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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가장 주목받는 에코페미니즘 사상가이자 생태문학-기후SF 비평가인 그레타 가드(Greta Gaard)의 저서 『비판적 에코페미니즘』이 출간되었다. 에코페미니즘의 최신 이론들과 새로운 상상력을 담은 『비판적 에코페미니즘』의 세계를, 이 책의 공동번역자인 여성환경연대 부설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달과나무’ 연구원들이 안내한다. [편집자 주]
불꽃놀이와 우주탐사에 담긴 욕망
해마다 가을이면 서울세계불꽃축제가 한강공원에서 열린다. 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매해 백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모여든다. 화약제조업으로 출발한 한화그룹이 주최하지만, 세계축제라는 명칭에 걸맞게 다른 나라의 많은 화약업체들도 참가한다. 100억이라는 큰돈이 30분간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다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회성 장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일찌감치 서두른다. 한강 위로 터지는 화려한 섬광과 터질듯한 폭죽 소리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귀를 때리는 강렬한 소음과 눈부신 섬광에 둘러싸여 관람객들은 위로와 감동,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잠시 행복감에 젖는다.
그러나 우리는 화려한 섬광과 폭발 소리에 즐거움과 희열을 느끼면서도,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는 경청하지 않는다. 자연을 능가하려는 인간의 과학기술적 욕망과, 타자를 지배하려는 남성주의적 이데올로기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전투로서의 불꽃놀이와 불꽂놀이로서의 전투가 인간에게 극적인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안 다른 비인간 존재들, 특히 동물들이 겪는 극도의 고통과 죽임의 이야기는 이 장엄한 서사에서 잘려 나간다.
그레타 가드는 〈비판적 에코페미니즘〉의 렌즈를 통해 불꽃놀이와 우주탐사에 담긴 젠더, 종, 계급, 자연에 관한 남성주의적 지배욕과 영웅적인 정복의 위엄,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과 추종을 비판한다.
불꽃놀이는 무엇을 연출하는가?
불꽃 제조는 군사적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인체 상해 목적으로 만들어진 화약은 중국에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문헌에 따르면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불꽃놀이는 주로 특권층의 권력과 권위를 찬양하기 위한 연출용이었다. 자연의 화산폭발을 넘어서는 장엄한 불꽃놀이 연출은 자연에 대한 과학기술의 승리를 예찬할 뿐 아니라, 이성애자 남성 왕을 중심으로 한 위계적 사회질서를 옹호하고, 동물자연에 대한 인간문화의 승리를 선전하기에 적합했다. 왕과 귀족들은 불꽃 제조술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내세워 자신들의 위계적 권위를 드높일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이때만 해도 상대적으로 희귀했던 불꽃놀이를 사람들 대부분이 무서운 광경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불꽃놀이는 새롭게 부상한 중산층 관람객의 관심을 끌도록 상업적 영역으로 이동했고, 이런 변화로 불꽃놀이의 미학도 두려움보다는 공포에서 쾌감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공포가 쾌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미학적 발견은 20세기 이후 영화와 게임을 아우르는 모든 장르에서 불꽃놀이와 동일한 특수효과의 개발로 이어졌다. 이제 폭죽을 동원한 불꽃놀이는 물론이고, 폭탄이 난무하는 실제 전쟁조차도 스크린이라는 안전한 기술적 방패 덕분에 쾌감, 흥분, 즐거움, 카타르시스를 주는 게임의 공포와 더욱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지적하듯이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터가 폭발하고, 이라크와 가자지구 사람들의 머리 위로 온갖 폭탄이 마치 불꽃놀이처럼 섬광을 번쩍이며 연속해서 터질 때, 전 세계 시청자들은 숨을 죽이고 실시간으로 안전하게 인간이 만든 21세기의 장엄한 효과를 체험할 수 있었다.
불꽃놀이에서 잘려 나간 서사들
불꽃놀이가 지배문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은유이자 주류 서사로 작동하는 동안, 다양한 하위 서사들은 잘려 나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동물이 겪는 고통과 죽임이다. 반려동물, 축산동물, 야생동물 할 것 없이 모두 폭발에 놀라 다치거나 여기저기 부딪혀 부러지거나 죽는다. 동물은 인간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날카로운 폭발음을 듣고, 더 눈부시게 번쩍이는 섬광을 보기 때문이다. 가드에 따르면 불꽃놀이가 진행되는 동안 공포에 질린 새들은 도망치다가 빌딩에 부딪히고, 방향감각을 상실하여 둥지로 돌아오지도 못한다.
불꽃놀이 이면에는 이처럼 여러 하위 서사들이 교차적으로 엮여 있다. 가령 폭죽은 중국과 인도에서 만들어져 미국이나 한국으로 수출되지만, 이런 제조 과정에서 남반구의 가난한 아동과 자연이 어떤 희생을 치르게 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또한 불꽃놀이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공공분야에 쓸 세금이 축소된다는 것, 폭죽의 화학적 특성이 인체에 암을 일으키고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것도 말하지 않는다.
