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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등학생운동’을 줄인 말인 ‘고운’을 처음 들어봤다. 흔히 학생운동이라고 하면 대학생을 떠올리듯, 나 또한 관성적으로 그랬다. 하지만 그런 편견은 책 『고등학생운동사』를 펴자마자 깨질 수밖에 없었다.
“떠올려보자. 근대 교육제도 도입 이후 10대가 거리에서 투쟁하지 않은 시기가 있었던가?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 해방 이후 4·19혁명은 고등학생이 중심이 되어 시작했다. 1980년 5월 광주, 1987년 6월항쟁, 1989년 전교조 교사 집단해고, 1991년 5월투쟁, 그리고 이승만부터 2025년 윤석열까지 대통령 퇴진 운동에 10대가 광장에 서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10대의 정치활동은 매번 ‘재발견’되고, 왜 이토록 낯설까?” -들어가는 글 중
들어가는 글을 쓴 조한진희 작가는 “학생운동은 역사적으로 사회운동의 주요 세력”이었다고 짚는다. 책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자신의 운동을 ‘고등학생운동’으로 정체화하며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11명이 자신의 활동과 삶을 기록”했다. 이들은 1987년 6월 항쟁 거리에서 “독재타도 호헌철폐”를 외쳤고, 사학비리 척결 투쟁을 전개하고, 또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학생회장도 직접 뽑아야 한다며 직선제 학생회를 이뤄냈다. 학생들을 자살로 몰아가는 입시위주 교육에 반대했고, 1989년 전교조 집단해고 당시 전교조와 함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역사는 이들을 기록하는 일을 소홀히 했다. 그나마 사람들에게 남은 기억은 해고된 전교조 선생님들에게 “선생님 사랑해요”를 외치며 종이비행기를 날린 장면이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첫페이지를 폈을 때, 고운을 기억하는 건 “잃어버린 현대사의 한 조각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것이라는 이 책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운을 함께 기억하기 위해, 책 『고등학생운동사』의 기획자이자 12명의 저자 중 한 명인 조한진희 작가를 만났다.
-고등학생 운동사를 써보자고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내가 당시의 마지막 고운 세대라는 것에 대한 책임감과 자괴감이 커요. 누가 “네가 마지막 세대니까 뭐라도 해야지”라는 말을 한 건 아니지만. 당시엔 내가 마지막 세대인지도 몰랐는데, 난 분명 뒷사람한테 바톤 터치를 한다고 했는데, 그게 어느 순간 사라졌고 운동이 끝났다는 것에 대해서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했나?’하는 자괴감이 있어요. 그래서 기록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고운을 했던 사람 중 많은 이들이 고운을 이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갖고 있어요. 상처나 트라우마로 갖고 있는 이들도 많고요. 이 운동이 어떤 방식으로든 평가된 적이 없고, 그건 고운 활동가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항상 이것에 대한 괴로움과 찝찝함이 있었어요. 나의 복잡한 감정도 좀 정리를 하고 싶었고요.
또 하나의 이유는, 고운 이후 공장에 들어가거나 고운의 지도선배를 하면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던 동료들이 있는데, 이들의 상황과 관련된 부분이에요. 졸업 후 공장으로 간 이들의 경우, ‘민중과 함께 세상을 변혁하겠다’는 의지로 간 거였음에도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공장에 왔다거나 빈곤해서 일찍 돈 벌러 왔다는 사람으로만 계속 인식되는 거죠. 심지어 이후 노동운동을 이어서 하고 있음에도 말이에요. 용기있는 의식적 실천이 현실에 밀린 어쩔 수 없는 일로 인식되는 오류 속에서, 옛 동지들을 뭐랄까 좀 쪼그라든 프레임에 가두는 것 같은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어요. 고운이 기록되고 사회적으로 기억되면 그들에게 언어가 생길 수 있잖아요. “난 고운 출신이야. 내가 이 삶을 실천적으로 선택한 거야.”라고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오래 전부터 생각하곤 있었는데 실제로 작업하기 시작한 건 2022년이었어요. 구체적인 자료들을 뽑고 고등학교 운동사 흐름을 정리했어요. 그 작업을 반년 정도 한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기록할지에 대한 고민도 했어요. 인터뷰를 해서 글을 정리할지, 문헌들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할지… 그러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고운에 대한 기억이 다 다르더라고요. 저역마다 다르고, 세대마다 달라서, 이걸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하는 게 약간 부담이 됐고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고운 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모아 글쓰는 방식으로 해야겠다고 정했는데 이 또한 쉽지 않았어요. 거절을 많이 당했거든요. 여전히 고운 활동이 상처나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서 도저히 못 쓰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고운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며 앞으로 연락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여러 필자의 글이 담겨 있어서 좋았어요. 작가님 포함 11명의 고운 당사자와 1명의 연구자, 총 12명이 각각 글을 썼는데요. 내용이 다르면서 또 겹치는 이야기나 인물이 있어서 어떤 점에서는 연결되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저자가 여러 명이어서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의 포인트나 서사가 있어서 좋았어요. 하지만 힘들었죠. 전화하면서 고운 이야기하다가 상대방이 울면 나도 울고… 정말 힘들게 원고를 완성한 저자들도 있어요. 그때의 기억 때문에 불면증이나 공황장애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 사람을 고단한 시간 속으로 등 떠밀어버렸나 싶었는데, 이렇게 한번 쓰고 나니까 또 달라진 것 같아요. 글이 갖는 치유의 힘 같은 게 있잖아요. 물론 완전히 치유됐다는 건 아니지만 한고비를 넘은 것 같다? 같이 굿을 한판 한 기분이기도 하고요.(웃음)
