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바깥의 집, 상실 이후의 공동체

그래픽 노블 『76번째 여름날의 무지개』

전솔비 | 기사입력 2025/08/20 [20:09]

집 바깥의 집, 상실 이후의 공동체

그래픽 노블 『76번째 여름날의 무지개』

전솔비 | 입력 : 2025/08/20 [20:09]

작년 가을, 독서 커뮤니티 들불(fieldfire.kr)과 함께 ‘공동체 읽기’라는 주제로 책 모임을 진행했다. “폭력으로 가득 찬 세계 안에서 조금 지친 얼굴, 이상이 아닌 현실의 평화를 찾고 싶은 얼굴, 더 좋은 이야기의 힘을 믿는 얼굴, 기억을 나누고 싶은 얼굴, 자신을 회복하고 싶어서 공동체를 그리는 어떤 얼굴들”을 찾는다며 참여자를 모집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모였다.

 

우리는 각자가 생각하는 집의 모습에 대해,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에 대해, 왜 공동체에서 집의 모습을 떠올리는지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나누었다. 세계 곳곳에서 집이 부서지고 불타고 있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리던 시기였기에, 공동체와 집의 이야기는 더 특별했다. 나만 안전한 공간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내가 의미 있게 되는 곳으로서 ‘집’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집 바깥을 사유할 수 있게 하는지, 공동체를 꿈꾸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상상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집은 어떻게 열리는가.

집 바깥에서 어떻게 다시 집을 지을 수 있는가.

집을 상실했다는 감각 속에서 공동체는 어떻게 상실 이후를 살아가게 할 집이 될 수 있는가.

 

책 모임이 남긴 질문들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데, 시간은 벌써 이렇게나 흘렀고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지금도 미얀마에서, 태국에서, 캄보디아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은 일상처럼 지속되고 집을 잃은 사람들의 숫자는 셀 수 없이 늘고 있다. ‘일상처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어버린 비현실적인 일상에 대해 고민하며, 그때 읽은 책을 다시 펼쳤다.

 

▲ 그래픽 노블 『76번째 여름날의 무지개』(비테 안덴숀 저, 이유진 역, 쥬쥬베북스, 2024)는 시니어 성소수자 공동주택 단지 ‘플레이아데나’에 입주한 사람들의 다양한 만남을 그린다


『76번째 여름날의 무지개』는 비록 전쟁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지만, 상실을 함께 마주하며 기억을 공유하는 행위를 통해 공동체의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집 이후의 집’을 사유하게 하는 작업이다. 책 모임을 통해 얻은 질문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시니어 성소수자 공동주택 단지 ‘플레이아데나’ 이야기

단지 픽션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그래픽 노블 『76번째 여름날의 무지개』의 저자 비테 안데숀은 “독자와 커뮤니티를 단단하게 하는 만화의 능력을 탐구하는 사람”이라는 흥미로운 말로 자신을 소개한다.(스웨덴의 예술학교 konstfack 대학교 홈페이지 설명 참조) 그는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저예산(B급) 영화 감독이며, 퀴어 및 여성주의 서점 할론그라탄을 운영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Dyke Hard〉라는 영화를 만든 이력이 있는데, 괴짜스러운 레즈비언 락밴드가 도시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로드 트립을 하는 과정에서 계속 그들을 방해하는 존재들이 나타나면서 여정 자체가 모험이 된다는 내용이다.

 

2017년에 출간된 『76번째 여름날의 무지개』는 시니어 성소수자 공동주택 단지 ‘플레이아데나’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다. 마치 〈Dyke Hard〉 속 인물들의 미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플레이아데나에는 다양한 인종, 젠더, 종교, 정체성을 지닌 노인들이 입주해 있어 공동 거실, 도서관, 식당, 헬스클럽, 연회장 등에서 여러 활동과 모임이 이루어진다.

 

이야기는 파트너 안과 사별하고 혼자 살던 76세 마리아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마리아는 아파트에 불이 나면서 집을 잃게 된다. 그는 조카의 권유로 플레이아데나에 입주하게 되지만, 원해서 들어온 것이 아니기에 이곳이 달갑지 않다. 집이 그립고, 사별한 파트너가 그립고, 이곳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어렵다. 그런 마리아가 점차 이곳 사람들과 교류하며 마음을 여는 과정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다. 그 속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간직한 이야기도 펼쳐진다.

 

이를테면 이네스는 청년 시절 1970년대 칠레에서 민중해방운동에 앞장섰다. 감옥에서 함께 살아서 나가자고 서로 의지했던 친구 에스테반과 1993년의 거리에서 다시 마주치지만, 성전환으로 ‘나초’에서 ‘이네스’가 된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의 냉정한 얼굴을 마주한 아픈 기억이 있다.

