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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혹시 페미, 뭐 그런 거야?”
2016년 여름,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후원 티셔츠를 입고 출근한 내게 40대 남자 팀장이 물었다. 더이상 사회초년생이 아니었던 나는 “그런데, 왜요?”라고 되받아쳤다. 같은 날, 같은 티셔츠를 입고 부당해고를 당한 여성노동자가 있다는 소식을 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2024년, 나는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에서 일하며 동료들과 함께 ‘페미니즘 사상검증’에 대응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전히 많은 여성노동자가 그때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말을 들으며 일하고, 부당해고와 계약종료 등 인사상의 불이익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현실을 다시 마주했다.
당시 토크쇼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넘어서는 우리의 이야기〉에 참여한 한 패널이 ‘집게손가락’을 빌미로 여성노동자를 배제하라는 남성 유저들의 생떼가 어떻게 “사상”씩이나 되냐고 말해, 참가자 모두 깔깔깔 웃었다. 확실히 ‘페미니즘 사상검증’이라는 말은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말일 순 있으나, 여성노동자를 배제하라는 억지주장을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판단 체계인 ‘사상’으로 간주하고 페미니즘과 등가관계에 놓는다는 점에서 몹시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이 현상을 “직장 내 성차별적 괴롭힘”의 관점에서 다시 접근해보고자 했다. 2025년에 진행한 총 네 차례의 집담회에 10명이 참석했다.
네 차례 집담회, 열 명의 직장생활 속 ‘성차별적 괴롭힘’ ‘남초 직군’에서 노골적인 성차별적 괴롭힘 양상 뚜렷
첫 번째 집담회는 소위 “남초 직군”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와 함께 했다. 이후 다른 직군, 다른 조건 속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와 집담회를 진행했지만, 남초 직군에서 일어나는 성차별적 괴롭힘 양상은 확연히 노골적이었다.
팀 회식에 부르지 않는 것에서부터 여자화장실, (여성 당직자를 위한) 여자샤워실 등의 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김여사’, ‘명품백’ 등 구시대적인 성차별 발언도 심심치 않게 경험하고 있었다.
“현장에는 화장실이 없었고, 대신 저는 그냥 품질[관리 업무]라서 사무실 왔다 갔다 하니까. 근데 매 층마다 여자화장실이 있는 게 아니었고 예를 들어서 매 층마다 남자화장실이 있으면 여자화장실은 몇 층 몇 층만 있고 약간 이런 식이었어요.” (화학 플랜트/현장, 두부)
화학 플랜트 분야에 종사하는 두부는 어느 날 “너 여기에 있는 게 전략이냐?”라는 질문을 들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묻자, 질문을 한 사람은 “(남자 직원들이 많으니) 결혼 잘하려고” 여기 있는 거 아니냐고 재차 물었다.
집담회 참여자들은 남초 직군에서 겪게 되는 1차원적이고 노골적인 성희롱과 성차별에 대해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제가 여대를 나왔는데 (사장이) 자기 와이프도 여대 나왔는데 내 와이프는 나한테 순결을 바친 거나 다름이 없다, 이런 얘기를 한다거나. 그런 얘기를 듣고 ××새끼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었고….”(판매유통/영업직, 동댕)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조퇴를 한 날이었어요. 왜 조퇴했냐고 물어보길래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집에 갔다. (..) 제가 좀 FM적인 성향(정해진 룰대로 하는 성향)이 있어가지고 조퇴를 하고 이런 게 저는 자존심이 상한 거예요. (..) 너무 심해서 조퇴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것이다. 약간 이렇게 말을 했는데 그 사람이 “그래요. 요새 남편을 괴롭히나.” 이러는 거예요.”(헬스트레이너, 리을)
남성 직원이 다수인 회사에서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성차별 언행과 배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반면, 여성노동자 수가 많은 편인 공무원·공공기관에서는 여성노동자의 전문성을 의심하거나(“잘 모르시겠지만~”) 육아휴직자를 차별하는 문화를 공유하는 등 교묘한 행태를 보였다.
