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우리 마을은 남녀차별 없이 임금 지급한다”

삼태마을 이야기 2편: 마을회의에서 ‘성차별 임금’ 폐지 결정

호미 | 기사입력 2025/12/03 [17:44]

“올해부터 우리 마을은 남녀차별 없이 임금 지급한다”

삼태마을 이야기 2편: 마을회의에서 ‘성차별 임금’ 폐지 결정

호미 | 입력 : 2025/12/03 [17:44]

전남 곡성군 죽곡면 삼태마을. 이 마을이 특별한 주인공이 되어 회자된 날이 있다. 2025년 2월 4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특별디딤돌상으로 삼태마을과 담양인권지원상담소에 시상했다. 특별디딤돌상은 성폭력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이번 삼태마을의 수상은 ‘마을’이 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다.

그런데 이 마을은 성폭력 피해가 발생했을 시 마을 전체가 남다른 행보를 보인 것뿐 아니라, 마을 내 ‘성차별 임금 폐지’를 선언, 남녀 인건비를 차별 없이 지급하고, 공유농장, 공동밥상 등 새로운 마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삼태마을의 활동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박진숙 농민(죽곡 함께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인터뷰해 나눈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기획의 말]

 

성평등가족부는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공시대상 기업 및 공공기관의 성별 임금격차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올해 발표된 결과는 2024년 기준 공시대상 회사에서 남성 평균임금은 9,780만 원, 여성은 6,773만 원으로 격차가 30.7%에 달한다. 전년보다 4.4%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농업·임업 및 어업은 산업 분야 중 성별 임금격차가 큰 분야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통계청의 분석에 따르면 농업·임업·어업 부문 여성 임금은 남성 대비 70% 수준에 못 미쳐, 2024년 공시대상 회사 중 농업 분야만 보더라도 성별 임금격차는 30.2%로 여전히 높다. 대부분 5인 미만 영세 자영업이나 품앗이 형태로 비정규직·시간제 고용이라, 지표에 잡히지 않는 소득 격차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곡성 죽곡면의 삼태마을도 매년 마을회의에서 여성과 남성의 임금을 차별적으로 정해왔다. 하지만 2024년, 변화를 맞는다.

 

▲ 공유농장 팻말. 전남 곡성군 죽곡면 삼태리 공유농장은 방풍밭 3곳, 논 3곳으로 늘어났다. (사진 제공-진숙)


반대와 이견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남녀차별하지 않는 방향을 잡자”

마을회의에서 성차별 임금을 폐지하기로 결정

 

호미: 작년부터 삼태리에서는 여남 차별 임금이 없어졌다고요?

 

잎싹: 해마다 마을회의에서 ‘남자 얼마 주고 여자 얼마로 한다’고 정했었는데, 지금은 그 항목을 없애버리고 남녀차별을 두지 않는 걸로 바꿨어요. 물론 개인적으로 하는 것까지 마을(회의)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지만, 마을 차원에서는 정한 거지요.

 

호미: 남성들이나 땅 있는 사람들의 반발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논의를 할 수 있었지요?

 

잎싹: 마을회의에서 제가 제기했어요. 그랬더니, 남자들이 더 노동 강도가 세고 노동 효율성도 높다. 그리고 남자들 같은 경우는 예취기 같은 기계 노동도 굉장히 많지 않느냐고, 당연한 거라고 하시죠.

그래서 그럴 수 있다, 근데 요즘은 큰 일에서는 노동강도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늘 그러는 것도 아니고, 여성이 훨씬 더 잘하는 노동들도 많다. 기계도 여성들한테 맞는 기계도 있어서, 기계노동도 차이를 둘 필요가 없다. 우선은 임금은 동일하게 하되, 기계 작업 같이 난이도가 있을 경우에는 어느 정도 더 쳐주는 식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호미: 미리 할머니들이나 젊은 사람들하고 그런 이야기를 해왔나요?

 

잎싹: 다른 할머니들은 오히려 얘기 안 해요. 그분들은 아직까지도 차별이 있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젊은 남성들을 공략해서 얘기를 해왔죠. 근데 이게, 모두가 동의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 지금 일을 시켰을 때 남녀 똑같이 인건비를 줘야 된다고 하면 아마 통과 안됐을 거야.

