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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6일, 마야 리 랑그바드(Maja Lee Langvad)의 신간 『나의 통역사(TOLK)』(손화수 번역, 2026, 푸른숲)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시이자 에세이였던 전작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저자가 서울에 거주하며 원가족과 만났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이번에 출간된 소설 『나의 통역사』는 한국과 덴마크를 오가며 원가족과 12년간 교류한 긴 시간의 축적에서부터 출발한다.
저자의 전작과 이번 작품 모두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재료로 하지만 일부는 분명 변형되어 있기에 독자는 책 속에서 입양과 가족에 관한 진실과 허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
작품 속에서 ‘나의 통역사’는 ‘나’에게 종종 자신과의 대화를 소설에 쓸 것인지 묻고, 사적인 일화는 소설에 사용하지 말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나’ 역시 가족과 만남을 이어갈수록 자신이 쓰는 소설이 가족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혹은 자신의 비밀을 가족이 알게 되어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한다.
이렇듯 입양인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는 불안과 긴장, 화와 슬픔, 상실감과 답답함이 분리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렇기에 책에 적힌 글이 작가의 실제 경험인지 아닌지 헤아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책 속의 ‘나’가 원가족을 만나는 경험이 끝나지 않을 치열한 여정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감각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직접 덴마크어로 낭독한 문장들, 잃어버린 것을 드러내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장면은 리 랑그바드가 직접 덴마크어로 책의 한 부분을 낭독하는 순서였다. 저자는 낭독을 통해 이 책이 지닌 독특한 형식을 단번에 보여주었다.
내 통역사는 국을 한 숟갈 맛본다. 내 통역사가 말한다 . 어머니가 미소 짓는다. 나는 말한다 방금 어머니께 뭐라고 한 거야? 내 통역사가 말한다 그냥 어머니가 끓인 미역국이 맛있다고 했어.(68-69쪽)
낭독하며 저자는 ‘내 통역사가 말한다’를 읽고 그 후 마침표가 등장하기까지 얼마간의 시간 동안 침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페이지를 응시한 뒤 다시 다음 문장을 읽어 나갔다.
그가 수행한 잠깐의 응시는, 아무것도 읽지 않았지만 지면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마 그곳에는 번역되기 전까지는 들리지 않는 언어가,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낯선 언어가, 어머니의 언어가 있었을 것이다.
『나의 통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통역사가 말한다’, ‘나는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큰 언니는 말한다’, ‘여자 조카가 말한다’와 같이 희곡에서 사용하는 행동 지문과 함께 대사가 이어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2018년에서 2023년까지의 시간 선을 축으로 ‘서울의 한 삼계탕 집에서’, ‘부모님 댁에서’, ‘부모님 댁 근처의 벤치에서’를 소제목으로 하는 목차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와 원가족 그리고 통역사와의 대화 장소가 전환되며 장면이 시작되고 끝나길 반복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소는 계속해서 바뀌고 대화의 참여자도 조금씩 바뀌지만 ‘나’가 말하는 모든 곳에는 늘 통역사가 존재하여, 독자에게 끊임없이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상기시킨다.
이 책에는 삼계탕, 미역국, 김치찌개, 피자, 커피 등 음식을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서 먹는다는 행위는 한국, 가족, 고향과 새롭게 접속되는 계기로서 의미화된다. 리 랑그바드가 낭독했던 부분 또한 ‘나’가 통역사와 함께 한국 부모님 댁을 방문하여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었다.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나’와 영어를 전혀 못 하는 어머니 사이에 존재하는 언어의 장벽을 이어주는 것이 통역사의 역할이지만, 통역사와 어머니가 단둘이 나누는 한국어 대화에서 ‘나’는 어떤 의미의 공백뿐만 아니라 시간의 공백 또한 함께 경험한다.
‘내 통역사가 말한다’라는 문장 뒤에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찍힌 마침표의 위치와 그 사이에 남겨진 여백의 자리에는 분명 들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향한 상실감의 흔적이 자리 잡고 있다. 의미를 알 수 없기에 표정으로조차 응답할 수 없는 그 시간의 공백은 다름 아닌 관계의 공백이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잃어버린 기억, 잃어버린 언어, 번역되지 않는 맥락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의 통역사』는 그 공백이야말로 하나의 언어라고 말하며 그것을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나’와 ‘통역사’
희곡의 형식을 차용하여 대사와 지문으로 본문이 이루어져 있다는 점, 원가족 및 통역사와 만나는 장소를 제목으로 삼고 있다는 점, 공백을 통해 상실한 것의 존재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이 작품이 지닌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되는 어떤 ‘긴장감’과 관련이 있다.
