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국회보내기 운동’ 방향타 돌려야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 101인 리스트, 대표성 있나

일다취재팀 | 기사입력 2004/02/02 [04:50]

‘여성국회보내기 운동’ 방향타 돌려야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 101인 리스트, 대표성 있나

일다취재팀 | 입력 : 2004/02/02 [04:50]
지난 해 11월 초 발족한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는 여성정치세력화를 위한 구체적 활동으로 102인의 여성예비후보를 선정했다. ‘여성 100인 국회 보내기’ 운동의 일환이다. 이들 명단을 보면 국회의원 후보로서 자질을 갖춘, 여성들을 대표하고, 여성들의 지지를 받을만한 인물들도 분명 있다. 그러나 102인 전부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각 정당의 반응 ‘시큰둥’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는 후보 명단 발표 이후 1명이 제외된 101인의 여성예비후보 명단을 열린우리당, 민주당, 한나라당,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전달했다. 네트워크 측은 101명의 여성예비후보 중 각 정당에서 공천이 돼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할 경우, 범 여성단체들과 연대를 통해 적극적으로 지지 당선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1월 15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각 정당은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에서 제시한 101인의 명단에 대해 적극적인 수용의사를 가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의 ‘좋은 참고 자료’라는 정도의 의견이 있으나, 당 차원에서는 이들 후보자를 적극 공천할 움직임은 없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정당의 간부는 이러한 여성계의 요구가 “정당 안에서는 전혀 약발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서는 “후보선정이 편파적으로 이루어져다”거나 “여성계를 고루 대변하지 못한다”고 보고 있으며, 열린우리당의 경우에도 “여성당직자들 사이에서 명단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각 정당의 소극적인 반응으로 일관하는 이유가 뭘까. ‘여성계’의 낙선운동 운동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별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75인이 103인 추천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에서 처음 발표한 102인의 여성예비 후보 명단을 보자. 102인의 여성국회의원 후보자 명단이 어떤 기준에 의해, 어떻게 선정되었는가.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에 의하면 후보 추천은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후보 추천에 대한 홍보로 총선여성연대 참여 321개 단체에게 공문을 보내고 15여 개의 언론 기관에 보도자료를 띄웠으며 여성네트워크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이 정도면 ‘공개적’으로 이뤄진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정된 후보들의 명단을 보면 유권자들의 추천과 지지를 ‘공개적’으로 받아 선정된 인물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102인의 추천된 여성예비후보와 그들을 추천한 추천인의 다수가 총선여성연대 참여 단체나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에 운영위원이나 준비위원으로 참여한 개인 또는 그들과 인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에서 여성예비후보로 처음에 102명을 추천했지만 그 중 1월 8일 발표에 포함된 사람이 이후 검증에 의해 탈락되고, 16일자 발표에는 또 다른 한 명이 빠지는 대신 다른 사람이 포함되는 일도 있었다. 결국 탈락자와 뒤늦게 추천된 사람까지 합쳐 전체 103인이 추천됐는데, 추천을 한 사람들은 전부 합쳐 75명뿐이다. 대학에서 학생회 선거를 할 때에도 후보가 되려면 수십 명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단 한 사람이 추천한 몇몇 여성후보들이 여성유권자들의, 혹은 국민의 후보로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가.

또 이들 중 혼자서 3명 이상을 추천한 추천인 6명 가운데 5명은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의 제안자, 준비위원 또는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나머지 한 명은 총선여성연대의 사업방향을 제시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전체 75인의 추천인 가운데 40여명은 이들 단체의 현직 또는 전직에 참여했던 여성들이다. 선정된 102명의 여성예비후보들 역시 그 중 60여명이 총선여성연대와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이거나 단체와 연관 있는 인사들이다. 나머지 40여명의 추천된 후보 가운데 16명은 정당에 소속된 여성으로, 각 여성단체와의 연관성이 없는 후보자는 전체의 24명 정도에 그친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추천했나. 처음 발표된 102명 가운데 7명은 추천인이면서 동시에 피추천인으로 나타났다. 즉 추천 받은 후보가 또 다른 사람을 후보로 추천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동일 조직 내에서의 현직 임원이 전직임원, 하급자가 상급자를, 동료끼리 서로 추천하는 경우도 있다. 102인의 후보자 가운데 45인의 후보가 자신이 속하고 있거나 속했던 단체에 속한 사람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한 단체의 사무국장이 대표를, 현 대표가 전 대표를, 현 대표가 현 이사를 추천한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무엇을 기준으로 선정했나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는 ‘도덕성과 신망성’, ‘사회발전과 공익성’, ‘전문성’, ‘민주적 리더십’, ‘양성평등의식 및 시민의식’을 후보선정기준으로 삼았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심사 기준인 ‘도덕성’은 ‘부정, 부패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네트워크의 정현백 대표는 부정부패에 연루된 인사는 배제했으며, 도덕성은 ‘O/X’로 걸러냈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부정부패 행위는 권력을 갖고 있는 경우에 가능하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부정부패를 할 권력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예비후보자로 추천된 대부분의 여성들도 그러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도덕성의 판단 기준을 했을 경우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여성후보는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단지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은 자라고 해서 도덕성을 담보한다고 볼 수만은 없다. 실제 후보 발표 이후에 선정된 후보들에 대한 도덕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안성 시민이라는 한 맑은정치네트워크 회원은 홈페이지 게시판에 선정된 명단 중 부도덕한 인사가 포함돼 있다며 어떤 기준으로 후보들을 선정했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어 그는 “진정 맑은 정치를 펼칠 여성 정치인을 원한다면 제대로 된 자료를 갖고 평가해야 한다”면서 “몇몇의 주변인들의 평가를 믿고 선정”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나섰다.

