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노래 부르고 있어요

능력, 돈, 외모, 가족…익숙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생각⑭

호미 | 기사입력 2026/09/24 [17:51]

우리가 노래 부르고 있어요

능력, 돈, 외모, 가족…익숙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생각⑭

호미 | 입력 : 2026/09/24 [17:51]

“자립은 골치가 아파요/ 준비가 백만 가지 넘어요

그래도 결국은 해야 해/ 사람답게 살려면 해야 해

시설에서 탈출하다 맞았지/ 다섯 번을 시도하다 숱하게 맞았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지/ 어찌어찌하다 보니 시설에서 나왔지

나는 지금 세종에서 살고 있지/ 탈출은 자립의 시작/ 나는 지금 활동가로 살고 있지

자립도 자유도 평등하게/ 자립도 자유도 행복하게”

 

▲ 세종보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합창단 ‘마이웨이싱어즈’가 세종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노래를 녹음하는 모습. [호미 제공]


지난주, 세종시청자미디어센터 녹음실에 울려 퍼진 노래 「자립송 1」이다. Moon이 대표를 맡고 있는 보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중증장애인 열 명으로 구성된 합창단 ‘마이웨이싱어즈’가 작사, 작곡한 노래다.

 

마이웨이싱어즈 단원들은 ‘중증장애인 복지일자리’로 센터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이다. 하는 일은 행정보조와 환경미화인데, 중증장애인에게는 둘 다 어렵다. 고민하다 노래모임을 하기로 했다. 세종참세상 노래동아리 대표인 나은 님에게 노래 수업을 부탁했다. 나은 님은 지난겨울 내내 세종 지역 윤석열 탄핵 집회에 매번 나와 공연을 했던 세종의 노래꾼이다.

 

나은 님은 「평화가 무엇이냐」라는 곡을 알려주었다.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대목을 모두 좋아해 많이 불렀다. 그러다가 ‘우리도 노래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이번엔 ‘자립이 무엇이냐’를 가지고 노래를 만들기로 했다.

 

자립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단원들이 쏟아낸 말을 나은 님이 받아적었다. 칠판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그 이야기들, 혹은 그 칠판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받아적은 것이 「자립송 1」이 되고, 「자립송 2」가 되었다.

 

▲ ‘마이웨이싱어즈’ 합창단이 ‘자립이란 무엇인가’라는 나은 님의 질문에 쏟아낸 이야기들. 이 이야기가 「자립송 1」이 되었다. 「자립송 1」은 15년 동안 시설에서 거주, 5번의 탈출 시도 끝에 2006년 자립하기까지의 거정 님의 이야기를 담았다. [호미 제공]


나은 님은 곡이 만들어질 당시의 경험이 정말 신기했다고 이야기한다.

 

“저는 작곡을 해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었어요. 그런데 합창단 분들이 노래모임을 좋아하시는데, 거기서 제가 무장해제가 되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든 되겠지, 이런 마음. 노랫말을 칠판에 붙여놓고, 곡이 떠오를 거라고 같이 쳐다봤어요. 보다 보면 나올 거라고요. 한참 있다가 단원인 경우 씨가 떠오르는 음이 있다며 불렀는데, 제게 떠오른 음과 거의 비슷했어요. 신기하죠. 그걸 후배 도움 받아서 코드만 잡고 노래를 부르게 된 거죠. 악보도 아직 없어요. 악보 없이 모두 부르시는 거예요.(웃음)”

 

작곡과 작사의 주체가 모두 중증장애인 합창단 ‘마이웨이싱어즈’인 것이다. 그렇게 마이웨이싱어즈가 작사·작곡한 노래가 탄생했다. 지난달, Moon이 마이웨이싱어즈가 연습하는 걸 영상으로 찍어 SNS에 올렸다. 그걸 보고, Moon의 스쿠버 다이빙 영상을 찍어준 방준식 감독이 연락해 녹음을 제안해 왔다. 녹음실은 세종시청자미디어센터를 이용했다. 비장애인 청소년 시민인 한결 님이 베이스기타를 연주해주어 힘이 실렸다.

 

▲ 비장애인 청소년인 한결 님이 코드를 연습해와서 베이스기타로 연주해 ‘마이웨이싱어즈’의 녹음에 참여했다. 녹음 후, 한결 님 “장애인은 무엇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차별적인 고정관념이 씻겨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더 자주 참여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호미 제공]


녹음하고 온 날. Moon의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린 대목.

“녹음하다가 누군가 ‘누가 제일 잘 부르나요?’ 묻는 거예요. 그래서 ‘다 못 불러요. 언어장애 있는 중증장애인인데 누가 잘 부르겠어요.’ 그래서 웃었죠. 나도 호흡 때문에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아예 거기는 못 불러요. 근데 보면 누가 불러요. 그렇게 노래가 돼요. 신기하죠?”

