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페미니스트들 “천황제에 종지부를” 집회 연 이유‘여성천황’ 아닌 ‘탈천황제’ 요구…가부장제, 군국주의, 배외주의 비판일본 국회는 7월 17일 황족 수 확보를 위한 개정 황실전범을 통과시켰다. 1947년 현행 황실전범 시행 이후 처음 이뤄진 개정법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여성 황족이 일반 남성과 결혼한 뒤에도 황족 신분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둘째는 과거 황족이었던 사람의 남계 적출 남성 후손을 황족의 양자로 들일 수 있도록 했다. 양자로 황족이 된 남성 본인에게는 황위계승권이 없지만, 그 남성의 자손 가운데 남성은 황위계승 자격을 갖게 된다.
황족 수 감소와 황위계승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 ‘여성 천황을 허용하라’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어왔고, 국민 여론도 ‘아이코 공주를 천황으로 원한다’는 쪽으로 기울었지만, 끝내 남계 혈통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황실전범이 개정됐다.
그런데, 일본의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제기되었다. 여성도 천황이 될 수 있게 해 달라는 게 아니라, 애초에 혈통과 성별에 따라 누군가의 지위와 삶을 규정하는 천황제를 유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여성주의 신문 《페민》과 액티브 뮤지엄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은 황실전범 개정 논의가 진행되던 6월 23일, 성명 「지금이야말로 천황제에 종지부를 - 차별과 가부장제가 없는 미래를 위해」를 발표했다. 여기에 74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명했다.
이어 7월 3일에는 도쿄 중의원 의원회관에서 ‘천황의 존속과 여성 천황 논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황제 폐지를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집회를 열었다. 100명 이상이 모인 이 자리에서 페미니스트와 퀴어 활동가, 부락차별 철폐 운동가, 오키나와 활동가, 반전·평화운동가 등이 차례로 천황제에 대한 자신의 문제의식을 이야기했다.
‘여성과 천황제 연구회’ 슈토 구미코(首藤久美子) 씨는 천황제가 세습되는 신분제도임을 지적했다. 여성과 천황제 연구회는 현재 재위 중인 나루히토 천황의 딸, 아이코 공주가 태어났을 때 발족한 단체다.
슈토 씨는 천황제 아래 황족 여성에게는 ‘남자아이를 낳는 일’이 중요한 역할로 요구된다며, 이 자체가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말했다. 여성 천황을 허용한다고 해서, 혈통을 세습하는 제도 자체나 황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출산 압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 SOSIREN의 오하시 유카코(大橋由香子) 씨도 “천황제는 아이를 낳을지 말지, 누구를 좋아할지, 어떤 가족을 만들지를 각자가 결정하고자 하는 움직임과 정반대”라고 비판했다.
오하시 씨는 그럼에도 천황제를 존속시키고 싶다면 “남자로만 가계를 이어가는 가부장제 박물관으로 두고, 세금을 쓰지 말고 운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순수 혈통’, ‘정상 가족’이라는 허구
‘아시아여성자료센터’의 모토야마 히사코(本山央子) 씨는 천황제를 ‘순수한 혈통 가족’이라는 픽션을 통해 사람들의 몸과 섹슈얼리티, 그리고 문화를 통제해 가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요세이카 하루야이로(夜生か春や色) 씨는 집회 일주일 전에 결성된 ‘시스젠더 헤테로 중심주의도 반대하는 천황제 해체 페미모임’에 대해 설명하며, 여성 천황이라는 화두에 위화감을 느낀 사람들의 의견을 소개했다. “가부장제 아래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는 것, 성별을 남녀로만 규정하는 것, 그것을 전제로 한 ‘정상가족’을 행복이라 여기는 것” 등은 페미니즘이 손절해야 하는 가부장주의 가치관이라는 얘기다.
