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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s Not a Sin - 사랑은 죄가 아니야
나는 천주교 재단 유치원, 초등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누구도 내게 ‘동성애는 죄’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한 낙인은 동성애가 에이즈와 결부되고 혐오와 뒤섞인 채, 사회의 공기 속에 이미 스며들어 있었다. 누가 가르쳐준 게 아니라 어느새 알게 됐다. 나의 사랑은 숨겨야 한다는 것을.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가족에게 알려질 수도 있었다. 두려움이 늘 앞장섰고, 사랑은 그림자처럼 그 뒤를 조용히 밟았다. 하지만 나는 끝내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계속 질문했다. ‘나의 사랑이 정말 죄일까.’
1998년, 미국에 갔을 때 처음으로 다른 세계를 봤다. 어학 연수에서 게이 선생님을 알게 됐고, 성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 퀴어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주변에 생겨났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퀴어프라이드 퍼레이드를 처음 봤다. 당시 나는 스스로를 동성애자라고 부르지도 않았었다. 어렸을 때부터 동성에게 끌렸지만, 애인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거리에는 행복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숨지 않고, 당당하게. 그 풍경을 보며 나는 또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이게 죄일까?’
한국에서는 달랐다. 교회는 동성애를 죄라고 가르친다고 들었다. 사제가 신도들의 죄를 듣고 용서를 선언하는 의식인 고해성사 때 그 말을 직접 들었다는 성소수자 신자들이 있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가 단골로 등장했다. 그 이야기가 실은 환대(사랑)의 부재와 집단적 폭력에 관한 것이라는 성서해석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대학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하지만 내게 더 중요한 건, 성직자들의 대답이었다. 그 다큐의 제목이 내 철학이 됐다. 동성애는 죄가 아니다.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세상이 우리를 죄인으로 만든다.
“가톨릭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잖아”
2013년은 내게 이정표와도 같은 해였다. 파트너와의 결혼과 어머니의 간병이 함께 시작된 해였다.
우리 커플은 캐나다에서 결혼했다. 배우자와 나, 둘 다 대한민국 국적이었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결혼을 캐나다에서 했다. 주례를 맡아주신 분은 예수회 소속 천주교 사제였다가 동성 파트너와 함께하기 위해 환속한 캐나다 사람이었다. 가톨릭 신자와 비신자 사이의 혼인을 교회가 축복하는 관면혼배 예식과 유사한 형식으로, 그분의 소성당 같은 작은 공간에서 예식을 올렸다. 결혼 반지는 묵주 반지였다. 우리 결혼의 증인은 게이 부부였다. 제도 밖이었지만, 가장 가톨릭적인 방식이었다.
여동생의 첫마디는 이랬다. “가톨릭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잖아.”
그 순간 나는 결혼한 사람에서, 판정을 기다리는 사람이 됐다. 교리가 사랑보다 먼저였다 — 내 사랑을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에게조차. 동생의 말은 오랜 상처가 됐고, 나는 사랑과 교리 사이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교회법상 혼인은 남녀의 결합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우리 관계는 처음부터 혼인으로 성립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동성 부부의 삶은 교회에서 중대한 죄를 짓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어, 미사 중 빵과 포도주를 받는 성체를 모시는 것이 제한되기도 한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도 미사 자리에 앉아 있다. 과거형이 아니다. 거의 매주, 그 자리에 있다.
예전엔 성당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온전히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다른 신자들과 나란히 앉아 있을 때. 우리의 관계를 이 자리에서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우리가 다니던 성당은 달랐다.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미사가 끝나면 본당 사제와 퀴어 신자들, 그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가 열렸다. 같은 가톨릭 신앙 안에서, 나의 존재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런 자리가 없었다.
가톨릭 여성퀴어 단체 알파오메가를 만들다
나는 한국에서 가톨릭 여성퀴어 단체 ‘알파오메가’를 만들어 20년 넘게 이끌어오고 있다.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우리만의 미사를 열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별도의 공간에서, 별도의 시간에 가능한 일이다. 동네 성당에서 다른 신자들과 함께 앉아 우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교리 시간에, 본당 청년 활동에서 동성애 혐오 발언을 듣고 상처받은 친구들이 알파오메가로 온다. 그나마 이 자리에서 위안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 말이 고맙고, 무겁다. 이런 자리가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네 성당에서 혼자 고립되어 상처받고 있는지를 말해주니까.
미사 중에 가끔 생각한다. 하느님은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실까. 죄인으로? 아니면 그냥, 당신이 창조한 존재 그 자체로?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내가 죽으면 성당에서 나를 기릴 것이라고. 그 상상이 위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묻는다. 내 배우자가, 내 친구들이 내 장례를 준비하면서 마주쳐야 할 어려움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일이, 제도와 싸우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우리는 존재하지만, 제도 안에서 우리는 온전히 존재하지 못한다.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며
2023년 12월, 교황이 승인한 신앙교리부 선언문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은 동성 커플을 혼인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비전례적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축복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성 프란치스코 축일 무렵 반려동물 축복식이 열리는 본당에서도, 동성 커플에게 허락된 것은 미사 밖에서, 개별적으로, 조용히. 조건이 많다. 존재에 조건이 붙는다.
2024년,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사제에게 커플 축복 기도를 받았다. 언론에는 축복해 주신 신부님의 이름과 소속 수도회가 실렸다. 신부님의 동의와 앨라이(지지자) 단체 운영위원들과의 합의하에 결정한 일이었다. 배우자의 친구가 그 기사를 보고 수도회에 후원을 시작했다. 보수 신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는 걸, 수도회 사무실을 통해 전해 들었다. 같은 기사를 보고, 누군가는 후원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후원을 끊겠다고 했다.
내가 잘못된 존재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일들을 겪으며, 한동안 죄인이 된 기분으로 폐인처럼 지낸 적도 있다. 그러나 침묵하라는 말에 눌려 진짜 숨 죽이고 있으면, 교회와 성소수자 사이의 다리가 양방향으로 이어지기는 더욱 더 어렵다. 다행히 나를 믿어주는 배우자,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성소수자 신자들 덕분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힘차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 종교를 넘어서는 퀴어 중심의 연대의 장으로 다시 나가려 한다.
우리는 더 이상 흩어진 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가톨릭 여성퀴어 알파오메가, 가톨릭퀴어예술회, 가톨릭퀴어연구회가 함께 만든 ‘가톨릭 퀴어 연합’이 그 자리다.
올해 퀴어문화축제에, 그리고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지구촌 가톨릭 청년들의 대축제 ‘세계청년대회’에도 우리는 거기 있을 것이다. 전 세계 가톨릭 성소수자 네트워크 GNRC(Global Network of Rainbow Catholics)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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