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바깥에서 만든 ‘가족’을 낭만화 혹은 범죄화?

연대와 돌봄의 법➁ 트랜스젠더 A의 가족 이야기

도균 | 기사입력 2025/05/28 [20:43]

제도 바깥에서 만든 ‘가족’을 낭만화 혹은 범죄화?

연대와 돌봄의 법➁ 트랜스젠더 A의 가족 이야기

도균 | 입력 : 2025/05/28 [20:43]

[연재 소개] 2023년 생활동반자등록법이 발의된 후, 가족구성권 운동을 해온 사람들은 오히려 이 법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2024년 9월, 가족구성권연구소와 민달팽이유니온, 사회복지연구소 물결, 성별이분법에저항하는사람들의모임 여행자, 언니네트워크, 장애여성공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공동으로 〈연대와 돌봄의 법〉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보고서 읽기) 우리가 할 일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살아가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차별과 억압을 드러내고, 동시에 동질적이지 않는 소수자들이 법 제도를 넘나들면서 이미 해나가고 있는 돌봄과 연대를 발견하고 더 많이 발명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우리의 고민과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가족으로부터 도망쳐 ‘가족’을 만난 A의 이야기

 

트랜스젠더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치권이나 언론에 주로 등장하는 것은 성별 정정의 법제화, SRS(sex reassignment surgery 성별 재지정 수술)의 건강보험 적용, 성중립 화장실 등이다. 그만큼 많은 트랜스젠더의 삶에서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고, 현실적인 변화를 마음 깊이 바란다. 하지만 성전환 수술, 성별 정정, 화장실, 신분증과 같이 제한적으로 언급되는 이야기들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측면도 있다. 실상은 모든 트랜스젠더가 수술이나 성별 정정을 택하지는 않으며, 트랜스젠더들이 삶에서 경험하는 어려움은 화장실 밖에서도 끊임없이 발생한다.

 

각자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만나게 된 두 친구 A와 B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두 사람 모두 1990년대생이며, 출생 시 여성으로 성별이 지정되었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트랜스젠더이고, HRT(호르몬 치료)나 SRS(성전환 수술)를 받지 않았다. 두 사람의 사례를 통해, 트랜지션(지정 성별의 신체특징과 성역할 등을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맞춰 변화시켜가는 과정)이나 성별 정정, 화장실, 신분증 같이 정책적으로 언급되는 이야기 바깥에서 트랜스젠더의 삶과 돌봄을 이야기하고 싶다.

 

A는 어린 시절부터 지속해서 강도 높은 가정폭력에 노출되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삶의 많은 부분을 통제받았지만, 한편으로는 SNS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성소수자인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었다. 고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을 때, 반동성애 시위를 하러 나온 교회의 사람들이 A의 사진을 찍고 유포하는 일을 겼었다. 해당 교회는 A의 어머니가 다니는 곳이었고, 어머니는 이를 이유로 A에게 폭력을 가했다. 그리고 결혼을 준비 중이던 A의 형제가 결혼하고 나면, 이 사실을 가정폭력의 주 가해자인 아버지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A는 형제의 결혼식이 끝난 뒤 집을 나와 그대로 도망쳤다.

 

자원도 없이 서울로 이주해서 자신의 삶을 꾸리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도와주던 사람들과 멀어지는 일도 겪게 되면서, A는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이나 돌봄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됐다.

 

그러던 중, A가 지금도 ‘가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가까워지게 됐다. 그 ‘가족’들은 고향이 같고, 이전부터 관심사가 비슷했던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들이었다.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서울로 이주한 ‘가족’들은 친밀한 관계에서 단절을 경험하고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고립되어 있던 A를 돌봤다. A는 그 상황에서도 돌봄을 받지 않으려고 애썼다. 일방적으로 돌봄, 도움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작은 도움이라도 받으면 굳이 없는 돈을 털어 선물을 사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러나 점차 친구들의 꾸준한 돌봄과 관계 속에서,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법을 알게 되었다.

