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구성원들이 행복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향해

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 〈총을 든 스님〉

변규리 | 기사입력 2025/04/02 [12:06]

사회구성원들이 행복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향해

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 〈총을 든 스님〉

변규리 | 입력 : 2025/04/02 [12:06]

꽃이 피기 전에 끝날 줄 알았던 윤석열 탄핵 선고가 지체되어 많은 시민들이 피로감 누적, 집중력 저하, 내란성 우울증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던 때,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와 눈물의 역사로 일궈 낸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광장에 나가 탄핵 촉구를 계속 외치는 시민들을 보며, 그 물결을 지지하고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어떤 영화를 추천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2006년 국왕이 자진하여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민주주의를 도입한 나라, 부탄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총을 든 스님〉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영화 〈총을 든 스님〉은 부탄의 작가 겸 사진가 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이 2023년 만든 극영화로, 한국에서 2025년 1월에 개봉했다

 

부탄에는 2006년 전에는 TV와 인터넷이 없었다. 그러다 부탄의 왕은 2006년에 TV와 인터넷을 들였고, 이어 스스로를 폐위하여 국민이 지도자를 직접 선택하게 한다. 민주주의 체제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국민을 어떻게 교육할지는 정부의 몫으로 남게 된다. 정부는 국민들을 교육하기 위한 일환으로 모의선거를 치루고자 한다. 이 영화는 모의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통과, 미국 남북전쟁 당시 사용된 소총을 찾으러 미국에서 온 총기상과, 총이 필요한 스님의 이야기가 엮여 ‘사회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을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정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민주주의 핵심인 투표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공무원들을 파견하여 모의선거를 치르게 한다. 공무원들은 세 가지 당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파란당은 자유와 평등, 빨간당은 산업발전, 노란당은 보존을 의미하며, 원하는 당에 투표할 것을 독려한다. 이 소식은 라디오를 통해 곳곳에 전해지고, 라마스님에게까지 전해진다. 수련 중이던 라마스님은 급하게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제자 타시스님에게 총을 구해오라고 한다. 총을 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고, 왜 구해와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스승의 말씀에 타시스님은 총을 찾아 나선다.

 

보름달이 뜨기 나흘 전.

본격적인 선거 운동이 시작되면서, 평화로운 마을에도 갈등이 발생한다. 영화의 한 축으로 유펠가족의 갈등이 등장한다. 유펠은 초등학교에 다니며 엄마 아빠와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선거가 시작되면서 봉건제도를 없애고 현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아빠와, 보존을 지속해야 한다는 장모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다. 지우개를 사다 달라는 아이의 요청을 자꾸 까먹을 정도로 아빠는 선거에 매진한다. 아빠는 자신이 열심히 일하면, 유펠이 총리도 될 수 있는 거라며 선거에 뛰어든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기에, 유펠의 엄마 초모는 날로 걱정이다.

 

▲ 영화 〈총을 든 스님〉(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 2023) 중에서


선거 때문에 갈등을 빚는 가정이 있지만, 모두 다 그렇지는 않다. 선거를 경험해 본 적 없는 국민들은 모의선거에 별 관심이 없었고, 선거 등록자 수는 10%밖에 안 되는 처참한 수치를 기록한다. 모의선거를 기획하고 총괄하는 국장은 선거를 취재하고 있는 외신을 주목하며, 세계각국의 시선을 봐서라도 모의선거는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고 결심하게 된다.

 

한편, 미국 남북전쟁 당시 사용된 소총을 찾기 위해 미국에서 찾아온 총기상 론은 골동품을 파는 현지 가이드 벤지와 만난다. 총기 매매는 불법임으로, 이들은 부탄의 사찰을 가이드하기 위해 만났다는 위장을 한 채 총기를 찾는 여정을 떠난다.

 

왜 라마스님은 타시스님에게 총기 두 자루를 구해오라고 했을까. 이 궁금증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장치다. 영문도 모른 채 총기를 구하러 다니는 타시스님은 찾다 찾다 지쳐 마을 매점에 들러 콜라로 목을 축인다. 매점 안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TV를 보는데, 그 영화가 007시리즈 중 하나다. 타시스님은 제임스 본드가 AK47 소총을 들고 서 있는 씬을 보며, 멈칫한다. 바로 저런 총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평화롭고 한적한 마을에 저런 총기가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가이드 벤지는 이 마을의 사정을 빠삭하게 알고 있었고. 총기상 론이 원하는 총을 보관하고 있는 얍 펜조르네 집으로 론을 데려간다. 얍 펜조르는 빚이 많았고, 이 총을 팔면 빚을 탕감할 수 있었다. 론이 제시한 7만 5천 달러라는 가격을 듣고, 얍 펜조르는 너무 많다며 그 금액의 반 정도로 총기를 넘기겠다고 한다. 원만한 합의에 이른 론과 벤지는 은행에서 돈을 찾아 다음 날 찾아오겠다고 한다.

