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일 아니지, 마음을 쓴다는 게[예술적 실천의 현장들] 〈내가 시 쓸 수 없다면, 우리의 혁명이 아니다〉돈과 마음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스티커를 붙여달라거나 잠시 시간을 내어달라며 말을 건네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미 흔한 길거리 ‘풍경’이 되어버린 이 모습은 NGO(비영리기구) 혹은 시민사회단체가 후원을 요청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행인은 무시하고 지나가거나, 정중하게 거절하거나, 조금 머뭇거리며 빙 돌아서 그곳을 떠나곤 한다. 나 또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미 후원하는 단체의 수와 내가 낼 수 있는 돈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말을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한 채로.
거절을 반복하는 일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에게 어려운 일인 듯하다. 인터넷에는 심지어 길거리 후원 요청 상황별 대처 방법이 매뉴얼로 나와 있는 것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후원 요청 또한 분명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거절당하는 사람과 거절하는 사람의 어긋난 표정을 목격할 때면 조금 두려운 기분이 들곤 했다. 돈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들이 자리를 찾지 못하고 사라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멈추지 않는 전쟁과 기후위기는 우리가 마음을 써야 할 곳을 늘려가고, 그 마음은 후원금이라는 시급함으로 변환되곤 한다. 하지만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마음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돈을 보내는 일은 필요하다.’ ‘돈을 보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나는 이 두 문장이, 이 두 믿음이 양립할 수 있는 세계를 포기하지 않을 때, 우리가 더 나은 미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시를 쓰고 마음을 쓰는 진(zine)
여기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두 문장을 잇는 예술적 실천이 있다. 〈내가 시 쓸 수 없다면, 우리의 혁명이 아니다〉(2026)는 시인 계미현과 공민으로 이루어진 팀 ‘개미와 꿀벌’이 남선미, 연혜원, 한오하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이자, 매달 발간되는 진(zine)의 이름이다.
이 프로젝트는 시를 판 돈을 후원금으로 보낸다는 점에서, 사회운동을 지지하는 수많은 예술적 시도 중 하나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건 후원금의 존재나 액수가 아니라 ‘돈을 쓰고, 돈을 모으고, 돈을 보내는’ 행위 사이에 존재하는 부유하는 마음을 포착하고 그것을 진에 실어 전달하는 데 있다. 우리는 돈으로 바꾼 마음으로 시를 사서 읽지만, 시를 읽으며 다시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건 ‘돈으로 다 바꿀 수 없는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5월호 ‘동물권 행동 카라 노동조합’을 생각하며 쓴 계미현의 시 「마음 쓰기」는 그 지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쉬운 일 아니지/ 마음을 쓴다는 게/ 털먼지 날리지/ 모자르지/ 다 썼어? 물을 수 없지/ 다 셌어? 물을 수 없듯이” (「마음 쓰기」, 계미현)
이 시는 투쟁을 위한 직접적인 구호를 외치는 대신, 잔여하는 마음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게 한다. 돈을 보내면서도 적은 액수에 자책하는 인간, 구조된 동물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어 걱정하는 인간, 인간에게 마음을 써도 되는지 확신할 수 없는 비인간 동물, 그리고 잊힌 죽음을 떠올리며 마음 쓰기를 멈출 수 없는 모든 존재가 이 시에서 자신의 마음을 읽는다. 그런 마음들이 이 시 안에서 웅성거리고 있기에, 시를 산 누군가는 페이지를 넘기며 자신이 아직 보내지 못한 마음들을 마주한다. 그렇게 시를 사고 시를 읽는 일은 자신의 웅성거리는 마음 너머를 가만히 돌아볼 수 있는 동력이 되어 간다.
직진하지 않는 시
“우리는 좋은 시를 쓰려고 하기 보다는, 정치적 실천의 일환으로서 시를 씁니다. 시는 연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의제와 직접적으로 닿아 있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날들에 쓰이게 될 것입니다.” (개미와 꿀벌)
돈을 보내고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몸이 바뀌고 마음이 옮겨간다. 이 프로젝트는 나에게 ‘어떤 시는 직진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떠올리게 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시를 쓰지만, 시를 읽고 다시 읽게 만드는 건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읽는다.
그렇다면 이런 시는 누구에게 도착할까. 거리의 맨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선언문을 읽고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 자신의 투쟁 방식을 확신하며 선뜻 돈을 내는 사람, 자신의 결심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에게 ‘시’는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는 세계에는 흔들리지 않는 소수의 사람보다 더 많은,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시간과 돈, 마음을 어디에 보낼지 고민하는 그 자리에는 머무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은 하나의 우회로가 되어 누군가를 움직이게 한다.
“잘 들리지 않고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니라고. 기후·생태 위기에 맞서는 싸움과 나의 시 쓰기는 그렇게 한 뿌리에서 자란다.”(「지워진 이름 곁에서」, 희음)
[필자 소개] 전솔비 : 시각문화 연구자. 독립기획자. 정체성과 수행성의 문제를 연구하며 전시와 책을 만들어왔다. 동시대 현장에서 생산되는 이미지의 정치성과 예술적 실천을 탐구하며 예술가, 연구자, 활동가 동료들과 여러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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