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과 함께 취약해진 마음을 고백하는 용기

〈혁명적 사랑〉, 그리고 〈우리의 취약함이 기어코,〉

혜영 | 기사입력 2025/11/08 [10:01]

아픈 몸과 함께 취약해진 마음을 고백하는 용기

〈혁명적 사랑〉, 그리고 〈우리의 취약함이 기어코,〉

혜영 | 입력 : 2025/11/08 [10:01]

지난 주에는 통증 때문에 결근을 두 번 했고, 아플 때마다 정해진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주말은 내리 누워 보내며, 디스크 증상으로 중둔근부터 오른쪽 다리 발바닥까지 극심한 통증 때문에 발버둥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동안 내 일상을 공유해왔던 친구들에게, 위기감이 들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전할까, 전해도 되는 것일까 한참 고민을 했다.

 

몸의 통증과 정서적 외로움, 주변에 말해도 될까?

 

‘암 진단-수술-항암-회복’을 거쳐온 경험. 그 과정 중에 가족에게 완전히 외면당하고 파트너한테는 이별을 통보받으면서 ‘혼자’가 된 후, 취약해진 몸과 자유로워진 솔로의 상태를 교차하며 어찌 저찌 이 시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1인가구의 상태이지만, 주변에는 늘 내 곁을 자처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좋은 이웃들이 있었으며, 그 둘의 영역 안팎에서 안부를 묻고 서로의 일상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어 무탈히 지내왔다고 할 수 있다.

 

중증의 질병 경험을 거쳐오며 다른 상황에 놓이게 된 몸에 의해, ‘돌봄’은 내게 관계의 영역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그것으로 관계를 확장하거나, 깊이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돌봄’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둔 관계 사이에서 내 역할을 새롭게 질문하고, 나아가 가족 밖 관계로 인해 질병을 회복했던 경험을 자원 삼아, 앞으로 변화되어야 할 ‘돌봄 문화’를 피력하는 공직 활동을 해오기도 했다.

 

그러다 올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증상에 의해 통증의 기복을 겪다 근래에는 이전의 항암치료 중 느꼈던 큰 통증을 지속적으로 겪으며 낯선 감정을 느끼게 됐다. 고양이 식구 둘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들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고, 통증에 사로잡힌 몸을 어쩌지도 못해 누운 상태로 버둥거리면서 ‘살려달라’는 말이 입에서 비집고 튀어나오는 중에, 그간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이 통증의 신음만큼 크고 암울하게 몸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참지도 못할 정도로 아프면 나도 모르게 “아파, 아파, 살려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내는 소리만큼 ‘외롭다’는 감정이 자라나는 것 같았다.

 

이 증상을 치료하고자 올해에만 세 개의 병원을 이동하며 검사와 치료를 받았다. 디스크 환자들이 흔하게 치료 방법으로 제시받는 신경차단술과 도수치료를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나마 출퇴근 업무를 가능하게 하고 그 외 활동을 소소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진통제 덕분이다.(진통제 역시 부작용을 겪고 새로운 의사를 만날 때마다 바꿔 지금의 약으로 정착해 장시간 복용 중이다.) 통증이 심해진 근래에는 하루에 두 번 먹어야 할 진통제를 세 번 먹었고, 6~7시간은 버티게 해주었던 약은 2~3시간으로 짧아졌다.

 

독한 진통제는 입맛을 잃게 만들었고, 자유롭지 않은 움직임은 일상의 몸 돌봄을 어렵게 해 식사 역시 제 때 챙기지 못해 한 달 반 사이 9kg이 빠져나갔다. 이전 회복의 과정 중에 체력을 올리기 위해 체격을 키우려 어렵게 7kg을 찌워놨지만, 6년 만에 몸무게는 항암치료 시절의 몸무게로 돌아갔다.

 

이렇게 아픈 몸에 의한 위기감과 외로움을 갖고 친구들에게 어떻게 소식을 전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다음 치료를 결정하는 것도, 일상을 영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주위의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이전과 달리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끼어들었다. 아픈 몸이 나를 설명해주는 언어로 상시적이고 만성화되는 것의 불편함, 나의 위기 상황이 이들의 안락함이나 분주한 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 지금 상황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아픈 몸을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그것이었다.

 

사실 돌봄을 주제로 한 교육 활동을 해오면서, ‘민폐’라는 단어는 나의 활동 지향의 반대편에 있었다. 그런데 중등도 이상으로 아픈 몸의 두 번째 경험을 하는 지금, 관계의 기울기가 느껴지며 ‘돌봄의 상호성’은 희미해지고 그 단어가 자꾸만 끼어들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요청하게 될까 상상해보니, 스스로의 역할을 물으며 이루고자 했던 상호서로돌봄 관계의 정의는 무용해지는 듯했다.

