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가부장제 사회의 ‘역할’에 저항한 여성들

『둘이 사는 ‘여성’사(史)』 저자, 하나타바책방의 이토 하루나

가시와라 토키코 | 기사입력 2025/10/04 [10:29]

100년 전, 가부장제 사회의 ‘역할’에 저항한 여성들

『둘이 사는 ‘여성’사(史)』 저자, 하나타바책방의 이토 하루나

가시와라 토키코 | 입력 : 2025/10/04 [10:29]

약 100년 전, 일본의 메이지-다이쇼-쇼와 시대에 결혼이 아닌 파트너십을 선택한 ‘여성’들이 있었다. ‘정사(正史)’에서도, ‘여성사’에서도 누락되었던 관계를 쌓은 여성들의 삶을, 많지 않은 자료와 소중한 증언을 통해 선명하게 그려낸 책 『둘이 사는 ‘여성’사(史)』(고단샤)가 올 3월 출간되었다. 저자는 하나타바책방의 이토 하루나(伊藤春奈) 씨.

 

▲ 이토 하루나(伊藤春奈) 1978년에 태어나 나가노현에서 자랐다. 그가 설립한 ‘하나타바책방’에서 출판한 책으로는 번역서 『여전사들-예상치 못한 역사(Women Warriors-An Unexpected History)』(파멜라 톨러), 『제국주의와 싸운 14명의 조선 페미니스트-독립운동을 다시 쓰다』(김이경 글, 윤석남 그림) 외. 저서로는 『왕언니의 문화사』 외. (촬영: 오치아이 유리코 ©落合由利子)


이에 제도(일본의 호주제)의 멍에가 여성들을 옭아매던 시대. 세계적인 단거리 육상선수였던 히토미 키누에와 체조학교 동료였던 후지무라 테후, 그리고 비행사였던 마부치 테후코와 나가야마 키요코 등. 『둘이 사는 ‘여성’사』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여성스러움’에 맞서며 ‘여성스럽지 않은’ 직업을 개척하고, 그 안에서 어마어마한 성차별을 겪으면서도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한 존재와의 관계성을 구축했다.

 

“지금도 이에 제도의 흔적이 남아 여성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죠. 젠더 규범이 뿌리 깊고, 결혼하면 반드시 ‘역할’을 요구당합니다. 우리 부모님은 사이가 나쁘고 어머니가 항상 울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역할’을 요구당해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했겠다 싶어요. 이 책 속 사람들은 자신을 왜곡하는 ‘역할’에 저항한 사람들이에요. 옛날 일본의 페미니스트들을 조사하던 중에 ‘둘이 살기’를 알게 되었는데,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용기를 얻었어요.”

 

개중에는 젠더 표현상 성소수자였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책 제목의 ‘여성’에 홑따옴표를 붙였다. “성소수자는 옛날부터 있었다고 종종들 얘기하지만, 그런 표면적인 언어가 아니라 있었던 ‘사실’을 똑똑히 적고 싶었어요. 사실의 힘은 엄청나니까요.”

 

『둘이 사는 ‘여성’사』에서는 동물과의 파트너십도 다뤘다. “‘반려동물은 가족’이라는 말 이상의 인연을 저도 먼저 떠난 고양이에게 느꼈었거든요.”

 

▲ 이토 하루나(伊藤春奈) 씨가 올해 3월 저자로서 출판한 책 『둘이 사는 ‘여성’사』(ふたり暮らしの「女性」史, 고단샤) 표지


이토 하루나 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역사 만화의 영향을 받아 역사를 좋아했다. 그 시기에 사극 드라마인 〈자토이치〉(座頭市)의 재방송을 보면서, ‘아웃로(outlaw)한 존재’(무법자)에 관심이 갔다. (〈자토이치〉는 일본의 유명한 맹인 검객 자토 이치를 주인공으로 한 시대극으로, 1962년 만들어진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1974년 드라마 첫 방영 이후 3개 시리즈로 방영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버전으로 드라마, 영화 리메이크 등이 제작되었다.)

