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늙어갈 동네 친구’ 있습니까?

[우리 집은 어디로 갔을까?] 정주할 권리

지수 | 기사입력 2025/09/10 [19:06]

‘함께 늙어갈 동네 친구’ 있습니까?

[우리 집은 어디로 갔을까?] 정주할 권리

지수 | 입력 : 2025/09/10 [19:06]

집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부동산’, ‘로또 분양’, ‘갭투자’ 등으로 귀결되고 마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 좀 다른 집 이야기-청년, 여성,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함께 고민해나갈 주거의 권리에 관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민달팽이유니온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고, 현재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등에서 활동중인 지수 님이 연재를 통해 화두를 던집니다. [편집자 주]

 

‘퇴거가 미덕’인 청년주택

 

오래 된 동네 친구들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저녁 한 끼 가볍게 같이 차려먹기, 드라이버를 빌리기, 보드게임 한 판 하고 헤어지기, 잠깐 만나 장본 재료 나눠 갖기, 근처 공원이나 하천 같이 걷기, 새로 생긴 음식점 후기 공유하기. 내가 지속하고 싶은 일상은 이렇게 사소한데, 재개발을 앞둔 동네이자 ‘거주할 수 있는 기간에 정함이 있는 집’에서 이 삶을 지속하길 바라는 내 마음은 조용히 입 다물어야 할 욕망이 된다.

 

▲ 서울 어느 청년전용 매입임대 건물 1층. 보증금 300만원 수준으로도 멀쩡한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매입임대. 2017년 당시 청년 유형으로 입주했었기 때문에, 거주기간은 최대 6년이었다. 사는 동안 입주자 커뮤니티가 활발했다. 함께 마을 목공소에서 공용 공간에 이것저것 비치할 탁자를 만들기도 했다. 2023년에 다시 방문했을 때, 여전히 남아있던 탁자와 함께, 6년 채우고 퇴거하게 된 입주 동기를 만났다. 지금은 모두 흩어졌다. (지수 제공)


청년주택은 청년의 ‘퇴거’를 전제한다. 청년주택에 살게 된다는 건, 퇴거가 미덕인 집에 입주하는 일이다. 입주하기 전부터 청년주택은 우리에게, 이렇게 입주했다고 해서 백날 천날 사는 게 아니라 여기서 착실히 돈 모으고 결혼 준비하며 머지않아 좋은 일을 계기로 떠나는 것이 국가에게도, 청년 개인에게도 이득인 미래라고 점지해준다.

 

점지를 무시한 청년에게는 불안이 남는다. 청년주택을 나간 뒤에 어디로 가야 할 지 벌써부터 걱정되지만, 이런 걱정을 하는 세입자가 마음 둘 곳은 없다. 일도 불안한데 집도 불안하니, 조바심이 든다. 월평균 소득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는데, 이 집에 살 수 있는 거주기간은 곧 끝나간다. 정해진 날이 다가오면 폐기 처분되는 삼각김밥이 내 처지인 것만 같다. 운영기관은 퇴거 일을 통지하고, 나는 조용히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진작 알아서 먼저 나가지 않고 끝까지 산 결과다.

 

모두가 임대인이 되고 싶은 세상에서 세입자로 산다는 건, 자기혐오와 굴욕감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모두가 이직하고 싶은 일터에서 계속 남아있는 건, 나의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만 같아 불안하고 괴로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10년이라도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집이 내겐 너무 소중하고 중요한 기회인데도, 어딘가 불안한 마음이 쌓인다. 내가 나의 세입자 정체성을 긍정하고 이 집과 이 동네를 떠나지 않아도 그렇다. 나와 같이 살고, 나의 생활권 안에 함께 머물던 동네 친구들이 떠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쯤 어디에 어떻게 정착할 수 있을까.

 

‘함께 늙어갈 수도 있을까’하는 상상 자체가 비어있는지 오래다. 그런 상상은 감히 ‘정상가족’이 아닌 집단과 개인이 품을 수 있는 주제가 되지 않는다. 상상할 수 있는 것조차 자격이 필요한 걸까.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 정착하고 싶다. 지금 당장 이 동네에 정착하고 다시는 떠나지 않고 싶다는 확언이 아니라, 어쩌면 이 집과 이 동네에 오래오래 정주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마음껏 펼치면서 이사를 오고 짐을 풀고 인사를 나누고 몸을 뉘이고 싶다는 말이다. 그런 가늠 속에서 집에 대한 관심, 동네에 대한 애정, 지역과 공동체에 대한 개입이 이뤄지는 것 아닌가.

