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내 폭력, 이주민의 곁에서 본 현실

이주민센터친구의 눈으로 본 ‘가정폭력’

이진혜 | 기사입력 2026/06/24 [09:47]

가정 내 폭력, 이주민의 곁에서 본 현실

이주민센터친구의 눈으로 본 ‘가정폭력’

이진혜 | 입력 : 2026/06/24 [09:47]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 “경찰이 아기들을 데려가려고 해요”

 

갓난아기를 재우고 막 ‘육퇴(육아 퇴근)’의 해방감을 누리려던 참이었다. 휴대폰을 집어든 순간, 화면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떴다. 육아휴직 중이라 아는 사람 외에는 연락할 일이 없었음에도, 이상하게 그 전화는 꼭 받아야만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도와주세요! 경찰이 아기들을 데려가려고 해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낯설었지만 절박했다. 몇 년 전 나와 가정폭력 상담을 하며 내 번호를 저장해 두었다고 했다. 한국인 남편과 살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막내는 아직 젖먹이라고 했다. 요점은 한밤중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아이들을 강제로 분리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즉시 분리’는 대개 이런 식으로 불시에 찾아온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학대 의심 정황을 발견하면 아동을 즉시 안전한 곳으로 분리 조치하는 제도다. 하지만 때로는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던 가정에 공권력이 갑자기 들이닥쳐, 영문도 모른 채 울부짖는 아이들을 강제로 떼어놓는 ‘지옥도’가 펼쳐지기도 한다.

 

“누가 신고했나요?”

“남편이 했어요. 같이 집에 있다가 갑자기 혼자 화를 내며 나가버렸어요.”

“남편이 왜 신고했을까요?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니요, 없었어요…. 전에도 자꾸 이랬어요.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당황한 여성의 말을 추려보니 상황이 그려졌다. 남편은 상습적으로 아내를 협박해 왔다. 아내가 아이를 학대 사실이 없음에도 아동학대로 허위 신고를 하거나, 이혼을 요구하거나, 집에서 나가라고 강요하는 식이었다. 아내가 버티면 본인이 집을 나가 며칠씩 연락을 끊었다. 몇 년 전 그녀가 센터를 찾았던 이유도 가정폭력으로 이혼이 가능한지, 이혼 후 혼자 아이들을 키울 수 있을지 막막해서였다.

 

“경찰관 분 좀 바꿔주세요.”

나는 여성의 상황을 최대한 조리 있게 대변하는 한편, 벌써 한 시간째 실랑이를 벌이느라 잔뜩 짜증이 난 경찰을 달래며 설득해야 했다. 머릿속으로는 자꾸 집 안 상태가 걱정되었다. 과거의 쓰라린 사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거 ‘아이가 보호자 없이 위험한 차도를 걸어 등교한다’는 신고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관리를 받던 한부모 가정이 있었다. 특별한 상처나 학대 흔적이 없었음에도, 결정적으로 집이 지저분하고 위생이 염려된다는 이유로 ‘방임’ 판정을 받아 엄마는 아이들과 분리되었다. 그 아이들은 결국 1년이 넘도록 시설에서 생활해야 했다.

 

경찰은 현행법상 신고자의 말을 먼저 신뢰해야 한다. 학대 정황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정서적 학대가 존재할 수 있고, 초기 대처가 미흡하면 아동학대 사망 사건 같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의 의심 행위자로 몰린 이는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이주여성이다. 심야 시간이라 통역인의 동행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나는 현장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일단 여성의 편에 서기로 했다. 물리적 학대 흔적이 없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아동이 스스로 엄마와 분리를 원치 않는다면, 갑작스러운 ‘즉시 분리’는 아이들에게 되레 거대한 트라우마를 남기기 때문이다.

 

다행히 여성은 자신이 정신적으로 불안해 보이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중심을 잡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물리적으로 저항하는 대신, 한국어가 서툴렀지만 아이들을 잘 보호하고 있으며 학대는 결코 없었다고 침착하게 되풀이했다. 이것은 자신을 쫓아내기 위한 남편의 거짓 신고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 20여 분이 흐른 뒤, 걱정스러운 마음에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으세요? 경찰들은 돌아갔나요?”

곧바로 답장이 왔다.

“아이들은 남아 있다. 경찰들은 돌아갔다.”

 

가까스로 한숨은 돌렸지만 마음은 납덩이를 얹은 듯 무거웠다. 앞으로 이 집에서 그녀가 아이들과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남편과의 뿌리 깊은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혼 과정은 또 얼마나 길고 괴로울지, 이혼하더라도 당장 살 집을 구하기는 얼마나 힘들지, 양육비는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꼬리를 무는 걱정들이 밀려왔다. 어쩌면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동질감에 그녀에게 감정이 이입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의 달콤한 ‘육퇴’는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휴대폰 화면만 만지작거리다 그렇게 끝이 났다.