이를 통해 “남초”는 비단 남성 구성원이 많은 집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중심적이고 성차별적인 조직문화를 의미한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성차별적 괴롭힘의 영향 ‘자괴감, 이직/퇴사, 우울증…’
“저는 인사팀에 있는데, ‘계약직, 여자, 갓 대학 졸업한 20대’ 친구들이 퇴사할 때 되면은 저에게 ‘사실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라고 그제야 말해요. ‘딸 같아서 어깨를 주물렀다’든지, 외모에 대해서 발언을 스스럼없이 하고. 제가 그래서 ‘퇴직하는 시점이긴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으면 좋겠다’고, ‘근데 선택은 본인이 하시라’고 얘기하면 다들 (신고)하지 않으세요. 이유는 다 협박 아닌 협박을 받은 거예요. ‘내가 이 업계에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데’. 근데 그 친구들은 자신이 회사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자기는 계약직이고, 이제 나가는 사람인데 성차별을 하는 사람들은 다 몇 년 차의 아저씨들이니까’ 그래서 회사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까, 그냥 회사를 떠나더라고요.”(금융업, 머그)
집담회 참여자들이 성차별적 괴롭힘에 대응한 방식은 다양했다.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여 성인지 교육이 도입되는 눈에 띄는 변화를 경험한 참여자, 연차가 쌓이면서 그때그때 행위자의 성차별 발언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참여자,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절차를 진행한 참여자…. 이렇게 대응할 수 있었던 참여자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노동조건, 성희롱·성차별 해결을 위한 제도가 도입되어있는 노동환경에서 일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답한 참여자들은 성차별적인 분위기가 너무나 만연하여 오히려 자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질까 두려워서, 이전에 다녔던 회사가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행위자에게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사내에 고충을 접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추후 이직하게 될 경우 레퍼런스 체크가 들어오면 불이익을 받을까 봐 등의 이유를 밝혔다. 성차별적 조직 문화를 유지하는 회사의 결정 속에서, 자신의 고충이 제대로 전달되어 해결될 수 있으리라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레퍼런스 체크는 입사 지원자가 과거에 다녔던 회사에 그에 대한 평판을 조회하는 절차를 말한다. 이는 업무능력 검증에 그치지 않고, 성격, 대인관계 등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피해자가 회사에 문제 제기를 고민할 때에 불이익을 우려하는 점 중 하나이다.
집담회 참여자들에게 성차별적 괴롭힘이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물었다. 15개의 영향 카드 속에서 많은 참여자가 “자괴감”, “이직/퇴사”, “우울증”, “신체질환” 등을 골랐다. 한 참여자는 “자괴감”에 대해 성차별적 괴롭힘 피해 당시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그리고 자신이 성차별적 괴롭힘의 대상(무시해도 되는 대상)이 되었다는 자괴감을 느꼈다고 답하기도 했다.
