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해보니 “힘내”란 말 대신 “버텨”

[인터뷰] 청년 암 생존자 민서 씨가 일상을 살아가는 법

지아 | 기사입력 2026/02/26 [12:16]

암 투병해보니 “힘내”란 말 대신 “버텨”

[인터뷰] 청년 암 생존자 민서 씨가 일상을 살아가는 법

지아 | 입력 : 2026/02/26 [12:16]

배가 아픈 날들이 지속되던 스물다섯 살의 어느 날, 민서 씨는 집 근처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 검사를 하던 의사가 큰 병원에 가 보라고 권유했을 때만해도, 시험 기간이 끝나면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납을 하는 동안 진료실에서 굳이 나와서 “오늘 꼭 큰 병원에 가보라”고 재차 권유하던 의사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아마 한참 뒤에나 대학병원을 찾았을 것이다.

 

암 환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도 스트레스

 

암 진단을 받고 수술한 이후, 3주 간격으로 8번의 항암 치료를 받았다. 부작용은 정말 다양했다. 집 안에서 걸어 다닐 때도 모래밭을 맨발로 걷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차가운 것을 만지면 손이 아리도록 아파서 겨울철에는 쇠로 된 문고리를 만질 수 없었고, 냉장고에서 반찬 그릇을 꺼내는 것도 힘들었다. 

 

담당 교수님은 이런 부작용들에 대해 ‘낫는다’ 생각하지 말고, ‘무뎌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경이 파괴되어 생기는 증상이라서 노력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항암 중인 사람들이 흔히 겪는다는 부작용 외에도, 민서 씨는 눈이 빠질 것처럼 통증이 심했는데 그런 부작용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 집 근처의 강변 사진. 항암 치료 중 운동을 할 때 걸었던 곳이자, 치료가 끝난 요즘도 종종 산책하고 있는 곳이다 (민서 제공)


계획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살았던 민서 씨는 투병 와중에도 휴학 한 번 하지 않고 대학원을 졸업했다. ‘코로나 덕분’에 비대면 수업에 참여하고 과제도 제때 제출했다. 정말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면 주위에 암 환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지금도 암을 경험했다는 사실이 선입견으로 작용할까 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났을 때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에게 인사할 때는 ‘잘 지냈어? 어떻게 지냈어?’ 하고 묻잖아요. 하지만 제가 아픈 걸 아는 사람들은 ‘건강 어때?’라고 물어봐요. 뭘 안 먹는다고 해도 ‘쟤는 저걸 안 좋아하는구나’가 아니라 ‘아파서 못 먹는구나’ 생각하게 되고요. 그 사람들에겐 관심의 표현일 수 있지만,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제가 암 환자라는 사실이 다시금 자각되는 것 같더라고요.”

 

또, 처음에는 주변에서 ‘우리가 해줄게, 도와줄게’ 하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어떤 사람들은 ‘유별나게 군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건강 관리를 위해 탄산음료를 안 먹거나 음식을 가려 먹으려고 노력하면 처음엔 이해 받다가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 ‘너만 건강 신경 쓰냐’는 식의 말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매번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스트레스이고, 누군가에겐 자신의 행동이 유난으로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런 상황 자체를 피하고 싶었다.

 

투병 생활 중에 제일 듣기 싫었던 말

 

이미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에너지를 쏟아내며 투병 생활을 하던 민서 씨가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은 ‘힘내’라는 말이었다.

 

“사람들의 의도는 알아요. 사실 할 말이 없잖아요. 암 환자라는데 거기서 무슨 말을 하겠어요? 하지만 당시 제 입장에서는 힘이 안 나는데 어떻게 힘을 내며, 요새는 의학이 발달해서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말을 들을 때는 ‘본인이 같은 병에 걸렸어도 과연 현대의학을 믿으며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마음이 꼬이는 거죠. 아프니까 사람들의 말이 곧이곧대로 잘 안 들렸어요.”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민서 씨는 위로를 해야 하는 상황이면 “힘내라”, “잘 될 거다”라는 말 대신 “잘 버텨내라”고 이야기한다.

 

“희망적인 건 좋지만, 그건 근거가 없잖아요. 저는 버티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여덟 번이라는 횟수가 정해진, 끝이 있는 항암 치료를 했어요. 그래서 그런 마음이 더 있었을 수도 있지만, 여덟 번만 버티자, 버티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버텼어요.”