 

젊은 사람들이 나서서, 마을에서 이런 게 통과된다 해도 이거는 권고 사항이지 강압적인 건 아니다 하면서, 기계가 필요하거나 노동강도가 셀 경우에는 더 줄 수 있는 거라고 했죠. 우리 삼태마을이 선진지라고 여기저기서 견학도 오는데, 공식적으로 남녀차별을 하지 않는 방향을 잡자, 이 정도까지 얘기했어요.

 

근데 이 ‘차별을 두지 말자’라는 말이 인건비 올리자는 이야기로 들리고. 아줌마도, 팔십 먹은 할머니한테도 10만 원, 60대 젊은 남자한테도 10만 원 줘야 된다는 거는 사람을 쓰는 입장에서는 답답한 거죠. 그래서 어른들이 그러면은 우선 올해는 남녀 인건비를 차별적으로 지정하지 말고 ‘남녀차별 없이 인건비를 지급한다 정도로만 하자’고 결론을 냈지요. 거기서도 사실은 일이 많고 땅이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가 커지거든요. 그래서 거기까지만 했죠.

 

호미: 마을 주민들이 가진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큰 역할을 했네요.

 

잎싹: 맞아요. 주민들이 마을 만들기에 대해 열망이 컸거든요. 공모사업으로 나라에서 돈도 주고, 주민들도 돈도 모아 공유농장을 마련한 경험도 있고. 우리가 얼마나 민주적인 방식으로 마을 일을 논의해서 잘 가고 있는가가 보여지면,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할 때도 도움이 된다. ‘마을 법’으로, 공식적으로 차별을 두지 말자는 게 의미 있다고 했죠.

 

호미: 거기까지 간 게 놀라워요. 성차별 임금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기까지가 쉽지 않으니까요.

 

▲ 공유농장 방풍나물 수확하는 날. 공동체 밥상에서 함께 점심 드신 마을사람들이 유모차와 전동차를 밭 가에 주르륵 주차해놓고 꽃방석 하나씩 꿰차고 앉아 여린 방풍순을 잘라나간다. “봉림아짐! 방풍 팔아 뭐 하고 싶으요?” “삼천포로 제주도로 훌렁훌렁 댕김서 눈호강 입호강 헐라네~” (사진 제공-진숙)


‘1가구 1표’ 아닌 ‘1인 1표’, 마을회의 전원 참여, 운영위원회 임원 ‘여남 동수’

그러자 “할매들이 주도적으로 마을 일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

 

잎싹: 그동안 마을 일을 하면서 젊은 사람들하고 이런 추세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어요. 이장님이 마을 만들기, ‘사회적 농업’(농촌 주민들에게 부족한 서비스를 농업인이 농업 활동을 하며 농촌자원을 활용해서 제공하는 활동/ 농업의 공익적 역할을 통해 농업인과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농촌 공동체 활성화를 도모/ 사회적 약자에게 돌봄, 교육, 일자리를 통해 사회 참여 기회를 제공하여 농촌 생활 적응도를 높이고 정서적 안정을 도모- 출처: 농촌서비스활성화지원센터. ‘사회적 농업’ 누리집) 강의 같은 거 있으면 이분들과 같이 가시고요.

 

다른 지역에 가서 선진 사례들도 좀 보시고. 이제 우리 마을에도 선진지 견학 오면 우리 마을과 협동조합, 면내 네트워크에 대한 얘기, 앞으로 방향, 마을 네트워크를 할 때 약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테이블을 왜 만들어야 되는가, 우리 마을의 자치가 기본이 돼야 되고, 이렇게 마을들이 연결이 되면 이게 바로 주민자치다. 누가 더 이득 보고 안 보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을 자치의 과정이라고. 죽곡면에는 마을 자치가 제대로 아직 정착된 곳이 없다. 그래서 삼태리가 그런 역할들을 좀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계속 해왔지요.

 

호미: 공모사업이 마을이 함께 꾸는 꿈이로군요.

 

잎싹: 맞아요. 그래서 공모사업으로 돈이 들어오면, 이 돈이 어떻게 쓰여야 되는가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해왔죠. 어떤 사람들은 마을 길이 너무 좁으니 길을 좀 넓히자고, 차 타고 들어올 때 남들 눈에 부끄럽다 이런 사람도 있어요. 자기 사심을 가지고 자기 땅 쪽으로 어떻게 해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요.