 

주택임대차계약 도장 찍힌 몸들

 

집과 동네는 몸이 오가는 장소다. 현관 밖에서 서로의 몸을 마주치고 감각한다. 내 몸이 머무는 장소 근처에 다른 몸 또한 머물고 있다는 감각은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든다. 소유권은 다르다. 이것은 몸들 사이에 급을 가른다. 어떤 몸은 동네가 정비된 이후에도 머물 수 있게 되고, 어떤 몸은 영영 떠나야만 한다. 심지어 어떤 몸은 머문 적도 없으면서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누가 이 장소에 몸을 뉘일 수 있는지를 좌우한다. 너 같은 몸은 떠나는 게 마땅하고, 너의 몸은 남고자 하든지 말든지 물어볼 가치도 없다는 취급. 서로의 신체가 오가던 장소가 한 순간 소유권의 유무에 따라 어떤 신체는 거기에 머물 자격이 없는 존재로 규정된다. 정말이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세입자로 사는 이들에게 지역사회란, 지역에서의 공동체적 삶이란, 꽤나 기만적이다. 그러나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내재화된 기만이기에, 이제는 소유권을 가진 사람들도, 소유권 중심 사회에서 이득을 취하는 집단들도, 세입자 자신이 스스로의 처지를 수긍하도록 하는 데에 큰 공력을 들이지 않는다. 애당초 세입자가 법적으로 보장받는 계약기간이 기본 2년, 갱신 시 총 4년에 불과하니, 말 안 듣는 세입자라고 할지언정 4년 이내에 쫓아내면 되는 것이다. 이토록 일방적인 관계 속에서, 평등한 지역 공동체란 허상일 수밖에 없다.

 

세입자로서 겪는 고충들을 듣다 보면 다들 같은 집, 같은 임대인 밑에 사는가 싶을 정도다. 부당한 요구에 항의하면 점잖지 못한, 버르장머리 없는, 예의 없는 사람이 된다. 계약갱신청구권, 임대료 상한제, 보증금 반환 의무, 대수선 의무 등을 얘기해도 하여간에 법은 상관없다고도 말한다. 주택임대차계약 도장이 법 위에 있는가 싶다.

 

집은 몸을 누이는 장소라서 그런지, 나와 주택임대차계약을 맺은 것이 마치 임대인에게 내 몸을 통제할 자격이 생긴 것처럼 구는 최악의 사태까지 벌어진다. 어떤 임대인은 늦게 들어오지 말라며 통금을 두듯 한다. 자꾸 남자친구 데리고 집에 오던데 네 부모에게 이르겠다는 협박을 한다. 딸 같아서 그러니 술 한 잔 하자고 문을 두드린다. 마음대로 마스터키로 문을 따고 내 몸을 돌보는 장소를 함부로 침투한다. 가장 사적이고 그래서 가장 편안한 장소여야 할 집을 내가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 몸까지 통제 받는다 여겨질 때, 모든 게 최악으로 치닫는다. 이 모든 일이 내가 세입자여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내가 집주인이 되어 임대인에 관한 불안 없이 마음 편히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흐른다. 내 몸에 찍힌 도장이 문제라면 도장을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야, 당연히 드는 마음이다.

 

그러나 도장은 지워내도 지워지지 않는다. 언제고 새롭게 다시 찍혀 나온다. 임대인과 세입자 관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소유권의 유무 차이에서 시작되었다면, 다음 순서는 소유권 규모 차이다. 소유권을 달랑 1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소유권 수천 개의 몫을 두고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이런 셈법 안에서만 살게 된다면 말이다.

 

아파트를 소유한 이성애 ‘정상가족’의 시민권

 

영화 〈럭키, 아파트〉를 아주 재밌게 봤다. 이 영화를 한 줄로 설명하자면, 퀴어 커플 선우와 희서가 영끌하여 마련한 구축 복도식 아파트에서 겪게 된 악취와 이로부터 파생된 갈등들을 다룬 부동산-스릴러-퀴어 영화다. 선우는 어느 날부턴가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악취를 맡게 됐다. 동대표이자 공인중개사업을 하고 있는 명희는 몹시 예민해졌다. 그의 공인중개사무소에는 집값이 떨어질까 봐 걱정된 아파트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 영화 〈럭키, 아파트〉(강유가람 감독, 손수현, 박가영 주연, 2024) 포스터


