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잘 아프고, 잘 쉬고, 또 일할 수 있을까?

아픈 몸, 감염인, 만성질환자, 장애인이 일한다는 것

박주연 | 기사입력 2024/12/28 [17:15]

어떻게 하면 잘 아프고, 잘 쉬고, 또 일할 수 있을까?

아픈 몸, 감염인, 만성질환자, 장애인이 일한다는 것

박주연 | 입력 : 2024/12/28 [17:15]

연말이 다가오면 만나는 사람들에게 의례적으로 “새해에는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건네게 된다. “건강하세요”라는 말은 ‘좋은’ 인사말로 여겨지기에, 편하게 꺼내는 말 중 하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왜 “건강하세요”일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 서로 그 말을 건네며 건강해야 한다는 압박을 나누고 있는 건 아닐까?

 

▲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사회’에서 아픈 개인들은 소외와 혼란과 절망을 겪게 된다. (이미지 출처: OpenClipart-Vectors from pixabay)


“질병권이 보장되는 n개의 다른몸들이 존중 받는 세상”을 외치는 ‘다른몸들’은 지난 21일 서울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질병권포럼: 질병권 운동의 불/가능성〉을 열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라는 말이 여전히 덕담으로 쓰이는 한국사회에서, 그 말을 전면으로 비판하며 완전히 다른 관점을 제시한 질병권(잘 아플 권리)!” 운동에 대해 논하는 자리였다. 다른몸들 활동가들을 비롯해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홍상희 이화여대 특임교수, 소리 HIV/AIDS인권행동 알 활동가, 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 활동가, 문영민 연구자, 이소중 KNP+ 활동가가 참여해 다양한 시선을 보탰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사회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는 “질병의 원인을 진단받기 어렵고, 그렇기에 치료법을 제시 받지 못하는 질병을 경험”한 후, “아픈 몸, 회복할 수 없는 몸으로 이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서 ‘질병권’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올림픽에 나가는 운동선수처럼 엄격한 투병 생활을 했지만 몸이 좋아지지 않는 일을 겪으며, 건강이 개인의 노력으로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이후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말을 열심히 비판”하게 됐다고.

 

“건강을 잃어도 아무것도 잃지 않는 사회여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게 만드는 사회다. 건강을 잃으면 빈곤한 삶을 경험하게 되는 이런 현실을 목도하면서, 우리 사회가 굉장히 ‘건강중심사회’라는 문제 의식, 그리고 한국 사회는 생산성이 높은 건강한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된 사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한 조한진희 대표는 “보수, 진보 상관없이 기존의 건강을 말해온 영역에선 아픈 몸을 임시적이고 예외적인 형태로 보고, 건강한 상태를 ‘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며 그것을 향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이 적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 12월 21일(토) 다른몸들 주최로 서울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린 〈질병권포럼: 질병권 운동의 불/가능성〉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나란히 앉아있다. ©일다


한국 사회가 ‘질병’을 바라보는 방식은 개인의 노력, 능력, 문제 등으로 연결된다. 조한진희 대표는 실제로 중증 질병으로 아픈 분들을 인터뷰해 보면, “노년기 사람들은 ‘내가 죄가 많아서’, 청년기 사람들은 ‘내가 잘못된 생활 습관을 갖고 있어서’ 라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한다.”고 짚었다.

 

“사실 모두 알다시피 건강이라는 건, 빈곤의 문제, 계급의 문제 혹은 젠더의 문제 등 사회 구조적인 위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고, 그것의 결과로서 건강이 존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건강이라는 것이 ‘내가 조심하면 혹은 내가 노력하면 쟁취할 수 있는 무언가’로 인식된다.”

 

질병권 운동은 그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가며 “잘 아플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아픈 몸이 노동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아파도 못 쉬는 이유

노동자의 잘 쉴 권리는 ‘일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

 

우리 사회에서 ‘아픈 몸’과 ‘노동’은 서로 잘 붙지 않는 말로 여겨진다. 많은 노동자들이 ‘아파도 쉴 수 없다’는 말을 달고 산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30명 정도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인터뷰했을 때, “사실 인터뷰이 모두가 아픈 상태였다”고 밝혔다. “근골격계 질환, 만성피로나 우울, 불안장애, 수면장애도 있었고, 콜센터 노동자의 경우 방광염, 대리운전이나 배달 노동자는 도로 위에서의 사고들 그리고 온열질환 등 사례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쉬지 못하고 있었다. 왜 못 쉴까? 김혜진 활동가는 “대부분 생계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1순위는 ‘내가 아파서 빠지면 동료에게 일이 전가되기 때문’ 그리고 ‘회사로부터 받는 불이익이 두려워서’였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아파서 쉬게 되면, 회사 측에서 ‘너는 좀 아픈 사람이구나. 앞으로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사람이겠구나’ 판단해 해고되기 쉽고, 승진에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강하기 때문”이다.

 

▲ 다른몸들 조한진희 대표의 저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동녘, 2019) 출판사 제작 카드뉴스 중에서.


김혜진 활동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아픈 것이 개인의 책임이 되기에, 아프다고 말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언급됐다.”며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 “아플 때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엔, 쉬면서 ‘건강한’ 몸으로 복귀한다는 걸 전제하는 것 같다”며, “쉬고 나면 정말 건강한 몸으로 돌아올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봐야 한다”고 짚었다.

