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을 위한 투쟁, 누가 할 수 있나요?책 『평등한 평범』 북토크에서 짚어본 차별금지법과 평등의 조건“‘평범한 삶’의 의미는 변질되어 가고 있다. 평범한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반드시 기본적으로 필요한 가족, 이웃, 우정, 사랑, 건강, 교육, 일자리, 안전한 집과 거리, 사회적 인정 같은 것들이 모두가 누릴 수 없는 특권으로 변질되고 있다. 마치 ‘평범한 행복을 누릴 자격’이 따로 있는 것처럼 말이다... (중략) 나는 평범함을 되찾고 싶어 이 책을 쓰기로 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범함과 고유함 중 어느 것 하나도 결여되어서는 안 된다.”
책 『평등한 평범』(후마니타스)의 “들어가는 글”엔 우리가 잊고 있었던 ‘평범함’을 재차 설명하고, 강조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평범함은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평범함’은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까다로운 조건부 권리처럼 작동하고 있다. 장애가 없어야 하고, 성소수자가 아니어야 하며, 이주민이 아니어야 하고, 건장한 청년이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아이도 출산해야 하는 등의 조건 말이다. 이를 충족해야만 누릴 수 있는 평범함이라고 한다면, 사실 그 자체로 차별의 산물이다.
박근혜 탄핵 광장에서의 한 시민은 “박근혜, 최순실 말고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광장 밖의 일상에서 당신은 사람답게 행동하고 있나요?”라고 발언한다. 자신이 딛고 서 있는 일상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그 사람은, 지적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던 한 살 어린 여동생,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무려 18년을 살고 있던 여동생을 탈시설시켰다. 그 경험을 담은 영화를 만들었고, 이후엔 정치권으로 영입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지금은 비영리단체인 망원정x 대표로 일하며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정치를 하고자 하고 있다. 책 『평등한 평범』의 저자이기도 한 이는 바로 장혜영이다.
지난 9월, 망원정x에선 책 『평등한 평범』의 북토크가 열렸다. 신정아 백석대 교수의 사회로 저자 장혜영 대표와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가 이야기를 나누며, 평범과 평등 그리고 이를 위한 차별금지법에 대해 설명했다.
평범함마저 투쟁해야 하는 사회… 평등은 최소한의 안전망
책 제목에 ‘평등’과 ‘평범’이 들어가는 만큼 북토크는 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장혜영 대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하거나 거창한 삶을 바라기보다,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며 그것은 “모두가 열망하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현실 사회에선 그렇지 않다. 평범함에도 위계와 조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노인, 청소년 등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학교, 일터, 대중교통 등 공적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 자체가 투쟁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됐다. 심지어 “평등을 요구하거나 말하는 사람을 까탈스럽고 유별난 주장을 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거부감”도 있다.
장 대표는 “하지만 평등은 누군가에게 특혜를 주는 유별난 개념이 아니라, 모두가 무시당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자 기본 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상적 언어 습관부터 공적 영역까지, “차별은 공기 같지만, 바꿀 수 없는 관습은 없다”
그렇다면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차별을 없애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차별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허오영숙 대표는 “이주여성단체에서 이주 배경을 가진 활동가가 전화를 받았을 때 한국어 발음이나 억양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 사람으로 바꿔 달라’며 업무 진행을 거부하는 일상적 차별”을 예시로 들며 일상과 일터에서 일어나는 차별을 설명했다.
더불어 제도와 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제결혼 지원 조례’의 경우도 그랬다. 허오영숙 대표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남성이 다른 아시아 국가 여성과 중개업체를 통해 결혼하며, 그 비용을 남성들이 내는 상업적 방식이 유행했다. 문제는 그 중개업체에서 하는 광고가 굉장히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지자체는 오히려 그 결혼을 지원하는 조례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에 시민사회단체는 그것이 왜 차별인지 목소리를 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진정을 넣고, 조례 폐지 운동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끈질기게 한 결과 조례를 모두 폐지할 수 있었다.