 

그러면 저희가 묻죠. “그것도 필요하죠. 근데, 지금 당장 필요한 게 길을 넓히는 걸까요? 우리 동네에 운전하는 사람이 몇 명일까요? 그 사람이 누구일까요?” 지금 마을에는 차 없는 어른들이 대부분이거든요.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100원 택시를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거든요. “마을 길은 교차가 안 되더라도 조금씩 기다렸다가 천천히 다니면 아무 문제가 없다, 오히려 마을은 좀 천천히 다녀야 마을이 안전하다.”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지금 당장 우리한테 필요한 건, 날마다 30명씩 모여서 밥을 드신다. 노인들이 다리도 아프고 힘든데 쪼그려 앉아서 밥 해먹으려니까 힘들다. 주방도 너무 좁다. 이분들이 좀 편안하게 밥을 같이 함께 여럿이 해서 같이 먹을 수 있는 그 공간이 더 지금 절실하고 필요하지 않을까요?” 물었죠.

 

그러면서 “우리 동네는 귀농 귀촌자들도 굉장히 많은데, 각자 따로 사는 것보다는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함께 어울려진다. 뭐든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좀 가르쳐주고 같이 해서 나눠 먹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거다. 기계가 들어가면 우리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같이 빵을 만들어서 좀 나눠 먹고, 할매들도 할매들이 잘하는 빵들 많다. 술빵이라든가 뭐 찐빵 같은 것도 같이 하고, 우리 마을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 수 있는 목공 공방도 필요하고 그렇다. 그리고 김장도 마을에서 공동 김장을 하거든요. 회관에서 쭈그려 앉아서 하려니까 너무 힘들더라, 작업대나 일할 공간들, 물 콸콸 잘 나오는 수전도 필요하다.

그리고 앞에는 좀 넓은 광장이 있어서 마을 축제, 쥐불 놀이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게 마을 커먼즈(commons, 공유자원, 공동체, 상호돌봄) 공간이다,”하면서 그림을 그려주지요. 그리고 나서 축제 워크숍 같은 데를 가요, 선진지로. 그러면 이 양반들이 아, 그 그림이 이거구나, 이제 아는 거지요.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가는 것 같아요.

 

호미: 마을 공동급식, 커먼즈 공간, 마을 빵카페들이 그렇게 마련되었네요. 이런 의논을 어디서 하지요?

 

잎싹: 마을회의에서 하지요. 마을회의에 우린 참석률이 100%예요. 한 번 모이면 100명이 모여요. 그래서 회관도 리모델링했어요. 농촌 마을이 아직 ‘1가구 1표제’가 많고, 가구 대표가 남성이 되잖아요. 우리는 진작에 ‘1인 1표제’로 바꾸고, ‘마을개발위원회’도 ‘마을운영위원회’로 바꿨어요. 여성이 50% 참여하도록 했고요. 할매들이 주도적으로 밥도 해 먹고, 공동체 밭도 하고 마을 예술단도 하면서 당신들이 사업 대상이 아니라, 주축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요. 마을 일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거지요.

 

▲ 동짓날 마을밥상 메뉴는 팥죽이다. 갈골아짐이 여섯 되나 퍼온 팥으로 물을 내 죽을 끓이고 새알심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었다. (사진 제공-진숙)


공유농장이 만들어지기까지, ‘함께 밥 먹는 것’에서 시작

현재는 최고령 할매부터 월급 받고 공유농장 관리, 농장 강사로 활동

 

호미: 같이 꿈을 꾸고, 상상을 하고 그걸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관계가 변해가는군요. 공유농장 둘러보면서 놀랐어요. 공유농장 팻말이 마을 여기저기에 있는 것도 그렇고, 가장 고령의 어르신들이 월급을 받고 공유마을 관리자이자 강사로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도요.

 

잎싹: 이 공유농장이 ‘함께마을교육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사회적 농업의 일환으로 운영하고 있는데요. 농장에 마을 선생님들을 고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놨어요. 일주일에 한 번, 오전에 일하고 20만 원씩 드려요. 우리는 동네 할매분들 최고령이신 분부터 고용을 했어요. 자격 기준은 딱 하나, 공유농장까지 유모차를 밀든지 어떻게든 오시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처음에 93세 할매가 하시다가 이 양반은 이제 걸어가기도 힘들다고 하셔서, 지금 87세부터 83세까지 네 분, 은희(가명, 1화에서 언급되었던 성폭력 피해자 청년. 기사 링크 https://ildaro.com/10323) 씨까지 5명이 매주 와서 일을 같이 해요.

이 분들이 처음에는 이장님 일을 도와주러 오는 걸로 아셨어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래요. 이장 밭도 아닌 것 같고, 이상한 일을 하는구나 하시죠.

