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커먼즈 생태계, 초록상상의 ‘메티스’ 연대기[논문 밖 인터뷰] 중랑구 여성환경단체 18년사를 연구한 이지아[연구소개] 이지아는 석사학위논문으로 「지역여성들의 실천적 지식으로 만드는 커먼즈 생태계 – 중랑구 초록상상의 활동 사례 연구」를 썼다. 동북여성환경연대 초록상상의 18년 활동사를 정리한 작업으로, 지역여성운동의 의미를 재조명하며 사적 영역에 머물던 여성들의 일상 경험과 실천이 어떻게 공적 실천으로 확장되며 ‘호혜적 돌봄 커먼즈 생태계’를 구축해 왔는지 분석하였다.
“초록상상은 2007년 설립되었고, 중랑구 지역 여성들이 함께 건강하고 생태적이며 성평등한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풀뿌리단체입니다. 도서관에 갔다가 초록상상의 ‘생태 안내자 양성과정’ 홍보 포스터를 보고 초록상상을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생태 안내자라는 말이 낯설기도 했지만 신선했어요. 우리 지역을 생태라는 관점으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인데, 이런 시선의 강좌가 있다는 게 신기했고, 강좌에 누가 올까 궁금했어요. 여성만 모집한 것도 아니었는데, 참여자 모두 여성이었어요. 여성들이 공동체를 위해 뭔가 해보겠다고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발휘하는 장이 열린 것 같았어요.
내가 사는 공간 혹은 내가 항상 오고 갔던 공간을 새롭게 둘러보고, 거기에 있는 생태계 구성원들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봉화산과 각 아파트 화단에 있는 나무들도 생태계의 한 부분이죠. 텃밭의 작물도 단순히 우리가 먹을 식재료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흙부터 시작해서 흙을 뒤집을 때 나오는 곤충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농사를 도와주는 생태계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었어요. 텃밭에서 밥상까지, 먹거리가 어디서 어떻게 어떤 노동을 거쳐서 오는지 연결되는 감각, 생태적 감각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초록상상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2007년 초록상상 창립 직후부터 생태팀, 성평등팀, 돌봄팀의 활동가로 참여하였고, 2021년까지 팀장과 사무국 활동가, 사무국장을 맡아 단체의 핵심 의제와 사업을 직접 기획·수행하였습니다. 현재는 ‘창립 20주년 단체사 기록 TF팀’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초록상상의 활동 사례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나요?
“초록상상의 활동은 2007년부터 지속되고 있지만, 단체의 역사는 체계적으로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1~4명의 비상근 사무국 인력과 240여 명의 회원 회비로 운영하다 보니 현실적 제약이 있었어요. 초록상상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너무 진심이고 최선을 다해서, 이 활동의 중심에 우리가 있다는 걸 의심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면 활동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활동의 내용, 그 의미와 가치가 없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디에 남아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단체로서도 그렇고. 새로운 활동이 이어지다 보니 지난 활동에 대한 기록을 자꾸 미루게 되더라고요.
초록상상의 활동은 지역을 변화시켜 왔고 그 중심에 여성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역사를 어떤 언어로 기록하여 전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년 2027년이 초록상상 활동 20주년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기록해 두지 않으면 시간이 더 지난 뒤에는 기록이 남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문제의식과 절박함으로 연구를 시작했어요.”
-‘기록의 정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의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연구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습니다.