 

고등학생이 된 후에는 이 드라마 영향으로 막부 말기 역사에 빠졌다. 막부 말기라고 하면 ‘지사’(志士, 막부 시대의 막을 내리고 일본의 근대화와 메이지 유신을 이끈 인물들을 말함)에 주목하기 십상이지만, 이토 씨는 그 시대의 폭력성과 ‘아웃로’(무법자)에 눈이 갔다.

 

“〈자토이치〉의 주인공은 시각장애인이에요. 영웅시되는 무사 외에, 배제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가 궁금했어요.”

 

하루나 씨가 페미니즘을 만난 것은 대학 때 수업을 통해서였다. ‘젠더’ 개념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젠더(gender)는 기존의 생물학적 성(sex)과 구별되어 제기된 개념으로, 젠더는 타고나거나 불변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규범과 기대를 통해 그 역할과 표현과 정체성이 학습되고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원래 심리학 용어로 사용되었던 젠더는 1970년대 페미니즘 이론가들에 의해 적극 수용 발전되었으며, 이후 사회과학 전반으로 대중화되었고, 21세기에는 유엔과 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 및 각국 정부 기관에서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출판사에 근무하다가, 2005년부터 프리랜서 편집자이자 기고가로서 일반 대중 대상으로 막부 말기에 관한 책 등을 만들었다.

 

“막부 말기, 지사의 주변 여성들을 조사했었는데요. 내 눈엔 너무 당연한 페미니스트적인 부분을 쓰면 (출판사에서 그 내용이) 잘리는 거예요.”

 

젠더와 페미니즘 관점을 넣은 책을 만들기 쉬워진 것은 #미투(MeToo)가 세간을 휩쓸었던 2017년경부터다.

 

2018년, SNS에서 우연히 기타무라 가네코(北村 兼子, 1903~1931) 씨의 글을 읽었다. 가네코 씨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법학을 배우고 저널리스트로 활약한 후, 비행사를 꿈꿨던 사람으로 자신이 당한 성폭력과 피해를 고발하고 여성의 입법권, 참정권을 요구하는 평론 활동을 펼쳤다. ‘너무나 날카롭고 재미있는 가네코 씨의 글로 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하루나 씨. 2020년에 출판사 하나타바책방(花束書房)을 세웠다. 여성사에서도 묻혀 있던 목소리를 전하고 지금에 되살리겠다는 바람을 담아서.

 

기타무라 가네코 씨의 글은 가족제도와 재생산과 건강의 권리 침해, 식민지주의, 우생사상 등에 맞서 ‘펜으로 싸웠던 한 마리의 이리’ 야마카와 키쿠에(山川菊栄, 1890~1980, 사회주의 여성해방운동가) 씨의 글과 함께 『미래에서 온 페미니스트-기타무라 가네코와 야마카와 기쿠에』라는 제목으로 2023년에 출판했다.

 

▲ 이토 하루나 씨가 역사에서 묻혀 있던 여성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어서 세운 출판사 ‘하나타바책방’에서 출간한 첫 책 『미래에서 온 페미니스트-기타무라 가네코와 야마카와 기쿠에』(未来からきたフェミニスト-北村兼子と山川菊栄, 2023) 표지. 하나바타책방 온라인 사이트 https://www.hanatabasyobo.com


지금, 하나타바책방은 다음 책을 만들고 있다. 재일조선인 3세 아티스트인 정유경 씨와 재일조선인사 등을 연구하는 야마구치 유카 씨의 공저다. 현대미술가인 정유경 씨는 한국전쟁 발발 전부터 조선인을 구금했던 나가사키현 오무라초의 오무라수용소(현 오무라입국관리센터)에서 이름을 딴 ‘오무라도자기’(전쟁 중의 도제 수류탄 모양을 본뜸)라는 작품을 통해 아이덴티티, 내셔널리즘, 일본의 배외주의 등을 묻는다.

 

“정유경 씨의 작품을 보고 마음이 동해서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종이값도 오르고 생활도 어렵지만, 책은 계속 만들고 싶어요. 간절한 마음으로.” [번역-고주영]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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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아 2025/10/10 [11:44] 수정 | 삭제
  • 와 너무 재밌겠다 우리나라도 많을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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