그뿐 아니라 맑은정치네트워크가 양성평등의식을 가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조항은 다음과 같은 ‘경력’들로 채워진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 부인모임 총무, 청소년지도자연합회 부인회장, 어머니회 이사, 여성회관 관장, 전문직여성클럽 임원직, 국제 여성봉사단체 감사 등. 또 양성 평등 및 시민의식과 관련된 경력난이 아예 공백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전체 101명 후보자 가운데 16명이다.

유권자에게 방향 돌려라

이미 더러워진 정치판을 새롭게 하기 위해, 정치개혁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소극적 차원의 도덕성이나 민주적 자질, 혹은 양성평등의식으로는 부족하다. 적극적 의미의 도덕성을 가진 여성, 기존의 남성 기득권에 저항하고 도전할 힘이 있는 여성, 기존의 가부장적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여성주의 의식을 가진 여성이 필요하다. 소극적 의미의 도덕성과 민주적 리더십, 양성평등관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에서의 후보자 선정 시 심사기준은 남성중심의 정치판을 바꿀 수 있는 여성을 선정하는데 미흡하다 보여진다. 또 이미 각 언론사에 102명의 명단을 발표한 뒤, 뒤늦게 한 명을 탈락시키면서 명단 발표 이후에도 ‘검증작업’을 계속해 새로 탈락자가 나올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은 102명의 선정 과정에서 검증과정이 불충분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이다.

올해 여성운동계의 중요한 화두인 여성정치세력화는 어느새 ‘국회의원 여성비율 5.9%를 끌어올리는 것’만을 의미하게 된 듯 하다. 그러나 여성의 정치 세력화는 결과로서가 아니라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여성의 정치 세력화는 단순히 여성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여성국회의원의 수가 30%, 50%에 이른다 해도, 그 수를 채우는 과정에서 민주성과 투명성, 그리고 여성주의적 원칙이 결여됐다면 그것은 여성의 정치세력화라 말할 수 없다.

또한 여성 정치세력화는 곧 여성유권자의 마인드와 발맞추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유권자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여성의 정치 세력화는 이루어 진 것이 아니다. 즉, 여성유권자들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여성정치세력화 운동은 방향설정을 제대로 했다고 볼 수 없다. 엘리트 여성 몇 명이 정치 권력을 가지는 것이 여성의 정치 세력화는 아니다. 여성유권자의 정치 의식의 심화 없이, 남성 정치인의 가부장적 의식 변화 없이 여성 정치세력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정된 여성후보의 자질과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여성유권자들의 힘이 그 후보들을 지원하고 받쳐주지 못한다면 공천과정, 선거과정, 그리고 이후 의정활동 과정에서 그 여성들은 힘을 가지기 어렵다. 여성 예비후보 선정 과정이 여성유권자 운동과 연계되어 이루어질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유권자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여성 리스트에 정당이 관심을 가질 리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여성정치세력화 움직임은 유권자에게로 방향을 급선회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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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처럼 2004/02/12 [17:49] 수정 | 삭제
  •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대해서 올바른 관점을 정립해주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활동하는 여성단체에서 함께 토론해보기로 했구요.
    에밀리 리스트를 비롯해 기획기사가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언제나 일다의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비판의 쓴소리 가득담긴 수준높은 기사를 기대해 봅니다.
  • 2004/02/07 [09:32] 수정 | 삭제
  • 멀리 내다 보는 안목이 있는 기사.
    합리적인 기사 잘 봤습니다. ^^
  • 어떤독자 2004/02/06 [12:07] 수정 | 삭제
  • 일다에 여러 좋은 기사들 잘 읽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만, 구체적으로, 유권자에게 눈을 돌리는 것이 어떤 방법을 말씀하시는 것인지,(대강 짐작을 할 수밖에 없네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기사 내용중에 102인 명단에 각 정당이 시큰둥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공천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 있지요. 민주노동당 또한 같은 반응을 보인다고 읽히는데, 민주노동당에는 공천이 '없습니다.'
    물론 민주노동당 또한 기존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다른 정당들이 헛짓거리 하고 있을 때, 오래전 부터 비례대표 50% 여성할당, 홀수 순번 여성할당을 제도적으로 정해놓고 시행하고 있습니다. 비례대표 또한 지구당 위원장, 공직후보와 마찬가지로 당원들의 투표로 뽑지요. 그 결과로 현재까지 경선으로 선출된 공직후보(국회의원후보)의 경우, 경선에 나온 여성당원들은 100%당선입니다.
    기사의 논점과는 관계없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왠지 함께 취급당한 느낌이 들어서요. 몇마디 중언부언 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민주노동당이 완벽한 정당은 아니지만, 다른 정당과는 달리, 여성문제에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서요.~

