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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제 곧 지방선거라 후보자들과 정당들을 살펴보게 되는데요. 탈시설장애인당이라는 이름이 보이더라고요? 어떤 곳인지 궁금합니다.
장혜영: 한국의 민주주의는 대의제에 기초한 정당 민주주의입니다. 헌법 제8조는 정당 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흔히 ‘양당’이라고 부르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제가 몸담은 정의당과 같은 다양한 정당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최근 몇 번의 선거에 낯선 당의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하여 ‘탈시설장애인당’입니다. 과연 탈시설장애인당이 어떤 당인지, 탈시설장애인당의 존재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짚어보려 합니다.
탈시설장애인당이란?
탈시설장애인당은 2021년 1월 13일,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만든 ‘가짜정당’이자 ‘위성정당’, 그리고 ‘투쟁정당’입니다. 이는 제가 만든 수식어가 아니라 당시 전장연의 보도자료 표현 그대로입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보궐선거의 본선거 시작 전에 산화할 ‘가짜정당’입니다. 2021년 보궐선거에서 장애인의 의제를 알려내고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위성정당’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힘으로 만드는, 장애인차별 철폐에 공감한다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탈시설의 전선을 구축하고 장애해방을 앞당기는 ‘투쟁정당’을 목표합니다.”
다스릴 정(政) 무리 당(黨)자를 쓰는 정당(政黨)이 아니라, 바를 정(正) 마땅할 당(當)자를 쓰는 ‘정당(正當)’을 표방하는 탈시설장애인당은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서 언제나 한쪽으로 밀려나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되거나 아예 ‘문제’ 취급을 받아온 장애인의 존재를 무대의 중심으로 끌어오는 야심 찬 프로젝트입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2021년 4.7 재보궐 선거에서 장애인 이동권과 자립생활을 비롯한 11개의 장애인 권리 의제를 상징하는 11명의 서울시장 후보를 발표하고 약 3개월간 활발한 유세 활동을 펼친 뒤, 본선거운동 기간을 앞두고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그 과정에 웃지 못할 일도 있었습니다.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정당법상 등록된 정당이 아닌데 ‘당’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공문을 발송한 것입니다. 창당 첫날부터 이 당이 ‘가짜정당’임을 만천하에 선포했음에도, 선관위 혼자 ‘아무나 ‘당’을 쓰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놓은 셈입니다.
탈시설장애인당의 대응은 어땠을까요? ‘그럼 성당도 당인가? 식당은 어떤가?’ ‘탈시설장애인숭구리당당은 괜찮나?’ ‘거대양당의 위성정당은 버젓이 활동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소수자가 모여 정치에 참여하는 정당만 불법이라고 압박하는 서울시선관위를 규탄한다!’ 선관위의 황당한 공문은 힘 있는 기성정당의 반칙에는 아무 말도 못하지만, 바로 그 기성정당들이 외면한 소수자의 새로운 정치참여 활동은 법을 들먹이며 억압하는 선관위의 모순을 스스로 폭로하는 해프닝이었습니다.
이후에도 탈시설장애인당은 2022년 대통령선거 및 지방선거, 2024년 국회의원 선거, 2025년 대통령선거에서도 후보를 세우고 정책을 발표하고 유세활동을 하며 장애인의 정당한 권리를 대변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12월 4일, 12.3 내란 극복 1주년을 맞이한 다음날에 2026년 6.3 지방선거 투쟁을 선포했습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는데, 왜 누군가에게는 축제가 아닌 투쟁일까요?)
‘조상지 서울시의원 지역구 출마’라는 정치적 사건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눈에 띄는 탈시설장애인당의 활동은 단연 중증 뇌병변 장애 여성이자 탈시설 당사자인 조상지 활동가의 서울시의원 지역구 출마입니다.
