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란 맘다니와 이름의 정치

미국에서 아시안 여성 정치학자가 본 뉴욕시장 선거

이영임 | 기사입력 2025/11/25 [11:05]

조란 맘다니와 이름의 정치

미국에서 아시안 여성 정치학자가 본 뉴욕시장 선거

이영임 | 입력 : 2025/11/25 [11:05]

최근 뉴욕시장으로 당선된 조란 크와미 맘다니(Zohran Kwame Mamdani)에 대한 뉴스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간다에서 태어나 인도계 미국인 부모 밑에서 자란 무슬림 이민자 청년이라는 그의 독특한 배경과 정체성 논란, ‘민주사회주의자’로서 경제 불평등과 주거위기 같은 지역 현안을 해결하겠다며 기성 민주당 지도부와도 변별력 있는 공약을 내세운 점, 또한 맘다니 캠프의 풀뿌리 조직이 어떻게 Z세대를 성공적으로 동원했는지 등 흥미로운 분석 지점이 많았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후에도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은 따로 있다. 맘다니의 선거 과정을 지켜보며 다시금 떠올린,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온 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 2024년 10월 27일 뉴욕 맨해튼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열린 ‘반파시즘 집회’에 참석한 조란 맘다니. (사진 ©Bingjiefu He, licensed under CC BY-SA 4.0. 출처-Wikimedia Commons)


맘다니? 만다미? 잠다미?…호명의 정치

 

2025년 6월, 뉴욕시장 민주당 경선 후보 공개 토론에서 앤드루 쿠오모(Andrew Cuomo)는 자신의 가장 강력한 도전자를 여러 차례 “만다미(Mandami)”라고 불렀다. 참다 못한 맘다니는 “쿠오모 씨, 제 이름은 맘다니입니다. M-A-M-D-A-N-I. 당신은 제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법을 배우셔야 합니다.”라고 정정했고, 청중은 이에 환호했다.

 

선거 3주 전 열린 후보 토론회에서, 쿠오모는 맘다니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시의원”이라고만 호칭했다. 공화당 후보였던 커티스 슬리와(Curtis Sliwa)는 같은 토론회에서 맘다니를 “조르한 만다미(Zorhan Mandami)”라고 잘못 불렀다. 심지어 시장 선거 결과가 발표된 후 승복 연설 영상에서도 쿠오모는 여전히 그를 “만다미”라고 부른다. (https://www.tiktok.com/@cnn/video/7569108958401662221)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공보비서관 등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의 이름을 변형해 부르곤 했다. 심지어 맘다니의 공개적인 지지자인 뉴욕주 법무장관 레티샤 제임스(Letitia James)조차 유세 연설 중 그의 이름을 잘못 발음했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맘다니의 이름을 처음엔 정확히 발음하지 못했다. 어디에 강세를 두어야 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맘’이 아닌 ‘다’에 강세가 있다.)

 

미국의 백인 주류사회에 속하지 않은 소수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에서, 자신의 유년기를 회상하며 “빼빼 마르고 이상한 이름을 가진 아이(a skinny kid with a funny name)”라고 표현했다. ‘버락’이라는 이름도 대다수의 유권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는데, 그의 미들네임은 심지어 ‘후세인(Hussein)’이다. 

 

카말라 해리스 전 부통령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2016년 민주당 경선 캠페인에서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법을 안내하는 “It’s Kamala!”라는 제목의 영상을 제작했다. “케말라”도, “커말라”도, “카멜라”도 아니고 “카말라”! (https://youtu.be/GVGfzbP7WBY)

 

그녀와 대권을 놓고 경쟁한 도널드 트럼프는 여러 차례 의도적으로 해리스의 이름을 잘못 발음하며 조롱했다. 트럼프는 “사람들이 내게 [그녀의 이름을 잘못 발음했다고] 지적하지만, 솔직히 어떻게 그 이름을 제대로 발음해야하는지 난 전혀 관심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배우 케리 워싱턴 (Kerry Washington)은  “[해리스의] 이름이 헷갈릴 수는 있지만, 무례함은 용납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그 자리에서 해리스의 어린 조카 둘이 무대에 올라 “우리 이모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법을 가르쳐드리러 왔어요!”라며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qereirU0-w)

 

이러한 ‘특이한’ 이름은 단순히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혹은 고의로 하지 않는 사람들의 무지와 무례함을 드러낼 뿐 아니라, 동시에 그들을 ‘아웃사이더’로 위치시키며 그들의 ‘다름’과 ‘이방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 카말라 해리스 전 부통령은 2016년 민주당 경선 캠페인에서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법을 안내하는 “It’s Kamala!”라는 제목의 영상을 제작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VGfzbP7WBY


