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장례와 ‘누구나 애도받을 권리’

『퀴어한 장례와 애도』- 왜 어떤 죽음은 애도가 불가능한가

박주연 | 기사입력 2025/09/25 [19:47]

나다운 장례와 ‘누구나 애도받을 권리’

『퀴어한 장례와 애도』- 왜 어떤 죽음은 애도가 불가능한가

박주연 | 입력 : 2025/09/25 [19:47]

“만약에 아내였다면, 혹은 남편이었다면 주변 사람들이 나의 슬픔의 깊이를 좀 더 이해해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물론 친하게 지낸 친구의 죽음이 슬프긴 하지만, 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그렇게 힘든 거냐며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 그 부분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 슬픔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위로받지 못한다는 것. 그게 가장 슬펐어요.” -책 『퀴어한 장례와 애도』 중

 

호연 씨는 파트너를 2013년에 만나 2016년까지 함께 했다. 파트너가 아프고 몇 개월 만에 사망한 후, 호연 씨는 슬픔을 혼자 감내해야만 했다.

2002년부터 2021년 파트너가 떠나기 전까지 함께 한 은수 씨는 파트너가 사망했을 때 “가족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고 말해야 했고, 회사의 ‘편의’로 장례를 치를 시간을 얻었다. 배우자 사망으로 인한 휴가나 상조금은 신청할 수 없었다.

 

▲ 책 『퀴어한 장례와 애도 - 왜 어떤 죽음은 애도가 불가능한가』 (김순남, 김현경, 나영정, 이유나 공저. 산지니, 2025) 표지

 

엄연히 ‘가족’이지만 현재 제도가 인정하지 않아서 장례를 치를 권리, 애도할 권리는 갖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가족이지만 이미 오래 전에 연이 끊겨서, 연락을 안 하고 지내서, 장례 치를 돈이 없어서, 가족으로서 장례를 치를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8년 2,447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는 2019년 2,655명, 2020년 3,316명, 2021년 3,603명, 2022년 4,842명으로 최근 5년 동안 2,395명(98%)이나 증가했다. 앞으로도 이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퀴어한 장례와 애도』(김순남, 김현경, 나영정, 이유나 지음)는 이런 현실을 조금 더 내밀하게 들여다 본다. “왜 어떤 죽음은 애도가 불가능한가?”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책은 “자신을 퀴어(성소수자,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로 정체화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파트너, 친구, 동료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단지 성소수자의 죽음과 장례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장례와 애도의 정상성을 질문”하는 구성으로 이뤄져 있다.

 

▲ “공적인 주체가 되어 애도할 권리, 애도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퀴어한 장례와 애도』 (이미지 출처=pixabay

 

‘이름’이 사라지는 장례식

 

책을 읽으며, 과거 성소수자 인권단체에 소속되어 있을 때 어떤 이의 죽음 소식을 접했던 일이 떠올랐다. 장례식장에 근조화환을 보내려 할 때, 단체 이름이 들어가도 되는지를 두고 단체 내에서 긴급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기 때문이다. 고인이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는지, 가족과 어떤 관계였는지, 퀴어/성소수자라는 단어가 장례식장 한편에 놓여도 ‘문제’가 없는 건지… 이런 걸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씁쓸했다.

 

고인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일원이었던 것, 그의 활동을 기리고 죽음을 애도하고자 하는 아주 작은 일 하나조차 쉽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충격적이라 한동안 침울했던 사실도 떠올랐다. 이후에도 성소수자의 장례식장에 갈 때면 늘 무거운 짐을 얹고 가는 기분이었다.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나를 소개해도 괜찮은 걸까… 종종 그 곳에선 고인 뿐만 아니라 나의 ‘이름’도 사라져야 했다.

