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가 아닌 순환…‘지역창생’의 비결은

이토시마 지역창생 답사기② 마을책방

정이예슬 | 기사입력 2025/02/22 [16:30]

소유가 아닌 순환…‘지역창생’의 비결은

이토시마 지역창생 답사기② 마을책방

정이예슬 | 입력 : 2025/02/22 [16:30]

‘돌려라 돌림판 북클럽’ 멤버들과 일본 후쿠오카현 서부에 위치한 이토시마의 ‘지역창생’(地域創生, 지역 안에서 창조성이 발휘되어 지역이 재생되는 것) 사례를 직접 보기 위해 2024년 11월과 12월 사이에 답사를 떠났다.

 

이토시마를 걷다 보면, ‘책’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곳곳에서 실감하게 된다. 책방을 운영하는 방식도, 책을 둘러싼 이야기들도, 그저 책을 사고파는 일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책을 통해 마을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만나며, 그들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 마을서점 1층 ‘이토시마의 얼굴이 보이는 책방’(糸島の顔が見える本屋さん) 내부. 모두가 운영하는 책방으로, 작은 책장 100개에 서로 다른 주인이 맡아 운영한다. [출처-정이예슬]


‘이토시마의 얼굴이 보이는 책방’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방’

 

책을 좋아하는 우리는 마에바루 지역에 있는 골목 끝자락 건물의 1층과 2층,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진 책방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다.

 

1층의 ‘이토시마의 얼굴이 보이는 책방’은 서양식 옷가게를 개조한 곳으로, 외벽에는 철골 구조와 가게 이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책방의 가장 큰 특징은 ‘모두가 운영하는 책방’이라는 점이다. 30cm 크기의 작은 책장 100개가 놓여 있고, 각 책장은 서로 다른 주인이 맡아 운영한다. 한 책방 안에 100개의 작은 책방과 100명의 주인이 공존하는 셈이다.

 

책장 가까이 다가가면, 주인의 사진과 함께 저마다의 특색과 사연이 담긴 책장 소개가 적혀 있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책방을 운영하고, 방문객들은 책을 고르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세계를 접한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캘리그라피 작가님이 책방을 지키며 맞아주었다. 낯선 마을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그곳 사람들이 더 궁금하고,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다. ‘이토시마의 얼굴이 보이는 책방’은 책을 통해 이토시마 사람들을 만나고 마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장소였다.

 

▲ 마을서점 2층 ‘All Books Considered’(ABC)는 대학생 나카타 씨와 동료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구하기 어려운 신간이나 중고서적, 아트북, 잡지 등이 매대에 진열되어 있다. [출처-정이예슬]


2층으로 올라가자, 또 다른 작은 책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All Books Considered’(이하 ABC)라는 다소 철학적인 이름을 가진 이 서점은 대학생 나카타 씨와 동료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나카타 씨는 “앞으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방”이라는 소개 문구와 함께, 자신도 장차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고민하며 이 책방을 열었다고 했다.

 

매대에는 구하기 어려운 신간이나 중고서적, 아트북, 잡지 등이 진열돼 있었고, 스태프가 운영하는 브랜드나 독립서점에서 팔 법한 재미있는 에세이집도 판매하고 있었다. 보통은 고민을 마친 후에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마련이지만, ‘인생에서 끊이지 않는 것은 고민’이라는 나카타 씨의 생각에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 ‘All Books Considered’(ABC) 책방에서 우리가 관심을 보이자 신기하게 생긴 카세트 믹서로 몽환적인 음악을 틀어주었다. 정말 범상치 않은 책방이다. [출처-정이예슬]


ABC에 대해 궁금해져 더 찾아보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카타 씨가 살고 있는 셰어하우스 주인이 1층 책방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그도 자연스럽게 책장을 내보이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이토시마의 얼굴이 보이는 책방’의 책장을 빌려 작은 책방을 시작했지만, 이내 공간이 부족함을 깨닫고 위층 공간을 확보해 대학 친구들과 함께 ‘ABC’를 열었다. 사람들이 나이와 관계없이 자신의 삶을 더욱 즐기고, 스스로에게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용기가 됐다. 언젠가 고민의 순간이 찾아와도, 기꺼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도전을 두려워 않고, 흥미진진한 마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어진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마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꿈과 실천에 대해 들었다.

 

▲ 저녁에는 ‘코자이노모리’(古材の森) 직원들이 지역의 신선한 식재료로 정성껏 차려주신 음식을 먹고, 이토시마 마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만나 교류회 시간을 가졌다. [출처-정이예슬]


노구치 씨는 이토시마에서 활동하는 작가와 생산자 70여 명의 작품을 알리고 판매하는 잡화점 ‘이토시마쿠라시×코코노키’를 운영한다. 일본의 산림이 황폐해지고 임업이 어려워진 현실을 알게 된 노구치 씨는 이토시마산 목재와 지역 공예품을 알리고 유통하기 위해 2010년 ‘이토시마의 생활, 이곳의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잡화점을 열었다. 자금도, 인맥도 없이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시작했지만, 지역 작가들과 협력하며 가게를 성장시켰고, 이제는 이토시마의 ‘좋은 물건’을 전국에 알리는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10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워 이토시마의 자연을 그리는 미야타 씨는 자신의 그림이 복지사로 활동하며 만난 이토시마 사람들에게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다음 목표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함께할 수 있는 예술교육을 마을에서 진행하고 싶다는 꿈을 전했다.