 

▲ 항암 치료 기간 중 오르곤 했던 집 근처 산 정상. 3주 간격으로 항암을 받았던 민서는 1~2주차에는 강변 등 평지를 걷고, 3주차에는 한 번씩 이 산을 올랐다. (민서 제공)


민서 씨는 아픈 동안 “꼬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그것은 꼬임이라기보다는 조심스러움에 가까웠다.

 

“요새는 ‘암 걸린다’는 말도 (저는) 안 써요. 무슨 말 하면 암 걸릴 것 같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친구들끼리 장난 식으로 ‘너 죽을래?’ 같은 말도 쓰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말 안 해요. 진짜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을 생각하면 그런 말은 잘 안 하게 돼요.”

 

퇴원 전 식단 안내를 해주듯, 정신 건강도 상담해주었으면…

 

민서 씨가 조심스러워진 건 일상의 대화 속에서뿐만이 아니었다. 암을 겪은 이후, 이전과 다른 불안을 안고 살아야 했다. 민서 씨는 자신이 겪었던 불안장애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요, 그냥 집에 누워 있으면 집이 무너질 것 같아요. 길가에 서 있으면 도로 위의 차가 저를 향해 달려올 것 같고, 가로등 옆에 서 있으면 가로등이 저한테 쓰러질 것 같고요. 언제나 무언가 제 건강을 위협할 것 같은, 또다시 아플 것 같은 상황에 대한 불안함이 있는 거예요.”

 

민서 씨의 말대로, 암 환자들은 육체의 건강만 상실한 것이 아니라, 질병 경험으로 인해서 일상과 삶의 방향 등 주변의 상황들이 바뀌는 상실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 상실감은 생존 이후의 정신 건강을 위협한다.

 

실제로 국내 여러 연구에서도 암 생존자가 일반인보다 정신 건강 문제에 더 취약하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청년’ 암 생존자의 정신 건강을 별도로 분석한 통계가 아직 제한적이다. 해외 연구에서는 청년/청소년 암 생존자의 상당수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우울 증상을 경험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동안 만나온 여러 청년 암 생존자들이 말해온 것처럼, 민서 씨 역시 “몸도 아픈데 정신도 아프구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정신 건강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퇴원하기 전에 영양사분이 오셔서 식단 설명을 해 주세요. 이런 건 좋고, 이런 건 조심해야 하고요. 그런 것처럼 병원에서 운영하는 상담실이 있으면 좋겠어요. 퇴원을 앞두거나, 항암 몇 개월 차쯤 되었을 때 연계되어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항암 치료 기간 중 유난히 우울했던 어느 날, 가족들이 기분 전환하자며 데려간 남해의 한 바닷가. (민서 제공)


암 환자 돌봄 서비스가 있다면, 당사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큰 도움될 것

 

아픈 동안 환자 본인뿐만 아니라 보호자가 짊어져야 하는 고충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곁에서 케어해 줄 사람이 없는 분들은 정말 힘들 것 같아요. 보호자들도 참 힘들거든요. 저희 엄마는 직장이 없어서 저를 돌볼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직장을 다니는 보호자들은 퇴근하고 와서 환자 식단까지 챙겨야 하잖아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단순히 병간호를 넘어 식사 준비 같은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어요. 무료가 아니더라도, 대가를 지불하고 양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면 암 환자와 보호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생존 이후의 삶도, 녹록하지 않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을 졸업한 민서 씨는 한동안 직업을 갖기보다 가족의 일을 도왔다. 항암 치료가 끝난 지 고작 1년 남짓이어서 체력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친구들이나 대학원 동기들은 계속 앞서 나가는데, 저만 멈춰 있는 것 같았어요. 몸이 힘들면 또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무리할 수도 없고요. 병이 낫는 게 첫 번째 목표인 건 맞지만, 낫는다고 끝은 아니잖아요. 다시 일도 하고, 남들처럼 살아야 하니까요. 아픈 사람들이 꿈꾸는 건 대단한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일상이거든요.”

 

민서 씨는 가정을 꾸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많다.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앞서, ‘과연 할 수 있을까’가 더 큰 질문이었다.