 

그런데 이 5명이 마을 선생님으로서 예비 귀농귀촌자들, 강빛마을 팀들(죽곡면 강빛마을 주거단지에 거주하는 농촌유학팀)한테 농사일도 가르쳐주는 역할도 하고 있거든요. 예비귀농인들이 와서 막 귀를 쫑긋 세우고 “어머 정말요?” 하면서 열심히 들으니까, 이분들이 막 자존감들이 올라가는 거지요.

 

호미: 50~60년째 농사일을 해오시면서,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려는 사람들을 만난 게 처음이셨을 것 같아요.

 

잎싹: 맞아요. 마을 선진지 견학 오신 분들한테 일부러 “마을 선생님들한테 인사 한번 하고 일하실게요.” 하거나, “어제 오늘 했던 것들 마을 선생님들(할매들) 마무리 말씀 좀 해주세요.” 하지요. 사람들이 여기서 생산되는 것들은 어떻게 하냐고 물으면 마을 선생님 할매들이 뜯어가시라고, 가서 밥 반찬 해 드시라고 뜯어주세요. 마을회관에 반찬 같은 거 필요한 것도 가져가게 해주시고요.

 

또, 우리 공유농장 방풍밭은 좀 크거든요. 한창 날 때는 많아요. 그러면 내가, “이거 다 어떻게 먹어. 어머니, 이거 우리 동네 말고 면에서 이렇게 혼자 있는 사람들 힘든 사람들한테 밥해서 이걸로 나눠줄까요. 면사무소하고 같이요?”하면, 흔쾌히 좋다고 하시죠. ‘사회적 농업’을 이제 조금씩 이해하시는 거지요. 여기서 양념 같은 거랑 다 해서 반찬나눔으로 가거든요.

 

▲ 삼태마을의 동짓날 마을밥상. (사진 제공-진숙)


농촌 노인에 대한 통념…“근데 우리 할매들은 이제 안 그래졌어요”

 

농촌 노인들을 늙고 힘없고 의존적인, 받아줘야 될 존재, 자기 옆 사람하고 경쟁해서 더 달라고 하고, 그 욕망만 받아주면 동원하기 쉬운 존재, 이렇게 노인들을 인식하잖아요. 근데 우리 할매들은 이제 안 그래졌어요.

 

호미: 노인들에 대한 편견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거라는 걸 증명하고 있네요. 사회적 농업에 참여하고, 공공의 일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이 공공의 영역을 움직이고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자신을 위치 지으면서 공적인 목소리를 내시게 되는군요. 나이나 체력 같은 취약성은 오히려 사회적 농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요.

 

잎싹: 그렇죠. 이 할머니들이 사회적 농업이란 걸 100%는 이해를 못하셔도 회관에서 이 양반들이 이제 빅마우스가 돼요. 일단은 자기들은 이장님네하고 친하다, 이장과 이장각시가 하는 것들을 내가 같이 하고 있다, 이런 거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권한도 가지시고요. 그 권한을 마을 안에서 쓰죠. 마을 안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퍼뜨리고요. 그러면서 당신들의 삶도 조금은 더 공공의 삶이 되게 하려고 노력을 해나가세요. 이런 변화가 우리 마을에 밥을 같이 해먹는 것에서 출발한 거예요.

 

“할머니들이 사회적 농업을 100%는 이해 못하셔도…”

마을에 뚜렷이 온 변화들, 확장되는 공유자산

 

호미: 마을에서 매일 밥을 같이 먹는 게 정말 중요하네요. 밥 먹는 일이 어떤 일로 나아갈지 알고 시작했나요?

 

잎싹: 전혀 몰랐죠. 농번기에 공동 급식비를 신청하면 나와요. 그렇게 가서 공동급식을 먹고 나면 자꾸 체해요. 모두 너무 빨리 먹고, 밥숟가락 아직 놓지도 않았는데 할매들이 설거지하러 가시면 같이 해야 되잖아요. 그런 게 불편했죠. 그러다 마을 공동체 사업으로 뭘 할까 의견을 물으니, ‘같이 밥 먹는 게 제일 좋겠다’ 해서 한 건데, 이제 밥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그걸 준비하고 꾸려내는 게 그냥 마트에서 재료만 사다가 하면, 이 예산으로 우리 동네 사람들 한 30명이 먹는데 한 20일도 못 먹겠더라고요. 재료비가 한 달에 100만 원, 인건비가 한 120만 원 나오거든요. 그래서 그냥 ‘인건비 받지 말고 같이 돌아가면서 밥을 하고, 이 인건비도 재료비로 씁시다.’부터 시작을 했던 거지요. 그래서 20일 먹을 수 있는 거를 한 두 달 가까이 먹을 수 있었죠. 밥 먹으니까 좋다고, 그러면서 더 좋은 방법이 뭐야 하면서 방법을 계속 찾아낸 거지요. 계속 사먹는 거는 너무 아까우니까, 우리 고추나 뭐 기본 양념은 심어보자. 누가 조금씩 가져오는 것도 한두 번이고 한계가 있으니까요.

