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탕한 웃음을 지닌 70대 퀴어 할머니 커플을 만난 반가움

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 〈두 사람〉

변규리 | 기사입력 2025/02/06 [09:57]

호탕한 웃음을 지닌 70대 퀴어 할머니 커플을 만난 반가움

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 〈두 사람〉

변규리 | 입력 : 2025/02/06 [09:57]

희망의 증거 같은 사람

 

내가 김인선 씨를 처음 보았던 것은 2019년의 봄이다.

당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레즈비언이자 독일에서 호스피스 리더로 활동하는 김인선 씨를 초청해 강연을 열었다. 이에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도 〈이주할 자유, 정주할 권리 - 여성 성소수자, 그 삶의 자유와 공간을 찾아서〉라는 강연을 기획해 김인선 씨를 초청했다. 강연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다. 말로만 듣던 김인선 씨를 실제로 볼 수 있다니! 만사를 제쳐놓고 인천으로 향했다. 젊은 날, 독일로 이주해 간호사로 일하며 사랑하는 동성 반려자를 만나고. 이종문화간의 호스피스 리더로 살아온 퀴어 할머니가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강연은 기대만큼 좋았고,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에너지틱했다. 강연이 끝난 후 김인선 씨와 동행했던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정도를 꼭 남겨두고 싶었다. 많은 팬이 김인선 씨와 인사를 나누고 사진 찍기를 기다렸다. 그리하여 우리 차례가 왔을 때, 오랜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때 손을 꼭 쥐어 잡아 주었던 김인선 씨의 강렬한 악수의 여운을 오랫동안 기억했다. 더불어 김인선 씨의 당찬 미소도 참 힘이 됐던 기억이 난다. 그 미소가 나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겐 어떤 희망의 증거 같은 것으로 저장될 것 같았다. 70년 동안 숱한 어려움을 통과하고도 자신을 긍정한다면 이런 짱짱한 웃음을 지을 수 있으니, 앞으로의 모험을 전혀 걱정 말라는 듯 말이다.

 

▲ 영화 〈두 사람〉(반박지은 감독, 김인선 이수현 출연, 2022)이 2025년 2월 12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당시에도 김인선 씨 옆을 동행하며 그의 활동상을 촬영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두 사람〉을 연출한 반박지은 감독이다. 나는 반박지은 감독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서, 감독이 베를린으로 이주한 후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다. 하지만 그것이 김인선 씨와 이수현 씨의 이야기일 줄은 몰랐다. 두 분의 이야기를 찍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두 사람〉의 개봉을 줄곧 기다렸다. 디아스포라(모국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한 사람들)이자 이종문화간의 호스피스 ‘동행’을 창립한 퀴어 할머니 커플의 삶의 궤적을 담아내고자 한 감독의 상상력과 기획력은 지금 한국 사회에도 소중하다. 이번 연재에서는 2월 12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독일에서 만난 한국인 퀴어 커플

 

영화 〈두 사람〉에 따르면, 인선 씨와 수현 씨는 1985년에 독일 베를린에서 만나 1990년부터 함께 살아온 동성 커플이다. 인선 씨는 간호사로 일하며 1984년 한인 교회에서 파독 광부 출신 동포 남성과 만나 결혼한 기혼자였다. 수현 씨는 1975년부터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85년 어느 교회 수련회에서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만난다. 당시 수현 씨는 자기소개 시간에 “남편을 잘 만나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행운이 있다.”고 말하는 인선 씨가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 인선 씨에게 예쁜 들꽃을 한 움큼 따다가 선물했다고 한다. 그것이 이 커플의 첫 만남이었다.

 

이를 계기로 인선 씨는 수현 씨를 보러 가기 위해 베를린에 갈 기회를 계속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둘은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인선 씨에게 여성을 사랑하게 된 경험은 생애 최초였지만 그 마음은 진심이었기에, 인선 씨는 있는 그대로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 마음은 날이 갈수록 절절해졌고 인선 씨는 결국 이혼을 감행한다. 전남편에게서 수현 씨에게 보복하겠다는 협박을 듣고 인선 씨의 마음은 찢어졌지만, 용기를 내 둘은 함께 살기를 선택한다. 이후 두 사람은 지금까지 계속 함께이다. 〈두 사람〉은 디아스포라이자 70대에 들어선 노년 퀴어 커플의 삶의 궤적과 생활상을 밀착 동행하며 보여주는 영화다.

