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 수괴 등 혐의로 체포했고, 이어 19일엔 법원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민주주의를 뒤흔든 12.3 계엄 선포 이후의 일들이 드디어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앞으로 이어질 수사와 탄핵 심판의 여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체포 당일, 국민의힘 의원 30여명이 관저에 집결해 체포를 방해하는 등 내란에 동조하는 정치세력이 건재하다는 것과, 구속영장 발부 이후 극우세력들의 서울서부지법 난입·폭동 사태도 충격을 주고 있다.
지금의 광장 이전에도 우리는 늘 싸워왔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박근혜 정권 전부터 “빈곤사회연대와 함께 1,982일 동안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 폐지’ 농성을 광화문 지하차도에서 했다.”고 말했다. 2012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6개월 전, “대선에서 공약이라도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농성은 박근혜 당선 이후에도 계속됐다. 4년 후 박근혜가 탄핵되고 2017년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박경석 대표는 그 시절을 “박근혜 정부 때보다 소통에 있어 친절”했지만,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 폐지라는 의제의 연합투쟁은 약해졌으며, 기대가 배신으로 뒤통수처럼 다가오기까지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지금도 전장연은 1,406일째(1월 19일 기준) T4 철폐 농성을 벌이고 있다. T4는 1939년 나치가 장애인 한 명에게 드는 서비스 비용이 비장애인 4인 가족의 생활비와 똑같다며 장애인 30만명을 생체실험하고 40만명을 불임시킨 역사적 범죄를 가리키는 말이다. 전장연에서는 '장애인이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시민의 권리'를 차단하고, 비장애중심의 잣대로 중증장애인을 감옥같은 시설에 가둬두고 있는 현실이 바로 한국판 T4라 말하고 있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감옥같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예산(장애인권리예산)'으로 보장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 바로 T4 철폐 농성이다.
그리고 지금의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시위는 “친일·비리사학에 맞서온 동덕여대 학생사회의 ‘동덕 민주화 투쟁’ 역사”와 연결된다는 점을 짚었다. “2003년, 동덕여대에서는 6,000여명의 학생이 전학년 집단 유급을 각오하고 두 달이 넘는 수업 거부를 했고, 교수들은 총학생회와 함께 10개월이 넘는 천막투쟁을 했으며, 동덕여대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 직원노조 소속 교직원과 학생 1500여명이 서울 을지로 훈련원 공원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후 “결국 동덕 민주화 대투쟁 끝에 총장 및 총장대행 해임안이 모두 가결되었으나, 정부는 비리사학의 편에 섰”다. 그 결과 2003년에 교육과학부 감사에서 교비 횡령 등의 비리가 드러나 형사 고발되고 이듬해 사퇴한 조원영 전 총장이 돌아왔고, 2015년 이사장이 됐다. 2015년은 여성학 전공이 폐지된 해이기도 하다. 김강리 씨는 “오늘날 동덕여대 공학 전환 사태는 지난한 대학본부투쟁의 역사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호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은 “지금의 광장은 성소수자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영역과 의제를 가로지르는 뜨거운 연대를 확인하는 장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 연대가 갑자기 등장한 건 아니다. 이호림 집행위원은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시민사회의 연대를 집단적으로 확인한 계기는 2011년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이 차별금지 사유로 포함된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서울시의회 점거농성과, 2014년 성소수자 차별금지 사유를 이유로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선포하지 않은 서울시에 항의하는 서울시청 점거농성이었다.”라고 했다.
“성소수자 운동의 두 번의 점거농성은 전장연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보내준 침낭과 농성물품, 김진숙 지도위원의 전화 연결 연대발언, 농성장에 식사 반입이 안 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2014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량해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고공농성 중이던) 씨앤엠 노동자들, 쌍용차 노동자들의 연대발언 등으로 기억된다.”
이호림 집행위원은 서로가 서로의 투쟁 자리에 방문하고 함께 했던 기억을 소환하며 “성소수자 운동과 다양한 사회운동의 연대의 기억이 켜켜이 쌓이며 당연해진 것들이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이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것, 금속노조가 모범단협안에 성소수자 배우자의 경조사비를 넣는 것, 집회에 성소수자 단체만이 아니라 다양한 시민사회 단체의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는 것, 공공운수노조 건물에 성중립 화장실이 있고,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성중립 숙소를 운영하는 것” 등을 사례로 들었다.
