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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다가온다. 연말연시가 되니 재작년 추석 때 Moon 집에서 만든 만두가 떠오른다. 채식인인 나를 위해 고기를 뺀 채식만두였다.
백이십 개의 만두 빚는 이야기
Moon과 다른 활동지원인 E(요리의 신이다)가 며칠 전에 묵은 김장을 가져다 놓았다. 둘은 장을 보고 잡채를 삶고 야채와 김치를 다지고 밑간을 해놓기로 하고, 나와 Moon의 짝꿍이 만두를 빚기로 했다. 막상 당일이 되자 E가 두부를 못 샀다고 연락해왔다.
두부를 사서 면보에 넣고 물기를 짜는 건 손이 서툰 필자의 몫. 미리 준비해놓은 면보에 두부를 올리고 짜봤다. 면보에서 물이 쫄쫄쫄 나오다 만다. 면보 틈새로 두부가 흘러나온다.
보다 못한 Moon이 등판했다. 식탁에서 요리하던 나를 바닥에 앉게 했다. 그리고 Moon 역시 휠체어의 엘리베이팅 기능으로 바닥에 내려왔다. 자세가 훨씬 더 안정된다. Moon이 왼손을 내밀어 면보의 한쪽을 잡는다. 왼손은 강직은 없지만 움직임이 제한적이고 힘이 좋다. 다른 쪽 끝은 내가 두 손으로 잡고 함께 짠다. 손 세 개가 몇 차례 헛돌다가 합이 맞는 순간이 온다. 제대로 돌아간 면보에서 물이 줄줄줄 기분 좋게 흘러나온다. 한 손을 떼 면보를 꾹꾹 눌러 남은 물기를 짜낸다. 면보를 벗겨보니 두부가 포슬포슬하다.
만두 속을 담은 양재기와 만두피를 거실 가운데 놓고 만두 빚을 태세를 마치자, 때마침 온 Moon의 짝꿍이 합세한다. 짝꿍은 물을 떠 와 앉는다. 오! 뭣 좀 아시는데? 만두를 빚을 때는 가장자리에 물을 묻혀가며 만들어야 터지지 않는다. Moon의 응원 속에 (실은 옆에서 TV 보고 있음) 만두를 빚기 시작한다.
Moon의 짝꿍을 보니, 만두피를 잡는 손 모양새부터 다르다. 만두 속을 넉넉히 담아 오므리고, 가장자리에 주름을 잡는 동시에 쓱쓱 돌려가며 날렵하게 완성하는 솜씨라니! 사십 년간 Moon도 몰랐던 숨은 실력에 Moon도 혀를 내두른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읜 Moon의 짝꿍은 큰집 사촌들과 모두 모여 홍두깨로 만두피를 만들던 50여 년 전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큰집과 우리집이 이어져 있었어요. 대문은 두 갠데 안 쪽은 한 집인 거죠. 사촌까지 매일 열 명이 같이 밥을 먹었죠. 큰어머님이 보통 분이 아니셨어요. 소풍 가는 날이면 사촌들은 안 사줘도 저희들은 꼭 새 옷을 사주셨어요. 엄마 없다는 거 잘 모르고 컸어요. 큰어머님 덕이죠.”
이야기를 하면서도 Moon 짝꿍의 손은 속도가 줄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가 손의 엔진인 듯, 그쪽 쟁반에만 예쁜 만두가 차곡차곡 쌓인다. 속도와 만듦새 양쪽 다 밀린 나는 슬그머니 만둣국 끓일 채비하는 척 경쟁에서 철수한다.
Moon의 지시대로 다시마와 표고버섯을 넣고 채수를 낸다. 파를 썰어놓고 지단을 만들 달걀을 풀어놓는다. 불려놓은 떡도 씻어 건져놓는다. Moon이 다시 등장해 채수 간을 맞춘다.
만두 백이십 개의 위용이 빛날 즈음 육수가 설설 끓는다. 채수에 만두를 퐁퐁 빠뜨린다. 파와 김가루, 계란 지단을 얹고 깨소금을 뿌려 셋이 식탁에 둘러앉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리에 없지만 E에게도 감사하며 수저를 든다. 그림같이 소파에 앉아있던 ‘달’(필자의 반려견, 가끔 Moon이 보고 싶어 하거나, 달이 Moon을 보고 싶어하면 Moon의 집에 간다.)이 꼬리를 설설 흔들며 다가온다. Moon이 식탁 뒤에 있는 간식을 달이에게 준다. Moon은 달의 방문을 위해 간식을 준비해둔다. 달이 간식을 받아 다시 소파로 가고,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후후 불어가며 만두를 먹는다.
활동지원사로 일하면서 좋아하게 된 단어가 있다. ‘의존’이다. 사전적으로 ‘의존’은 특별한 가치가 개입되지 않은 중립적 단어이다. ‘다른 것에 의지하여 생활하거나 존재하는 성질’. 한자 어원을 살펴보면 의존은 의(依)는 ‘돕다’, ‘힘이 되다’, ‘의지하다’, ‘믿다’의 뜻을, 존(存)은 ‘있다’, ‘안부를 묻다’, ‘가엾게 여기다’의 뜻을 지닌다. ‘존재의 안녕을 위해 믿고, 돕고, 힘이 되다’, ‘서로 힘이 됨으로써 존재가 가능하다’는 뜻일 테다.
