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시간’, 구석진 ‘공간’, 노동자의 ‘얼굴’

그림책 『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오겠다고 말했다』

양선화 | 기사입력 2025/01/20 [19:27]

작가의 ‘시간’, 구석진 ‘공간’, 노동자의 ‘얼굴’

그림책 『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오겠다고 말했다』

양선화 | 입력 : 2025/01/20 [19:27]

12.3 내란 사태가 있은 지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휘청거리는 것을 숨죽여 지켜봤다. 왜 내 일상은 이렇게 견고한 것인지 약간의 죄책감을 가진 채로. 그런 상태로 이 책을 읽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최근 읽은 유일한 책이다.

 

▲ 『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오겠다고 말했다』(전진경, 알록, 2024)는 기타 공장으로 유명한 콜트콜텍에서 해고당하고 13년간 복직 투쟁을 했던 노동자들의 시간이 담겨 있는 그림책이다. (이미지-출판사 제공)


『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오겠다고 말했다』는 기타 공장으로 유명한 콜트콜텍에서 해고당하고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복직 투쟁을 했던 노동자들의 나날 중 일부를 품고 있다. 작가 전진경은 노동자들을 따라서 빈 공장에 작업실을 꾸린다. 그곳에서 같이 쫓겨난 후에는, 거리 천막 농성장에 “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오겠다고 말”한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추려진 40여 점의 수요일들을 그림책의 형태로 담았다.

 

1. 시간

 

분야를 떠나서 모든 책의 종류를 단 두 가지로만 나눈다면, 나는 이렇게 해보겠다. 처음부터 책이 될 작정으로 쓰인 책. 그리고 뭐가 될지 모르는 채로 쌓이다 책이 된 시간. 이 책은 두 번째에 속한다고 느꼈다. 맨 처음에는 목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츰 희미해졌을 것이다. 혹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을 터이다. 마치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복직’을 목적으로 투쟁을 시작했지만, 그 목적만 가지고는 13년을 버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그러한 시간의 성질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애초에 ‘여러분을 도와 투쟁 승리를 함께하겠다’가 아니라, 그저 ‘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오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투쟁이 끝나고 결국 복직을 하게 되었을 때, 농성장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 날 사람들의 축하 박수 속에서 작가가 어색하게 그 장면을 바라만 봤던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연대라고 하기에는 자신의 삶이 되었기에, 그 시간이 끝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좀 얼떨떨했을 것이다.

 

▲ 전진경 작가 그림책 『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오겠다고 말했다』(알록, 2024) 표지 이미지. [출처] 그림책방 곰곰 인스타그램 @gomgombookstore


사실 나는 그림을 잘 ‘볼’ 줄 모른다. 어떤 게 잘 그린 그림인지, 오브제 하나하나가 의미하는 바가 뭔지. 그런데도 간혹 그림책을 읽는 이유는, 거기 담긴 시간을 읽기 위해서다. 물론 모든 책은 만들어지기까지 물리적인 시간이 걸리지만, 그림책에 함유된 시간은 경우가 다르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담긴 것은 각각 하나의 순간이지만 동시에 작가의 시간이고, 때로는 피사체의 시간까지 더해져 있다.

 

그러니까 화면에 그려진 것이 그저 나뒹구는 생수 페트병뿐이라고 해도, 나는 책장을 펴놓은 채로 오랫동안 생수병을 읽는다. 생수병이라는 물체 하나에 담긴 것은, 해고를 당하고 끝의 끝까지 몰려 단식농성에 돌입한 노동자의 메마른 시간, 단식은 위험하고 옛날 방식이니 하지 말라는 말 따위 할 수 없고 그저 곁에 앉아 생수병을 그리고 있는 작가의 시간, 그 헤아릴 수 없이 지독한 시간들이다.

 

2. 공간

 

“구석에 앉아 구석을 그렸다”(2016. 2. 17.)라는 작가의 표현처럼. 이 책은 구석의 구석에서 태어났다. 그림책은 특성상 화면 가득 시위하는 군중의 스펙터클을 보여줄 수도 있지만, 작가는 그보다는 구석을 택했다. 비둘기의 그림자까지 크고 짙게 보이는 바닥, 천막에 누가 인터뷰를 오거나 사람들이 조금만 많아지면 금세 ‘그릴 자리’가 비좁아지는 공간, 기타에 안전모를 씌워서 바닥에 눕혔더니 가득 차버리는 화면. 그것이 작가가 택한 공간이다.