 

잉엘라는 여성해방운동가로 레즈비언 전용 시니어 공동주택 단지를 만들기 위해 10년 넘게 싸워왔다. 그녀의 회상 속에서는 1970년대 덴마크의 섬에서 열리던 여성주의 캠프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동성애 운동 속에서 게이 커뮤니티와의 연대를 둘러싼 여성주의 활동가들의 토론의 열기가 느껴진다.

 

물론 이 이야기는 픽션이고, 플레이아데나라는 공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스웨덴의 노년층을 위한 퀴어 사회단체 네 곳을 방문하였고, 성소수자 노인들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경험을 통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을 만들었다. 그 중엔 저자가 영화 제작 당시 협업했던 단체도 있다. 이 책은 성소수자 노인 열다섯 명과의 공동 작업에서 나온 결과물이고 누군가의 기억에 기반한 이야기이기에, 단지 픽션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픽션을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의 말을 빌려 ‘현실의 사건과 사물들을 인식할 수 있도록, 체계를 재사유하고 재구성하게 하는 감각’으로 이해한다면, 이 이야기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시니어 공동체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현실에 기입하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회상 신들 속에는 1960년대의 비밀스러운 사랑, 1970년대의 동성애혐오적 사회 분위기, 그리고 1970년대부터 활동했던 진보적인 퀴어 조직들의 운동과 사회혁명, 애인 및 동료들의 죽음과 애도의 역사가 생생하게 등장한다. 현실 속 실존 인물들의 기억과 경험, 바람과 상상을 모아서 만들어낸 이야기는 독자들의 기억 속에서 언젠가 다시 현실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기억’

추억을 공유하고 나를 인정해 주는 존재들이 사라져갈 때

 

한편, 마리아가 플레이아데나에서 처음 만난 이웃의 모습은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밀란은 처음 보는 마리아에게 “사랑스러운 이웃이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하며 방에 들어와 와인을 권한다. 밀란은 친근하게 맞이하려 했지만, 마리아는 혼자 있고 싶어 했고 그건 아마 상실의 아픔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자신을 알고 싶어하는 낯선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범위와 방식을 아직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다.

 

▲ 동의 없이 마리아의 방에 찾아와 이것저것 질문하는 밀란의 태도는 조금 섬세하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밀란의 이끔에 의해 마리아는 플레이아데나의 동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게 된다. 『76번째 여름날의 무지개』(비테 안덴숀 저, 이유진 역) 중에서.


예고나 동의 없이 마리아의 방에 찾아와 이곳의 사람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고 이것저것 질문하는 밀란의 방문은 조금 섬세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밀란의 이끔에 의해 마리아는 여러 동료를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 마음 문을 열고 천천히 죽은 파트너의 존재를 현실에서 보내줄 수 있게 된다. 이 장면을 보며, 상실을 겪은 누군가와 연대하는 행위의 여러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누군가 경험하는 상실감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삶에서 지속되는 깊은 슬픔이라면, 연대하는 이들의 위로 또한 일회적인 ‘함께 슬퍼하기’를 넘어서고 싶을 것이다.

 

삶 속에서 함께 기억하며 위로하고 연대해나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공유할 수 없는 기억이라는 한계 너머에서 공유할 수 있는 말과 글은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까. 상실과 마주하는 당사자의 몸과 마음이 끊임없이 변한다면,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동료들의 애도와 연대의 모습도 계속해서 모양을 바꿔야 할 것이다.

 

마리아는 종종 안과의 1970년대를 떠올린다. 동성애혐오로 집 밖에서는 마음껏 연인의 손을 잡을 수 없었지만,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서는 사랑을 열렬히 표현했던 시절이다. ‘집’이라는 공간은 내가 나일 수 있는 곳이었다.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이별했던 과거를 떠올리는 회상 장면은 책의 곳곳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지닌 이야기로 계속해서 등장한다. 누군가에게 1970~1980년대는 혁명가로서 퀴어활동가로서 사회를 향해 소리높이던 열정적인 시절이기도 하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차별에 맞서기 위해 싸우고 사랑하던 그 기억은 이제 과거의 것이지만, 지금의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인간의 기억은 한정적이기에 떠올릴 추억들은 계속해서 사라져가지만, 기록은 계속해서 남아 그 시절이 존재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준다. 그렇기에 화재로 인해 그 추억을 통째로 잃어버린 마리아의 상실감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다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를 갖고 있는 사람의 삶은 주변 관계의 상실 속에서 더 불안정한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자신과 파트너, 나의 진짜 모습을 알아주는 이들의 죽음 속에서 조금씩 나를 잃어가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가장 잘 드러냈던 시절을 잊어버리고, 그 모습을 기억했던 이들이 사라지고, 그 기억을 품은 사진, 편지, 일기, 서류 등의 물건들이 사람들로부터 잊히면, 정말 나는 내가 아닌 게 돼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 이 책에서 ‘노년’의 삶을 다루는 포인트 중 하나는 ‘나를 인정해 주는 존재들의 사라짐’, 그 절망감과 무력감 속에서도 ‘사라짐을 함께 기억하고 맞이하는 이들의 소중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 『76번째 여름날의 무지개』에서 ‘노년’의 삶을 다루는 포인트 중 하나는 ‘나를 인정해 주는 존재들의 사라짐’ 그 절망감과 무력감 속에서도 ‘사라짐을 함께 기억하고 맞이하는 이들의 소중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마리아가 안을 자신의 삶에서 보내주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이 만화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자신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안을 잊는다면, 안의 진짜 모습을 기억하는 현실이 사라질 거라는 불안감은 자신이 경험하게 될 불안감과 같은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지 저하증으로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파트너 이본을 돌보는 미국인 리타와의 만남은 큰 위로가 된다. 기억을 잃어가는 파트너 이본과 마주하며 자신을 잃어가는 심정이었던 리타와, 사별한 파트너 안을 현실 속에서 보내주지 못하는 마리아는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이곳에서 리타를 만나며, 그리고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마리아는 ‘기억하는 행위’의 무거움을 조금은 내려놓고 나의 기억을 기억해주는 또다른 누군가의 존재를 믿어보게 된다.