사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가장 원대하고 장엄한 공포는 바로 원자폭탄의 불꽃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피폭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한결같이 증언했다. 난생 처음 본 강렬하고 거대한 오렌지색 불꽃이 온 하늘을 뒤덮었고, 번쩍이는 섬광을 손바닥으로 가리자 살 속의 뼈가 보일 정도로 그 빛이 밝았다고 말이다.
우주탐사라는 반생태적 지구 탈출 과업
20세기 들어 인류는 불꽃놀이를 훨씬 능가하는 새로운 숭고한 과업을 발견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주탐사다. 우주탐사는 겉으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과학기술 발전의 가시적 성과물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대기권 너머까지 자연을 통제하려는 주류 엘리트들의 반생태적 지배욕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오랫동안 자연과 같은 생물학적 영역을 초월하는 것을 이상화하고 영웅시해 온 서구의 남성주의적 이데올로기에서 나왔다.
우주탐사는 2차 세계대전 전후 미국과 소련 중심의 냉전체제에서 국가주의적 자부심의 활로로 시작되었고, 남성중심주의와 종차별주의에 입각하여 침팬지와 개들이 우주 식민화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다.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포획한 침팬지를 사용했는데, 어미와 떨어진 어린 침팬지들이 우주 상태를 모방한 별의별 장치와 속도와 자세 속에 온갖 예행 연습을 거쳐 우주로 강제 발사되었다. 남성 과학기술자들이 이들의 고통에 무감각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소련은 주로 암컷 유기견을 이용했는데, 스푸트니크 2호에 강제 탑승된 라이카는 처음부터 돌아올 수 없는 편도 여정으로 추진되었다. 실상은 과학의 이름으로 자행된 끔찍한 국가주의적 폭력이지만, 우주탐사의 숭고한 이데올로기는 이런 비인간동물의 강제적 고통과 죽임을 인류 발전을 위한 희생인 양 선전하였다.
우주탐사 실험은 왜 계속되는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시작된 우주탐사는 지구 밖에서도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피난처 건설을 위한 실험으로 이어졌다. 바이오스피어II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실험은 1991년에서 1993년까지 미국의 아리조나주에서 실행되었다. 여덟 명의 분야별 전문가들이 화성 정착지 건설을 위한 모의실험에 참여했지만, 해결할 수 없는 기술적 한계와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 심리적 갈등으로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가드는 이 실험의 목적이 처음부터 지구의 환경문제 해결이 아니라, 우주 식민화와 자본화에 있었다고 비판한다. 남성주의적 과학기술 이데올로기로는 생동하는 물질과 지구 행위자들 간에 서로 얽히고설킨 촘촘한 그물망을 이해할 수 없다. 바이오스피어II 프로젝트는 지구생태계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물질과 비물질과의 얽힘은 흉내낼 수 없을 뿐 아니라, 설령 인위적으로 흉내 낸다면 그 결과는 인간과 생태계에 모두 치명적인 손상이 될 것임을 보여준다.
바이오스피어II 실패 이후 잠잠하던 우주탐사는 2006년 스페이스 프론티어 재단이 만들어지면서, 미국의 나사(NASA) 중심에서 다국적기업 중심의 뉴스페이스(NewSpace)로 주도권이 이동한다. 일론 머스크와 같은 기업가들은 대기권 밖을 새로운 시장이자 투자처로 인식하여 민간 우주항공 시대를 열며 본격적인 우주관광 사업에 착수하였다.
이들은 마치 대기권 탐사가 보편적인 과학기술 발전의 성과인 양 선전하지만, 그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남성주의적인 식민주의의 지배 욕망이다. 군산우주복합체(military-industrial-space complex)가 주도하는 지구공학을 동원한 이런 ‘우주의 자본화’는 앞선 실험과 마찬가지로 우주 쓰레기와 같은 인류가 풀 수 없는 또 다른 재앙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지구생태계와의 관계성을 회복하라
가드는 인간우월주의, 남성중심주의, 종차별주의, 기술공학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비판적 에코페미니즘〉은 인간도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생물종으로서 자연생태계와 촘촘하게 얽혀있으며, 이 지구는 모든 존재의 삶을 위한 공유지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류가 영원한 마지막 편도 여행을 떠나게 되기 전에, 지구생태계와의 관계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봐야 한다. 바위와 나무와 동물과 모든 지상의 약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이들과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것만이 인류가 지구를 떠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박혜영. 인하대 교수. 영국 글래스고 대학에서 낭만주의 영시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인하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관심사는 영국의 정치경제학, 에코페미니즘, 생태문학, 과학기술 담론 등이며, 최근에는 맬서스부터 해러웨이에 이르는 인구담론의 정치학을 연구 주제로 다룬 바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 따른 젠더불평등과 기후위기를 해결할 대안으로 커먼즈(commons)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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