조상지 후보는 생후 8개월 무렵 고열로 뇌병변 장애를 얻었습니다. 아버지는 15살 소녀 조상지를 가족들 몰래 시설에 입소시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같은 아이들은 너희 같은 아이들끼리 살아야 한다.” 그렇게 15년을 열악한 시설에서 버티다, 서른이 되던 해에 어머니의 도움으로 마침내 탈시설을 했습니다. 2008년의 일입니다. 이후 조 후보는 노들장애인야학에 다니며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투쟁에 합류해 열성적으로 활동해왔습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고, 신문사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정치를 꿈꿔온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먼저 꿈꿨던 것은 살아남는 일이었고, 시설 밖에서 내 삶을 꾸려가는 일이었고, 동료들과 함께 권리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투쟁의 현장에서 정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활동지원 시간 삭감, 장애인노동자 해고, 탈시설지원조례 폐지 같은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정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우리의 삶을 직접 흔드는 것이라는 걸 똑똑히 보게 됐습니다.” 조 후보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출마의 변입니다.
뇌병변 장애여성, 탈시설 당사자인 후보의 ‘어린이날·어버이날’ 메시지
언어장애가 심해 육성 대신 AAC(보완대체의사소통)를 통해 언어소통을 하는 조상지 후보의 언어는 거침이 없습니다.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을 맞이해 조 후보는 두 개의 논평을 냈습니다. 하나는 어린이날 논평, 다른 하나는 어버이날 논평입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더 멀리 나간다는데, 저는 자라면서 더 집 안에 머물렀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의 등에서 내려와 자기 발로 걷는다는데, 저는 엄마의 등에서 내려온 뒤 갈 수 있는 곳을 잃었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세상과 가까워진다는데, 저는 자라면서 세상에서 멀어졌습니다. (중략) 어린이날은 아이들이 자라는 일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장애아동은 어디에서 자랍니까. 장애아동은 누구와 자랍니까. 장애아동은 어떤 길을 지나, 어떤 친구를 만나, 어떤 동네를 경험하며 자랍니까. 장애아동에게도 부모의 품과 가족의 등을 넘어, 자기 삶의 세계로 나아갈 권리가 보장되고 있습니까.〉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진보적 장애운동 현장에서 활동가로 말하고,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당 대변인으로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중략) 그런 어머니도 너무 힘들 때마다 제게 말했습니다. “상지야, 같이 죽자.” 이것은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언니는 어릴 때 어머니가 농약병을 앞에 두고 같이 죽자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언니는 연탄불을 피워놓고 같이 죽자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오빠는 바닷물에 빠져 같이 죽자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장애아동이 태어났을 때, 부모가 제일 먼저 배워야 하는 말이 “같이 죽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장애아의 부모가 평생 들어야 하는 말이 “당신이 책임져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중증 장애인의 삶이 부모의 등, 부모의 허리, 부모의 눈물, 부모의 포기 위에 겨우 세워져서는 안 됩니다. 저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대의 장애아동들은 부모의 희생만으로 살아남는 삶을 살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투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합니다. 그래서 저는 탈시설장애인당當으로,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아가는 서울을 만들겠다고 말합니다.〉
저는 다른 정당에 소속된 사람이지만, 탈시설 당사자의 가족으로서 제게 이번 지방선거 최고의 메시지는 조상지 후보의 이 논평입니다. 계단을 내려와 집 앞 골목 끝의 슈퍼마켓에 가는 것이 어린이날 소원이었던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 가족의 등에 업히지 않아도 자기 삶의 세계로 나아갈 권리가 모든 어린이들에게 보장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다음 세대의 장애아동들은 부모의 희생이 아닌 사회의 연대 속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치에 나섰습니다.