아파트는 나름 주거공동체이기도 하기에, 누군가의 삶이 있고 당연히 누군가의 죽음도 있는 공간이다. 악취의 원인은 어느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그러나 럭키아파트 공동체에서 화분할머니의 냄새 나는 고독사는 “조용히 하면” 집값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고 사그러들 일로만 분류됐다. 이것은 아파트 단지 내 주택관리사무소 안에서 차 마시던 주민들이, 아파트 앞 공인중개사무소에 모여든 아파트 주민들이 좋은 마음으로 결의한 약속이었다. 집값 떨어지면 안되니까. 호혜적인 이웃 관계의 대화는 집값 떨어질 리 없게 입 단속하자는 다독임으로 가득 찼다. 추모와 애도는 이 공동체의 몫이 아니었다.

 

돌봄을 주고받고, 평등하고 안전한 관계를 맺고, 몸을 가까이 두고 사는 이들의 삶을 함께 살피고 죽음을 함께 기리는 공동체는 집값을 수호해야 하는 공동체와 양립하기 어렵다. 전자의 삶을 누릴 자격은 오직 돈의 논리에 따라 주어지거나 박탈된다. 아파트를 소유하고 집값 상승을 중심으로 이해관계가 엮이게 된 관계 내에서, 자산증식을 방해하는 나머지 것들은 조용히 처분하거나 시끄럽게 낙인 찍을 대상이 된다. 조용히 처분할 것은 누군가의 죽음이었고, 시끄럽게 증오할 것은 퀴어 커플의 사랑이 됐다.

 

동대표 명희는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선우가 눈엣가시였다. 말 통하지 않는 선우 대신 함께 사는 희서를 향해, 명희는 계속 이러면 여자들끼리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소문 낼 거라며 협박했다. 안 그래도 아파트 단톡방에서 성소수자 혐오발언이 마구 올라오던 차였다. 희서가 영혼을 끌어 모아 아파트를 산 이유가 뭐였던가. 임대인이 여기 레즈비언 커플이 산다는 걸 빌미로 협박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도 지겨웠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살아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나 결국 돌아왔다. 아파트에 살지 않아서, 소유하지 않아서 더 쉽게 노출됐던 혐오와 차별은 아파트를 소유한 이후에도 따라왔다.

 

함께 늙어갈 자리 찾기

 

‘내 집’이란 주체성의 장소로 유의미한 개념이다. 그러나 ‘내 집’을 필두로 모두가 임대인이 되고 모두가 집값 상승으로 이득을 보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세상에서의 내 집은 네 집을 빼앗은 결과다. 서울 강남의 어느 아파트 분양 광고 문구처럼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이 아니라면, 결국 우리가 함께 늙어갈 동네 친구를 구하는 길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길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세상을 구현할 장소, 땅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우리는 물리적인 몸을 가진 존재들이니까.

 

세입자여도 함부로 쫓겨나지 않는 집에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꿈은 내가 여성 1인가구로 어느 집에 이사를 가든, 성소수자 커플이 누군가와 이웃이 되든 이들 모두가 자신의 삶터에서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는 꿈과 다른 말이 아니다. 그리고 이 꿈은 청년주택이 가진 태생적 한계와 함께 지속될 수 없고, 공공성 없는 현재의 민간주택임대시장에서 감히 구현될 수 없는 꿈이기도 할 테다.

 

▲ ‘용산다크투어’(주최: 용산정비창 개발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중 용산정비창에서 한 참가자가 ‘내가 꿈꾸는 도시’를 그렸다. 얼굴에 주름이 진 두 사람 중 한 명은 고양이를, 나머지 한 명은 뻥튀기를 들고 있다. 그림 위에는 “뻥튀기를 좋아하는 친구와 오래오래 같이 늙을 곳”이라고 적혀있다. (지수 제공)


전북 전주에 위치한 비혼여성공동체 비비는 2003년 전주여성의전화 소모임에서부터 시작한 이후, 2006년 같은 아파트 단지에 각각 이주하여 모여 살게 되면서 공간비비를 열었다. 현재는 비비사회적협동조합도 설립하여 여성 중장년 1인가구 공동체 주택을 추진하기 위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2006년 입주한 아파트는 공공임대 아파트로, 거주기간이 50년이었고 보증금도 저렴했다. 주거지를 기반으로 주민들과 관계 맺고, 서로의 삶에 대해 더 깊이 함께 고민하게 된다고 느꼈다. 이들이 고민하는 중장년 그리고 노년의 공동체 주택과 삶은 결국 돌보는 몸, 병드는 몸, 죽는 몸 모두를 포함한다.