 

이주민 가정에서의 폭력과 공권력의 개입-

범죄자 처벌만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고차방정식

 

프리즘(Prism)이라는 도구가 있다. 빛이 이 투명한 다면체를 통과할 때, 파장에 따라 굴절되는 정도가 달라지면서 무색투명했던 빛은 무지개색 스펙트럼으로 선명하게 갈라진다. 우리는 프리즘 덕분에 햇빛을 분류하고 각 파장에 적색, 청색 등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세상의 복잡한 사건들을 이처럼 명확하게 정의해 주는 프리즘 같은 도구가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하지만 아직 사회적 평가를 거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은 햇빛처럼 뒤죽박죽 섞여 있으며, 겉보기엔 그저 무색투명하게 존재할 뿐이다. 이를 프리즘에 투과해 보면 누군가는 빨갛게, 누군가는 파랗게 살고 있는 것처럼 나뉜다.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완전히 선명한 빨강이나 파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펙트럼’, 즉 연속선 상의 어딘가에 위태롭게 자리 잡은 개개인의 인격과 관계망은 한 마디로 규정하기에 너무나 애매하고 복잡하다.

 

▲ 2021년 이주민센터친구에서 진행한 ‘폭력피해 이주여성, 학대피해 이주아동 법률지원 사례연구’ 발표회 자료집 목차. 이주민센터친구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다운로드 가능하다.

 

5년 전, 이주민센터 친구에서 ‘폭력피해 이주여성·학대피해 이주아동 법률지원사업’을 진행하였다. 바로 이러한 복잡한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또 다른 사건의 해결 초석을 다지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주여성은 배우자의 국적을 불문하고 가정폭력 위험에 노출되는 비율이 높다. 이주아동 역시 학대를 당해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커뮤니티가 좁고, 공공이 개입할 자원이 턱없이 부족해 심각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6개월의 사업 기간 동안 총 14건의 사례를 지원했고, 담당 변호사들이 각 케이스의 진행 과정과 시사점을 꼼꼼히 정리해 나갔다.

 

사업 담당자로서 사건을 접수하고 변호사를 배정하며 결과를 취합할 때마다 매번 뼈저리게 느낀 점이 있다. 여느 사건이 다 그렇듯, 현실에는 칼로 자른 듯 명쾌하게 떨어지는 ‘순결한 피해자’도, ‘완전한 가해자’도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특히 가정 내 폭력과 방임은 법적으로 보면 명백한 ‘가정폭력처벌법’ 및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으로 분류되지만, 그 이면에 자리 잡은 거대한 구조적 한계 앞에서는 늘 답답함이 밀려왔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외벌이로 생계를 독점하고 있다거나, 아동학대 행위자로 지목된 이주여성이 심각한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는 구조. 이는 국가가 누군가를 단지 ‘범죄자’로 특정해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이었다.

 

입법자들 역시 이러한 한계를 인식했기에, 처벌이 아닌 처분을 내리는 ‘가정보호사건’, ‘아동보호사건’ 같은 법적 절차를 마련했을 것이다. 사건의 이면을 조사해 가정에 환경 변화와 상담 등의 처분을 내림으로써 원가정의 회복을 도모하는 절차다. 그러나 이 또한 ‘원가정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삼다 보니, 폭력 피해자들을 가부장제의 구렁텅이에서 근본적으로 탈출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상존한다. 가부장적이고 불평등한 가정 구조 자체를 개혁하지 않는 한, 피해는 외면만 바꾼 채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공권력의 개입이 도리어 파괴적으로 작용해, 구성원들이 가정을 유지하고 싶어 함에도 이를 불가능하게 만들 때도 있다. 아동학대 피해 아동들은 부모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 용서하고 함께 살기를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이 아이들의 의사나 목소리는 표현할 기회조차 적고, 표현하더라도 제도 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거꾸로 피해자가 분리 독립을 간절히 원함에도, 경제적 궁핍이나 체류자격 연장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해자를 용서한 척 연기해야 하는 비극도 발생한다. 형사처벌을 넘어선 공공의 개입이란, 결국 피해자가 상처를 회복하고 관계를 대등하게 재정립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중재하고 감독하는 역할이어야 한다.

