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미투 이후,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았다”

이윤택 만기 출소를 앞두고 연극인, 시민들 모여 변화 모색해

박주연 | 기사입력 2025/03/21 [18:38]

“연극계 미투 이후,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았다”

이윤택 만기 출소를 앞두고 연극인, 시민들 모여 변화 모색해

박주연 | 입력 : 2025/03/21 [18:38]

2018년 3월 5일,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미투(#MeToo)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는 ‘연극계의 거장’이라 불리던 이윤택 씨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행해온 성폭력을 고발하는 자리로 당시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기자회견의 주체는 피해자 16인과 함께 공동변호인단 101인을 포함한 ‘문화예술계 내 공동대책위원회’(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한국여성변호사회)였다. 그로부터 얼마 뒤인 3월 23일 이윤택 씨가 구속되었고, 이듬해인 2019년 7월 24일 대법원 선고로 징역 7년 형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3월 22일, 이윤택 씨의 형기가 종료되어 출소 예정이다.

 

▲ 2025년 3월 17일 서울 강북노동자복지관 대강당에서 제10차 대학로X포럼 〈연극계 미투 이후,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았다〉가 열렸다. 이연주 연출가가 사회를, 전서아 극작가와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이 여는 말을, 이산 배우와 장지영 드라마터그, 샬뮈 기획자가 1부 발표를, 송진희 부산문화예술계반성폭력연대 대표, 어지영 씨, 심지후 연출가, 이재령 연출가가 2부 발표를 담당했다. ©일다


연극계 다양한 현안에 대한 연극인들의 자발적인 토론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룹인 ‘대학로X포럼’에선, 이 시점에 다시 한번 미투운동에 대해 논의하고자 제10차 포럼 〈연극계 미투 이후,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았다〉를 열였다.

3월 17일 오후 2시부터 서울 강북노동자복지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포럼엔 연극인, 관객, 예술대 학생 등이 자리를 가득 채워 ‘연극계 미투 이후’의 상황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이윤택 성폭력 사건 되짚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피해자 18인 중 15인, 25세 미만에 최초 피해 입어

고등학교, 대학교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 비중 높아

 

배우이자 ‘성평등작업실 이로’의 이사인 이산 씨는 “이윤택 성폭력 사건 대응 이후: 연루된 일상을 살아내는 연대를 위한 질문들”이라는 발표를 통해, 해당 사건 전후의 상황을 설명했다.

 

연극계에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으며 국내 최대 규모의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운영한 이윤택 씨의 성폭력은 2018년 서지현 검사의 고발로 불붙은 국내의 미투운동 속에서, 연극계 내 다수의 피해자가 발언을 한 덕분에 공론화되었다.

이산 씨에 따르면, “피해 진술서가 최소 26부 이상 변호인단에 제출”될 정도”로 피해 규모는 상당했다.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범행만이 재판에서 다뤄졌지만, 사실 피해 횟수는 훨씬 더 많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원인을 분석하는 건,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지점이다.

이산 배우는 “고소인단이 가지고 있는 진술서 내용에서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피해자는 18인이었으며, 그중 15인이 25세 미만에 최초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짚으며,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거나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의 비중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어리기 때문에, 잘 몰라서 타깃이 된 것이라기보다 이들이 극단 내 ‘막내, 신입’이라는 취약한 위치에 있음을 가해자가 잘 알았다는 뜻이다.

이산 배우는 “피해자들로부터 정말 많이 들었던 진술 중 하나가 ‘피해 당시엔 그것을 피해로 인식할 수 없었다’는 말이었다”고 했다.

 

“이 행위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피해자들이) 인지는 했지만, 이것을 폭력 혹은 비윤리적인 행위로 해석하거나 말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런 해석의 권한이 단원들에게 없었을 것이다. 피해자는 오히려 성폭력을 ‘선생님’에게 할 수 있는 안마나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연기 지도의 일부로 수용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성적 거래로 배역을 얻으려 한다고 비난할까 두려워 위축되기 쉬웠다.”