 

‘우리의 취약함이 기어코,’ 세상을 바꾸고 있어

 

▲ 한국여성민우회가 주관한 돌봄 전시 〈우리의 취약함이 기어코,〉가 2025년 10월 28일~11월 1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172G 갤러리에서 열렸다. (공동 주최: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언니네트워크,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트랜스젠더인권단체조각보, 함께서봄,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 여성주의현대미술가 화사. 지원: 한국여성재단) 갤러리 입구에 걸린 전시 안내문. (촬영-혜영)


10월의 마지막 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프닝 네트워크 파티 참여 신청을 취소했던 한국여성민우회 주관 돌봄 전시 〈우리의 취약함이 기어코,〉를 종료 하루 전날에서야 찾아갔다. 서울시청에서 광화문 지하 172G 갤러리까지 걷는 동안, 내내 숨을 고르고 한참 서서 쉬었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하며 그 짧은 거리가 멀게도 느껴졌다.

 

이 전시는 민우회의 ‘돌봄 프로젝트’ 3개년 기획 중 두 번째 과정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자, 이 프로젝트의 이름인 〈혁명적 사랑: 우리의 돌봄이 세상을 바꾸고 있어〉의 전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관련 기사: 당신의 돌봄 경험은 어땠나요? 1000명이 답하다 https://ildaro.com/10051)

 

방문 전, 전시 제목에서 [우리, 취약함, 기어코,] 각각이 무엇일지 궁금했고, ‘기어코’에 붙은 쉼표에 대해서도 질문을 갖고 있었다.

 

▲ 돌봄 관계망을 직접 그리고 이어보고 작성할 수 있는 참여형 전시. 내가 거쳐오거나 걸쳐져 있는 공간과 지역이 보여 반가웠다. 타인에 의해 작업된 돌봄 관계망에 나의 상상을 얹어 확장시키는 재미가 있었다. (촬영-혜영)

 

▲ 같은 공간 한쪽 벽면에서는 영상 〈돌봄에 OOO은 필요없다〉가 상영되고 있었고, 바닥에는 ‘OOO’에 해당하는 단어나 문장이 새겨진 종이가 구겨진 형태로 전시돼 있었다. 나는 저 단어가 눈에 들어왔고, ‘필요없음’에 매우 공감할 수 있었다. (촬영-혜영)

 

▲ 마지막 관람 코스인 〈돌봄이 혁명이 되려면〉에는 다양한 시민 주체들의 돌봄 선언문이 강렬한 색감 위에 전시되어 있었다. 명료하고 결기가 느껴지는 모든 문장이 목소리가 되어 소리 지르는 듯해, 다시 보는 지금도 설렌다. [촬영-혜영]


전시는 작년 ‘돌봄 프로젝트’ 첫해의 과정에서 발굴된 ‘돌봄의 얼굴들’과 그들의 언어가 구체적인 대상(들)을 만나 혁명성을 띈 돌봄 언어로 가시화되어 있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기어코의 사전적 의미)’ 무엇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사회가 취약하게 만드는, 취약한 존재들이, 혁명의 주체가 되어 일으킬 변화는 언제나 설레고, 나는 그 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미 그 편에 속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통증의 괴로움에 사로잡히다가도, 이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아픈 동안, 위기와 외로운 정서에 압도되어 취약함이 가진 반짝이는 힘을 망각한 채 더욱 쪼그라들기만 할 때, 기어코 나는 ‘쉼표’가 가져올 변화를 상상하려고 한다.

 

‘민폐’라는 단어가 끼어들 수 있는 관계의 정의가 아닌, 내 곁의 서로들, 몸과 함께 취약해진 정서를 용기 내어 고백하는 아픈 사람의 역할, 그들의 안락함에 포함되었을 나의 안락함과 그렇지 않은 상태를 위한 마음들을 헤아리는 관계의 시야. 이것들을 연습하고 잊지 않아야겠다.

그것이 지금부터 나에게 주어진 ‘혁명적’ 미션이다.

 

[필자 소개] 혜영: 사진가, 성평등 교육 활동가. 예술과 교육으로 성평등한 ‘몸문화’를 질문하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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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리 2025/11/11 [04:40] 수정 | 삭제
  • 반갑게 읽었는데 이게 혜영 글이였다니! 너무 고마운- 이 글을 내가 기획했던 만성질환자 대학원생 모임에 왔던 미국 친구에게 보내고싶다, 번역은 어떻게 하지? 생각이 들던차에 이름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던! 나눠줘서 고마워오-
  • 독자 2025/11/09 [21:58] 수정 | 삭제
  • 질병을 겪는 친구, 그리고 돌봄의 고됨과 선택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또다른 친구들이랑 대화나누면서 드는 생각들. 내가 겪고 있는 힘겨움을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은 나 자신에 대한 생각들을 하던 와중에 이런 고백을 들으니 반가우면서, 위로가 되면서, 뭔가가 안에서 허물어지는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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