 

책 속에 연구참여자로 등장하는 지민 씨는 “게이였던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친구의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어떤 아이였는지 물을 때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고 이야기”한다. 친구의 어떤 부분,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 부분만 빼고 친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면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연구참여자 재희 씨는 20대로 자신도 가난했고 원가족으로부터의 지원도 없었지만, 친구가 사망하기 전까지 함께 생활하면서 생활비를 자신이 지불했다. 정신병원에서도 응급실에서도 ‘보호자’로 불릴 만큼 돌봄도 수행했다. 하지만 친구의 사망 이후 ‘보호자’로서의 위치는 금방 사라졌다. 사망한 친구의 부모가 핸드폰, 노트북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을 때, 재희 씨는 급하게 친구의 물건을 집에서 빼돌려야 했다. 친구의 핸드폰에서 ‘레즈비언 전용 메신저’와 텔레그램 등을 지웠고, 친구의 부모가 고양이를 보호소로 보내겠다고 해서 고양이도 급하게 옮겼다.

 

“공적인 주체가 되어 애도할 권리, 애도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애도할 권리, 애도받을 권리는 삶의 마지막 순간마저 누군가에게는 투쟁의 영역이 된다.”

 

▲ 2023년 10월 극단Y에서 주최, 주관했던 〈퀴어한 유언장〉 토크&전시 행사장에 있었던 유언장 글귀들 ©일다


친족이 아니어도, 상주가 될 수 있을까?

 

애도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퀴어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고 투쟁한다.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듣자마자 수의를 결정하는 것 하나부터 원가족과 협상하고, 장례지도사를 설득한다. “사망한 사람의 지정성별은 여성이지만 왜 치마를 입으면 안 되는지, 또 화장을 왜 하면 안 되는지”… 주변인들은 고인이 지키고자 했던 것들, 고인이 원했던 장례식을 위해 노력한다.

 

“장례지도사가 보기에는 이 장례식이 되게 이상하겠지. 상주가 누구냐라고 물었는데 내가 내 이름도 올려달라고 했고, 관계가 뭐냐고 물었더니 친구라고 했고. 같이 사는 친구다, 가족보다 더 친한 친구다, 가족보다 내가 이 상황 이 친구의 상황을 더 잘 알고 있다라는 얘기를 계속 덧붙여 가면서 내가 상주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얘기를 했고. (중략) 그래서 약간 처음에 좀 트러블이 있으려고 하는 와중에 또 다른 친구가 (장례지도사) 옆에서 이렇게 토닥토닥 수고 너무 많으셨죠, 너무 그러셨죠, 힘드셨죠, 이렇게 해서 우리 편으로 잘 만들었어.”

 

파트너의 장례식에서 은수 씨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여러 도움을 받았다. 책에서는 이를 “퀴어로서의 장례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하는 퀴어, 페미니스트 그룹들의 집단적인 수행의 결과로 가능했다.”고 분석한다. “원가족 중심의 장례문화를 넘어 ‘퀴어로서의 장례’가 가능하기 위해서 장례 과정 내내 함께 조력할 네트워크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고 말이다.

 

은수 씨와 달리, 조력할 네트워크가 부재했던 호연 씨는 원가족이 파트너의 장례식 과정을 결정하는데 개입하지 못했다.

 

책은 “퀴어로서의 장례를 실천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을 넘는 사회적인 의제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결국, 퀴어로서의 애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고립되지 않은 생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이 사회적인 낙인과 편견으로 인해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남는 게 아니라, 존엄한 죽음의 의미를 사유하는 사회의 장을 생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 책 『퀴어한 장례와 애도』 홍보물 중


나다운 장례를, 모두에게 애도할 권리를

 

퀴어한 장례와 애도가 가능하려면, 어떤 논의와 변화가 필요할까? 책에선 ‘나다운 장례식’과 ‘사후 자기결정권’을 언급한다. 이를 위해선 일단 자신의 죽음을 미리 생각해 보고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그걸로 ‘나다운 장례식’이 가능한 건 아니다. ‘자기결정권’이라는 것 또한 세심히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는 자기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와 할 수 없는 존재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이미 삶의 자리에서 낙인과 차별로 인해 관계가 단절된 감염인이 죽어서도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 봐 연락을 남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말 그가 ‘원한’ 선택일 수 있냐”는 거다.

