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온 ‘이쪽’ 청년의 이야기에 왜 공감할까

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 〈3670〉

변규리 | 기사입력 2025/09/04 [15:42]

북에서 온 ‘이쪽’ 청년의 이야기에 왜 공감할까

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 〈3670〉

변규리 | 입력 : 2025/09/04 [15:42]

누구나 눈물 나게 외로울 때가 있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시간들. 그래서 작은 일에도 이유를 만들어 내며 함께 하자고, 또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다음을 약속하기도 한다. 누구나 어느 시절엔,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집단을 찾아 헤맨다. 여기일까? 아니면 저기가 가능할까.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또아리를 틀 공간을 찾아 헤매는 거다. 행복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며 웃고 울며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는 행복 또한 인간이 갈망하는 것들 중 하나이기에.

 

그래서 누구나 어떤 집단에서 함께하고, 잘 보이려고 애쓰고, 사랑 받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며, 어울리기 위해 최선을 다 했던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난 후에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이런 후회가 밀려오는 날들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곳으로, 혹은 다른 누가 있는 곳으로 나의 마음을 나눌 사람들을 찾아 떠나는 경험 또한 해 보았을 것이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어딘가에 나도 소속되고 싶다는 관계에 대한 열망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닌가 어느 날은 고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그러다 우연히 외로움을 나눌 친구를 만나게 되기도 하고, 성장배경과 조건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삶의 배경과 인생을 살아온 누군가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엔 내가 또 다른 이의 ‘이 바닥’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겠지. 영화 〈3670〉을 보고 나서 유독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 9월 3일 극장 개봉한 영화 〈3670〉(박준호 감독, 2025) 포스터. 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4개 부문(한국경쟁 배급지원상, 한국경쟁 배우상, 한국경쟁 CGV상, 한국경쟁 왓챠상) 수상하여 화제가 되었다.

 

〈3670〉은 탈북 게이 청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했으며, 유수 영화제에서 흥행했고, 시사회 등을 통해 널리 널리 입 소문이 퍼지고 있다.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냈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있는 걸까 궁금했다. 탈북자인 퀴어 청년이 주인공인 소재는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영화를 보고 나니 마치 주인공이 옆집에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게 재밌는 지점이다. 영화는 신기하게도 ‘꼭 내 이야기 같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탈북 게이 청년은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는가

 

주인공 철준은 탈북하여 남한으로 와 정착 중인 탈북민이다. 철준은 생계를 위해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동시에 탈북민 특별전형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학원을 다닌다. 학원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자기소개서를 준비한다. 일요일엔 친한 탈북민 형, 동생과 교회에 나가 시간을 보낸다. 교회에서 주는 ‘새터민 청년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다.

 

철준은 혹독한 남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산다. 영화는 철준이 남한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눈물겹게 그리거나 애잔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카메라는 딱 철준의 세계만큼을 정확히 잡아내서 그만큼의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이 또한 이 영화의 미덕이다. 영화는 섣불리 누군가의 삶을 시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바뀌어야 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주인공의 시선을 트랙킹해 그가 보는 세상을 전개해 나간다.

 

이것도 저것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철준이 열망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쪽’ 친구를 사귀는 일이다. 다른 건 열심히 하면 얼추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쩐지 친구를 사귀는 일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죽어도 밥은 같이 안 먹어줄 것 같은 잠자리 상대에게 중국집에 가자고 조를 만큼 철준은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한다. 그리고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아 나서듯, 철준은 ‘이쪽’ 친구를 사귀기 위해 술번개에 나간다. 드디어 그 무대. 게이들이 모이는 그곳. 종로3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 영화 〈3670〉(감독: 박준호, 출연: 조유현, 김현목, 조대희 외) 스틸 컷

 

참고로, 중간 중간 등장하는 종로3가와 이태원을 그려내는 방식도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종로3가와 이태원은 나에게도 꽤 익숙한 곳인데, 영화 안에서 그 공간을 그려내는 방식을 보면 나도 설레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긴장감이 밀려온다. 그 어느 골목에서 재밌는 이야기가 시작될 것만 같은 기분. 종잡을 수 없는 어떤 관계의 탐험이 시작될 것만 같은 그 농밀한 분위기와 욕망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영화의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그런 기대를 안고 철준은 종로3가로 나간다. 그러나 현실은 혹독했다. 철준은 술번개에서 끝내 아무에게도 지목을 받지 못하고 쓸쓸히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술번개에서 시키는 말에 열심히 답하고, 탈북민이라는 것도 솔직히 말했고, 러브샷도 했는데 그는 아무런 선택을 받지 못한다. 버스 안, 결국 철준은 만남 어플을 켠다. 하지만 ‘탈북민 친구를 찾는다.’라는 철준의 자기 소개를 비아냥거리는 게이들의 메시지가 득실거릴 뿐이다. 철준은 그렇게 여전히 ‘이 바닥’에 소속되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 처음 해봤어’

 

그런 철준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철준이 일하는 편의점에 술번개를 한 날, 철준과 러브샷을 했던 영준이 손님으로 온 것이다. 철준을 알아본 영준은, 철준에게 저녁시간을 같이 보낼 것을 제안한다. 둘은 급속도로 친구가 된다. 그리곤 자신의 성장배경, 애인이 있나 없나, 북에서는 ‘이쪽’ 문화가 있냐 없냐. 현재 어떤 삶을 살고, 무엇을 준비하는가 까지를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길고 긴 대화 끝에 철준은 ‘이런 이야기 처음 해봤어.’라며 영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그러자 영준은 자신이 나가는 1997년생 게이 모임이 있다며, 철준을 초대한다. 정말 자신이 모임에 나가도 되냐고 되묻는 철준의 그 순박하고 귀여운 표정과 말투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철준과 영준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알려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더이상 내가 필요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

