그러려면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권위주의 정치를 청산해야 하고, 여전히 소수자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는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 변화의 목소리를 더욱더 확장하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거리에서 나오고 있는 목소리-‘일단 탄핵 먼저’가 아니라 ‘탄핵과 함께’ 나오고 있는 목소리-를 기록한다. [편집자 주]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정치가 전쟁을 만들 수 있을까. 실로 그랬다. 정치가 그답지 못할 때, 정치에서 쏟아지는 말은 칼보다 위협적이고, 증오와 혐오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직접행동이 되었다. 공직자들은 스스로 각자의 야심만을 위해 가진 것을 쥐고 닥치는 대로 싸우고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정치는 메마르고 죽어갔다. 더 이상 의회에서도, 대통령실에서도 정치를 구경하긴 어려웠다. 모두 ‘법적 권한’이라며 휘두르는 권력에는 주권을 위임한 시민들의 삶을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갈 데까지 간 한국 정치는 대통령의 쿠데타로 당혹을 넘어서, 참혹한 시간을 맞았다.
탄핵 이후의 정치
그럼에도 침착해야 한다. 우리는 대통령 탄핵을 이미 경험해본 바 있는 시민들이다. ‘탄핵 이후 사회’라는 것을 충분히 체험한 시민들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달라야 하고, 우리도 분명 달라져야 한다.
윤석열 행정부의 퇴진, 탄핵 이후의 삶을 어떻게 다르게 만들어야 할까. 이 글은 그 고민을 제대로 시작하자는 제안이다. 우리가 숱하게 경험한 바와 같이, 이 민주주의라는 것은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얼굴을 그대로 닮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끊임없이 가꿔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가꾸어가는 주체의 역량과 실력이 주목받을 차례다. 그렇지 않다면, 윤석열이 지구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이 상태는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는 그동안 늘 개혁을 외치고, 혁신을 쫓기에 바빴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 모두 지금 정치는 더럽고 악의에 가득찬 것이라고 말하고, 정치인들은 저마다 그런 정치를 자신만이 청산할 수 있으며, 적폐를 끊어내 ‘국민이 주인인 나라’로 만들겠다고 했다. 정말로 그랬나. 그들이 주도해온 한국 정치의 결과가 새로웠나. 슬프게도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노인빈곤율은 줄어들지 않고,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률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다. 평등법과 차별금지법은 십수 년째 국회 임기 종료로 폐기되고 있다. 올해 역대급 폭염일수로, 온열질환에 걸려 응급실에 간 단순노무직 노동자의 숫자만 947명이다. 선거 때는 ‘미래’를 위해 자신에게 투자하라고 하지만, 당선이 되고 나면 오로지 ‘과거’와만 싸운다.
혹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이렇게 되묻겠다. 정치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로 권력 싸움밖에 없다고 생각하나.
다른 정치는 ‘침착’이라는 용기에서 시작될 것
그렇기에 우리에겐 새로운 대통령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걸로 만족할 수 없다. 지금 광장이 차기 대통령 선거만 바라보다 닫힌다면, 적대적 공생으로 연명해온 한국 정치는 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다시 ‘심판’으로 도배된 선거 현수막과 정치인의 연설을 보고 듣게 될지 모른다.
백번 양보해서, 지금 정치에 심판이 필요하다면 171석의 더불어민주당, 108석의 국민의힘과 윤석열 행정부가 만든 한국 사회에 대해 침착하게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과연 이대로의 대통령 중심제를 유지하는 것이 맞는지, ‘87년 체제’로 담아낼 수 없는 민주주의를 위해 다른 정치체제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지, 집권만 하는 게 아니라 기능하는 정당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지 않은지 숙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복수(復讐)의 정치는 민주주의 정치가 될 수 없다. 숙청의 정치는 민주주의 정치가 될 수 없다. 복수란 이미 과거로 지나간 고통을, 현재에 제거하기 위한 헛된 시도에서 시작한 미래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라는 버나드 크릭의 말을 상기시킨다. 심판, 복수, 숙청의 정치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도움을 주는 일은 없다. 이제 이런 정치와는 헤어질 결심도 필요하다.
한편 2024년 광장의 변화를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2030 여성들의 주도적인 참여다. 많은 언론들이 이미 평가하고 있지만, 자신이 애정하는 가수들을 응원하던 이른바 ‘응원봉’을 들고, 한국 정치를 멈춰 세우려 광장을 형성했다. 뿐만 아니다.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퀴어들은 ‘퀴어-페미존’을 구축해 우리가 광장 안에 있음을 가시화했다. 이들이 연결되어 함께하는 이유는 서로의 안녕을 위해서이다. 달라진 정치는 바로 이 모습을 닮아가야 한다.
각자를 위해 싸우는 정치가 아니라, 타인과 ‘다른 존재’를 옹호하며 내딛는 걸음을 무한히 동행할 수 있는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내는 정치가 필요하다. 여성과 퀴어가 보여주는 정치는 이토록 구체적이다. 이곳은 안전하다는 감각, 그 당연한 것을 복원하는 것이 지금 정치가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윤석열 이전으로도, 박근혜 탄핵 이후로도 돌아갈 수 없다. 이제 우리가 다시 복원해야 할 일들을 살펴보자. 광장에서 시작했지만, 광장에서 멈출 수 없는 목소리들을 모아내자. 그것이 이 위기를 변화로 만들 수 있는 열쇳말이 될 것이다.
[필자 소개] 김혜미. 녹색당에서 정치하는 정당활동가. 나답게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다른 정치를 희망한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마포 지역에 출마했으며, 지금은 동네에서 〈향연〉이라는 정치독서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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