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백래시에 맞선 ‘성소수자 정치’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RUN/OUT 2026 정치축제〉 현장에서1월 12일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됐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최근 우원식 국회의장이 한국교회총연합과의 국회 만찬간담회에서 “일부 소수 의원들이 추진하는 사안으로,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은 “국회의장은 특정 이해집단의 불안을 관리하는 자리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권리를 지켜야 하는 자리입니다.”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보내며 우 국회의장을 비판했다.
국회의원이 개신교 집단 일부의 의견을 대변하거나 눈치 보는 일은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을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그 방법 중 하나로 직접 정치인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성소수자가 정치의 ‘메뉴’로만 다뤄지는” 현 상황을 벗어나 “민주주의를 다시 설계할 주체”로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다.
혐오와 차별을 동력으로 삼는 정치세력에게 성소수자 인권이 손쉬운 표적이자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전략적 도구가 되고 있는 지금, 성소수자 정치는 어떤 길을 찾고 있을까?
백래시, 우연이 아닌 치밀한 ‘정치적 전략’
세계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성소수자를 향한 공격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다. 독일의 니케 슬라빅 연방하원 의원은 “이는 국경을 넘어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치밀하게 설계된 ‘정치적 전략’”이라 지적했다. 극우 및 보수 세력은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고 그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
독일의 플로리안 지크만 바이에른주의회 의원 역시 보수/극우 세력의 백래시는 “트랜스젠더를 ‘공공의 적’으로 설정해 대중의 공포와 혐오를 동원하는 방식”이라 설명했다. 실제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데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베트남에선 조금 다른 방식의 백래시가 일어나고 있다. 르엉 더 후이 iSEE(Institute for Studies of Society, Economy and Environment)연구소 전 디렉터는 “베트남에서는 성소수자 운동을 서구의 가치 침투를 통한 체제전복 시도인 ‘색깔 혁명’(Color Revolution)으로 규정하며,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로 몰아넣고 있다.”고 설명했다.
10년 전만 해도 베트남은 성소수자 인권 분야에서 주목 받는 국가였다. 2014년 가족혼인법을 개정하여 동성혼 금지 조항을 삭제했다. 비록 동성혼이 법제화되지는 못했지만 금지 조항을 없앴다는 점에선 큰 진전이었다. 또 2015년엔 동남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트랜스젠더가 법적 성별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를 민법에 명시했다. 하지만, 이후 10년 동안 실질적인 시행령이나 세부 규정이 만들어지지 않아 당사자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르엉 더 후이 iSEE연구소 전 디렉터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사회분위기가 변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정부의 강력한 통제와 시민권 제한이 ‘안전’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대중이 정부의 규제와 통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느끼게 된 것이 백래시의 토대가 되었다고 본다.” 이런 상황 속에 “최근 5년 사이, 베트남 내 성소수자 운동은 정치적, 법적 억압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의 정부는 성소수자 운동을 “서구의 가치를 따르는 것, 즉 ‘색깔 혁명’이나 ‘문화적 침공’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르엉 더 후이 iSEE연구소 전 디렉터는 “2023년 9월 호치민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최대 규모의 프라이드 행사가 ‘행정적 장벽’을 이유로 취소되는 등 공적 공간에서의 성소수자 가시성이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의 에반 로우 ‘LGBTQ+ 빅토리 재단’ 대표는 “미국에서도 매년 수백 개의 반(Anti)-LGBTQ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며, “이는 부모의 권리나 종교적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성소수자의 가시성을 억누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추상적 가치관 설파보다는 ‘행정의 언어’와 ‘정치적 유머’로 대응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된 백래시에 성소수자 정치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일본의 경우 노골적인 폭력은 드물지만 “LGBT는 일시적인 유행”이라거나 “(트랜스젠더가) 여성과 아이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식의 은밀하고 일상적인 혐오가 사회전반에 녹아들어 있다. 호소다 토모야 사이타마현 이루마 시의회 의원은 “일본과 같은 보수적인 사회구조를 가진 국가에선 권리 주장보다 실무적인 접근이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며 ‘행정의 언어’를 활용한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에선 권리를 얘기하면 ‘너의 의무부터 다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에, 인권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이를 ‘행정상의 불이익’이나 ‘생활의 불편함 해결’이라는 실무적 언어로 치환했다. 또한 성소수자를 위한 무언가를 한다기 보다 ‘누구나 살기 좋은 공동체’를 위해서라는 보편적 프레임을 사용함으로써, 보수적인 관료들과 접점을 찾고 정책적 진전을 이끌어 냈다.”
교육 현장의 인식 개선 활동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기초적 이해를 강조하는 방식을 통해 교육 시스템 내부에 성소수자 이슈를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게 했다.” 호소다 토모야 시의원은 “추상적인 가치관의 일치를 강요하기보다는 ‘행정적으로 무엇이 가능하고 현실적인가’에 집중하여 제도 내부의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이 전략은 “의회와 행정 내부에서 정당을 초월한 비공식적인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바탕이 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지크만 의원은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극우세력을 ‘탐욕스러운 영주’에 비유하며 유머러스하게 반격”했다. 그 영상은 SNS에서 4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극우의 논리를 유머로 무력화하며 대중의 공감을 얻는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또한 지크만 의원은 대도시 중심의 ‘프라이드 퍼레이드’ 행사가 인구 2만의 농촌 지역에서 열릴 수 있도록 협조했다. 그 결과, 트렉터를 탄 레즈비언 농부가 퍼레이드를 이끄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는 성소수자가 특정 지역이나 계층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지역 공동체와의 연결을 만들어 낸 사례이기도 했다.
정치의 안으로 들어가서 바꾸자
더불어 강력한 변화를 만드는 건, 정치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미국 LGBTQ+ 빅토리 재단의 에반 로우 대표는 “성소수자 정치인을 발굴, 훈련, 지원하는 것이 백래시에 맞서는 핵심 전략”이라 강조했다.
재단은 매년 전세계 성소수자 선출직 공직자와 리더들이 모이는 글로벌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또, 정계 진출을 희망하거나 잠재력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 ‘후보자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로우 대표는 인재 발굴을 위해 “사회적 의식을 가진 활동가나 민간 부문 인재를 찾아 ‘공직 출마를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묻는 일 또한 활동”이라고 했다. 재단은 대중연설 등 선거운동 전반에 필요한 역량을 강화하며, 의제 설정 전략도 교육한다. 더불어 후보가 실제로 출마하면 선거운동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돕고, 필요한 자원을 연결한다.
“태미 볼드윈는 정치적 대표성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는 혼인평등법 통과를 위해 보수정당인 공화당 동료의원들과 수년간 인간적인 관계를 쌓아, 그들로부터 ‘당신은 내 동료이고, 나는 당신을 알기에 혼인평등을 지지한다’는 초당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컨퍼런스에 모인 연사들은 백래시가 글로벌하게 확산되고 있는 만큼, ‘우리’의 연대 또한 국경을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슬라빅 의원은 성소수자를 ‘탄광 속의 카나리아’(과거 광부들이 유독가스를 감지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데리고 들어갔던 것에서 유래)에 비유했다.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공격은 사회 전체에 닥쳐올 위험을 알리는 가장 빠르고 명확한 경고 신호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성소수자 권리를 공격하는 국가에서는 예외 없이 언론의 자유 억압, 집회의 자유 방해, 선거 조작 등 전반적인 민주주의의 후퇴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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