이 책은 2018년 서울의 어느 삼계탕집에서 시작된다. 통역사와의 대화로 미루어볼 때 덴마크로 입양된 ‘나’는 이미 12년 전에 한국의 원가족을 찾았고 그간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삼계탕집에 미리 도착해 통역사와 함께 원가족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나’는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자신이 가족들과 잘 대화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긴장된 모습을 보인다. 이때 ‘나’의 긴장은 여전히 어색한 원가족과의 만남이 언어 차이로 인해 쉽게 풀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자리에 동석한 통역사가 바로 ‘나’의 애인이기도 하다는 점을 여전히 원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했다는 것에서 오는 긴장이기도 하다.
‘나’는 가족과 만날 때마다 어머니 혹은 언니로부터 매번 자신이 왜 화장을 안 하는지, 결혼은 안 하는지, 애인이 있는지에 관하여 질문 받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자신이 레즈비언인 것을 말해야 할지 고민하지만 말하지 못한다. 때로는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봤냐고 물어보기도 하며 넌지시 원가족의 반응을 살피기도 한다. 이때 ‘나’가 커밍아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함께 동석하는 통역사/애인의 긴장감도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 통역사가 말한다 서양에는 머리가 짧은 여자가 많다는 걸 알아서 그 이유로 네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대. 나는 말한다 그런데 만약 내가 레즈비언이라면? 내 통역사가 말한다 그 말은 내가 통역하지 않을게. 나는 말한다 왜? 내 통역사가 말한다 언니의 반응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나는 말한다 내가 우리 관계를 가족에게 말하길 바라지 않았어? 내 통역사가 말한다 그랬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네 가족이 나한테 화를 낼까 봐 무서워. 결국 그 말을 해야 하는 건 나니까.
‘나’와 ‘나의 통역사’는 소통할 수 있는 공통된 언어뿐만 아니라 비밀 또한 공유하고 있다. 이 비밀은 결국 ‘나의 통역사’의 입을 통해 외부 세계로 전달되기에, 전달하는 자의 부담과 긴장은 둘 사이에 작은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통역사는 가끔 어떤 말은 굳이 옮기지 않기도 하고, ‘나’가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밝히려는 순간에는 통역을 거부하기도 한다. 결국 ‘나’는 자신이 출간한 책을 통해서 통역사가 연인이었음을 알린다.
가족을 찾고 난 후 ‘이후의 시간’,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이 책은 입양인이자 성소수자로 두 번의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정체성에서 발생하는 긴장감과 상실감을 주된 감정으로 끌고 가고 있다. 통역사를 동석하는 가족과의 만남 속에서 갈등하는 장면들은 분명 커밍아웃의 경험이 입양가족과 만나는 경험과 중첩될 때 가중되는 어려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입양인이자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은 어떤 경험들이 겹칠 때, 그간 감춰져 있던 비밀을 보게 해주는 중요한 시선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책에는 한 번도 목소리로 등장하지 않았지만 반복해서 언급된 ‘막내 언니’라는 존재가 있다. ‘나’는 막내 언니의 삶을 궁금해하고 그가 자신과 같은 성소수자일지 모른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가 실존 인물인지 가상의 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그가 ‘막내 언니’라는 존재를 통해 자신처럼 한국 바깥으로 입양되었을지도 몰랐을 무수히 많은 딸, 언니들을 호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여전히 이야기되지 않은 것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저자는 입양인이 원가족을 찾는 이야기 혹은 원가족과 극적인 상봉을 하는 장면은 매체에 자주 등장하지만, 가족을 찾고 난 ‘이후의 시간’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한다. 극적 만남 이후의 시점에서부터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집필된 『나의 통역사』는 입양인들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들이 원가족과 어떻게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가는지, 그 안에 어떤 어려움과 노력이 존재하는지 기록하고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가족을 찾고 커밍아웃을 하면 자신을 둘러싼 모든 퍼즐이 제자리에 맞춰질 것 같지만, 그것은 환상일 뿐이다. 현실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나 새드앤딩처럼 단순하게 끝나지 않는다고, 이야기는 늘 또 다른 이야기를 불러내며 살아남는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필자 소개] 전솔비 : 시각문화 연구자. 독립기획자. 정체성과 수행성의 문제를 연구하며 전시와 책을 만들어왔다. 동시대 현장에서 생산되는 이미지의 정치성과 예술적 실천을 탐구하며 예술가, 연구자, 활동가 동료들과 여러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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