 

무지개의 끝에서

 

이 책의 원제와 한글 제목을 비교해 보고 싶다.

스웨덴어 ‘I slutet av regnbågen’(무지개의 끝에서)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과 ‘76번째 여름날의 무지개’가 주는 느낌은 조금 다름에도 둘 다 책의 의미와 만난다. ‘무지개의 끝에서’라는 제목은 ‘끝’이라는 뉘앙스가 마치 클로짓(closet, 커밍아웃하지 않은) 성소수자의 노년을 의미하는 이미지로 직관적으로 연결된다. ‘끝’은 마지막을 향해 가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고 슬픈 느낌이 확연하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무지개는 원형으로 된 모양이 지평선에 의해 잘린 반쪽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무지개에는 끝 면이 없다는 점에서 ‘무지개의 끝에서’라는 제목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는 힘,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의미화한다.

 

▲ 한글 제목 ‘76번째 여름날의 무지개’가 주는 느낌과 스웨덴어 제목 ‘무지개의 끝에서’가 주는 느낌은 조금 다르지만, 둘 다 이 책의 의미와 만난다.


한편, 한국어 제목 ‘76번째 여름날의 무지개’는 이 책의 주요 인물 76세 마리아의 시선을 더 부각하며 1969년 6월 28일에 스톤월 항쟁으로 시작된 세계적인 프라이드 시위의 뜨거운 여름날의 열기와 열정, 사랑과 추억을 감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76년을 클로짓 성소수자로 살아온 마리아가 이제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공동체에서 조금 더 자신을 열고 커뮤니티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점에서, 두 제목 모두 우리가 상상해야 하는 공동체의 모습으로 수렴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공유할 수 없는 기억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의 존재를 함께 믿고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도 함께 기억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았다. 함께 기억하는 행위가 애도와 연대가 될 수 있다면, 그곳을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해본다. ‘집 바깥의 집’은 플레이아데나처럼, 함께 기억하며 살아가는 물리적 공간이 될 수도 있지만, 기억하는 사람들의 내면의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집 바깥으로 확장되기를, 그리고 각자의 내면으로 확장되기를 더 적극적으로 상상해 본다. 플레이아데나의 사람들이 꿈꾸며 투쟁하던 현실의 결과 위에서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듯,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분명히 현실이 될 거라고 믿으며. 범람하는 파괴의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이처럼 일상 너머를 상상하게 해주는 단단한 이야기들이 있다면 창조적 행위의 윤리적 가능성에 대한 믿음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필자 소개] 전솔비. 시각문화 연구자. 정체성과 수행성의 문제를 연구하며 전시와 책을 만들어왔다. 동시대 현장에서 생산되는 이미지의 정치성과 예술적 실천을 탐구하며 예술가, 연구자, 활동가 동료들과 여러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난민캠프라는 현장을 만나며 〈연약한 기록들의 춤〉(신촌문화발전소, 2022), 〈캠프 사운드 커뮤니티〉(웹사이트, 2023)를 함께 만들고,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파시클, 2024)라는 책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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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오 2025/08/28 [13:20] 수정 | 삭제
  •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옛 기억 얘기하기를 너무 좋아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네요.
  • 독자 2025/08/23 [16:21] 수정 | 삭제
  • 생각할 거리 추억할 거리가 많아지는 독서 경험입니다
  • 엘월드 2025/08/21 [15:43] 수정 | 삭제
  • 그림체 무엇.. 취향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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