 

할매들이 ‘빈 밭이 있는데 농사지어 보자. 씨 좀 사와, 우리가 심을게’ 하시고. 쌀도 일주일에 35kg 정도씩을 먹더라고요. 그걸 감당 못하니까 할매들이 이제 자연스럽게 논농사도 짓자고, 농사짓기 힘든 분들 논을 마을에서 하나씩 하나씩 농사짓게 된 거죠.

 

처음에는 우리가 900평 농사를 지었어요. 회관이 밥 해먹기가 불편해서 식당을 만들려고 마을 만들기 사업을 하려는데, 땅을 보유해 놓으면 좋다는 거예요. 그래서 땅을 사기로 했지요. 그러면은 돈을 모으자. 그래서 몇몇 형님들하고 얘기를 해서 우리가 먼저 조금씩 내봅시다. 그래서 회장님, 이장님들이 좀 크게 내시고, 다른 사람도 조금씩 내고 해서 5,000만 원 가까이를 모았죠. 그걸로 땅을 샀어요. 일단 마을 공유자산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2024년에 굉장히 많이 늘어났고, 이제 쌀은 전혀 부족하지 않게 됐지요.

 

▲ 공유농장에서 ‘마을 선생님 할매’들이 노래를 부르며 일하다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할매들의 이야기 노래를 진숙이 녹음했다. “마을에 찢어지게 가난해서 피죽도 못 먹던 과부댁이 있었댜/ 남편 없이 여섯 아그들 멕여 살리느라 똥줄이 탔는디/ 너무 못먹응께 깡으로 악으로 버티던 몸땡이도 고장이 나부렀다네./ 동네에서 쌀죽이라도 끓여다 멕여야 허것다 싶어서 이장이랑 어른할매가 들여다 보러갔제/ 가만히 죽은듯이 누웠던 과부댁이 이장이 들어옹께 배를 부여잡고 뒹굴면서 악악 소릴 지르더라네. ‘아고아고 나죽것네/ 미음말고 달구죽!! 함께간 할매가./ 그려그려 달구죽잉~/ 아고아고 나죽것네/ 많이도 말고 한양푼!/ 할매가 눈을 치켜 뜨고/ 오메오메 한양푼잉~/ 아고아고 나죽것네/ 멀국 말고 건더기!/ 허리굽은 할매 이장 등을 떠밀며 /그라믄 석삼년은 살것네잉~’/ 걸죽한 달구죽 먹은 과부댁이 탈탈 털고 일어나 동네 살림 도맡아 했다등마” (사진 제공- 진숙)


할매들이 “빈 밭에 같이 농사지어 보자. 씨 좀 사와, 우리가 심을게”

공유논 활동가로, ‘뒷방노인’에서 ‘존엄과 환대’의 삶으로

 

호미: 그런데 공유논 활동가를 어떻게 최고령층 어르신들부터 모실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일을 하려면 활동력이 있는 분을 모시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요.

 

잎싹: 회관 할머니방이 딱 나눠져 있어요. 80대 후반 85살 넘은 사람들은 저쪽 방 뒷방, 85세 안쪽에서 60세~70세의 할매들은 가운데 방, 주류방이요. 이 주류 할매들이 밥을 하시는데, 뒷방 할머니들이 이제 눈치를 보는 거예요. 눈칫밥을 드시는 거지. 당장 일이 힘드니까 밥 먹는 사람이 미울 수가 있지요.

 

그런 거 보면서, 이분들이 지금껏 이렇게 마을을 지켜왔고 오랫동안 살아온 거에 대한 존중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나, 눈칫밥 안 먹는 방법이 뭘까, 고민했죠. 농촌에 노인 공경한다고는 하지만,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이 마을의 어른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건 쉬운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이 일을 하시고 식재료라도 가져오는 사람이 되면, 당신들도 조금 떳떳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이제 그분들이 공유농장에 오셔서 일하시게 한 거죠.