 

▲ 제10차 대학로X포럼 〈연극계 미투 이후,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았다〉에서 이산 배우가 “이윤택 성폭력 사건 대응 이후: 연루된 일상을 살아내는 연대를 위한 질문들” 발표를 진행했다. ©일다


극단 운영 방식이나 연기 지도 방식도 문제였다. “모든 사안의 결정, 단원에 대한 평가가 다 이윤택의 권한”이었는데, 그 평가는 “기분에 따라” 극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당시 극단 단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산 배우는 “오늘은 최고의 배우지만 내일은 어디도 쓸데가 없는 배우가 되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퇴단을 명령 받기도 하고, 퇴단 이후에도 계속 비방을 퍼트려서 명예가 훼손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고강도 노동을 요구하는 등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자신의 마음 혹은 동료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많은 사람이 함께 공동생활을 했지만 사실상 그 안에서는 고립감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상당한 불안을 계속 갖고 있어야 했던 점”이 피해자들을 더 어렵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이윤택은 성폭력을 ‘안마’와 ‘메소드 연기’로 쉽게 탈바꿈시킬 수 있었”으며, “단원들은 공연에 필요한 것이라면 늘 기꺼이 해내야 한다는 배우의 규범을 이미 학습한 상태에서, 메소드와 성폭력의 경계를 구별하는 시도가 부적절하거나 위험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라고 분석했다.

 

미투 운동 이후의 변화들

 

이윤택 성폭력 사건 이후, 연극계 내 여러 사람들이 변화를 도모했다. 장지영 드라마터그는 “가해자 개인에 대한 고발뿐 아니라, 안전하고 평등한 연극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고, 여러 단체들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규약을 만드는 등 연극계 전반의 분위기 변화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2018년 미투 이후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 결성되어 활동을 이어왔고, KTS 워킹그룹이 만들어져 ‘한국 공연예술 자치규약’을 만들어 배포하였다.(관련 기사: ‘우리 극장에서 성폭력은 안 돼’…공연예술인들의 약속 https://ildaro.com/8404, ‘성/폭력 예방규약은 창작을 방해하지 않는다’ https://ildaro.com/8405) 부산에서는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가 만들어졌고, 전북에서도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가 결성되는 등 지역에서도 단체가 만들어져 행사를 지속했다.”

 

관객들 또한 변화를 촉구하고 모색했다. “2018년 2월 있었던 관객들의 #withyou 집회를 비롯, 관객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연극계의 불평등한 문화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송진희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 대표는 “2018년 미투 운동을 통해 부산 지역의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피해자들의 공론화를 통해 알려졌고, 이후 부산 지역 여성단체연합과 예술인들이 함께 예술계 미투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했고, 부산문화예술계 성폭력 특별대응센터가 만들어져 임시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특별대응센터는 4개월 만에 중단”되었다. 이후 다시 그 필요성을 요구하는 거센 목소리를 낸 결과, “부산시는 2019년부터 부산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바뀌지 않은 것들, 그리고 백래시

 

연극계 미투운동 이후 많은 예술인들이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송진희 대표는 “2025년 공모 사업으로 (부산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예방센터) 위탁운영 단체가 변경되면서, 피해자 지원과 사건 대응을 중심으로 해 오던 기존 예방센터의 운영이 중단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송 대표는 “예방센터의 의미와 운영 방향성 그리고 안정적인 지원과 운영 모델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국면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사실 예방센터를 향한 백래시는 계속되고 있다. 예방센터의 필요성을 계속 이야기해오고 있지만, 한편에선 여전히 ‘문화예술계에서 왜 피해 지원을 해야 되냐, 이런 활동이 문화예술계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또한, 예방센터에 대해 ‘피해 지원의 전문성이 없다, 신빙성이 없다’는 등의 소문을 내서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공격하는 가해자들의 카르텔이 공고한 지역의 현장이 있다.”

 

그 누구보다 먼저 변화를 만들어내고, 학생과 교직원 모두에게 평등한 공간을 마련해줘야 할 학교도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국예술종합대학(한예종) P교수 성추행 사건과 음주수업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심지후 연출가는 공대위 활동을 하면서 발견한 몇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학교 측은 상처받은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도닥이는 것이 ‘사후 대처’의 핵심이라고 착각한다는 것, 공식 메일로 소통하지 않고 전화 통화나 일대일 면담 등 사적으로 대화하려 한다는 것, 학과의 문제가 교학처로 넘어가 처리될 수 있는 연결다리가 없다는 것, 어쩌면 유일한 연결다리가 학과 교수라는 것, 그러나 학과 교수들은 그 일을 무척 피곤해한다는 것, 문제 해결의 주체가 없고 사과만 거듭한다는 것, 학교가 문화체육관광부의 눈치를 예상보다 많이 본다는 것, 그래서 학생에게 이쯤에서 넘어가 줄 수 있냐고 떠본다는 것” 등이다.