 

▲ 제도 바깥에서 시민들이 만들어 온 돌봄과 연대에 대해 낭만화하거나 범죄화하지 말고, 개별적 돌봄에만 기대게 한 사회적 책임의 부재를 통감하고, 그럼에도 서로를 돌보고 생존해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게 무엇이었는지 돌아보자. (이미지 출처 ⓒgeralt via pixabay)


A는 콜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예전부터 공부하고 싶었던 전공으로 새롭게 대학에 진학하고자 했다. 하지만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하면서 입시를 준비하는 건 쉽지 않았고, 결국 입시를 포기하게 됐다. 콜센터에서 계속 근무하다간, 하고 싶은 일은 전혀 하지 못하고 평생 여기에 머무르게 될 거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결국 A는 이직을 결심하고 한 비영리단체(NGO)에 입사했다. 활동가로서 살아가는 꿈을 꾸고, 또 이루어가고 있다.

 

‘가족화된 돌봄’ 제도가 밀어내고 누락시키는 사람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실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있는 가족에게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트랜스젠더는 39.4%,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이들은 10.5%에 달했다. 트랜스젠더에게 가족이 직접적인 혐오와 차별의 가해자가 되는 일은 결코 드물지 않다.

 

A는 유년기부터 지속적으로 가정폭력을 겪었다. A의 삶에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가족들과 A 자신도 성소수자 정체성을 모르던 때부터 시작된 가정폭력에서 비롯됐다. A에게 필요한 돌봄을 제공한 사람들, 때로 A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A를 도운 사람들은 법적 가족이 아니라, A와 꾸준히 관계 맺고 돌봐온 다른 ‘가족’들이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돌봄은 가족화되어 있기에, 혈족과 혼인으로 결성된 가족 구성원에게만 돌봄의 책임을 전가하면서, 동시에 A처럼 가족 제도와 불화하는 사람들, 가족을 통해 돌봄과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미끄러트린다. 내 생존을 위한 기반이 가족과의 관계에만 모두 달려있을 때, 가족과의 관계에서 폭력, 착취, 갈등이 발생해도 부당한 상황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도 나를 지지하거나 지탱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남녀고용평등법상의 가족돌봄 휴직, 가족돌봄 휴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부양의무자 관련 규정 등의 현행법은 돌봄의 일차적 책임을 가족에게 부여하고 있으며,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가족 제도와 불화하는 이들을 법적인 돌봄 체계에서 누락시키고 있다.

 

▲ 부양의무자 부양능력 판정 도해. 출처: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정책 > 복지 > 기초생활보장 > 수급자 선정기준 https://www.mohw.go.kr/menu.es?mid=a10708010300


돌봄만이 아니라 ‘학업’과 ‘구직’에서도 지원받지 못해

저임금 불안정 노동하며 사회보장제도에서 멀어지는 악순환

 

A는 가정폭력 등을 피해 원가족을 떠난 이후 골프장 아르바이트, 약제 보조 아르바이트, 콜센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중에서도 콜센터에서 일한 기간이 길었다. 콜센터 일은 진입장벽이 낮았으나 임금도 낮고, 고강도의 감정 노동을 수반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주로 여성이었고, 20명을 뽑으면 일주일 안에 10명이 나가고, 한 달 뒤에는 2~3명 정도만 남는 식이었다.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다양했으나 주로 중장년층이 많았다고 했다. A는 콜센터에서 일하면 할수록, 정말 하고 싶은 다른 일은 전혀 할 수 없게 되고, 계속 그 일에만 머무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은 안정된 일자리 대신 장기간 실업 상태에 있거나, 구직 단념 상태에 놓이거나, 비정규직,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몰린다.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고, 노동관계 법령상의 보장이 차등 적용되며, 4대 보험과 퇴직금 등 사회보장 성격을 띤 제도로부터 배제되거나, 관행적으로 비켜나 있는 일들이다.

 

가족 제도와 불화하거나 미끄러진 사람들은 가족이 일차적 책임을 진다고 전제되는 돌봄과 부양으로부터 소외될 뿐만 아니라, 학업과 구직 과정에서도 필요한 지원을 받기 어렵다. 한 번 ‘2차 노동 시장’(저임금의 불안정하고 열악한 근로조건에 놓인 일자리)에 진입하면 경력을 쌓아 ‘1차 노동 시장’(안정적이고 좋은 근로조건을 가진 직장)에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다.

 

스스로 생계와 주거비를 책임지느라 끊임없이 노동해야 하며, 이로 인해 타인과 돌봄 관계를 맺을 여유조차 사라진다. 결국, 가족 제도 바깥에서 서로를 돌보는 관계망에 진입하는 것조차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 악순환의 중간 고리에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 불안정 노동, 그리고 높은 주거 비용이 자리하고 있다.

