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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시작하며 고백할 것이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보기 전, 나는 이 영화가 나와는 먼 이야기라 특별히 감동이나 공감을 주지 못할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영화를 보기도 전에 판단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이 글을 시작한다. 솔직히 변명을 하자면, 편견을 가졌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2D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라서 3D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2D가 그립곤 했다. 그래서 이 영화 역시 보는 내내 2D를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 의심했다. 둘째, 아이돌에 대한 관심이 적고 팬 문화를 잘 몰라 감정 이입이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의 두 가지 편견을 모두 깨뜨렸다. 영화를 통해 3D 애니메이션에 한층 가까워졌고, 아이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 ‘저 먼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곁에도 존재할 수 있는 일’이라는 친밀감을 느꼈다. 더불어 왜 아이돌의 팬이 되는지 심정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쿠키 영상에서 ‘테이크다운’을 부르는 트와이스의 녹음 장면이 나올 때는 거의 울 뻔했다. 그러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영화를 보지 않는 분이 있다면, 다시 한번 마음을 열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관람해 주면 좋겠다.
영화의 세계관은 이렇다.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는 악령들이 존재하고, 그 영혼은 모두 왕 귀마의 먹이가 된다. 이들을 막는 것은 단순히 싸우는 전사가 아니라, 노래와 목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유대감을 만드는 헌터들이다. 초대 헌터가 이 유대감으로 세상의 방패인 ‘혼문’을 만들었고, 이후 세대를 대표하는 세 명의 헌터들이 선정되어 깨지지 않을 ‘황금 혼문’을 만드는 임무를 수행해 왔다. 그리고 현재 이 시대의 헌터가 바로 영화의 주인공 ‘헌트릭스’다.
헌트릭스가 혼문을 지키고 왕 귀마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하는 이야기로만 흘러갔다면, 나는 이 이야기에 크게 매료되지 않았을 것이다. 헌트릭스가 세상을 구원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것보다 조금 더 복잡한 디테일을 다룬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면 소용없다는 메시지와,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는 일이 곧 세상을 구원하는 일과 맞닿아 있음을 시종일관 이야기한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 전개가 참으로 퀴어적이라고 느꼈다. 이번 연재에서는 이 영화 속 퀴어 서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목욕탕에 가지 않는 루미
영화의 주인공이자 헌트릭스의 메인 보컬인 루미는 목욕탕에 가지 않는다. 다른 동료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목욕탕은 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루미의 몸에는 악령의 문양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루미는 헌터 엄마와 악령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다. 부모가 없는 루미는 엄마의 친구였던 셀린의 손에 자라났다. 셀린은 루미에게 문양은 가려야 하는 것이지, 보이면 안 되는 것이라 가르쳤다. 루미는 자신의 존재를 멤버들에게 말하면 이해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셀린은 계속 그 가능성을 차단해 왔다. 황금 혼문을 완성하면 루미의 몸에 있는 문양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거라는 게 셀린의 가르침이었다. 루미는 부모 같은 존재에게서 자신의 몸을 숨기며 살아야 한다고 교육받는다.
이는 노력하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정상성’을 획득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이고, 루미의 문양은 없어지거나 치유되어야 하는 ‘비정상성’이지 고유한 특성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루미는 ‘이 문양이 있는 모든 사람을 정말 죽여야 하는가’라는 끊임없는 의심 속에서 헌터로 자라오고, 그 과정은 자기혐오를 동반하게 된다. 그리고 관객은 루미가 자기혐오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이 영화의 엔딩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설정이 흥미로웠던 것은, 전형적인 퀴어의 성장 서사와 루미의 성장 서사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루미의 내외적 갈등을 촉발하는 공간으로 ‘목욕탕’이 등장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목욕탕은 퀴어들에게 욕망, 부대낌, 인정, 섹슈얼, 관계, 정체성 등이 엮이고 강하게 충돌하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이야기되어 왔기 때문이다. 목욕탕은 이 영화에서 꽤 중요한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첫째, 루미가 악령 아이돌인 사자보이즈의 진우와 충돌하며 문양을 들키게 된 곳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모습을 들킨 루미는 진우에게 공격이 아닌 이해를 받는다. 둘째, 목욕탕에 가지 못하게 하는 셀린과 가고 싶어 하는 루미 사이의 충돌로 등장한다. 루미가 멤버들에게 일이 해결되면 함께 가자고 약속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어려움이 해소된 후에, 루미가 자신의 몸을 편하게 드러내며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등장한다. 어떤 퀴어들 또한 루미처럼 그 목욕탕을 꿈꾼다. 그렇기에 루미가 목욕탕을 가는 장면을 보며 퀴어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억을 잊고 싶은 악령 진우, 존재 자체가 실수라 생각하는 루미
이 영화를 더 주목하게 된 지점은 진우와 루미의 관계다. 진우와 루미의 관계는 서로를 성애적으로 깊이 탐구하고 싶어 하는 관계는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그 둘이 키스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진우와 루미는 악령과 헌터로 분명 적이지만, 둘 다 문양을 갖고 있기에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결국, 그 존재를 공유할 수밖에 없는 사이이고, 둘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각자가 느끼는 고립감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과거 가난한 가족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기혐오 속에서 악령으로 살아온 진우, 태어날 때부터 몸에 새겨진 문양 때문에 존재 자체가 실수는 아닐까 고민하는 루미. 둘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가 되어갈수록 고립감에서 벗어나 자유를 꿈꾼다. 서로가 가진 상처를 공유하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서로를 증오했던 마음이 이해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루미와 진우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루미는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는 것은 우리의 일부를 부정하게 되는 일임을, 그런 방식으로는 어떤 문제도 본질적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깨달아간다. 악령 진우를 혐오하는 것이 곧 자기혐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진우와 자신 모두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희망을 품는다.