정치란, 선거란 그저 또 한 명의 당선자와 다수의 낙선자가 나오는 경마와 같은 게임이 아니라, 나와 공동체의 관계를 규명하고 우리 모두를 위해 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이 뜨거운 논평들은 일깨워줍니다. 자신의 삶에서 길어 올린, 지금껏 기성 정치가 제대로 대변하지 않았던 삶과 권리에 대해 조 후보는 온몸으로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탈시설장애인당과 조상지 후보의 활동을 보며 느끼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 사회도 마침내 이런 후보를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중증장애 당사자가 선거 시기에 자신의 경험을 제도 정치의 공간에서 이야기하며, 그것이 이 사회의 공적 의제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시민들에게 지지를 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한 발 전진한 것이라고 평가할 만한 사건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처럼 그동안 대의정치권력을 쥐고 흔들며 장애시민들의 삶을 외면해온 기존 정치세력들을 단호히 비판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의 당사자로서 대안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직접 대안이 되겠다는 선언은, 장애인을 정치와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객체와 대상으로 간주해온 기존의 패러다임을 시원하게 뒤집어버리는 쾌거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지금의 상황은 동등한 시민으로서 장애인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 특히 그 중에서도 장애인의 ‘탈시설’이라는 의제가 기성 정치권에서 얼마나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장애인 권리를 외치는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정치적 갈라치기와 공격의 도구로 활용했던 국민의힘 이준석-윤석열 콤비가 승리한 2022년 대선 이후, 전장연이 요구하는 장애인 권리 예산과 관련 정책은 진영을 막론하고 날 선 비난과 공격을 받았습니다. 시위의 내용과 취지는 주류 미디어를 통해 왜곡되기 일쑤였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보복이라도 하듯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 일자리 예산을 전액 삭감해 400여명의 중증장애인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했습니다. 전장연 시위와 탈시설 정책이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여론의 지탄을 받자, 몇몇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정치인들은 아예 이 의제에 관해 말을 꺼내는 것을 피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려면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하는 정치로는 더이상 충분치 않다는 것을, 탈시설장애인당의 당원들과 후보들은 절절히 느꼈을 것입니다.
끝으로 제가 절감하는 것은 양당에게는 한없이 낮고, 나머지 정당들에게는 한없이 높은 한국 정당정치의 벽입니다. 조상지 후보는 탈시설장애인당의 당원이지만 법적으로는 무소속 후보입니다. 탈시설장애인당이 정당법상 정당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법외정당이기 때문입니다. 현행 정당법은 5개 이상의 시ㆍ도당을 가져야 하고, 각각의 시ㆍ도당은 해당 지역에 1천명 이상의 법정 당원을 가져야 합니다.
정당이 당원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이 많은 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 전국에서 휠체어를 탄 채 이용할 수 있는 시외고속버스는 단 한 대도 없습니다. 2024년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국의 편의점 5만 7천여개중 휠체어 접근이 가능하게 편의시설을 설치한 곳은 약 2천2백곳으로, 4%도 되지 않았습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된 정당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정치활동의 제약 요소가 도처에 깔려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평등한 환경에서 1천명 이상의 당원으로 구성된 5개 시도당을 구성해야 한다는 정당법상 요건은 ‘정당 설립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조항과 대조적으로, 사실상의 봉쇄조항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 탈시설장애인당當 서울시당은 정당법의 이 조항들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선거의 의미를 묻다
“탈시설장애인당이 투쟁하는 만큼 한국 사회가 변화합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공식 웹사이트(drparty.or.kr)의 소개란에서 발견한 문구입니다. 선거는 누가 1등인지를 가려내는 게임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 안에 소속된 사람들이 서로의 삶에 대하여 생각하고, 그 연결을 느끼고, 모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숙고하는 총체적이고 변화무쌍한 경험이자 과정입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보면 탈시설장애인당이 투쟁하는 만큼 한국 사회가 변화한다는 말에 저는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필자 소개] 장혜영. 21대 국회 정의당 국회의원.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감독이자 동명의 책을 썼다. 현재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지역위원장이자 비영리단체 ‘망원정x’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장혜영에게 정치를 묻다] 여러분이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을 받습니다! https://forms.gle/ChadDMccSzHkwR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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