이름은 사실 매우 정치적인 문제다. 권력을 가진 자가 호명할 권리를 가진다. 성경 「창세기」에서 신과 아담은 세상의 모든 것에 이름을 짓는다. 한국에서는 부모, 많은 경우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아이의 이름을 결정한다. 전 세계의 역사에서 이름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권력의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미국의 백인 당국과 선교사들은 선주민 아이들을 강제로 기숙학교에 보내 영어식 이름을 부여하고 머리를 잘랐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이주한 유대인들도 미국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과학자 마리 퀴리(Marie Curie)는 프랑스 유학 시절 본명 ‘마리아(Maria)’를 프랑스식 ‘마리(Marie)’로 바꾸었다. 일제는 조선인들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제했고, 이름을 지우는 것은 곧 정체성과 기억을 지우는 일이었다. 이름은 식민 통치 권력의 도구이자, 복종을 확인하는 장치였다.

 

이처럼 이름은 누가 중심에 있고 누가 주변에 있는지를 가르는 권력의 언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다시 정의하고, 타인의 언어로부터 벗어나 본인이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알리는 도구이기도 하다.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인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새로 선택하는 일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들은 자신을 부르는 방식을 스스로 결정함으로써, 타인이 규정한 성별과 존재의 경계를 거부하고 본인의 진정한 정체성을 선언한다.

 

또한 대만의 선주민들은 일본의 식민 지배와 국민당의 통치를 거치며 오랫동안 자신의 이름을 공식 문서에 사용할 수 없었다. 대신 한자식 이름을 만들어야 했고, 모든 공문서에는 한자로만 이름을 등록할 수 있었다. 선주민들의 오랜 투쟁과 요구 끝에, 2024년 5월 대만 의회는 「성명조례(姓名條例)」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이를 통해 선주민들은 한자 이름 없이 자신들의 언어와 전통에 따른 이름을 공식 문서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2018년 대만을 방문했을 때 다녀온 “이름 없는 사람들: 대만 평지 원주민 청년들의 이야기” 전시회 브로슈어. 온천으로 잘 알려진 대만 베이터우의 케타갈란 문화센터(Ketagalan Culture Center)에서 열렸다. 이 전시는 이름과 땅, 그리고 정체성을 빼앗긴 대만 선주민들의 역사를 소개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시에 소개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동명의 책이 2024년에 출판되었다. (촬영-이영임)


“왜 영어 이름을 쓰는 거야?”

 

나는 맘다니의 이름 발음 논란을 보며, 내 이름에 관한 경험을 떠올렸다. 내게는 아무 어려움이 없는 쉬운 이름이었지만,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수없이 잘못 불리고, 철자가 엉뚱하게 바뀌어 쓰이곤 했다.

 

한국에서 대학시절 영어를 배울 때, 외국인 강사가 학생들에게 “영어 이름을 지어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영어 이름을 만들었고, 나도 그랬다. 미국에 유학 온 뒤에는 내 이름을 말해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발음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점점 짜증이 났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어렵게 느끼며 민망해하거나 미안해했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괜찮다, 내 이름이 좀 특이하다”고 너스레를 떨며 내가 수습해야 했다.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직원은 주문을 받을 때 이름을 묻고 컵에 이름을 적은 뒤, 음료가 준비되면 주문번호 대신 이름을 불러 고객에게 알린다. 매번 내 이름의 철자를 알려주는 일도 곤욕이었지만, 애써 불러준 이름이 엉뚱하게 적히거나 잘못 발음되어, 내가 주문한 음료가 나왔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기다린 적이 여러 번 있다.

 

그 모든 순간이 내가 이방인임을 계속 상기시켰다. 안 그래도 어디서나 혼자 외국인이거나 유일한 아시안인 상황이 많았고, 다른 억양으로 영어를 하는 것도 신경 쓰였는데, 이름마저 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민망함과 불편함을 누르기 위해 영어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물었다. “왜 영어 이름을 쓰는 거야?” 나는 내가 겪은 불편함과 민망함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왜 타인을 위해 너의 이름을 바꾸니? 너는 수십 년 동안 영어를 배우느라 고생했잖아. 이제 미국 사람들이 네 이름을 배워야 할 차례야. 남이 민망할까 봐 너 자신을 지울 필요는 없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그날 이후 나는 영어 이름을 쓰지 않았다.