서로 다 아는 사이가 아니다 보니, 다른 사람 글을 읽으면서 위로가 됐다는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나만 힘든 게 아니었고, 우리가 각자 어두운 터널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그리고 우리가 지금 거기서 한 걸음씩 나오고 있구나, 혹은 누구는 먼저 나왔다는 걸 봐서 힘이 됐다고요. 나 또한 고운을 했다고 하지만 몰랐던 내용도 많았거든요. 김대현님이 쓴 “어느 ‘희생’의 기록”에 나오는 광주 이야기도 그중 하나에요. 사실 고운 내에서도 광주는 굉장히 독보적이거든요. 워낙 민중들의 투쟁 역사가 탄탄한 곳이기도 하지만, 광주에서 고운 집회 한번 하면 몇천 명이 모였다고 하니까요. 1989년 7월엔 2만5천 명이 모이기도 했고요. 휴대폰도 온라인 매체도 없는 그 시대에 말이에요. 당시는 오로지 사람이 사람에게 입으로 소식을 전하거나 ‘불법’이라 여겨지던 소식지를 복사해 돌리면서 모집했으니까, 서로서로 어떤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지도 잘 알기가 어려웠어요. 고운을 한 우리도 다른 지역의 고운 활동이 어땠는지 몰랐는데, 이번에 알게 된 거죠.
-고운이 전교조 지키기에 열정적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습니다. 참교육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그 말이 오염된 상황이어서요.(네이버 웹툰 〈참교육〉은 체벌 금지법 도입 후 교권이 붕괴하자, 교육부 산하 교권보호국이 신설되고 소속 현장 감독관들이 문제 학교에 파견되는 이야기를 담음. 42화에선 페미니즘 교육을 하는 교사를 ‘참교육’하겠다며 감독관이 교사 얼굴을 가격하는 장면이 나오는 일 등으로 비판 받았다.)
참교육이 그런 의미로 쓰인다니 놀랍네요…. 우리가 생각했던 참교육은, 물론 서로 생각한 의미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일단 입시나 취업 위주가 아닌 교육. 내가 다녔던 학교의 목표가 여학생들을 좋은 엄마와 좋은 아내로 만드는 거였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성차별적이지 않은 교육. 그때만 해도 체벌이 심했으니까, 두들겨 패지 않는 교육. 교과서에 가진 자들의 역사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과 힘없는 사람들의 저항과 투쟁이 많이 실리는 것. 그리고 당시 한겨레신문 등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등 해외에서 고등학생 수십만 명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집단 시위를 진행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우리도 고등학생들의 집회 자유가 보장돼서 수십만 명씩 거리에 나와서 싸워보는게 정말 참교육이지 않은가 이야기했어요. 또, 학교에 비리도 많았는데 그런 게 사라지는 것 역시 참교육이라 생각했고요. 당시는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이라는 말도썼는데, 우리가 갖는 모든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참교육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전교조 교사가 해고당할 때 그들을 지키려고 했던 거죠. 전교조를 참교육을 견인할 수 있는 중요한 조직으로 봤고, 그 조직이 해체되느냐 아니냐의 기로에 있었으니까요. 사실 1989년 전교조가 출범하기 전, 고운 내부에선 우리의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으로 교원 노조가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고 해요. 그보다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연대한 연대체가 참교육을 견인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면서요. 하여튼 고운과 전교조는 여러 의미에서 조금 복잡한 관계에 있었고, 개인적으론 전교조가 고운의 기대만큼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움이 많아요. 당시 고운이 그렇게 연대 투쟁을 했는데도 전교조는 이후 고운을 한 번도 제대로 호명하거나 기록한 적이 없다는 점도 매우 유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고운 활동가들의 열정과 신념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목숨을 바친 열사가 여러 명이라는 점도요. ‘10대여서’, ‘청춘’이어서 이런 활동이 가능했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은데, 운동의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부정의와 차별에 대한 분노가 가장 큰 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518광주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사회의 부정의에 눈뜨게 되거나, 자신의 빈곤한 집을 보고 비웃는 교사, 성차별 발언하는 교사 등 학교에서의 차별에 대한 분노가 주로 고운을 하게 된 계기였죠. 물론 그때도 지금처럼 어떤 사람들은 ‘너희가 그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고, ‘그런 운동은 대학 가거나 어른이 돼서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 생각이 되게 비겁하다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서 우리가 이런 차별을 겪고 있고, 누구는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데, 서열이 높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공부만 한다는 게 굉장히 비겁하다고요.