나는 이 영화가 말하는 희망에는 독특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루미와 진우가 인왕산 성곽길에서 만나 나눈 대화 중 루미의 대사에 이런 말이 있다. “희망이란 건 웃겨. 남이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자기가 스스로 가져야지.” 루미와 진우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도, 그래서 그 힘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게 되는 것도 결국 ‘스스로 갖게 된 희망’이 구체적인 힘으로 작동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루미는 자기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헌트릭스로 존재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기 시작할 때,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모든 이야기가 해결되었을 때, 루미 몸의 문양은 오로라 빛을 띤 새로운 차원의 문양으로 빛나게 된다. 없어진 것이 아니라 빛나게 되는 것이다.
희망이란 여리디여린, 금전적 가치도 없는,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존재이지만, 이렇게 모이게 되었을 때 이 세상을 바꿀 힘이 된다. 서로를 증오하는 시작에서 희망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냐마는, 희망이란 것은 이 세상을 한 움큼 더 퀴어하게 만드는 데 분명 좋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 시대가 원하는 영웅담을 이 영화가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루미의 말처럼 이 영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전쟁에서 성공했다. 이 영화가 주는 퀴어적 메시지는 혐오가 팽배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더 크게 빛나는 메시지로 가닿았을 것이다.
재미있는, 정교한 디테일
이 영화를 보며 디테일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컷 바이 컷으로 영화를 멈춰 보면, 장면마다 담아내는 아주 정교한 디테일들이 보인다. 그 디테일들을 다루고 있기에, 나는 이 영화가 3D 애니메이션인데도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졌다. SNS 문화를 보여주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대중들이 릴스를 찍어 올리고, 관계자는 그 반응을 수시로 확인하는 모습들은 현재 우리의 일상을 위트 있게 반영하는 장면들이다. 또한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다양한 팬들의 모습과 형태도 주목할 만하다.
또 재미있는 지점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악령들은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수치심과 죄책감이 있어 왕 귀마에게 지배당하며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동시에 사자보이즈가 등장할 때 응원봉을 들 줄 아는, 인생을 즐기고 싶어하는 ‘흥’을 가진 존재라는 모습도 보여 준다. 이런 디테일들이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화분 세우기로 귀여움의 극치를 보여준 호랑이(우리 민화 ‘호작도’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라고 한다), 계속 등장하는 무속 문화,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한 월드 아이돌 시상식 무대, 한국 사람이 큰일을 하기 전 꼭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음식 문화 등 이 모든 디테일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움으로 작용한다. 참고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의 호작도 배지를 사고 싶어서 가끔 사이트에 들어가 보지만 여전히 품절로 살 수 없었음을 밝힌다.
[필자 소개] 변규리: 2016년부터 ‘연분홍치마’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첫 장편 연출작인 통신설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팟캐스트 방송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Play On〉(2017)을 연출. 두 번째 장편으로 “성소수자 부모”라는 정체성을 마주한 두 여성의 성장 서사를 그린 〈너에게 가는 길〉(2021)을 연출했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소개] 2004년 설립된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소통과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다양한 현장에서 미디어로 연대하며 다큐멘터리, 극영화, 웹컨텐츠 등을 제작하고 있다. pink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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