Moon의 장애는 다른 도구, 기구, 사람과 제도까지 자석처럼 끌어들인다. 장애활동지원사 2년, 비로소 Moon의 장애가 연결을 유도하고 촉진하고 접속을 가능케 하는 “역량”으로 읽힌다. Moon이 내게 선물한 새로운 사전이다.
장애학과 페미니즘 철학을 잇는 이론가 수잔 웬델(Susan Wendell)은 만성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 ‘의존’하는 몸들의 삶과 경험으로부터 나온 통찰과 지식에 대해 말한다. 내가 Moon에게서 느끼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Moon은 “몸을 이상화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이 지배적인 사회와 결별하고, 몸을 통제하지 않고서도 자기 몸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자연스레 깨쳤다.
암 수술 이후 몸의 통제가 더 어려워지고, 통증도 계속된다. 그런 채로 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Moon의 일상이다. 아프기 전에 약을 챙겨 먹고, 진통크림을 가까운 곳에 두고, 여러 모양의 마사지 기구를 준비한다. 나는 Moon의 약을 챙기고, 아픈 곳을 마사지해서 잠깐 통증을 잊게 해주거나, 갑작스런 병원행에 일정을 어떻게든 조정해서 동행한다. 힘든 진료가 끝나면 마치 쇼핑이라도 나온 여행객인 척, 과자 가게에 가서 과자 한 쪽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옷가게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장애로 감당해야 하는 고통과 한계는 우리를 늘 시험에 들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접속시킨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서비스 이용자가 코로나에 걸린 경우, 초반에는 장애활동지원도 금지되었다. 대부분의 활동지원이 개인, 가족에 떠맡겨지면서, 코로나에 걸린 중증장애인들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 그때 Moon도 코로나에 걸렸다. 초기라 코로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사회 전체가 격리 강박에 빠져있을 때였다. 하지만 Moon의 활동지원은 계속 이어졌다. (만두 속을 만든 E가 그 당시 활동지원사이다.)
E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그럼 어떡해요? 사람 죽게 생겼는데.” E뿐만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잡히지 않지만 코로나 당시 많은 활동지원사들은 답이 없는 곳, 의존이 만발한 곳에서 활동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의존은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의 의존은 보이지 않게 하면서 다른 이의 의존에는 낙인을 찍는 것들이 있다. 에스컬레이터, 계단 버스, 고속버스 (전국에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없다), 턱으로 구획된 예쁜 식당, 엘리베이터 없는 공연장, 키오스크 등은 누군가에게는 편리하고 효율적이지만, 휠체어 앞에서는 작동을 멈춘다. 이들은 Moon의 의존을 불허한다.
장애가 주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무엇에 의존할 것인지를 선택하게 한다는 것이다. “내 몸은 못 바꾸지만 사회는 바꿀 수 있잖아요.” Moon이 전장연 집회나 지하철 탑승 행동에 열심인 이유다.
백이십 개의 만두는 우리가 며칠에 걸쳐 서로 의논하고 이어가고, 의존한 덕에 가능했다. 또 엘리베이팅 휠체어에, 장애활동지원 제도에, Moon의 짝꿍을 만두를 빚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낸 큰어머니의 손길에, 그리고 면보와 논과 밭의 보이지 않는 노동들, 달이의 간식에도 빚졌다. 동시에 우리의 채식만두 작업은 착취적이면서도 자연스럽다고 인식되었던 공장식 축산과 자본 중심 유통공정에서 벗어나 다른 의존으로 방향을 튼 첫 걸음이기도 했다.
만두를 빚는 Moon 집의 풍경과 전장연의 투쟁은 그렇게 이어진다. 의존의 빛이 우리를 비추는 곳에, 인간・비인간 존재들과 지구의 생명을 지속시키는 책임과 윤리가 태어난다.
*만두 뒷이야기. 만두를 다 먹을 동안 냉동실에 넣어둔 만두가 살짝 얼었다. 만두를 꺼내 용기에 담았다. Moon네, E네 그리고 Moon의 어머님네, 우리집 것까지 네 용기에 만두가 골고루 담겼다.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올해 설에도 만두를 만들자고 해볼 참이다. 재작년보다 우리의 서로에 대한 의존도는 훨씬 더 탄력적이고 정교해졌을 것이다. Moon의 짝꿍이 만두피부터 만들자고 할 것 같다. 올해는 홍두깨에도 의존해야 할 듯하다.
[필자 소개] 호미. 장애활동지원사이며 동화 집필 노동자. 한국양성평등교육원 농촌성평등 전문 강사, 전국귀농운동본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활동서비스 이용인’ Moon을 돌보고 Moon으로부터 돌봄을 받으며 하루하루 연명합니다. 일하고 사랑하며, 투쟁하고 놀며 새로운 몸으로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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