 

캘리포니아로 이사하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정말 다양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에는 멕시코, 아프가니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러시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이주했거나 가족이 이주한 학생들이 많다. 태국계 학생의 이름은 알파벳이 스무 자가 넘기도 한다. 이제는 내가 그들의 이름을 어려워하거나 잘못 부르는 입장이 되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휴학을 하고 혼자 케냐를 여행했을 때의 기억도 떠오른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현지인들이 묻곤 했다. “남한에서 오셨나요, 북한에서 오셨나요?” “한국은 일본과 같은 화폐를 쓰나요?” “한국어와 일본어가 비슷한가요?” 당시의 나는 어이가 없다는 생각에 “나는 남한에서 왔고, 한국은 일본과 아주 다르다”고 날카롭게 대꾸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물었다. “당신은 케냐의 역사와 정치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케냐와 탄자니아, 우간다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습니까?”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래, 나 역시 내가 익숙한 문화의 바깥에서 대해서는 무지한 존재였다. 그러나, 무지를 깨달은 것에서 멈추지 않고, 타인을 이해하고 배우려 노력해야 했다.

 

맘다니의 이름이 제대로 불리지 못했던 일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이 사회의 ‘우리’에 속하고, 누가 여전히 발음하기 어려운 ‘타인’으로 남는가의 문제다. 나의 이름을 정확히 말해 달라는 요청은, 결국 나를 이 공동체의 일부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나는 앞으로도 아무리 여러 번 말해주어도 나의 이름을 나처럼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부르기 전 잠시 멈칫하게 되는 사람들도 여럿 만나게 될 것이다. 매번 실수를 하고, 내가 여러 번 연습하고 반복한 문장을 또 말하게 될 것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영임입니다. 올드가 아닌 영, 임파서블 할 때 임. 한국 이름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수 있게 가르쳐주세요.”

 

이름을 부르는 일, 이름을 배우는 일은 민주주의의 언어이기도 하다. 

 

[필자 소개] 이영임. 현재 캘리포니아의 한 대학에서 젠더 정치와 동아시아 정치를 가르치며 글을 쓰고 있다. 제도권 정치와 광장의 정치가 만나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정치의 역동성과 변화의 순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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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니 2025/12/07 [17:12] 수정 | 삭제
  • 트럼프가 막말 해대는 거 보고 역으로 이름을 명확하게 부른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어요.
  • 베베 2025/11/29 [15:36] 수정 | 삭제
  • 윤여정 선생님의 아카데미 수상 소감과 시상 소감에서 이름 이야기를 하셨던 게 떠오르는 글이네요. 그리고 한비야의 책에서도 그런 내용을 본 기억이 납니다. '우리' 나라, 요즘 말로 k-oo 혹은 국뽕이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어리석다는 것을요. 아, 그리구 세계근현대사에서 식민지배와 독립의 역사들은 배워두면 좋은 정보입니다. 지금도 전쟁을 하는 나라들이 있고, 역사를 알아야 과오가 반복되지 않으니까요.
  • 2025/11/29 [12:22] 수정 | 삭제
  • 한국에 대해 남한이고 일본하고 사이가 안좋다는 것까지 반드시 알아야된다는 것 역시 자문화중심주의지요.
  • ㅇㅇ 2025/11/29 [12:06] 수정 | 삭제
  • 한국에서도 낯선 이름의 정치인들이 여럿 나오고 시장도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 오후 2025/11/29 [11:00] 수정 | 삭제
  • 이름이 다양한 동네에서는 다양성이 당연해지는 경험... 그런 걸 배우면 좋겠습니다.
  • 독자 2025/11/26 [18:54] 수정 | 삭제
  • 어느 시점부터 국제적인 어떤 인권 기준이 생긴 것인지 서구권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명확하게 발음하려고 노력하는 문화가 좀 확산되어가는 것 같다는, 적어도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노력은 해야한다는 인식이 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후보자 이름을 틀리게 부르면서 타자성을 부각시키는 거. 미국같이 다양한 인종이 섞여사는 사회인데도 그런 전략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통한다는 것이 씁쓸합니다.
  • 도미 2025/11/26 [15:50] 수정 | 삭제
  • 영어이름 만드는 것에 왜 위화감이 들었는지 이제 분명하게 알 것 같습니다. 지금은 보통은 성을 부르라고 하지만, 친구들은 당연히 이름을 부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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