 

▲ 영화 〈총을 든 스님〉(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 2023) 중에서


그러나, 그들이 떠나자 타시스님이 얍 펜조르 집에 방문한다. 타시스님은 소액으로 총 값을 치르고자 한다. 빚이 많아 고민할 법한데도, 얍 펜조르는 라마스님에게 빚을 많이 졌다며 별말도 없이 스님에게 총을 넘긴다. 그러나 타시스님은 공짜로 물건을 받을 수는 없다며 빈랑나무의 열매를 선물한다. 3만 5천 달러와 맞바꾼 빈랑나무 열매라니. 영화는 이러한 방식으로 진정한 행복에 대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비교하지 않으며 부탄 사람들의 행복의 척도와 순수함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궤를 엮어나간다. 다음 날 벤지와 론이 얍 펜조르에게 찾아와 망연자실하게 될 상황을 상상하며 영화를 계속 보게 되지만, 이번엔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는 부탄의 경찰이 따라붙기까지 한다.

 

총을 구해 절로 돌아가는 스님은 길에서 국장의 차를 만나 얻어 타게 된다. 타시스님은 헤어지면서, 보름달이 뜨는 날 중요한 의식이 있으니 국장에게 참석해 달라는 당부를 남긴다. 보름달이 뜨는 날은 모의선거가 치뤄지는 날이고, 국장은 종교행사가 열리는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그곳에서 모의선거를 치르자며 공무원들에게 지시한다.

 

모의선거를 위해 공무원들은 빨간당과 파란당으로 사람들을 갈라 세우고, 당을 호명할 때 지지하는 당에 환호하는 연습을 시킨다. 마을 사람들이 좋게 좋게 환호하자, 서로 좋아하면 안 된다며 서로 마치 때릴 것처럼 소리를 지르라고 한다. 멀리서 상황을 바라보던 국장에게 다가온 한 할머니는 “왜 무례하게 굴라고 가르치죠?”라며 이런 방식의 민주주의가 옳은지 직접적인 의문을 던진다. 감독은 허울뿐인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국민의 행복을 생각하는 민주주의란 어떤 과정으로 그 결론에 다다라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계속 질문을 모아 나간다.

 

▲ 영화 〈총을 든 스님〉(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 2023) 중에서.

 

한편, 소총을 스님에게 넘겼다는 것을 알게 된 론과 벤지는 무서운 속도로 스님을 따라잡는다. 론은 타시스님 앞에 얍 펜조르에게 주기로 한 3만 5천 달러를 내려놓으며 총을 바꾸자고 한다. 그러나 스님은 이 많은 돈 말고 총 두 자루가 필요하다며 제안을 거절한다. 그러자 벤지는 론이 총 수집가이자 전문가라며 총 두 자루를 구해준다고 제안한다. 소총과 바꿀 총기 모델이 그려진 카탈로그를 스님에게 보여주자, 타시스님은 제임스 본드가 들고 있던 AK47을 고르며 이 총으로 두 자루를 구해달라고 한다. 그러자 벤지는 AK47은 위력도 어마어마하고, 비싼 데다 구하기도 힘들어 “욕심쟁이 스님”이라며 다른 총으로 골라보라고 하지만, 스님은 그 총이 아니면 필요 없다고 한다. 론은 어떻게든 구해보겠다며 스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기한은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타시스님은 총을 바꾸고 싶다면 보름달이 뜨는 날, 의식이 치러질 탑 아래서 만나 총을 교환하자고 제안한다. 이로써 모든 등장인물은 보름달이 뜨는 날 탑 아래서 만나게 될 약속을 갖게 된다.

 

※ 기사의 다음 내용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 주]

 

드디어 보름달이 뜨는 날.

모의선거는 유권자 98%라는 엄청난 투표율로 성공한다. 그러나 노란당이 95%로 이긴다. 말이 안 되는 이 숫자의 원인은 노란색이 왕을 상징하기에 사람들이 노란당을 뽑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유력하다. 국장은 한 당이 95% 차지하는 결과를 가져온 모의선거는 실패했다며 낙담한다.

그때 탑 아래서 의식을 준비하고 있던 타시스님은 라마스님의 명으로 국장을 데리러 투표소로 찾아온다. 기분이 좋지 않은 국장은 참석을 거절하지만, 국장을 위해 준비한 의식이기에 꼭 참석해달라는 의외의 말을 듣게 된다. 그리고 마침, AK47을 구한 론과 벤지도 의식이 치러질 장소로 모이고. 유펠의 가족들도 모인다. 게다가 벤지와 론을 찾고 있던 경찰들도 추적 끝에 탑 아래로 모인다.

