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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페미니즘은 정말 대중화되었을까? 그렇다면 왜 청[소]년들은 성별화된 문화가 심화되는 걸까. 십대 여성은 ‘여성성’의 잣대에서 이전 세대보다 몸과 마음이 자유로울까. 젊은 남성들은 왜 “인셀”화되고 눈에 띄게 보수화되었나. 성[인지]교육을 통해 십대를 만나고 있는 활동가들의 진단과 고민을 들어본다.
‘남심(男心)’과 ‘인셀(Incel)’
SBS 라디오 프로그램 ‘배성재의 텐’을 몹시 좋아했다. 무엇보다 배 아나운서 특유의 순발력과 입담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던 2013년, 언론에서 터졌던 열애설에 대해 ‘연애는 무슨, 나라가 이 꼴인데’라던 배성재의 답변은 지금까지 회자되는 그의 대표적 명언이다. 출연진, 청취자들과 순간순간 만들어 내는 개그를 듣다가 버스에서 나도 모르게 ‘풋’하고 터졌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런데 수년간 폭 빠져서 히죽거리던 ‘텐’에 대해 조금 다른 감정이 들기 시작한 건, ‘남심 저격 방송’임을 부각시키면서였던 것 같다, 또 10대, 20대 여성 게스트에 대해 중년 남성(들)이 놀리거나 약올리고, 이에 남성 청취자들이 열렬히 호응하는 방송 콘텐츠를 접하며 ‘불편함’이라는 감정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듣는 횟수가 줄었고, 이젠 나보다 나의 취향을 더 잘 알고 있는 유튜브 알고리즘에서조차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니 완전히 마음이 떠난 듯하다.
해당 방송에는 ‘후(後) 여친’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헤어진 연인인 ‘전 여친’에 대비되는 단어로, 연애를 한번도 못해 본 남성들이 앞으로 만날(혹은 만났으면 하는) 가상의 여친을 칭하는 단어다. 텐에서 ‘후 여친’이라는 용어를 아나운서, 남성 게스트, 심지어 청취자까지 자주 사용하는 가운데, 전 여친에게 보냈다는 “자니?”와 같은 전설의 카톡을 ‘후 여친’에게 보낼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 토론하곤 했다.
언젠가 한 번은 유명세를 타고 있는 여성 게스트 두 명이 있는 상황에서 후 여친 얘기가 나왔고, 그 의미를 몰라 어리둥절하는 게스트들을 향해 다수 청취자가 ‘인싸 여자들 재수 없다’, ‘우리끼리 얘기하고 싶으니까 나가라’ 등의 격한 반응을 보였다. 물론 농담이었을 뿐, 여성 게스트에게 위해를 가할 의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게스트들도 크게 웃으며 호응했었다.
그러나 연애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남성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심(男心)’이라는 규정하에 이전에도 또 앞으로도 원하는 여성을 만날 가능성이 없음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라디오 상에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20~30대 남성들의 심리는 그냥 웃어 넘어갈 수 없는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어차피 여자들은 20%의 남자들에게만 끌려. 그러니 80%가 연애하려면 속이는 수밖에 없어.
‘가부장적 이데아’와 자기 현실 사이
남성중심적 젠더 위계 속 상위 계층인 남성은 그 안에서도 끊임없이 경쟁한다. 경제력을 나타내는 아파트와 멋진 차, 그리고 블랙카드, 여기에 준수한 외모와 화려한 말재주에 여자를 배려하는 매너까지 장착하면 그야말로 모든 남성이 신망하는 상남자가 된다. 상남자는 고가의 자동차에 어울릴 만큼 빛나는 여성을 옆에 앉히고는-전리품은 남에게 자랑해야 하므로 뒷자리는 적절하지 않다- 화려한 도심을 질주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거의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이 같은 꿈은 닿을 수 없는 가부장적 이데아에 지나지 않는다. IMF 구제 금융의 시대, 남성 가장의 경제적 권위는 붕괴되었고, 사회불평등의 심화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단군 아래 가장 가난한 세대로 불리는 지금의 남성 청년에게 이 같은 꿈은 언감생심, 부모님의 평범한 재력만큼을 가지기도 쉽지 않다.