 

학교의 무책임함을 꼬집은 심지후 연출가는 “2024년까지 한예종에서 위계‧성폭력 사건으로 고발돼 징계 받은 교수는 무려 6명”이라며 “아직 징계처분이 공개되지 않은 P교수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정직 1개월, 3개월, 명예교수직 해촉 처분을 받았다. 세세한 과정은 몰라도, (가해교수의) 수가 너무 많고, 징계가 너무 가볍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솜방망이 처벌만큼 문제인 건, 제스처에 그치는 사후 대처”라고 짚었다.

“P교수의 경우, 공대위 측은 피해자 보호를 위한 진상조사위원회를 즉각 소집할 것과, 권력형 성폭력을 야기하고 제대로 된 조처를 방해하는 학내 위계질서를 성찰하고 공동체적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그에 대응으로 한예종은 지난해 12월 ‘안전한 학습환경 조성을 위한 TF’를 꾸리고 초동 모임을 가졌다. 그리곤 다시 모이지 않았다.”

 

정직 종료 후 복직한 가해교수에 대해서도 “학생들이 다수 휴학 등으로 가해교수의 복직을 거부하였음에도, 학교는 이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대처하지 않았다”고 비판한 심지후 연출가는 “학교가 무책임, 방임을 양분 삼아 교수 위계·성폭력을 방조하는 것 같다”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였다.

 

▲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 서울 청계광장에서 3월 22~23일 계속된 2018분의 이어말하기 현장에서의 피켓 ©일다


이윤택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이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 했던 일들

그럼에도, 우리는 연대로 길을 열 것이다

 

이번 대학로X포럼은, 제9차 포럼인 “연극계 백래시, 어떻게 맞서나갈 것인가-〈두 메데아〉 보이콧 운동을 경유하며”의 후속으로 기획된 자리이기도 하다.

전서아 극작가·연출가는 “그간 해결되지 못했던 가해자 복귀 문제를 비롯하여 연극계 전반의 백래시, 그리고 안전한 창작 환경 조성 요구를 외면한 공공극장의 책임을 토론하기 위해 마련한 공론장이었지만, 당시 이러한 취지가 무색하게 가해자의 심경과 입장을 대리하는 옹호발언,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은 2차 가해성 발언, 연극계의 위계폭력을 그대로 답습하는 발언 등으로 혼란이 빚어졌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의 경험을 통해 뒤로 물러서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제10차 대학로X포럼을 열었다. 공연예술계의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포럼에서 발표자들뿐 아니라 플로어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고 강조된 건 “그럼에도, 연대”였다.

 

송진희 대표는 “연대라는 게 뭐 대단한 게 아니고, 각자가 현장에서 겪고 있는 것을 공유하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각자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면서도 같아서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있고, 서로 상황을 공유하고 지지함으로써 생겨나는 연대의 순간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잡히지 않는 불투명한 순간들 조차 함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7년 전 이윤택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장에 있었던 이재령 연출가는 “요즘은 가끔 공연 일도 하고 또 쿠팡에서 야간 알바를 한다”며, “거기서도 관리자가 큰소리를 내면서 누군가를 훈육하면 주변 공기가 얼어붙더라. 이렇게 (권력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건 어느 집단에나 있는 일인 것 같다. 그 공포가 계속되면 공포인지도 모르고 생활하게 되고,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함께 하는 것, 말을 걸어주고 소통하는 것, 대화의 기회를 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산 배우는 이윤택 성폭력 사건에서 당시 피해자들은 스스로, 그리고 서로간 끊임없이 노력했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이윤택에게 대응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피해를 줄이고자 노력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단원과 함께 안마를 하는 중, 이윤택이 자신을 내보내고 해당 단원과 단둘이 있으려고 하면, 성폭력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대신 남겠다’고 한 피해자가 있었다. 안마를 하느라 잠을 못 자는 동료를 위해 안마를 대신한 피해자도 있었다. 이 힘이 개별적인 노력이 아닌 집단적인 노력이 되었을 때에야 이윤택을 처벌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고소인들이 자신보다 동료에 대한 범행을 처벌하고자 하는 의지로, 두 번 다시 꺼내고 싶지 않은 피해 경험을 진술했다. 한 명이라도 더 피해를 증언해서 높은 형이 선고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진술에 동의하지 않은 피해자가 있으면 그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고, 법정에 증언하러 온 피해자들의 손을 잡고, 먹이고, 재우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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