허오 대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대원칙을 외치는 순간에서조차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하는 일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사회적인 차별과 배척을 언급했다. 더불어 “차별은 공기”라고 한 그는 “환기가 되지 않는, 창문이 없는 공간에 가면 답답하고 탁한 느낌이 들고 나무가 많은 숲에 가면 청량감을 느끼듯이 내 주변의 공기가 어떤지가 중요하다”며 지금의 차별적인 공기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혜영 대표는 “차별은 오랫동안 관습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일종의 ‘주류 문화’의 속성을 갖고 있기에, 바꾸기 어렵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했다. “과거 아동 체벌이 ‘사랑의 매’라는 훈육 문화로 수용되다 오늘날엔 ‘아동 학대’라는 범죄로 인식이 바뀐 것처럼, 여러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들… “처벌 아닌 자발적인 시정을 유도”
차별의 공기, 문화 그리고 혐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건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장혜영 대표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혐오 발언이나 차별 행위에 대해 무조건 강력한 형사 처벌이 내려질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사실 “실제 법안은 형사 처벌보다는 차별 시정 권고와, 시정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여 자발적인 시정을 유도하는 구조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차별금지법이 개인의 사생활을 통제할 거라는 오해, 개인의 사적 영역 전체를 침해할 거라는 두려움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고 재차 설명했다. “차별금지법은 모든 일상 영역이 아닌, 평범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4가지 핵심 공적 영역(학교/교육, 일터/고용, 재화·서비스 이용, 정부·지자체의 의무)에 한정하여 적용되기 때문”이다.
“혐오는 권리도 자유도 아니다. 혐오 표현이라는 말 자체가 안 맞는 말”
차별이나 혐오를 금지하는 게 ‘표현의 자유’에 반하는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신정아 교수는 “‘혐오표현’이라는 말이 문제인 것 같다”며 “‘표현’은 자유이기도 하고 권리이기도 하지만, ‘혐오’는 권리도 자유도 아니다. 그런데 혐오라는 말에 자꾸 ‘표현’이라는 말을 붙이니까 혐오도 표현의 일종이라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혐오표현이라는 말 자체가 안 맞는 말”이라 설명했다.
장혜영 대표는 “어떤 사람들, 특히 차별을 받는 사람들한테는 분명 차별이고 폭력이며, 혐오인데 그걸 어떤 ‘문화’로 여기는 관습이 있는 것 같다”며 “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관습이라는 이유로 방치해 온 것을 바꾸는 일이 차별금지”라고 했다.
이렇게 중요한 차별금지법 제정이 계속 미뤄지는 부분에 대해서 장 대표는 “정치적 의지의 부족을 넘어 정치 시스템의 결함”이라 지적했다. “대한민국 국회 300석 중 85%는 지역구 의원이며,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 아래에서 거대 양당이 95%의 의석을 독점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정치는 ‘다양한 민의의 반영’이 아닌 상대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비난 정치가 우선시되면서, 표심에 민감하거나 찬반 논란이 있는 차별금지법 같은 의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렇기에 정치개혁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비당사자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 ‘그래야 우리 사회가 나아질 수 있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해 이젠 전 국회의원이 된 망원정x 장혜영 대표는 ‘그럼에도 여전히 차별금지법을 외치는’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책 『평등한 평범』의 부제가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계”일 정도로 그는 여전히 차별금지법 제정에 뜨겁다. 북토크에서 그 이유를 당사자로서, 그리고 비당사자로서의 경험을 통해 밝혔다.
하나는 장애인 동생의 탈시설과 자립 과정을 함께 하고 국회 입법 활동을 하면서, 개인의 삶이 사회적 제도 및 정치와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난민, 트랜스젠더 의제처럼 당사자들이 자원과 권력이 적어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고 힘들 때, 비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책에 ‘트랜스젠더 문제에 뼈를 묻을 결심’이라는 챕터를 쓰기도 했는데요. 한창 트랜스젠더 이슈로 시끄러웠을 때, ‘나도 이제 그만 말을 얹어야 하나’ 생각을 하다 문득 깨달았어요. 나는 그만하려면 그만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요. 그런데 당사자한테는 트랜스젠더가 될지 말지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니까, 그걸 선택할 수 없으니까 삶을 내려놓는 거라는 걸요. 그래서 그들의 부고 소식을 계속 들어야 했던 거구나... 하고요. 그때 알게 됐어요. 당사자는 힘들다고 해서 그만할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그걸 해결해야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요.”
책 『평등한 평범』을 읽고, 북토크를 들으며 분명하게 알게 된 점이 있다. ‘평범한 삶’을 바란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분명하다는 것, 장혜영만이 싸우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아직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건 괜찮다. 그건 책에서 알려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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