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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84년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저는 26살이었고, 뉴욕에서 열린 첫 번째 국제 LGBT 인권 행진에 참여한 해였습니다. 우리는 미국 뉴욕의 크리스토퍼 거리라는 게이 커뮤니티에서 출발해 6번가를 따라 유엔 본부까지 행진했고, 그 자리에서 에이즈 환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멈추고, 동성애를 범죄화하는 법을 철폐하라고 요구했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그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현장은 제게도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책엔 또 다른 기억도 담겨 있습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나, 제가 유엔 내에서 캐나다를 대표해 LGBTQ 권리를 옹호하는 자리에 있었던 이야기죠. 이 책은, UN 밖에서 요구하던 사람이 안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의 심정과 그 여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한 사람의 변화뿐 아니라, 그 시기에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7월 7일 저녁, 주한캐나다대사관에서 열린 『퀴어 디플로머시』 북토크에서 저자 더글러스 제노프 캐나다 외교부 고위정책보좌관이 자신의 책을 소개하며 한 말이다. 지난 달 출간된 이 책은 풀뿌리 인권활동가이자 연구자였고,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을 더한 저자가 “‘퀴어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다루고 있는, 보기 드문 저술이다.
더글러스 재노프 보좌관의 방한에 맞춰 열린 북토크에선 ‘퀴어 외교’에 관한 폭넓은 이야기가 오갔다.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 활동가인 류민희 변호사,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던 전 국회의원인 장혜영 민주노동당 마포구 지역위원장, 알레한드로 펠라에스 주한콜롬비아 특임대사가 함께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세계 곳곳의 각기 다른 방식의 ‘퀴어 혐오’
현대 ‘퀴어 외교’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존재하는 퀴어혐오/호모포비아(Homophobia)다. 더글러스 재노프 보좌관은 책을 통해 “호모포비아, 국제 관계, 성소수자 인권이 뒤섞이며 발생하는 긴장과 충돌을 다루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충돌을 단순화해서 말하면 “성소수자 인권을 ‘보편적 인권’으로 주장하며 이를 추진하는 국가들과, 성소수자 인권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며 각국의 문화 상대성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국가들 간의 대립”이라 설명했다.
더불어 “이 이분법을 넘어서 좀 더 복잡하고 예외적인 사례들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과거에는 인권의 보편성을 강하게 주장하던 나라들조차, ‘이 권리는 지지하지만, 저 권리는 아닐 수도 있다’며 점점 (성소수자 인권 보장에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 더글러스 보좌관은 “이럴 때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에 담긴 내용이 떠오른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는 말. 이중 잣대는 오늘날 국제 인권 담론에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성소수자 인권을 반대하는 국가들은 동성애 혐오적 담론을 사용하며, 국제 무대에서 성소수자 인권의 정당성을 훼손하고자 여러 전략을 동원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 인권을 논하기 이전에, 이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고.
더글러스 보좌관은 이것이 “철학적 역설”이라 짚으며, “어떤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존재한다면 추방하자고 말하는 것, 이런 식으로 ‘존재할 권리’ 자체를 문제 삼는 담론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어떤 국가는 ‘그들은 존재하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어떤 국가는 종교, 도덕, 가족 가치, 국가 정체성, 정치적 위협 등으로 포장하며 성소수자들을 낙인찍고 희생양 삼는 방식을 사용한다. 결국, 호모포비아가 국가마다 다양한 형태로 제도화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동성애는 서구의 관행?!
심지어 “어떤 국가에선 성소수자를 외부에서 들어온 위협으로 규정”하는데, 이는 특히 문제가 복잡하다. 책에선 여러 사례를 들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체첸 사건’도 마찬가지다. “체첸에서의 사건은 단순한 반발이나 무작위적인 증오가 아니었다. 동성애는 변태적 생활방식, 종교적 일탈, 순수한 국민에게 강요된 ‘서구의 관행’으로 거론되며, 체계적인 비난의 대상이 됐다. 즉, 국가에 대한 위협이라는 것이다. 동성애가 서구에서 유래한 도덕적 오염의 결과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146p)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우간다 등의 나라에선 동성애를 “식민주의, 자본주의, 백인 남성에 의한 아프리카인 성적 착취”로 보고, 동성애를 범죄로 여기는 다수의 무슬림 국가에서도 동성애를 “서구의 신식민주의”로 본다. 때문에 이런 주장에 맞서, 퀴어혐오를 넘어선 논의를 끌어가는 외교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북토크에 참여한 알레한드로 펠라에스 주한콜롬비아 특임대사 역시 “성소수자 인권이 북유럽 혹은 서구적 개념이라는 시선이 존재”하기에, “소위 ‘중간 지대’에 있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콜롬비아 또한 그런 국가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콜롬비아는 가톨릭 전통이 강하고 보수적 성향이 짙은 나라이며, 100년 넘게 중도우파 정권이 이어져 온 역사가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LGBT 인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시민사회로부터 시작되어 정치권으로 확장되었다.”
시민사회의 투쟁이 결국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한 알레한드로 펠라에스 대사는 “결국 중요한 핵심은 모든 나라가 차별금지법을 갖추고, LGBTQ+ 인권을 보장하는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라 강조했다. “법적 장치가 존재할 경우, 폭력이나 차별이 발생했을 때 정식 절차로 대응할 수 있는 구조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입법 과정은 복잡하고 저항도 많았지만, 결국 정치적, 상징적, 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최소한의 약속, 국가 차원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알레한드로 주한콜롬비아 대사는 “전세계적으로 LGBT 인권이 후퇴하고,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의 존재 자체가 부정 당하는 시대에, 권리 옹호국으로서의 입장을 더욱 확고히 하려고 한다”고 말하며, 한국의 정치에 대해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당부하였다.
“한국은 국제 트렌드에 훨씬 더 개방적인 나라가 되었다. 한류, K-드라마, K-팝 등 글로벌 문화와 소통하며 변화를 수용하고 있는 사회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도 차별금지법이 머지않아 제정될 것이라 믿는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도 “제네바 혹은 다양한 곳에서 만나는 인권전문 외교관이 한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매번 굉장히 놀란다.”고 말했다. “물론 성소수자 차별이 해결된 나라는 없고, 여전히 많은 국가에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삼고 있지만, 차별금지법 제정은 최소한의 출발점이고 약속이며 공통적인 기준인데 그게 한국에 없다는 생각을 못했기에 놀라는 것”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07년부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지만, 외교의 현장에서 한국은 여전히 차별금지법조차 없는 나라라는 것.
더글러스 재노프 캐나다 외교부 고위정책보좌관 또한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며 당부의 말을 보탰다. “하지만 동시에, 법이 제정되었다고 해서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말하고 싶다. 법적 평등이 사회적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법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고, 사회가 그 법을 따라 변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법적 평등을 향한 싸움 속에서도 반드시 서로의 커뮤니티를 지지하고 연대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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