 

처음에는 일 잘하는 사람 뽑아가야지, 그 꼬부랑 할매들 데려가서 뭘 하려고 그러냐고, 반대도 있었는데, 이 공유농장은 사회적 농업이고, 돌봄 농장이니까, 가치를 공유하는 거라고 설득했죠. 반대하는 할매들한테 “할매도 85세 넘으면은 여기서 일하실 수 있어요.” 하죠. 그러면 이제 순서 기다리는 거지요. 그렇게 공유농장 세팅이 된 거지.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까 힘들다, 허리도 아프고 어쩌고저쩌고 하시면서도 일을 좋아라 하세요. 하시는 일에 대해서 얼마나 자긍심을 가지시는지 몰라요. 당신들이 농사지은 거 마늘 가져다가 까서 쪄 놓고, 파도 뽑아다가 싹 다듬어서 넣어놓고. 당신이 밥은 안 하지만 밥할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을 다 챙기셔요.

 

이분들이 강빛마을 예비귀농인팀이나 농촌 유학팀들을 되게 이뻐해요. 왜냐하면 공유농장에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거든요. 학생들이 더 듣고 싶어 하고, 질문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보니까. 이 할매들도 아이들 챙기시고…. 세뱃돈도 주고 명절 때 살짝 용돈도 챙겨주고 되게 예쁘다 하고 좋아하셔요.

 

호미: 농촌 유학 온 아이들이 회관에 스스럼없이 오는 이유가 있었네요. 공동밥상에서 할머니들 옆에 스스럼없이 앉는 거 보고 좀 놀랐거든요. 환대의 할매들이로군요!

 

사회적 농업의 씨앗이 옆 마을에도 뿌려지고 있다

 

잎싹: 맞아요. 87세, 85세, 83세 할매들은 같은 뒷방에 앉아계셔도, 눈에 보이지 않게 조정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하세요. 83세의 할매 두 분은 밥도 하시고요. 이분들이 우리가 먹는 게 공유농장에서 농사지은 것들이고, 우리만 먹는 게 아니라 면에 필요한 분들한테 반찬나눔으로 간다고 말씀하시고.

 

이런 불씨가 다른 마을에도 튀어요. 반찬나눔에 참여하시는 할머니들 중에 용정마을 할매들이 계신데, 그래서 용정에도 민주화 바람이 좀 불기 시작해요. 이 할매 두 분이 투사가 돼 버렸어요. 사회적 농업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는 거지요.

 

[필자 소개] 호미. 한국양성평등교육원 농촌성평등 강사, 귀농운동본부 귀농통문 편집위원,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여성농어업위원회 위원, 장애활동지원사, 동화집필 노동자이다. 서울에서 귀농했다가 도시로 역이주했다. 여자들이 귀농하기 만만치 않지만, 그 여자들도 만만치 않다는 걸 드러내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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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조림 2025/12/11 [11:09] 수정 | 삭제
  • 오랜만에 기운이 나는 기사네요. :)
  • 루다우 2025/12/10 [17:26] 수정 | 삭제
  • 기계 작업 같이 난이도가 있을 경우에는 어느 정도 더 쳐주는 식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다들 그냥 이걸 말하는 겁니다 다만 동일 직책이라고 돈 같이 받는게 아니라요 특정 직무에서는 남자가 또는 여자가 더 받는게 당연한건데 그걸 일률적으로 통일 하라고 하니 문제가 되는거죠 평등이 아니라 공평을 원하는 겁니다
  • 보라미 2025/12/07 [13:14] 수정 | 삭제
  • 와! 와!! 감탄사가 나옵니다.
  • 선재 2025/12/06 [21:47] 수정 | 삭제
  • 큰 그림을 그리고 전하며 함께 만들어 가시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납니다. 참 멋지다 !
  • 허브 2025/12/04 [17:59] 수정 | 삭제
  • 시골 일하는 삯이 아직도 이렇게 노골적인 차별 금액으로 정해지고 있군요. 하긴 공장노동도 여성들 고용하는 곳과 남성들 고용하는 곳 나뉘어서 단가가 참 다르데요... 삼태마을 사례가 다른 마을로, 다른 지역으로 전해지고 번져서.. 평등한 마을공동체가 얼마나 살기에 좋은지, 공공의 선을 이루는지 많은 사람들이 실제 체감하게 되길 바랍니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벌써 두근거려요.
  • 친구 2025/12/04 [17:00] 수정 | 삭제
  • 어딘가에서 이런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힘이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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