 

당연히 이러한 역할에는 막대한 예산과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 국적이 없는 이주아동과 이주여성을 고려한 제도적 지원과 예산은 늘 턱없이 부족하다. 공공 개입이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가정보호·아동보호 처분이 고작 ‘물리적 분리’와 ‘접근 금지’라는 기계적 조치에 그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2021년 서울시 외국인주민.난민 인권보호 및 쉼터지원사업으로 이주민센터친구가 수행한 ‘폭력피해 이주여성, 학대피해 이주아동 법률지원 사례연구’ 자료집 표지 일러스트.


한국 국적 없는 여성·아동을 보호해주지 않는 국가

 

한국 국적이 없는 이주아동은 학대를 당해도 일반 위탁가정에 갈 수 없다. 학대피해아동 전담 보호시설로 가야 하는데, 이마저도 자리가 없으면 일반 아동양육시설을 전전하며 부모와 격리된다. 단체 생활이 이루어지는 시설에는 엄격한 규칙과 제한이 따른다.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 시설의 아이들은 감염 예방과 전파 방지라는 명목 하에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호자 면회조차 금지당했다. 일반 가정의 아이들이라면 감염 시 2주 격리로 끝났을 일이다. 시설에 살던 이주아동들은 1년 동안 외출도 하지 못한 채 고립되어 방 안에 갇혀 지내야 했다. ‘시설 거주자’라는 이유로 이들의 권리는 너무나 쉽게 유예되고 제한된다.

 

게다가 외국 국적 아동의 시설 생활비는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충당하게 되어 있으나, 재정이 태부족하다는 이유로 수용 자체를 거절하는 지자체가 많다. 보호종료아동의 나이가 되면 자립 지원금은커녕, 아동 시기에 유지되던 체류자격 연장조차 불가능해진다. 성인이 되었으니 이제 이 나라를 떠나라는 비정한 통보다.

 

이주여성의 처지도 매한가지다. 한국인과 결혼해 결혼이민(F-6) 체류자격을 얻은 경우가 아니라면, 이들의 체류 연장 권한은 전적으로 외국인 배우자의 손에 쥐여 있다. 폭력 피해자라 할지라도 법적 구제 절차가 종료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치열하게 싸워 양육권을 가져오지 못하면 애써 키운 아이마저 한국에 두고 가야 한다.

 

설령 한부모 가정이 되어 자립하려 해도, 아동이 한국 국적이 아니라면 기초생활보장 등 어떠한 공공부조도 받지 못한다.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폭력피해 이주여성 쉼터가 유일하며, 공공임대주택 같은 정부의 주거지원 정책은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가정 내 폭력 피해자의 ‘최선의 이익’을 함께 고민하는 일

 

이주민이든 선주민이든, 베일에 싸인 가정 내 폭력 피해자들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이들이 스스로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 한 외부의 개입은 어렵다. 하지만 공권력이 개입하는 그 순간, 어떤 이에게는 생명줄이 될 조치가, 어떤 스펙트럼에 놓인 피해자에게는 도리어 내 손을 떠나 굴러가는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다가와 내 삶의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무력감을 안기기도 한다.

 

이주민 피해자들은 여기에 더해 체류자격 박탈이라는 실존적 공포와, 자신의 보증인이자 초청인인 폭력 가해자와 어떻게든 화해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족쇄 같은 압박감에 시달린다.

 

우리는 현장에서 다양한 상황에 놓인 이주민들을 만나며, 아직 ‘적색경보’까지는 켜지지 않은 수많은 가정을 마주한다. 우리는 그들의 개별적인 욕구와 경제적 형편, 사회적 상황을 감안하여, 피해자의 곁에서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결정을 돕는다. 공공의 개입이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 감시하고, 언어와 문화의 장벽 뒤에 숨은 피해자의 명확한 의사를 대변하기도 한다.

 

때로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오랜 시간 뒤엉켜 싸우다 보면 맞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는 복잡한 균열이 수년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의 역할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거울을 비추어주고, 경찰이나 법원이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설명하며, 앞으로의 대처 방안을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이 마침내 긴 위기를 헤쳐 나와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옆자리’를 지키는 활동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믿는다.

 

[필자 소개] 이진혜 : 이주민의 든든한 벗 ‘이주민센터 친구’ 법률인권센터장. 공식 홈페이지 chingune.or.kr 인스타그램 @friend79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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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26/06/27 [13:50] 수정 | 삭제
  • 독일로 간 한인여성이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는데 그때는 왜 그런 남자랑 헤어지지 않으려고 하는지 이해못했는데, 이혼하면 이주 여성으로서 그 사회에서 위치가 너무 불리해지기 때문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변했는지 모르지만 참 차가운 사회다 싶었는데, 자금 한국은 어떤지.. 더 하겠구나 싶어요. 그녀의 눈물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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