 

“제게 패널티 하나가 붙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숨기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설령 상대가 괜찮다고 해도, 그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됐고요. 저는 역지사지를 많이 하는 편이라, 만약 제 자녀가 누군가를 (결혼하고 싶다고) 데려왔는데 아픈 사람이라면 나는 과연 축복해 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사랑해서 결혼을 한다고 해도, 또 아프면 어떡하지, 체력적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들었고요.”

 

하루를 살기 위해 애썼던 기억으로 오늘을 살기

 

암 경험자라는 것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물었을 때, 민서 씨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늘 아쉬움만 남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암에 안 걸렸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요.”

 

그러면서도 암에 걸리고 나서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말하는 건 슬플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5년의 시간을 버려진 인생으로 남겨두기보다는, 이 경험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지, 어떻게 조금이라도 의미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따지면 암이 행복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불행이고, 사건이고, 사고니까 무언가를 잃은 건 분명해요. 그렇다면 무언가를 얻어야 그 아픔이 조금이라도 덜할 테니, 내가 이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가족들이 나를 이렇게 챙겨주다니’라고 생각하며 가족의 사랑을 다시 돌아볼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인식의 변화를 얻을 수도 있겠죠. 그런 것들을 의도적으로 찾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민서 씨의 경우, 가장 큰 변화는 하루를 바라보는 관점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예전에는 죽음이 늘 멀리 있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언제든 가까이 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일상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고 했다.

 

▲ 투병 기간 동안 꼭 해 보고 싶었던 일 중 하나는 간호해 준 어머니와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실제로 일본, 대만 등 가까운 나라로 여행을 다녀왔다. 사진은 대만 지룽 정빈 어항에서 찍은 풍경. (민서 제공)


“정말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려고 하고, 후회할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해요.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나 일상에 익숙해진 요즘은 자주 잊어버리기도 해요. 그래도 한때 하루를 살기 위해 애썼던 기억이 있어서, 의식적으로라도 다시 되새기려고 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 위해 ‘다시 암에 걸릴래?’ 하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죠. 과거로 돌아가 또 암에 걸리겠냐고 하면, 그건 하고 싶지 않아요. 다만 이미 겪은 일이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그 안에서라도 얻어갈 것들을 찾으려는 거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할지는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삶. 청년 암 생존자 민서 씨는 그렇게 평범한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겠다는 태도로, 오늘도 ‘암 이후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 소개] 지아. 개인의 몸과 건강이 사회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보건의료 불평등을 해소하고 건강형평성을 높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많은 연구자. 날카롭지만 다정한 글을 쓰고 싶다는 실현하기 어려운 꿈을 꾼다. 길동무 문학학교 르포교실을 수강했다.

 

※더 많은 청년 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인터뷰이가 되어주실 이삼십 대 청년 암 생존자 분들은 메일로 연락주세요. youngadultcancersurvivor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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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 2026/03/04 [16:26] 수정 | 삭제
  • 누군가는 겪게 된다면 그게 나일수도 있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일인입니다. 앞으로의 생에 축복이 있길 바래요.
  • 동질감 2026/02/27 [16:44] 수정 | 삭제
  • 제가 쓴글인지 알았어요.. 저는 만성신부전으로 신장이식받고 그후에도 몇번의 거부반응으로 혈장교환술등 치료를 해보고 있는데 친구들은 앞서가는데 난 멈춰있는거같고, 힘들면 몸어떻게 반응할까 걱정되서 뭘 시작을 하는게 무섭고,가졍꾸릴수있을까 상대방이 받아줘도 그 가족들을 날반길까 이런부분 제가 맨날 생각하는건데 너무 똑같아서 제가 쓴글인지 알았네요.. 서로 버텨봐요
  • 펑이 2026/02/27 [13:51] 수정 | 삭제
  • 신체 기능만 중요시하고 정신 건강을 등한시하는 거, 회복 이후에도 너무 괴로운데 죽지는 않을 것이니까 괜찮을 거라며 이해받지 못하는 거 참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민서씨의 이야기에 힘을 받았습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웃으며 고마워하며 살자는 생각을 해봅니다.
  • 그린 2026/02/26 [16:30] 수정 | 삭제
  • 저는 위로 라는 걸 잘 못하는 성격인데 지인이 내가 위로를 안 해서 좋았다고 나중에 그러더라고요... 묵묵히 겪었을 시간과 아픔 그저 마음으로 지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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