 

열심히 사는 철준을 도와주고 싶은 영준은 철준에게 하나씩 ‘이 바닥’의 생리를 알려준다. ‘가라오케’에 가면 방청객처럼 앉아 있으면 안 된다. 노래도 불러야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고, 친구도 사귀고 애인도 생길 수 있다는 충고부터. 그뿐인가.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얼굴을 어떻게 피부 톤을 정리해야 하는지. 머리는 어떻게 만져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 가지 모두를 알려준다. 철준이 계속 어려워했던 자기소개서를 봐주기도 한다. 그 귀여운 모습들을 쭉 보고 있노라면, ‘철준아! 영준이 좀 안아줘!’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는 장면들도 있었지만, 둘은 서로를 향한 마음을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은 채, 서로에 관해 알아가고, 또 걱정하는 사이가 되어간다.

 

97모임에 완벽하게 적응한 철준은 이제 급기야 사람들이 먼저 찾는 존재가 된다. 같이 놀고, 클럽에 가고, 춤을 추고, 함께 밤을 보내고, 아침에 중국집을 시켜먹는데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 철준이 원했던 중국 음식을 함께 시켜먹는 ‘이쪽’ 친구들이 그에게도 드디어 생긴 거다. 자신과 함께 해준 ‘영준’으로 인해 말이다.

 

▲ 탈북 퀴어 청년 멜로 영화 〈3670〉(감독: 박준호, 출연: 조유현, 김현목, 조대희 외) 포스터 이미지들 

 

이후, 자세한 내용은 스포가 될까 봐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어떤 감상들은 말하고 싶다. 철준과 영준이 경험하게 되는 감정의 곡선을 보며 이 영화가 참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서로 계속 간을 보고, 상처받을까 솔직해 지지 못하고, 방어를 하고, 수동공격을 하고…. 나는 이 영화가 너무 팬시하지 않아서, 모두가 이어지는 완벽한 결말을 추구하진 않아서, 주인공이 깎아 놓은 듯한 완벽한 미남형 스타일은 아니어서, 그 주변 인물들이 현실감 넘쳐서, 여기 등장하는 종로3가의 술집들과 이태원 거리들이 예쁘고 아기자기 하지 않아서, 오히려 현실을 반영한 듯 번잡스럽고 어딘가 어둡고 형광색이 가득한 채로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연출이 좋았다.

 

그 어떤 환상도 없다. 이 세계에 오면 환영 받을 수 있고 즐거운 일도 있겠지만. 사랑받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 관계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일들이 있고, 절친이다 했지만 또 한 순간 가십이 되어 자신도 어느 날 그냥 술 안주가 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도. 퀴어라서 특별하지 않고. 적나라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줘서 좋았다.

 

더불어 이 영화의 관람 묘미 중 하나는 클럽 신이다. 나는 음악과 춤, 리듬으로 주인공들의 감정을 보여주는 영화의 시도가 좋았다. 그냥 신나거나 너무 멋있게 춤을 춘다거나, 화려함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춤을 못 추기도 하고. 적당히 추기도 하고. 또 노래와 템포로 상황을 촉발시키고 고조시키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연출 방식이 재밌었다. 그 템포에 몸을 맞춰 춤을 추는 등장인물들. 그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과 사고. 질투와 욕망. 그리고 그것을 이완시키는 과정 또한 클럽 신에서 멋지게 해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꼭 클럽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재밌었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인생은 회전목마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인간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였다면 어땠을까. 나라는 존재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인간이었다면 지금 즈음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물론 허황된 상상이란 것을 안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을, 어느 한 때를 경험한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감정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수시로 찾아 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속 정도, 강도, 조건, 배경, 대처 방법에 따라 다 다른 ‘외로움’을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거나 수용하는 방식 또한 모두 다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그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본다.

 

귀엽게 웃기며 재밌는 방식으로 날 것 그대로의 게이 커뮤니티의 관계를 그려낸 〈3670〉을 극장에서 보길 추천한다. 종로와 이태원. 어딘가에서 게이는, 또 어떤 퀴어들은 자신의 여정을 찾고, 외로움을 견디고, 즐거움을 찾아 오늘도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타나고,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회전목마처럼 말이다.

 

[필자 소개] 변규리: 1989년생. 관찰과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 왔고, 그 습관이 발전해 다큐멘터리라는 툴을 탐구하게 됐다. 지역공동체 라디오 구로FM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며 다큐멘터리를 시작했다. 2016년 퀴어 페미니스트 미디어 그룹 연분홍치마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다큐가 더 좋아졌다. 다큐는 관객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공동의 경험을 감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세상에 미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에서 집행위원으로도 함께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Play On〉(2017 연출), 〈너에게 가는 길〉(2021 연출)이 있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소개] 2004년 설립된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소통과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다양한 현장에서 미디어로 연대하며 다큐멘터리, 극영화, 웹컨텐츠 등을 제작하고 있다. pink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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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ㅈ 2025/09/11 [14:34] 수정 | 삭제
  • 글만 읽어도 두근두근한데요 ㅎㅎ
  • 디트 2025/09/05 [13:00] 수정 | 삭제
  • 당장 종로3가로 달려가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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