“좀 양가적인 감정이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동료나 상사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이 생기는 것과 별개로, 조직 내에서의 심각한 수준의 갑질이라든가 성차별적인 건 그냥 당연히 깔고 있고, 위계질서에 의한 왕따나 괴롭힘 같은 거를…. 물론 저도 처음에 입사했을 때는 거의 그런 수준을 당했는데, 이게 (연차가) 길어지니까 저는 빠지고 다른 사람이 그걸 당하잖아요. 저는 당했을 때 너무 괴로웠으니까, 오히려 '다음 차례가 (당)하는구나' 이렇게 (넘어가는 게) 안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이 구조를 계속 반복하게 하고있는 것 같다, 여기에 있는 것 자체가, 제가 그런 박해를 이겨내고 인정받는 사람이 됐다고 하면 그게 또 소스로 쓰여서 괴롭힘이 되는-‘쟤는 다 버텼는데, 쟤는 다 이겨내서 잘하잖아. 너도 열심히 하면 잘할 텐데’- 그렇게 되는 것 같고. 그리고 한편으로 너무 싫으면서도, 한편으로 약간 좀 으쓱? 이런 식의 느낌도 들고. 그런 거를 느끼는 거가 너무 괴로운 것 같아요. 내가 이 구조 안에서 아무리 나름 선량하게 해보려고 해도 ‘이 안에 있으면은 잘 쳐줘봤자 방관자다’ 이런 생각이 좀 들었던 것 같습니다.”(판매유통/영업직, 동댕)
“누구에게 마음을 주는 것이. 되게 뭐가 힘들다 뭐 이런 것들을 푸념하고. 그런 것들이 진짜 회사를 좀 계속 다니게 도와주는 끈이잖아요.”(금융업, 머그)
참여자 머그의 말처럼,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게 하는 것 중 하나는 믿을만한 동료 관계이다. 조직문화에 문제가 있더라도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함께 바꿔나갈 수 있는 동료가 있다면 상황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참여자 동댕은 연차가 쌓이고 직장 내 괴롭힘의 대상에서 벗어나면서 동료에게 다면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힘들게 버텨냈지만 결국 새로운 사람이 괴롭힘 대상이 되는 모습을 보며, 자기 자신을 “잘 쳐봤자 방관자”라고 비난하며 깊은 죄책감과 좌절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동료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은 곧 동료를 신뢰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어지는데, 한 참여자는 이제는 희망을 품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성차별적인 노동환경과 조직문화를 개선해나가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우선 직장 내 성차별적 괴롭힘의 원인부터 묻기로 했다.
직장 내 성차별적 괴롭힘의 원인으로 리을은 “남성성”을, 채현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꼽았다. 남성성을 확인받기 위해 “그들의 서열에 끼어야만 남성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이 “남성성”을 승인하는 권력은 외부에 약자를 만드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무리서열에 낄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 외부의 약자를 만들고 혐오하며 “그들만의 리그”는 우위에 위치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채현은 “커뮤니티 사이트”를 성차별적 괴롭힘이 재생산되는 원인으로 꼽는다. 약자를 조롱하고 혐오하며 배제하는 문화가 남초 커뮤니티를 통해 학습되고 재생산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었다.
시시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팀장직을 맡게 되었는데, 팀원들로부터 무시당하거나 심하게는 욕설을 듣기도 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 절차를 밟았지만, 회사는 괴롭힘 행위가 있었다고는 판단되나, 시시가 행위자의 상급자이기 때문에 관계 우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국 직장 내 괴롭힘 피해는 인정하지 않았다. 시시는 만약 성차별적 괴롭힘이 제도화되어 있었더라면 자신의 피해를 보다 잘 설명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 규율하는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요건에 대해 포괄적으로 서술되어 있음에도, 실제 고용노동부에서 배포하는 매뉴얼이나 현장에서는 성별에 기반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보수적으로 해석하고 있어 제도적 공백 상태나 다름없다.
인터뷰 참여자 모두 ‘직장 내 성차별적 괴롭힘’ 문제가 제도화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하(下) 편에서는 직장 내 성차별적 괴롭힘을 제도화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자.
※다음 기사는 지난 2025년 11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직장 내 성차별적 괴롭힘 사례 분석 및 제도적 방안을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토대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법률 전문가, 연구자, 고용노동부 관계자 등과 함께 제도적 방안을 논의하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필자 소개] 배찬민(은수).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에서 활동하다 새해부터 부설 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짧지 않은 시간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여러 현장에서 만난 페미니스트들과 시선집 『구두를 신고 불을 지폈다』, 『우리 힘세고 사나운 용기: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10개의 시선』에 공동 저자로 함께 했다. 그러다 있는 자리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이 외롭고 요원하게 느껴져 사서 일을 그만두고, 페미니스트 동료들이 있는 여성단체 활동가로 전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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