물적 상황은 이와 같을진대, 정신-사상적 지향점은 여전히 가부장적 이데아를 헤매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현재 대한민국의 젊은 남성 상당수는 이 같은 아노미 상태에서 가히 집단적 패닉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이 말하는 ‘남자는~’
성교육 현장에서 남성 청(소)년은 대개 기피대상 1호이다. 위협적인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 난무하는 소위 ‘섹드립’, 그리고 혐오 발언과 행동... 그 한중간에 홀로 서서 주어진 시간 동안 강의안을 소화해야 하는 성교육 강사들에게 남성 청(소)년는 정말이지 ‘그들은 인간인가? 혹시 오크나 우르크하이인가’ 혼잣말하게 만드는 존재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의 남학생 대부분은 짐승도 괴물도 아닌, 그냥 그 시기의 사람이다. 호기심 많고, 약간 수줍어도 하며, 많이 아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지만 실상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그때 그 사람 말이다. 그이들에게 연애에 대해 물어보면? 많은 경우 이렇게 말한다.
-에이, 그냥 섹시한 여자 만나면 되지요. -고백은요, 남자가 잘생기고 돈 많으면 끝나요. 다 해결됨!
또 그러다가 가끔 ‘남성 성기 크기는 얼마나 커야 하냐?’같은 질문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가장 ‘남성다운’ 만화 캐릭터를 물으면, 압도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짱구아빠를 말한다. ‘남자는요, 돈을 벌고요, 결혼해서 가장이 되고요, 처자식을 위해 살아야 하니까요.’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누가 답을 머리에 입력해 놓은 것처럼 말하는 모습을 보며, 어른으로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심지어 남성에게도 비극적인 세상을 끝내기는커녕 더욱 부채질해 놓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소년의 시간과 장소
양육 공간, 학교 등 성장 기간 막대한 영향을 받는 환경에서 소년은 ‘기집애처럼 굴지 마’, ‘남자답게 행동해야지’, ‘무거운 거 들어야 하니까 여자애들 빠지고 남자애 세 명 나와’, ‘우리 학교엔 젊고 예쁜 여교사가 많아서 성희롱 사건이 일어나나 봐요.’ 등과 같은 말들을 무척 익숙하게 듣는다. -필자가 들었거나 학생들이 말해 준 ‘우리 학교 쌤 얘기’다.-
여전히 적지 않은 학교에서 여학생에게는 정숙, 헌신, 우아한 용모를 강조하는 반면, 남학생에게는 진취, 창의, 리더십 등을 교훈, 급훈 등의 이름으로 구별하여 주입한다.
어디 이뿐인가? 늘상 상대방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게임 공간, 남초-여성비하 언어가 개그로 유통되는 SNS와 유튜브 등, 남성 청(소)년의 성인지 감수성이 인간계에서 괴물계로 수직하락할 요인은 그야말로 차고 넘친다.
이 가운데 가부장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은 강고한 반면, 이를 구현할 현실은 요원한 상황에서, 남성 청(소)년은 자신에 대한 비하와 자신을 선택해 주지 않는 여성을 향한 분노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리고 이를 정치적 표 계산에 이용하는 정치인들은 오늘도 신박하고 기기묘묘한 언행으로 성별 갈라치기를 시도한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소년은 이 끔찍한 시간을 지나 무엇이 될까? 우리는 그 모습을 답패이크 기반 성착취 범죄에서, 내란의 겨울 동안 서부지법과 시국선언에 동참한 여자대학이 습격당한 현장에서, 방송토론에서 대놓고 여성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대선 후보에게서, 또 그에게 열렬한 호응을 보냈던 이들의 데이터에서 보고 있다.
모든 교육에 ‘성평등’, ‘인권’이 반영돼야
이제는 남성중심적 젠더 위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해야만 한다. ‘젠더 위계와 성차별이 수많은 성적 다양성과 함께 남성조차도 종국에는 파멸에 이르게 하고 만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확실히 해야 한다. 정치권에선 적어도 혐오 발언, 성별 갈라치기 공약은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 할 것이다.
더이상 이 땅의 모든 소년이 왜곡되고 구겨진 시간 속에 머물지 않도록, 온 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만 할 때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필자 소개] 고상균. 남다른성교육연구소 소장. 존경하는 성평등/성교육 활동가분들을 따라다니다 어느 날 정신차려 보니 소장이 되어있었다. 친구들과 맛난 맥주 한 잔하며 수다떠는 것을 좋아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이고, 교육 현장에서 남성 청(소)년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성/평등 교육의 바다에 발가락 하나를 담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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