    앞으로도 좋은 기사 부탁드립니다.
  • 추미애반대 2004/02/03 [16:12] 수정 | 삭제
  • 추미애가 티비에 출연해서 그것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메스컴에서는 사회적으로 상위(?)지위에 있던 여성이
    가족이라는 질서속에서도 상위를 유지하는냐 아니면 사회적하위(?)
    에있는 남편이 가정속에서는 어떨것인가가 궁굼했겠지만

    거기에 추미애는 어니 하늘같은 남편을 헛투로 모실거 같으냐
    내가 국회의원일지모르지만 그것은 밖에서고
    나는 남편한테 아침을 굼겨보내는 막되먹은 여자가아니다라고 말하는듯 했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밥은 여성이 해야한다고 아직도 말해야 하나?

    나는 추미애의원이 진짜로 남편의 밥상을 차려 놓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밥상차림을 보고 표가 한표라도 늘었다고 생각한다
    내이이야기가 윗글의 댓글에 어울리지않지만 뭐라도 말하고 싶었다
  • 저런 2004/02/03 [15:11] 수정 | 삭제
  • 감정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애들이 정치하면 나라 망한다...
  • 2004/02/03 [00:22] 수정 | 삭제
  •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는 무엇보다 조직의 실체가 불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일다 기사를 보니 여성인맥 지도가 그려질 것 같군요.
    시민단체의 정치운동에 대해서 전반적인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기사 참조하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여 대안적인 운동으로서 에밀리 리스트에 대한 자료도 훌륭하군요.
  • mani 2004/02/02 [13:21] 수정 | 삭제
  • 운동단체가 뒤가 구린 데가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네. 저는 운동단체 사람입니다. 6년 넘게 운동해왔습니다. 한 곳에선 아니지만요. 운동의 방식은 정치인들처럼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의 리스트 선출 과정은 운동의 방식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군요.
  • 홍영희 2004/02/02 [11:51] 수정 | 삭제
  • 저번에 100분 토론 보고 일다를 방문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사이트가 열리지 않더군요. 잊고 있었는데 오늘 기사 검색을 하다가 일다 기사가 보이길래 다시 와 봤습니다. 여성정치참여가 주제였던 100분 토론은 제겐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던 토론이었습니다. 일다에서 나오신 분이 말씀을 정말 논리적으로 잘 하셨지만, 유권자 운동을 말씀하셨던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그리고 여성정치참여 운동이 방향타를 돌려야 한다는 기사를 네이버에서 보게 됐는데 깊이 공감했습니다.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의 여성대표 102명은 선정 과정도 그렇고, 정당에 받아달라고 하는 모습도 그렇고, 적극적인 여성정치 운동이라고 말은 하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선정과정이나 검증과정이 남성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운동하고 주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극적인 여성정치 운동은 유권자들을 동반한 운동이어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저만 해도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의 활동에 대해 알지 못하다가 뉴스에 여성후보 명단이 만들어졌다는 거 보고야 알았습니다. 명단도 이름이랑 한 줄짜리 직함만 나와있지 어떤 사람인지는 얘기도 안해주더군요.

    여성후보를 추천을 받으려면 추천자를 공개해서 좀 더 많은 추천과 검증을 거쳐야 하지 않았을까요? 세상이 여성을 무시하고 남자들이 여성유권자들을 무시해도 여성운동만큼은 여성들을 존중해야 여성들이 힘을 얻고, 여성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고리 2004/02/02 [11:00] 수정 | 삭제
  • 75명이 103명을 추천해서 명단을 만들었다는 건 좀 충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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