 

▲ 영화 〈두 사람〉(반박지은 감독, 김인선 이수현 출연, 2022)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자 70대에 들어선 노년 퀴어 커플의 삶의 궤적과 생활상을 밀착 동행하며 보여준다. ©Tsukasa Yajima


파독 간호사로, 디아스포라로 살아온 세월

이종문화 간의 호스피스 ‘동행’을 설립하기까지

 

영화 〈두 사람〉을 보면, 인선 씨와 수현 씨가 어떤 방식으로 독일에서 거주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지 알 수 있다. 파독 간호사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해온 두 사람은 현재 은퇴 후 연금 생활자로 살고 있다.

 

이들은 한인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교회 사람들과 능숙하게 교류도 잘 해내는 1세대 이주민이기도 하다. 영화를 통해 보이는 70대를 맞이한 두 사람의 일상은 단순하지만 매우 힘있어 보인다. 수현 씨가 음식을 준비하면 인선 씨는 수저를 놓으며 상을 차린다. 독일에서 살아온 시간이 반백 년이 다 되었으니 식탁엔 독일식이 차려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주로 식탁에 올라오는 것들은 콩나물비빔밥, 총각김치, 콩국수 같은 한식이다. 두 사람은 여전히 한식을 즐겨 먹고 한국 드라마를 찾아보며, 송해가 부르는 〈비 내리는 고모령〉을 목 놓아 따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영화 안에는 퀴어 할머니 커플의 귀여운 일상을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지만, 이들의 한 부분을 형성하는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이 커플이 어떤 방식으로 녹이며 사는지 볼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김인선 씨는 한국에서 2019년에 조명되기 이전에도, 2010년에 이종문화간의 호스피스 ‘동행’을 창립한 대표로 소개된 적이 있다. 당시는 인선 씨가 한국 사회에 커밍아웃 하기 전이고, 한 언론은 그를 “독신”으로 단정지어 소개했지만, ‘동행’은 김인선 씨와 이수현 씨가 각각 생명보험을 헐고 노후 자금을 털어 창립한 이종문화간의 호스피스다.

 

영화 <두 사람>에는 인선 씨가 이종문화간의 호스피스 시설에서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하는 장면이 나온다. 낯선 문화에 적응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인선 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인선 씨는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한국인뿐 아니라 많은 외국인들이 독일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목도해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의 임종을 보는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인선 씨는 자신과 수현도 언젠가는 그들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상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외국인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종문화간의 호스피스를 창립했다고 한다.

 

영화 <두 사람>은 사적 공간에서의 인선 씨의 모습 말고도, 공적 공간에서 그가 사람들과 어떻게 교류하며 살아가는지를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그것은 노년을 맞이한 여성 성소수자의 공적 생활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점에서 의미 있는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 반박지은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두 사람〉(2022) 중에서

 

한인교회 안에서의 퀴어 할머니 커플

 

또 주목해서 봐야 할 지점은 은퇴한 수현 씨가 자신의 삶을 가꿔나가는 방식이다. 수현 씨는 자처하여 인선 씨가 글을 쓰고 수업 준비를 하는 활동을 서포트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수현 씨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충분히 살고 있다고 느껴져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수현 씨의 독립적인 일상도 바삐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현 씨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임금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가 아픈 곳을 살피고 연고를 발라주는 활동을 지속한다. 독실한 교인으로 교회에도 꼬박꼬박 성실하게 나가는 수현 씨는 그곳에서 자신이 잘하는 요리로 사람들을 대접하기도 한다. 게다가 수현 씨는 퀴어 퍼레이드에 홀로 나가, 행진하는 퀴어들을 보며 박수를 보내는 퀴어 할머니이기도 하다.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해 자원활동을 하고 성실한 교인이면서 동시에 퀴퍼에 나가는 퀴어 할머니라는 수현의 캐릭터는 종교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종교인 중에도 분명 성소수자는 존재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내/외적 충돌 없이 매끄럽게 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수현 씨의 삶은 어느 정도 독특하고 긍정적으로 해석될 지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 〈두 사람〉 안에는 인선 씨가 한국 사회에 커밍아웃 하며, 한국에 거주하는 수현 씨의 동생과 수현 씨가 불화를 겪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이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가 살아가는 것이 녹록지 않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수현 씨가 사는 공간이 베를린이 아니라 한국이라 가정한다면, 나 또한 베를린에서 수현 씨가 행하는 모든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인선 씨와 수현 씨가 오랫동안 교류했던 커뮤니티는 한인교회다. 영화 안에는, 두 사람이 그곳에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하진 않았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교류하는 한인교회는 이들의 관계를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인정하는 분위기를 풍긴다.