그때를 돌아보면, 우리가 투쟁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시대였던 것 같아요. 1987년 6월 항쟁이나, 노동자 대투쟁 등을 겪으며 사회가 변하는 걸 봤거든요. 변화를 직접 경험했죠. 사학비리나 출처 불분명한 모금이 흔했는데, 투쟁하니까 재단이 조금이나마 바뀐 태도를 보이고, 학교에서 더 이상 모금을 안하고. 학생회장 뽑는 방식이 간선제였는데 투쟁하니까 직선제로 바뀌고, 자주적 학생회를 꾸려서 선거하겠다고 했더니 그게 또 되는 등. 학교에 문제를 제기를 하면 그게 변화하는, 승리의 경험을 한 거죠. 그래서 우리가 정말 세상을 뒤집어엎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약간의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고등학생이 그렇게 투쟁한 게 특이한 게 아니라,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도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게 오히려 특이한 거죠. 이렇게 차별과 탄압이 강력한 사회인데 말이에요.
그런 점에서 당시의 고운이 계속 유지됐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돼요. 지금의 학교폭력 문제도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싶죠. 학교폭력의 원인 중 하나는 현실에 대한 분노를 학생들이 서로한테 풀면서 생기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고운이 있었다면 그 분노를 서로가 아니라 위계화된 학교를 향해 외칠 수 있지 않았을까….
-스쿨미투를 비롯하여 지금의 청소년 인권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죠.
맞아요. 책을 기획하고 필자들을 섭외할 때 지금 청소년 인권운동에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었어요. 몇몇 필자들은 당시 고운이 어떻게 학생들을 조직하고,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일부러 자세히 썼어요. 물론 지금 학교는 그때와 굉장히 다르지만,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활동했는지 잘 기록하는 것 또한 유의미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회에서 변혁을 만드는 일에 중고등학생이나 10대가 중심 세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도 10대가 어떤 운동에 적극적으로 결합했을 때 사회가 바뀐 사례는 많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의 청소년 인권운동이 잘 됐으면 좋겠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게 아닐지 생각해요.
-이번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젊은’ 이들이 명명될 때에도 10대의 자리는 없었던 것 같아요.
이승만부터 윤석열까지. 대통령 퇴진 운동에서 10대가 빠진 적은 없었어요.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회는 정치적인 10대를 너무 낯설어하고 대상화하죠. ‘기특한’ 청소년이라 불리고요. 이번에 2030여성이 호명된 것도 그래요. 청년 여성들은 늘 다양한 모습으로 역사의 주체로 있었는데 계속 재발견되죠. 역사를 왜곡하는 아주 전형적인 방식이잖아요. 소수자가 역사의 주체로 서지만 호명되지 않거나, 순간순간 재발견됐다가 조금 지나면 또 삭제되는 방식을 반복해 오고 있는데, 이제 그런 망각과 왜곡의 역사를 끝내야지요.
-앞으로도 고운과 관련된 활동을 계속할 계획인가요?
이 책이 1980년대~1990년대 고등학생 운동을 대표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더 여러 이야기가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국 현대사, 진보 운동사에서 고등학생 운동처럼 발생과 소멸의 과정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운동도 없지 않나 싶어요. 고운을 살펴보는 건, 지금의 운동을 진단하는데도 유의미할 거로 생각합니다. 이 작업도 해나가고 싶고요. 다가오는 6월 7일엔 ‘고운 동창회’를 해 보려고 해요.(참여신청: https://forms.gle/rGWX2LvvYEgE9jHr7) 고운했던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제대로 말해보지 못한 경우가 많거든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꺼내고 힘들었던 일, 괴로웠던 일도 나눠보고 싶어요. 또, 고운 세대를 찾는 일도 계속하려고 해요. ‘사실 우리 지역에서도 고운 활동이 있었는데 기록되지 못해서 아쉽다’는 이야기도 들리더라고요. 이야기를 조금 더 모아보려고 해요.
소위 386세대가 한국 민주화 역사를 독점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죠. 저도 그 비판에 동의하는데요, 이 비판이 정말 유효해지려면 1980년대 민주화를 만든 여러 소수자가 어떻게 함께 투쟁했는지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1980년대뿐 아니라 과거 사회운동이 대학생 중심으로 과대평가 된 경향이 있다고 봐요. 419혁명만 해도 과거 ‘학생의거’라도 불렸고 고등학생들이 시작한 혁명인데 대학생들의 투쟁이 더 많이 기억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데 당시 가장 많은 사망자는 노동자였어요. 민주화 투쟁에서 대학생이 많이 언급되지만, 고등학생들도 민주화 투쟁을 함께 만들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와 소수자들이 각자의 현실에서 구체적인 투쟁을 벌여서 만든 결과예요.
어떻게 보면 대학생을 제외한 고등학생이나 다양한 소수자들은 그 활동에 비해 역사적으로 덜 기억되고 계속 지워진 거죠. 고등학생뿐 아니라 다양한 위치의 소수자가 어떻게 민주주의 역사를 만들어 왔는지,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떤 이들에 의해 전진해 왔는지, 면밀히 분석되고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고등학생운동사가 그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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