 

▲ 불안정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작업장 건강 위해 요인에 노출될 위험 또한 높다. (출처: 정연, ⌜고용 형태 및 사업체 규모에 따른 노동자 건강불평등의 현황과 정책 과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1.12.06.)


취약함이 만드는 연쇄 고리

 

A는 양극성정동장애 2형, ADHD, PTSD를 진단받았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지속된 강도 높은 가정폭력으로 인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남겼다. A가 경험하는 PTSD의 주된 증상은 자살사고, 신체화 증상, 기억 곤란 등이다.

 

A는 PTSD의 증상으로 인한 불편함 그 자체도 힘들지만, 본인이 경험하는 증상들이 ‘정상적인’, ‘평균적인’, ‘보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받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업무를 수행하거나 생활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문제들을 겪고 있지만,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해야 하고, 그렇게 많은 것을 설명하더라도 이해되거나 지지받기 어려운 상황 자체가 증상보다도 큰 어려움을 남기고 있었다.

 

규격화된 삶의 경로로부터 이탈해서 경제적으로 취약해지기 쉽고 학습권과 노동권에서 광범위한 침해를 경험하는 경우 정신질환이 발병하기 쉬울뿐더러, 발병했을 때 돈과 시간을 들여 꾸준히 치료받기도 쉽지 않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2024년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신질환 이해도에 대한 조사에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위험한 편이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64.6%로, 2022년의 64.0%에 이어 소폭 증가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은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정신질환에 취약하고 또 치료받기 어려운 사람들을 추가적으로 고립시킨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위험하고 부적절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사회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잠정적으로 정신질환을 앓을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충분한 안전망을 제공할 수 없는 사회다.

 

‘돌봄의 사회화’ 어떻게 이룰 것인가

제도 바깥에서 시민들이 만들어온 돌봄을 함께 돌아보자

 

법적인 가족 관계 바깥에, 이미 돌봄과 연대를 시도하는 관계들이 존재한다. A의 ‘가족’이 그 구체적 사례다. 가정폭력을 피해서 이주한 A는 ‘가족’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돌봄을 받고, 실패할 기회를 얻으며, 자신의 삶을 다시 꾸려갈 수 있었다.

 

사실 아직도 A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 일에 어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쉽게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면서, 힘겨운 일이 생겼을 때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찾아나가고 있다. ‘가족’들과 가까운 곳에 살면서 좁고 비싼 주거 환경을 감당하던 A는 최근에 더 쾌적한 환경으로 이사하기 위해 근거지를 옮겼다. 그럼에도 꾸준히 ‘가족’들과 관계 맺고 ‘가족’, 친구들과 느슨한 커뮤니티를 이루면서 자신의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제도 바깥에서 형성하는 시민들의 돌봄과 연대를 만능열쇠처럼 여기는 건 위험하다. 폐쇄적인 가족 관계의 문제점을 다시 개별적인 사적 관계에서 반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규격화된 삶 바깥에서 이뤄지는 상호돌봄이 쉽게 범죄화되거나 병리화되는 문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탈가정 청소년, 미등록 이주민 등 소수자 집단이 자체적으로 커뮤니티를 이루고 돌봄과 연대를 시도하는 것 자체를 일탈 행위나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미디어 재현, 제도적 접근이 흔하기 때문이다.

 

제도 바깥에서 만들어온 시민들의 돌봄과 연대에 대한 낭만화나 범죄화를 넘어, 그 과정을 다시 살펴야 한다. 개별적 돌봄에만 기대게 한 사회적 책임의 부재, 그럼에도 서로를 돌보고 생존해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낸 돌봄과 연대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 이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형성하고 확장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돌봄 관계를 지원하고, 돌봄을 개별 관계만으로 책임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지 논의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주장하는 ‘돌봄의 사회화’는 선언이나 낭만화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형성하고 구성원 간에 서로를 돌볼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며, 돌봄을 가능하게 하고 지원하는 사회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비로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기사에서 트랜스젠더 B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필자 소개] 도균. 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에서 운영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퀴어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를 함께 썼고, 팟캐스트 ‘젠더여행자’에 진행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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