 

마츠모토 씨는 규슈대학교 학생들과 마에바루 지역을 더욱 활기찬 대학가로 만들기 위한 ‘엔가와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청년들이 마을에서 성장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세도하라 씨는 마을 사람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오픈 스페이스 ‘민나노’와, 지역 특색이 담긴 문구를 판매하는 ‘향토문구’를 통해 끊임없이 마을과 사람을 잇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연결이 이어지며, 마을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일들이 화학반응처럼 일어나고 있다.

 

▲ 마을 플리마켓 초입에서 대여섯 살쯤 된 어린이 작가가 새 그림에 자석을 붙여 만든 마그넷과 모빌을 팔고 있었다. 선물용으로 구매를 했더니, 포장도 정성스럽게 해서 건네주며 감사 인사를 했다. [출처-정이예슬]


이토시마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움직임은 우리에게도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식사가 끝날 무렵, 내일 마을에서 플리마켓이 열린다며 초대를 받았다. 정확한 장소와 시간도 몰랐지만, 다음 날 역 근처 큰 공원으로 향하자 과연 플리마켓이 한창이었다.

 

주민들은 각자의 차량을 이용해 부스를 차리고, 쓰지 않는 물건들을 아기자기하게 정리해 놓았다. 생활과 취향이 묻어나는 물건들을 둘러보다가, 한 부부로부터 이 행사의 시작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한 주민의 제안으로 시작된 플리마켓은 이제 1년에 한두 번 열리는 정기행사가 되었다 한다. 우연히 이런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반가운 행운이 있을까 싶었다.

 

플리마켓 초입에 대여섯 살쯤 된 어린이가 손수 그린 새 그림에 자석을 붙여 만든 마그넷과 모빌을 팔고 있었다. 섬세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이 마음에 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골랐더니, 어린이는 정성스럽게 포장해 건네며 감사 인사를 했다. 아이 어머니의 요청으로 함께 기념 사진도 남겼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교류하며 자라는 어린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궁금해졌다.

 

선물경제의 삶…이토시마에서 받은 질문을 안고서

 

향토문구에서 세도하라 씨와 다시 만난 우리는, 80명의 이야기를 담은 특별한 인터뷰집을 선물 받았다. 책은 손익을 따지는 ‘시장 규범’과 관계와 도덕을 중시하는 ‘사회적 규범’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후자인 ‘선물경제’의 삶을 탐구한다. 책마다 고유한 일련번호가 있어, 읽은 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도록 설계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순환 속에서 의미를 찾는 실험. 세도하라 씨는 1만 권 중 5권을 우리에게 건넸고, 우리는 이토시마에서 받은 질문을 안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 향토문구에서 세도하라 씨에게 선물 받은 인터뷰집. 80명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선물경제’의 삶을 탐구한다. 책마다 고유한 일련번호가 있어, 읽은 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소유가 아닌 순환 속에서 의미를 찾는 실험을 한다. [출처-정이예슬]


이토시마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즐겁게 꾸려가고 있었다. 때로는 세간의 기대와 다른 길을 선택하며, 주변의 우려 속에서도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용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다양한 삶이 공존하는 모습들은, 화가 미야타 씨가 이야기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과도 닮아 있었다. 정원에 밭을 가꾸거나, 농업·임업·어업과 같이 자연을 상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이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운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변화에도 ‘그럴 수 있다’며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연이 인간의 뜻대로 되지 않듯 삶 역시도 정해진 틀이 없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토시마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많은 질문을 던졌던 동료가 이달 말 새로운 지역으로 떠나 또 다른 꿈을 펼친다. 동료가 향하는 곳이 어디든, 그 길을 한껏 응원하고 지지하고 싶다.

 

[참고자료]

-「将来、何をして生きていけばいいのか」と問いかける理由。福岡・糸島で生まれた書店 〈All Books Considered〉, COLOCAL 뉴스 2024년 10월 18일자

-「野口智美 – 糸島の「いいモノ」を全国に発信」, ITOSHIMA NOW, 2023년 3월 10일자

 

[필자 소개] 정이예슬: ‘함께 배우는 사람’. 나에게도, 지구에게도 다정한 삶의 방식을 배우고 지속해갈 수 있도록 돕고자 클라이밋(Climeet)을 창업했다. 청소년과 청년들이 지역사회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사회적경제·기후환경·ESG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교육 워크숍을 진행한다. 탈성장, 젠더, 불평등, 다양성, 시민정치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활동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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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의왈츠 2025/04/04 [18:05] 수정 | 삭제
  • 이토시마의 얼굴이 보이는 책방이 언제 생겼나 궁금해서 찾아보니까 2021년 코로나 시기에 오픈한 것 같더라고요. 올해 2월에 목포에도 비슷한 운영 방식으로 "모두가 주인인 책방"이라는 타이틀을 건 포도책방이라는 곳이 생겼습니다. 포도책방도 지역안의 이음새 역할을 해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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