“여성단체의 자기 역사 기록의 의미를 분석한 임경진(2018)에 의하면, 이러한 기록은 남성 중심적·가부장적 역사에서 소외된 여성의 경험과 주체성을 복원하는 페미니즘적 실천이자 ‘기록의 정치’라고 말해요.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할 기회를 얻고 ‘기록의 정치’를 배우며, 초록상상의 역사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역운동의 기록 방식을 살펴보면, 사업보고서나 성과공유회 등이 있는데요. 보통 수치로 평가를 하는데,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여성들의 활동과 경험도 있잖아요. 또, 누구를 중심으로 기록하는지도 중요해요. 처음에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분이 이후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주체가 되기도 하죠. 이렇게 지역을 변화시켜 온 주체들을 호명하는 작업이 ‘기록의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행정의 기준이 아니라, 우리의 의도와 자원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보는 게 필요하죠. 지역 활동의 기록은 너무 열악한 편이라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기록의 정치’는 지역에 훨씬 더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역 민주주의 운동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지난 18년간 초록상상이 해 온 활동 중에서 몇 가지만 소개를 부탁합니다.
“18년간 진짜 많은 활동이 있었더라고요. 하나하나 의미가 커서 핵심적인 것을 고르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에요. 제가 기억하고 기록한 것 중심으로 몇 가지만 이야기해볼게요.
자연 속에서 한껏 즐거운 경험을 한 어린이들이 지역과 환경에 애정을 갖고 돌보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초지탐(초록지구탐험대의 약칭) 여름캠프를 할 때, 초록상상의 거의 모든 활동가들이 따라가서 건강한 음식을 끼니마다 직접 해 먹이면서 어린이들이 안전하고 생태적으로 놀고, 주도적이고 협력적으로 활동을 꾸려나가도록 도왔어요.
초록상상이 최근 힘을 쏟고 있는 일 중 하나는 ‘돌봄’이에요. 지역과 시대의 필요와 단체의 활동이 자연스럽게 닿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역의 많은 공공과 민간의 자원들이 이미 돌봄을 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돌봄 요구를 주민 스스로 찾고, 돌봄을 받기도 주기도 하는 ‘공동체 돌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의 서로이음 사업으로, 중랑건강공동체와 함께 ‘중화2동 홀몸어르신 구술생애사’ 작업을 했어요. 건강리더들이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이들의 삶의 변화와 어려움과 일상의 세세한 돌봄 필요를 듣고 글로 정리해서 책 『중화동에 살고 있습니다』(중랑구술생애사기록팀, 2022)를 출간했습니다. 사적 돌봄과 시장화된 돌봄을 넘어선 지역공동체 돌봄을 만드는 실천을 통한 ‘지역 지식’이라는 의미를 가지죠. 이렇게 체화된 지식은 상호의존적이며 공존 가능한 커먼즈 생태계를 만드는 필수 돌봄 자원이 됩니다.
‘달수다’ 캠페인을 통해 가출 청소년들과 만나며, 초록상상의 성평등 활동은 지역사회에서 이들에 대한 낙인과 차별적 인식을 바꾸는 방향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나아가 청소년들의 권리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실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논문은 초록상상 운동사를 ‘지역 여성들의 실천적 지식(메티스)을 생산하는 과정’으로 분석하고 있는데요.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는 메티스에 대하 설명해주세요.
“여성학 수업에서 ‘메티스’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고, 지역여성운동과 연결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메티스’는 책이나 공식 교육을 통해 쉽게 전수될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반복으로 습득된 실천적·경험적 지식을 뜻합니다. 초록상상이 18년 동안 펼쳐온 활동과 지역에서 버티고 싸워온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메티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했죠.
고정된 지식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계속 수정되고, 바뀐 부분들이 축적되며 새로운 부분이 만들어지고 공유되며 배타적이지 않은 것이 ‘메티스’의 특징입니다. 제임스 스콧(약자의 저항을 분석한 미국의 인류학/정치학자)의 ‘메티스(Mētis)’ 개념을 반다나 시바(인도의 생태사상가이자 반세계화 운동가)의 에코페미니즘과 황희숙(생태 공동체를 연구한 철학자)의 여성주의 인식론으로 재해석하여, 지역 여성들이 축적한 실천적 지혜를 ‘여성주의적 메티스’로 재개념화했습니다.”
