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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엔 열한 가지의 ‘노동’ 이야기가 나온다. “노동 사건만 하는 노동 변호사. 그것도 노동자 편에서만 일하는 변호사”인 윤지영 변호사가 맡았던 사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십 년 넘게 일한 방송국인데, 내가 근로자가 아니라니?
요즘 시대에 노동자로 산다는 게 단순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노동자에 너무 많은 ‘분류’가 생겼다는 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파견, 위탁 등의 형태도 있고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초단기 노동자도 있다. 임금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건 같은데 노동 구조와 환경은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근로자’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속에 등장하는 故 이재학 PD도 그랬다. 청주방송에서 14년 넘게 일한 이재학 PD는 2018년 “방송 작가, 조연출 등 동료 스태프의 수당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가 해고를 당했”다. 그는 이것이 부당해고라는 것을 확인 받기 위해 ‘근로자 지위 확인의 소’를 제기했지만, 청주지방법원은 그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패소 판결했다. 이 판결문을 받아본 이재학 PD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윤지영 변호사는 해당 사건의 담당 변호사는 아니었다. 이재학 PD의 죽음 이후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는데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서 이 일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윤 변호사는 청주방송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유가족을 만나고 내심 놀란다. “유가족은 이재학 씨뿐만 아니라 청주방송 내 다른 비정규직의 실태 규명까지 요구했다. 이렇게 되면 문제 해결이 힘들어지는데도, 유가족은 그 길을 택했다.”
그렇게 “200쪽이 훌쩍 넘는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PD 사망 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2020년 6월에 완성”됐다. 이를 통해 청주방송 담당 국장이 1심 재판 과정에서 거짓 증언을 한 게 밝혀졌고, 이후 이 국장은 “위증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재학 PD는 죽기 전 항소했고, 남은 이들은 항소에서 결과를 뒤집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이 과정에서 빼놓지 않은 건, 청주방송의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 조사였다. 정규직원처럼 일했지만, AD와 방송작가들 또한 프리랜서 신분이었기에 제도적 변화가 필요했다. 이들의 “고용 안정과 직접고용 계획 마련, 비정규직 임금 인상과 복지 개선” 등을 담은 개선안도 만들었다.
“진상조사 결과 발표 이후, 청주방송은 (이재학 PD) 사망에 대해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사과”했고, 항소심에서 법원은 이재학 피디가 청주방송의 ‘근로자’였다는 점과 부당해고를 당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3개월만이었다.
2011년 11월 22일, 윤지영 변호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으로 온 “소속단체 국가정보원”인 메일을 읽었다. 그렇게 김선희(가명) 씨와 이영진(가명) 씨를 만났다. 둘은 국가정보원에 임용된 기능직 국가공무원으로, 출판물 편집과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산사식원’이라 불렸는데, “국가정보원의 전산사식원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전산사식 직렬에는 여성만 채용했기 때문”이다. 한편, 출판 관련 업무 중 ‘인쇄’를 담당하는 사람은 모두 남성이었다. 성별 분업이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게 소송의 이유는 아니었다. “소송 이유는 정년 차별”이었다. “전산사식을 포함해서 여성들만 하는 입력 작업, 전화 교환, 안내 직렬의 경우 정년이 만 43세, 남성들만 하는 인쇄, 영선, 원예의 경우 정년이 만 57세”였다. 때문에 김선희, 이영진 씨는 남들에 비해 훨씬 이른 나이에 정년퇴직을 하게 됐다. 이들은 이것이 ‘성차별’임을 밝히고 싶어했다.
이 싸움은 거의 계란으로 바위치기 수준이었다. 윤지영 변호사는 “사실 일터에서의 남녀차별은 흔한 일이지만, 1998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된 후 지금까지 고용상 성차별을 소송으로 다룬 사례는 채 30건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다. “실제 소송을 해도 이길 가능성이 적은” 사건이었다. 사용자가 “여성과 남성을 직접적으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직군·직렬 등을 달리 정하고 직군·직렬에 따라 차별하는 간접차별 사례”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선희, 이영진 씨는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전환된 상태였다.
하지만 윤 변호사는 “모범을 보여야 할 공적 영역, 그중에서도 권력의 정점에 있는 국가정보원의 성차별을 다루겠다”는 김선희, 이영진 씨의 의지에 함께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국가정보원과의 싸움은 예상보다 더 고난하고, 심지어 무서운 일이었다. 국가정보원은 김선희, 이영진 씨를 오히려 고발하는 등 압박을 가했다. “다행히 무혐의로 종결되었지만, 국가정보원에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를 실감”했다.
소를 제기한지 반년 만에 1심 판결이 났지만 결과는 패소였다. “근무상한 연령을 달리 정한 것은 성차별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계약직이라는 위치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여성차별인데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는 윤지영 변호사 앞에서 김선희, 이영진 씨는 계속 싸우겠다고 했다. “이기기 어려운 거 알고 시작한 소송이잖아요. 저희는 각오했어요. 지는 건 두렵지 않아요. 저희는 그렇다 치더라도 후배 여직원들까지 저희처럼 당하면 안 되니까요. 끝까지 가요, 변호사님.”
항소심도 패소. 하지만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전체 수면시간이 열 시간도 되지 않을” 만큼 매달려 상고이유서를 썼고, 2013년 9월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그렇게 6년이 지났지만, 대법원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김선희, 이영진 씨가 남성 직군의 정년인 57세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던 윤지영 변호사에게, 마침내 선고 통지서가 날아왔다. 2019년 10월 31일, 결과는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는 내용이었다.
믿을 수 없는 성과였다.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제6조, 남녀고용평등법의 법률 규정이 “국가기관과 공무원 간에도 적용된다. 이러한 법률 규정에 반하는 시행령이나 내부 규정은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국가기관에서의 간접차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을 읽다 보면, 한국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는다. 이렇게까지 악덕 기업/회사/개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이런 현실을 바꾸는 게 무척 고단한 일이라는 사실에 조금 슬퍼지기도 한다.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가슴 한 켠을 계속 채워주는 게 있다. 책 속 인물들의 용기, 지지 않고 싸우는 단단한 의지와 마음이다. 노동자와 함께하는 윤지영 변호사를 비롯한 여러 변호사와 노무사들, 시민단체 활동가들. 그리고 무엇보다 잘못된 사회제도와 관행, 차별을 용인하는 문화에 감히 싸움을 건 노동자들, 그들의 유지를 이어나가는 사람들. 이들이 바꾼 세상, 일터 덕분에 다음에 오는 노동자는 조금 더 나은 세상과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예비)노동자이거나 노동자였던 사람이라면, 혼자 외롭게 잘못된 세상과 싸워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무척 반가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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