 

‘누가 제일 잘 부르나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묻고, 대답해 온 질문이다. 이 질문은 노래를 멈추게 한다. ‘평가’의 폭력은 잘 부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고, 함께 노래 부르던 사람들을 떼어내 ‘개인’으로 추출해 각자의 방에 가둔다. 이 질문이 우리의 삶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삶 전체를 장악해버릴 때, 우리는 그 밖의 질문을 상상하지 못한다. 모두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누구’가 되기 위해 평생을 건다. ‘누구’의 자리에 들어갈 가능성이 없는 이들은 노래하던 입을 닫는다. 들썩이던 어깨를 늘어뜨린다. 그렇게 그들이 부르던 노래는 사라져왔다.

 

마이웨이싱어즈의 노래가 낯설다면,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안정된 발성과 호흡, 정확한 음정과 박자라고는 없는 노래, 들리지 않는 대목이 들리는 대목보다 많은, 새소리 같기도 바다소리 같기도 한 노래, 불협화음으로 가득하고, 박자를 놓치기 일쑤인 노래, 그러나 누군가는 빈 곳을 채우고, 누군가 멈춘 노래를 누군가는 이어가는 신기한 노래.

 

마이웨이싱어즈가 연습하는 자리에 간 적이 있다. 소통을 어려워하던 단원도 노래하며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몸을 함께 일렁이는 것을 지켜보며 새롭게 깨달았다. 악보에 맞춰 정확한 음정으로 화음을 맞추는 것만이 노래가 아니라, 우리가 모여 있고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 순간이 노래라는 것을. 흩어지는 노래를 그러모아 “우리가 노래 부르고 있어요” 증명하는 일이, 아프고 서러운 사연에 목소리를 포개 서로를 쓰다듬는 일이, 악보에 담기엔 너무 크고 넘치는 음악, 없던 선율이 태어나는 이곳이 노래라는 것을.

 

▲ 세종보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2025년 11월부터 184일 간 세종시청 앞에서 매일 한 시간씩 ‘세종시 장애인권 증진’을 위한 피케팅을 진행했다. 「자립송 1」의 주인공인 거정 님(오른쪽)도 몸이 아프지 않는 한 참여했다. 40도를 웃도는 뙤약볕에도 이어지는 피케팅에 세종 시민들의 민원이 이어지면서, 지난 8월 조상호 세종시장이 피케팅 현장을 방문하였고, 장애시민 정책을 논의하는 테이블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기로 약속했다. [호미 제공]


마이웨이싱어즈의 노래를 듣고 돌아온 날. 하루 종일 나도 모르게 노래가 흥얼거려지고 절로 춤이 추어졌다. 좀처럼 노래에 몸을 맡기지 못해 온 내 몸에 노래가 옮았다. 흥에 전염되었다. ‘누가 제일 잘 부르는지’ 물어온 노래의 역사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노래들을 잃어왔는지 헤아려본다. 얼마나 많은 몸들이 노래를 빼앗겼는지, 얼마나 많은 춤들이 노래를 잃고 숨을 멈추었는지.

 

우리의 이 울퉁불퉁한 웅얼거림, 끊어짐과 어긋남, 기묘한 이어짐도 노래다. 아니, 이 노래가 바로 우리가 오래도록 찾고 있었지만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새로운 노래다. 튀는 음과 독특한 발성이 가득한 이 노래는, 노래가 고대 바다의 돌고래로부터, 높은 나뭇가지에서 우짖는 새로부터, 아기를 달래 재우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선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이 노래를 이어 불러 서로의 존재를 축하할 것이다. 더 어긋나고, 더 벗어난 음들을, 더 다채롭고 무수한 선율을 폭죽처럼 터뜨릴 것이다. 더 이상은 노래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노래를 부를 것이다.

 

오는 9월 30일, 세종보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가 주최하는 ‘세종 장애인 인권영화제’가 열린다. 이때 마이웨이싱어즈가 첫 공연을 한다. 거정 샘의  「자립송 1」, Moon의 「자립송 2-해보기 전까지 모르잖아」와 보람센터 주제가까지 3곡을 부른다. 새로운 노래가 시작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당신이 꼭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 오는 9월 30일, 세종보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가 주최하는 ‘세종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마이웨이싱어즈가 첫 공연을 한다.


[필자 소개] 호미 :
장애활동지원사이며 동화 집필 노동자. 전국귀농운동본부 ‘귀농통문’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활동서비스 이용인’ Moon을 돌보고 Moon으로부터 돌봄을 받으며 하루하루 연명합니다. 일하고 사랑하며, 투쟁하고 놀며 새로운 몸으로 되어갑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머찜 2026/10/07 [14:08] 수정 | 삭제
  • 마이웨이싱어즈 노래 듣고 싶어요. 영상으로 볼 수 있으면 더 좋겠네요..
  • 보이스 2026/09/30 [14:19] 수정 | 삭제
  • Moon님의 호쾌한 답변에 막 웃음이 났습니다. 근데 보면 누군가는 부른다... 이런 얘기도 재밌고 뭔가 감동적이기도 한데요. 최근에 어떤 다큐를 보니까 유명 가수들도 합창할 때 자기 음역대가 아니거나 자신 없으면 입술 모양만 하더군요. 그게 합창의 묘미인가 봅니다. ㅎㅎ 마이웨이싱어즈 화이팅!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