 

▲ 『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오겠다고 말했다』(전진경, 알록, 2024) 중에서 (이미지-출판사 제공)


말하자면, 연대도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스펙터클의 연대와 줌인의 연대. 이 책은 후자이다. “뭘 그려야 할지 몰라서 보이는 것들을 그”(2015. 10. 14)릴 때, 작가는 당연히 자기 몸을 부린 바로 그 자리에서 보이는 그만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늘 예상보다 더 작고, 볼품없고, 어지럽다.

 

대규모 광장 집회에 나갔을 때, 제각각의 사람들이 제각각의 행동을 해도 아주 높은 곳에서 사양 좋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면 촛불이나 응원봉 불빛의 장대한 물결이 되는 것과 달리, 이 “구석에 앉아서 구석을 그리”는 행위는 전혀 장관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굴러다니는 생수병, 몇 달째 한자리에 계속 걸려 있는 옷, 그림 모델에 적합지 않게 계속 움직이는 ‘아저씨들’, 내가 모르는 시간을 걸어온 어떤 발, 그나마 천막 문을 빼꼼히 열었을 때 프레임 안으로 스쳐 지나가는 바깥 행인들 같은 것. 이것들은 조각난 채로 ‘풍경’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천막에서가 아니면 거의 그림을 그리지 않”(2016. 7. 20)았다. “죄책감이 들”어서다. 복직 투쟁 13년이라는 견딤의 시간을 담아내는 데 스펙터클의 광장은 너무나 좁고, 이 구석의 구석만이 충분히 넓었던 게 아닐까.

 

3. 얼굴

 

공원의 낮은 벤치에 수그리고 앉아서 비둘기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 후로 비둘기를 좋아하게 됐다. 가까이 본 비둘기의 얼굴은 지저분하기는커녕 반짝반짝했고, 눈알은 너무 투명해서 내 모습이 비쳤다.

 

▲ 『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오겠다고 말했다』(전진경, 알록, 2024) 중에서. (이미지-출판사 제공)


나는 얼굴에 관심이 많다. 잘생긴 얼굴, 못생긴 얼굴이 아니라 얼굴 그 자체.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도 풍경보다는 사람의 얼굴에 포커스를 맞추고, 순간적으로 잡아낸 어떤 표정에 혼자 몇 번이고 감탄하곤 한다.

 

이 책에도 ‘얼굴들’이 제법 많이 나온다. 일단 표지부터가 비둘기들의 얼굴이라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단식농성 중에 잠이 몰려와 크게 하품을 하는 아저씨의 얼굴. 더 이상 모델을 하지 않겠다 선언한 아저씨의 얼굴. 그럼에도 몰래 그린 아저씨의 얼굴. 농성 일기가 책으로 나와서 사인 연습을 하는 아저씨의 얼굴. 병원에 실려 간 아저씨의 얼굴. 사장이 한국 공장 문을 닫아버리고 인도네시아로 옮긴 공장의 노동자 얼굴.

 

천막 농성이 끝나던 날 멀뚱히 서 있던 작가는, 아저씨가 다가와 고맙다고 말하자 비로소 숨과 울음을 함께 터뜨린다. 짐작하건대, 작가에게 콜트콜텍 연대는 자본가와의 투쟁, 노동운동, 대의를 위한 싸움 이전에 아저씨들의 ‘얼굴’, 존재 그 자체였을 것이다.

 

▲ 『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오겠다고 말했다』(전진경, 알록, 2024) 중에서. (이미지-출판사 제공)


대의는 필요하다. 광장의 싸움도 절박하다. 하지만 공분이나 협동심이 부족하고 게으른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주로 특정한 얼굴들이었다. 우는 내 손을 잡고 “할매 안 죽어” 하고 안심시키던 주름진 얼굴. 노조 활동을 난생처음 경험하고 있는 청년 노동자의 벅찬 얼굴. 심지어 박근혜 탄핵 시위에 참여했을 때마저도,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것은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 같은 것이 아니라 맨 앞에 서 있을 세월호 유가족의 얼굴이었다. 민주주의라는 대의나 법령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 그것이 짓밟혀 가족을 잃은 사람, 평생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늙어버린 사람의 얼굴 말이다.

 

그의 얼굴과 나의 얼굴이 다르지 않음을 실감할 때,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이야기들 중 하나를 작고도 큰 그림책으로 만들고 나에게 들려준 전진경 작가와 출판 노동자에게 고맙다.

 

[필자 소개] 양선화: 출판 편집자.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지부 조합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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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22 [13:26] 수정 | 삭제
  • 엄청 힘이되었을 것 같아요.수요일마다 그림 그리러 와주는 것이. 찡긋한 글과 그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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