 

▲ 영화 〈총을 든 스님〉(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 2023) 중에서


드디어 탑 아래 모든 이들이 모이고. 총을 구해 오라고 한 라마스님의 미스터리가 풀린다. 라마스님은 현대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일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은 중요하고, 이러한 중대한 일을 하는 데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중대한 일을 치루는 데는 예로부터 탑을 지어 무탈을 기원했다며, 토대 깊숙한 곳에 증오와 갈등, 고통을 상징하는 것을 묻는 의식을 치르라는 것이다. 그 상징이 총이었고, 그것을 묻는 행위를 할 이가 모의선거를 총괄하는 국장이어야 했다.

 

총기상 론과 가이드 벤지는 경찰들 앞에서 소총이 토대 아래 묻히고, 사람들이 던지는 돌멩이에 망가지는 모습을 쓰라리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러다 경찰이 벤지와 론에게 다가와 조사를 받으러 함께 갈 것은 요구하자. 벤지는 머리를 써서 가방에 있던 총을 꺼내며 오늘 의식을 위해 론은 AK47 두 자루를 기부하고자 미국에서 날아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타시스님이 맞는 말이라며 보증한다. 결국 경찰이 이를 믿게 하기 위해 론은 어쩔 수 없이 AK47 두 자루를 소총과 함께 묻어버린다. 이를 보고 감명받은 경찰은 자신의 총도 함께 묻고, 장난감 총을 들고 다니는 아이도 총을 묻는다. 부탄 국민들은 환호하며 의식을 마감한다. 이로써 이 마을의 증오, 갈등, 고통의 씨앗은 탑 아래에 영영 묻혀버리게 된다.

 

졸지에 어마어마한 후원자가 된 총기상 론은 이후 부탄사람들과 어울려 전통 춤을 추기에 이른다. 론의 후원을 고맙게 생각한 라마스님은 부탄의 중요한 상징인 남근상을 론에게 선물한다. 부탄에서 남근상은 이중성을 파괴하고, 깨달음에 가까워지게 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결국 론이 소총을 갖기 위해 들인 거액의 돈으로 갖게 된 것은 남근상이었다. 그러나 론은 어쩐지 마음이 편해 보인다.

 

▲ 영화 〈총을 든 스님〉(파오 초이닝 도르지 감독, 2023)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다는 부탄은 2008년 3월 첫 총선을 치르며 전례 없이 ‘평화로운 민주주의’ 전환에 성공했다. 영화를 보는 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대사가 있다. 딸 유펠이 아빠의 정치 성향으로 인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자, 엄마 초호는 국장에게 우리가 굳이 싸울 필요가 없는데 왜 이게 필요한 거냐고 반문한다. 그러자 국장은 이 과정을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에 다 지나갈 거고 곧 행복해 질 거라고 답한다. 그러나 초호는 그 말에 “하지만 우린 항상 행복했어요.”라고 답한다.

 

우리가 행복한 길은 무엇인가. “사회구성원들의 행복”을 진정으로 생각하고 존중한다면, 평화로운 민주주의를 위해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파면이라는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는 명백하게도 불법 계엄을 저질렀다. 윤석열은 더 이상, 이 나라를 대표할 인물이 되지 못한다. 민주 시민들은 불법 계엄을 선포하며 내란을 획책한 자를 대통령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재의 선고를 기다리다 지친 독자들에게, 그 마음을 달래 줄 영화 〈총을 든 스님〉을 추천한다. 사실, 광화문과 경복궁 거리를 물들이고 있는 응원봉을 보러 갈 때면 하나도 피곤하진 않다. 다리는 조금 아파도, 마음만은 다림질한 것마냥 쫙쫙 기분 좋게 펴지고 마니까.

 

[필자 소개] 변규리: 2016년부터 ‘연분홍치마’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첫 장편 연출작인 통신설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팟캐스트 방송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Play On〉(2017)을 연출. 두 번째 장편으로 “성소수자 부모”라는 정체성을 마주한 두 여성의 성장 서사를 그린 〈너에게 가는 길〉(2021)을 연출했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소개] 2004년 설립된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소통과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다양한 현장에서 미디어로 연대하며 다큐멘터리, 극영화, 웹컨텐츠 등을 제작하고 있다. pinks.or.kr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짜이 2025/04/03 [11:43] 수정 | 삭제
  • 부탄영화에 왠 총이 나오지 했는데.. 총이 없어서 가능한 스토리구나. 부럽. 장난감총까지 묻는 거 감동 심해..
  • 수성 2025/04/02 [15:01] 수정 | 삭제
  • 행복하네요. 이틀 기다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ㅎㅎ 엄청 상징적인 게 많은 듯 한데 직접 봐야지 싶고요. 총 잃고 남근상 받는 거 너무 웃김 ㅋㅋ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