퀴어 활동가 아유미(あゆみ) 씨 역시 “천황의 ‘신민’으로 관리되던 호적제도를 토대로 강화된 가부장제와 가족제도가 내 삶의 어려움과 직결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혈연으로 ‘특별 대우받는 황족, 차별받는 부락’
『부락과 페미니즘』의 공저자이자 호세대학 대학원 국제인권론 강사인 후지오카 미에코(藤岡美恵子) 씨는 부락차별과 천황제가 “혈통, 혈연의 문제”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따라 한쪽은 특별한 존재로, 다른 한쪽은 차별당하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부락(部落)민은 일본의 신분제 아래에서 특정 직업과 출신을 이유로 차별받았고, 근대 이후 심지어 현재까지도 ‘피차별부락민’으로 차별이 이어져 온 사람들이다. (관련 기사 감추어진 ‘부락’ 차별, 수면 위로 올려야 한다 https://ildaro.com/9384)
그리고 “여성의 역사와 여성운동을 말할 때도 부락여성은 이야기되지 않은 채 비가시화”되어 왔다고 짚으며, “인종차별에 가담하지 않도록” 기존 체제 안에서의 평등에 머물지 말아 달라고 여성들의 인식과 참여를 요구했다.
오키나와에서 본 천황제와 제국주의
“독립국가였던 류큐는 천황제 국가가 아니었다.”
집회에서는 오키나와의 목소리도 들렸다. ‘오키나와·한평 반전지주회 간토 블록’의 아오키 하츠코(青木初子) 씨는 “1879년 천황의 명을 등에 업은 정벌을 통해” 류큐가 일본에 강제로 편입돼 오키나와가 되고, 전쟁 중에는 일본군의 통제 아래 전쟁터가 되었던 역사를 이야기했다.
“나 역시 ‘류큐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일본 문화를 따라하라’고 교육받았다. 지금 나는 지역사회에서 ‘히노마루 국기, 기미가요 국가, 연호 사용’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연호(年号, 천황이 다스리는 시대의 이름을 따서 연도를 세는 방식) 즉, 천황제는 생활 속에 파고들어 있다. 근저에서부터 논의를 확대해 나가고 싶다.”
한편, 일본YWCA 오가사와라 스미에(小笠原純恵) 씨는 “기독교에 기반한 일본 여성단체인 일본YWCA가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군국주의 체제에 협력해, 조선YWCA를 일본YWCA로 편입하는 등” 과오를 범했다며, 이를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가사와라 씨는 현재 “젠더평등과 인권을 부정하는 폭력적인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정당화”되는 근원에 천황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페미니즘이 말하는 평등 - ‘반천황제’가 아니라 ‘탈천황제’
“나는 지금 100살이다. 오래 산 만큼, 천황에게 많은 피해를 입었다”라고 밝힌 전직 교사 기타무라 사요(北村小夜) 씨의 발언은 대독되었다.
“전쟁 전에는 대일본제국 헌법 하에 ‘천황대권’, ‘교육칙어’가 절대적인 가치였고, 나는 그 교육을 받아 군국소녀가 되었다. (중략) 천황제는 남아 있고, 황실전범은 지금도 이어지는 여전히 특별한 것이다. 하나로 퉁쳐지는 ‘국민의 뜻’과 우리 한 명 한 명의 생각은 별개의 것인데, 이 나라의 숨 막힘의 뿌리에는 천황제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
‘안보법제 위헌 소송 여성모임’ 변호사 나카노 마미(中野麻美) 씨도 황실전범의 개정과 국기 파손죄 등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본의 “군사화 경향”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평화의 권리 관점에서 나카노 씨는 “천황제는 사고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에 대한 현실의 권리침해라고 볼 필요가 있다”고 강력하게 호소했다.
가라이 씨는 “단순히 천황제라는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내면화해 온 도덕과 시스템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며, “‘반(反)’이 아니라 ‘탈(脱)’ 천황제”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탈천황제, 탈제국주의 없이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평등은 있을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지금이야말로 천황제를 종식시킬 때
집회를 공동 주최한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의 와타나베 미나(渡辺美奈) 씨는 지금이야말로 천황제 자체에 질문을 던질 때라고 말했다.
“100년 전, 일관되게 천황제를 비판했던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 일본의 아나키스트. 조선의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인 박열과 함께 활동했다)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에 힘을 얻듯이, ‘천황제는 필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에 남기고 싶다.”
와타나베 씨는 “이 나라의 현재 모습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일본인’에게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천황의 전쟁책임을 계속해서 물을 책임이 있다”며, “천황제를 종식시키고 ‘황실 폐쇄’를 하기 위한 구체적인 길을 생각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번역: 고주영]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ふぇみん, women’s democratic journal) 보도를 원문 번역하고, 국내 독자들을 위해 〈일다〉 편집부가 보완·편집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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