 

더불어 자기결정권이 있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수많은 정보 사이에서 무엇이 정말로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이것을 선택했을 떄 이후에 나와 주변에 미칠 영향이 무엇인지, 그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 등을 혼자 알아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이 결정을 실행해 줄 사람과도 소통해야 한다.

 

그 모든 걸 끝낸 이후에도 장벽은 있다. 현재 법과 제도에선 원가족, 친족이 장례 등 사후를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생전에 지정한 사람이 장례주관자가 될 길이 열리긴 했지만, 이는 ‘무연고자’라는 것이 확정되어야 가능하다. 여전히 혈연가족, 법적 가족이 선순위에 있기 때문에, 장사법에 따라 모든 연고자에 시신 인수 의사를 확인해야 하고 이에 대한 회신을 14일 기다리도록 되어 있다. 안치실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고 비용이 늘어나면, 장례를 주관해야 하는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사망한 사람이 사망하기 전에 본인이 서명한 문서 또는 민법의 유언에 관한 규정에 따른 유언의 방식으로 지정한 자가 최우선 순위가 되도록 개정이 필요”하다고 책은 주장한다. 또한 “사망진단서 등의 교부를 받을 수 있는 자의 범위 역시 확대”되어야 한다. 장사법 개정 요구가 포함된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거나, 동성파트너가 법적으로 ‘배우자’ 지위를 얻게 되는 혼인평등법이 제정되는 것 또한 방법이다.

 

한편, 책은 장례식을 치르는데 들어가는 비용 또한 애도할 권리에 걸림돌이라 지적한다. “공영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서울시설공단이 시민 정보 차원에서 조사한 장례비용은 빈소사용료(3일장 기준)을 포함해 평균 1,189만원”으로, 어떤 이들은 장례를 치르고 싶어도 비용 때문에 장례를 포기한다.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해 쌓인 고액의 치료비와 본국의 가족을 찾는 사이에 누적된 시신안치료, 시신송환료 등 비용 부담 때문에 시신 인수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의 죽음은 비용 때문에 애도받을 권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우리 사회가 함께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독거 노인이 늘어나며, 무연고 장례가 늘어나는 현 사회의 명확한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책 속의 연구참여자가 한 경험, 저자가 지적한 문제는 앞으로 성소수자만이 겪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마주할 일이 될지 모른다. 책의 제목이 “퀴어의 장례와 애도”가 아니라 『퀴어한 장례와 애도』인 것 또한 그 이유가 아닐까.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Ann 2025/10/05 [11:12] 수정 | 삭제
  • 이런 얘기가 드디어 니오는구나. 반가운데 슬프다.
  • 퀴어한장례동의 2025/09/29 [15:12] 수정 | 삭제
  • 퀴어한 장례와 애도-라는 말이 너무 공감됩니다. 지인중에는 존경하는 스승이 돌아가셨는데, (연차는 소진한 상태에서)회사에서 별도로 휴가를 받을 수가 없어서 속상해 했던 적이 있어요. 반려동물의 죽음도 그렇고요... 저만해도, 저나 배우자 둘 중 하나는 혼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라... ('가족'이라는 이유로 조카에게 장례를 부탁할 순 없으니까요) 남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말..
  • 이샤 2025/09/27 [12:29] 수정 | 삭제
  • 내 곁의 사람의 죽음까지는 생각을 못해봤는데, 지금도 주위에 친한친구다, 룸메다, 이렇게 소개해야 하는 것이 처음엔 괜찮았지만 시간이 쌓일수록 뭔가 상황에 맞지 않고 답답함이 느껴질 때가 많더군요. 죽음 이후에도 그렇고 그런 관계의 사람이 떠났다는 식으로밖에 안 될거라 생각하니 속이 더 갑갑하네요. 장례식도 혼자만의 의식으로 치러야할 것 같아서 벌써 외롭다.
관련기사목록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