 

비비와 같은 공동체를 함께 시도하자. 이런 꿈을 크고 작게 나누는 사람들과 연결되자. 이들이 머무는 장소와도 연결되자. 나아가, ‘우리 땅’을 욕심내자. 네가 소유하고 내가 소유하는 땅 말고, 우리 모두의 땅 말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임기 내내 50만제곱미터에 달하는 ‘용산정비창’ 부지를 민간에게 매각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공공임대 지을 땅 없어서 민간사업자들에게 혜택 퍼붓지 않으면 코딱지만한 공공임대 몇 채마저도 못 지을 것처럼 엄살 피우더니, 여기 이렇게 거대한 빈 땅이 있었다니. 그런데 이 땅을 고대로 시장에 싸게 팔 예정이라니,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서울시는 최근 들어 더욱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보여지는 것은 국제업무지구지만 내실은 금싸라기 터에 위치한 공공부지를 값싸게 민간에게 영원히 팔아 넘기는 것에 있다는 점에서 조바심이 든다. 쪼개서 파는 건 순간이지만, 되찾는 건 천고의 세월이 걸릴 것만 같다.

 

어디 그뿐인가, 광명시 하안동에 위치한 옛 구로공단 여성노동자 숙소였던 ‘보람채아파트’는 2026년 철거를 앞두고 있다. 42.9㎡(13평) 또는 49.5㎡(15평) 규모의 집에서 2명이 거주하며 1인 1실을 사용했던 집으로, 요즘 공급되는 청년주택보다 훨씬 조건이 좋다. 2014년 이른 폐쇄와 현 시점의 개발추진방향이 K-혁신타운 조성으로 흘러가게 되고 있는 것에는 주변에 전부 민간 분양아파트들이 들어섰고 역도 하나 새로 생겼다는 점들이 작용하고 있을 테다. 여러 이유로, 우리는 ‘여공’들이 살던 공공주택부지의 역사와 장소 모두를 조용히 잃어가는 중이다.

 

이 땅들이 과거의 도시노동자, 과거의 ‘여공’, 현재의 나와 우리를 위한 땅이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야 한다. 우리는 쫓겨나지 않을 땅, 함께 나이 들어갈 땅이 필요하다. 더 빼앗기지 않고, 끝내 우리의 것으로 사수해낼 땅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이 ‘뿌리내릴’ 땅 자리를 찾아 다니자.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모인 자리에서 욕심 내자. 여기, 이 땅에 우리가 정착하고 뿌리내릴 몫이 있다면 어떨지 함께 상상해보자. 공공의 땅에서 함께 구현해낼 페미니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함께 상상하자. 상상하고 말하고 살피며, 마침내 다가올 점유의 순간을 함께 누리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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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다우 2025/09/22 [15:29] 수정 | 삭제
  • 서울에서 집이란건 주거의 기능보다 투자의 기능성이 더 크게 부각되어 있다보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투자목적으로 땅을 이용할 뿐 그 땅에 있는 나의 역사와 나의 삶은 돈이 안되는 쓰레기일 뿐인거죠 그러니 쉽게쉽게 퇴거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당연히 옆집에 누가사는지 알던, 당연히 옆집 전화번호를 알던, 일이 생기면 같이하고 같이 김장을 하던 그 세대로의 회복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 레인 2025/09/20 [14:19] 수정 | 삭제
  • 마음 맞는 사람과 오래오래 같이 늙을 곳.. 그런 자리가 주어진다는 게 그리 어려울 일인가. 그런 생각을 하게되는 주말이다.
  • 2025/09/18 [13:23] 수정 | 삭제
  • 정주라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한국인들. 근데 나이들수록 이동은 버겁고 적응은 어렵고.... ㅠㅠ
  • 금주 2025/09/17 [11:46] 수정 | 삭제
  • 이런 멋진 글이! ????
  • ㅁㅅㄷ 2025/09/12 [11:57] 수정 | 삭제
  • 동네 친구들 있었던 시절이 그립네요 ㅠㅠ
  • 서경 2025/09/11 [14:32] 수정 | 삭제
  • 맞아요. 4년이고 6년이고 10년이고 들어갈 땐 그래도 일단 안심하지만, 그시간도 금방 지나갑니다.ㅠㅠ 왜 한국은 이렇게 주거가 불안정할까요.. 공감가는 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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