〈초록상상의 여성들이 스스로를 ‘풀뿌리 활동가’로 정체화하며 메티스를 축적하는 과정은 일상의 구체적인 필요와 결핍을 해결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초기에는 육아, 먹거리, 안전 등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사적인 영역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모임을 조직하고 학습하고 이웃을 만나는 과정에서 사회와 지역 환경의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습득되는 지식은 외부로부터 얻은 정형화된 이론이 아니라, 지역사회라는 구체적 현장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부딪힘을 통해 얻어지는 ‘체화된 지식’이다. 이들은 현장의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실패를 통해 대안을 수정하며, 동료들과의 대화와 성찰을 통해 개별적인 경험을 공동의 전략으로 발전시킨다.〉 -논문 「지역여성들의 실천적 지식으로 만드는 커먼즈 생태계 – 중랑구 초록상상의 활동 사례 연구」 (성공회대학교 시민평화대학원 실천여성학전공 석사, 2026) 중
“첫 번째는 초록상상 생태팀 활동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산에 가서 곤충 또는 새, 바닥에 있는 풀을 보며 이를 지식화하는 과정이 독특했어요. 소개 글이나 책을 쓰는 게 아니었어요. 우선 활동가들이 곤충, 새, 풀 등 생태계 구성원들에 대한 인식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감수성을 높인 다음, ‘어린이들 또는 성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생태적 관점으로 다시 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실행했죠. 그 과정이 초록상상이 축적한 경험적 지식 ‘메티스’라고 말할 수 있어요. 지역을 생태 관점으로 바라보며 재해석하는 지식을 만들고 공유한다는 점이 특별해요. ‘메티스’는 지금도 꾸준히 쌓여가는 중입니다.
두 번째는 구의회에서 예산 삭감으로 초록상상이 위탁 운영하고 있는 중랑구성평등활동센터가 없어질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지켜낸 경험입니다. 성평등이 얼마나 확산되었는지 양적 평가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인데요. ‘성평등이 왜 필요한가? 중랑구성평등활동센터가 지역에 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어요. 여성 의제로 활동하는 분들뿐만 아니라, 지역 내 다른 영역의 활동가들도 협력해주셨고요. 이런 과정을 통해 중랑구성평등활동센터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지켜내야 할 지역 자산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죠.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고, 지역의 이런 자원을 지켜내는 힘이 바로 실천적·경험적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다른 공공 자원이 만들어질 때도 주민들이 달려가서 협력할 것이고요.”
-실천적 지식(메티스)이 순환하고 연결되며 ‘커먼즈적 세계’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의의가 연구에서 중요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초록상상 활동을 ‘커먼즈 세계’라는 관점에서 바라본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식이 만들어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활용되어 세계를 재구성하는가에 의의가 있습니다. 요즘은 지식을 누가 소유했는지, 그리고 그 가격이 얼마인지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잖아요. 초록상상의 활동을 바탕으로 형성된 지식이 있다면, 이것은 지역에서 누구든지 쓸 수 있다는 게 우리의 원칙입니다.
지역에서 텃밭을 해보겠다는 분들이 있어서 초록상상에서 텃밭 강사 양성과정을 열기도 했어요. 공동의 자산이며, 지역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자원이기에 커먼즈(Commons: 공유지, 공유자원, 공유활동) 개념과 연결된다고 보았어요. 개별 존재들이 분리되지 않고 타자와 상호작용을 통해 세계를 함께 구성한다는 것이 ‘커먼즈적 세계’인데요. 초록상상은 이러한 세계를 만들고 싶어하고, 만들어왔다고 평가해도 될 것 같아요.”
[필자 소개] 조영주. 내 삶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풀어보고자 성공회대학교 시민평화대학원 실천여성학과에서 공부했다. 6년째 청소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청년 여성 자영업자이자, 청년 여성들이 분투하고 있는 노동현장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여성노동 연구자다. 논문 「공간을 다루는 청년 여성 자영업자들의 몸 노동 경험: 집수리·도배·청소 업종을 중심으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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