 

“노동자들이 복귀하는 대부분의 일터가 여전히 경쟁과 위험을 강요하는 곳이다. 일터 자체가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잘 쉬고 돌아와도 또 아플 수밖에 없는 조건에 있는 거다. 결국 노동자가 잘 쉴 권리는 ‘일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문제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전한 일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일터에서의 휴게 시간은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가? 휴게 시간에 쉴 공간은 있는가? 그 공간은 어떠한가?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

 

만성질환, 질병, 장애가 있으면 일 못하나요?

 

장애인 당사자이자, 장애인의 노동과 건강에 대해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는 문영민 연구자는 “장애인 노동자 중엔 가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야근하거나 무리해서 일을 많이 하는 사람, 그래서 결국 건강을 소진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장애인은 일할 수 없는 존재라는 편견이 강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장애인 노동자들이 많은 거다. 문영민 연구자는 “연구를 하면서, 일하며 더 아픈 몸이 되는 장애인들을 너무 많이 봤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장애인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노동을 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뭘까 고민했다는 문영민 연구자는 “아픈 노동자가 쉬어야 한다는 말은 당연히 맞지만, 그 ‘아프다’는 것조차 건강한 노동자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파서 쉬어도 계속 아픈 사람, 평생 아플 수밖에 없는 장애인이나 만성질환자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일할 수 있는 제도’도 필요한 것 아닌가? 평생 아플 수밖에 없는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곳, 노동 시간과 노동 형태를 조정할 수 있는 그런 사업장을 만들어낼 변화가 필요하다.”

 

▲ “아픈 사람도 당당하게 일하는 사회. 노동자 건강권 운동의 새로운 숙제.” 2020년 다른몸들에서 제작한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하이라이트 영상 중에서, 최민 직업환경 전문의 추천사 화면 캡쳐.


소리 HIV/AIDS인권행동 알 활동가는 119구조구급대원 상민 씨(가명)가 HIV감염인이라는 게 밝혀져 상급자로부터 사직을 강요 받아 결국 퇴사한 사례를 공유했다. 상민 씨는 소송을 제기했고, 3심까지 가는 소송 끝에 “감염을 이유로 사직을 강요한 것은 차별”이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상민 씨가 스스로 사직했다는 이유로, 복직 요구에 대해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소리 활동가는 “국제 노동 기준에서 보면, ‘감염 여부가 채용이나 고용의 지속의 차별 근거가 되어선 안된다, 배제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선 여전히 감염인의 노동을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HIV감염인도 공동 생활을 할 수 있고, 특히 미검출 단계일 경우 전파 위험도 없지만, HIV/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감염인이 일한다는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다.

 

소리 활동가는 “노동 환경이 비의과학적인 정보에 기반해 감염인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게 아니라, 질병을 가진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동 환경이야말로 모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라고 강조했다.

 

아프면 쉬고, 아파도 일할 수 있는!

 

김혜진 활동가는 “얼마 전에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에 대한 인상적인 인터뷰를 읽었다.”며 그 내용을 소개했다.

 

“그들의 연령대가 높다 보니 아무래도 몸이 일하기 어려운 분들도 있다. 근데 일하는 방식이 무척 재미있다. 그 분들에게 ‘공평’이라는 개념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양의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일을 같이 시작해서 같이 끝낼 수 있는 게 공평이다. 예를 들어, 청소해야 하는 건물이 a,b,c동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a동과 b동은 지금 더 일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 한 명씩 담당하고, c동은 조금 더 나이가 있고 움직임에 어려움이 있는 두 사람이 담당하는 거다. 그러면 한 동을 다 하는 사람이 힘들지 않냐고 했더니, ‘무슨 소리냐. 그게 훨씬 더 빠르게 일할 수 있고. 같이 시작하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일을 끝낼 수 있는데. 이게 공평하지.’라고 답했다는 거다. 서로를 돌보고 각자의 역량을 존중하는 업무 방식인 거다.”

 

김 활동가는 “결국 아픈 몸으로 노동할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선, 함께 협동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서로 경쟁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업무를 나누고,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는지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아름다운재단의 후후레터에서 만든 카드뉴스 중 ‘상병수당’ 이야기


이러한 환경을 보장하는 제도 마련도 꼭 필요하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산재보험 개혁, 유급 병가와 상병수당 제도 마련”을 꼽았다. 동시에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사회 인식의 변화, 일터의 변화도 재차 강조했다.

 

질병권과 노동권, 어떻게 하면 잘 아플 수 있을까, 잘 쉬고 또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는 쉽지 않다. 하지만 꼭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기에, 이렇게 조금씩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건강 중심 사회’를 타파하고자 하는 질병권 운동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소풍 2025/01/11 [23:33] 수정 | 삭제
  • HIV 감염을 이유로 사직을 강요한 것은 차별이나, 사직은 스스로 했다고 보는 재판부에게 묻고 싶네요. 강요로 낸 사직서를 스스로 냈다는 말이 앞뒤가 맞나요? 부당한 괴롭힘으로 퇴사하게 되었으 복직 요구도 마땅히 인정해야지요.
  • son oh 2024/12/30 [11:24] 수정 | 삭제
  • 일하는 환경이 질병을 유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 더 많은 면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 같다.
  • 캔들 2024/12/29 [21:05] 수정 | 삭제
  • 9to6 시스템(출퇴근시간, 준비시간 포함하면 +2)으로는 아프고 약한 몸은 너무 견뎌내기가 힘든데, 그렇다고 프리랜서로 먹고살수 있느냐 하면 생활비 보장이 안되니까 아득바득 일하다 나가떨어지고 그런 반복이 나이들수록 악순환이 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경쟁적이고 쥐어짜는 노동시장은 어떻게 바뀔 여지가 없을까 그런 고민하는데, 여기 공감 가는 내용이 많네요.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