 

아마도 영화 안의 인선 씨의 말처럼, 누군가는 한국 사회에서 인선 씨의 커밍아웃을 흠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놓고 하진 않는다. 일단 그 존재를 인정하는 공동체의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오랜 기간 그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성소수자와 이성애자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경험을 집단적으로 인지하고 체험했기 때문에 성립 가능한 관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좀 더 많은 곳에 소개될 필요가 있다.

 

▲ 영화 〈두 사람〉(반박지은 연출, 2022)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라고 적힌 피켓을 든 김인선 씨의 모습.


노년 퀴어의 병듦과 돌봄 그리고 법적 권리

 

2009년에 이미 암 투병을 했던 인선 씨는 영화를 찍고 있던 2019년 암이 재발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그래도 파트너 중 누군가 크게 아픈 건 서로에게 힘든 일이다. 그 시간을 묵묵하게 견디는 두 커플의 마음을 바라보며, 노년의 돌봄이란 또한 병듦이란 무엇인가 상상해 본다. 그리고 그것은 둘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인선 씨와 수현 씨는 일찍이 이종문화간의 호스피스를 창립하여 그 외로움을 함께 돌파하는 연대를 만들어야겠다고 꿈꿔온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 또한 그 와중에도 여전히 이웃을 챙기고 집회에 나가 자신들의 권리를 외치는 수현 씨와 인선 씨의 삶은 더욱더 단단해질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화 말미에는 2022년 8월 31일 두 사람이 베를린에서 결혼했다는 소식이 나온다. 후에 기사를 찾아보니, 인선 씨가 병원에 갈 때마다 수현 씨가 동행했지만, 법적 보호자가 아니어서 함께 상담하는 것이 불가했던 터라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서류를 받아와야 하는 등 복잡한 절차가 있어 포기하려던 찰나, 베를린에 거주하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법적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함께 산 지 35년 만이다. 이제 인선 씨의 병원 방문 날 수현 씨가 동행해도, 수현 씨는 문전박대당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 시민의 권리와 동성결혼,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두 사람〉의 개봉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인선 씨와 수현 씨의 블루스, 그리고 마지막 인터뷰는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 내용이 궁금하다면 꼭 영화를 관람하길 추천한다.

 

[필자 소개] 변규리: 2016년부터 ‘연분홍치마’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첫 장편 연출작인 통신설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팟캐스트 방송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Play On〉(2017)을 연출. 두 번째 장편으로 “성소수자 부모”라는 정체성을 마주한 두 여성의 성장 서사를 그린 〈너에게 가는 길〉(2021)을 연출했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소개] 2004년 설립된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소통과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다양한 현장에서 미디어로 연대하며 다큐멘터리, 극영화, 웹컨텐츠 등을 제작하고 있다. pink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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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실이 2025/02/09 [08:19] 수정 | 삭제
  • 앗따 70이 넘었담서요? 70이 넘어도 그렇게 사랑이 불 타 오릅니까요? 어매 차말로 징허게 질투나게 맹글어부네. 젊고 짝 없는 청춘들은 시방 이 추운 날씨를 어치케 견뎌야 헐랑가 모르것네요.
  • 붕붕 2025/02/07 [18:19] 수정 | 삭제
  • 이런 기사를 만나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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