김강리 씨는 ‘여대’에서 있었던 연대의 장면을 언급했다. “동덕여대 공학 전환 사태에 연대성명문을 발표한 이화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와 이들의 연대성명문이 너무나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학내에서 지탄받자 ‘이화라는 이름을 애지중지 아껴서 대체 어디에 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이화여대 생활도서관의 성명”,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학생사회에서 끊임없이 퀴어 학우의 목소리를 길어올렸던 숙명여대 학소위와 공익인권학술동아리 ‘가치’를 만들어 나간 이들”이 있었음을 상기시켰다.
또한 동덕여대에선 “2015년 학부 여성학전공과정 일방적 폐지 반대 운동에서 시작된 중앙여성학동아리 ‘WTFeminism’이 대학 내 반성폭력캠페인 ‘펭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 2016년 박근혜 퇴진 정국에서는 페미당당이 제안한 ‘페미존(Femi-Zone)’에 함께했던 것, 2019년 12월에는 학내 커뮤니티의 트랜스젠더 배제적 흐름 속에서 차별과 배제에 반대하는 6개 여대 연합 페미니스트 모임(약칭 ‘차연’)에 참여하여 여성해방과 트랜스해방이 맞닿아있다는 점을 반복하여 이야기했던 일”도 설명했다.
청년여성농민인 향연 씨는 남태령의 밤을 “직접 민주주의의 공론장”으로 기억했다.(관련 기사: ‘남태령 대첩’ 이후, 여성과 소수자가 열어갈 세상 https://ildaro.com/10085)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며 자기가 받아왔던 국가폭력, 혐오, 차별, 소외, 부당함을 증언하며 농민들의 아픔에 공감한 동지들. 그 발언들을 들으며 그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껴안아 보호하기로 마음먹은 농민 동지들. 라이브 영상을 켜놓고 마음 졸이는 수만 명의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연대하러 달려와 준) 시민들의 말을, 시민들은 농민들의 말을 들으며, ‘그동안 몰랐던 농민들의 아픔을 돌아보겠다’는 외침에 농민들은 ‘동지라 불러도 되겠냐’는 물음과 감동 어린 눈물로 화답했다. 여성농민들은 여성들이 농촌에서 겪는 성차별을 소리높여 외쳤고, 청년여성들은 연대를 약속하는 공감의 함성으로 화답했다. 전날까지도 아무런 접점이 없는 것 같아 보였던 두 세계가 그날 밤 ‘다시 만난 세계’로 거듭났다.”
남태령의 일 이후 향연 씨는 “아름다운 승리가 우연에 의한 한 번의 신기루로 빛났을 뿐, 끝내는 현실이 변하지 않을까봐 느낀, 이 불꽃이 금새 사그라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우울감”도 있었지만, “남태령에서 시작된 그 불꽃이 안국 혜화 한남동으로 번졌고, 부산으로, 거제로, 무안으로,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희망을 느꼈다.”라고 강조했다.
박경석 대표는 “무엇이 우리의 승리일까?” 질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수괴로 감옥에 가고,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되면 승리일까?” 박 대표는 “승리가 무엇인지부터 정리하고 싶다”고 말한 후,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현장에 희망의 물리적 근거를 만드는 투쟁이 계속된다면, 그걸 승리라고 하고 싶다.”라고 정리했다.
“전장연은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참사 이후로 24년을 지하철을 떠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고 있다. 우리는 승리하는 중이다. 매일 혜화역 지하철 승강장에 연대하는 동지들이 늘고 있다. 매일 매일 승리하고 있다.”
이호림 집행위원은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를 바라보며, 혐오와 차별을 먹고 자라난 극우 세력이 이 국면을 지나며 어떻게 뻗어나갈지에 대해 너무나 큰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지만 동시에 “성소수자 차별도, 윤석열도 없는 사회로’라는 구호가, 극우 대중운동을 넘어서기 위한 우리 모두의 구호가 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과제는 “성소수자 혐오가 극우 결집의 힘으로 작동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고 짚었다.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반동도 꿈틀거린다. 이런 흐름이 우렵스럽지만, 이번 포럼을 통해 우리가 오래 전부터 함께 싸워왔음을,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의 투쟁에서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걸 다시금 배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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