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여성의 정치참여에 주목하자

여성주의와 생태주의의 만남

최이윤정 | 기사입력 2004/03/28 [18:00]

지역여성의 정치참여에 주목하자

여성주의와 생태주의의 만남

최이윤정 | 입력 : 2004/03/28 [18:00]
“여성은 썩은 시냇물에서 주류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세계여성환경개발기구(WEDO : Women's Environment & Development Organization)를 창시한 환경운동가 미국의 벨라 압죽(Bella Abzug)의 말이다. ‘녹색정치’, ‘여성정치’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긴 하지만, 과연 얼마나 진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지는 실체가 불분명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지난 24일, 여성환경연대 주최로 ‘여성주의와 생태주의는 어떻게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들 것인가?’ 월례포럼이 열렸다.


풀뿌리 여성정치세력화 필요

녹색정치와 페미니즘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녹색정치준비모임의 서형원 간사는 이영자 교수(카톨릭대)의 말을 빌어 “녹색 정치와 페미니즘의 정치는 모두 국가주의, 자본주의, 인종 차별주의, 성차별주의와 같은 기존 지배구조와 지배 문화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저항적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운동과 여성주의는 그 이념과 가치지향에서 녹색정치의 소중한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여성이 녹색정치의 주체로 부각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여성이 풀뿌리 생활경제의 주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형원 간사는 “녹색정치는 자치의 정치”라면서 “국가 단위의 조직보다 풀뿌리 자치운동이 정치적 실체다. 말하자면 지역정당이 되고 이들의 수평적 연대가 위계적인 전국정당을 대신한다”고 말했다. 서 간사는 한국여성민우회가 2002년 지방선거에서 세 명의 독자후보를 출마시켜 두 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것에 대해, “기성정당을 거치지 않고 정치 영역에 진출한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런 경험이 향후 지방자치를 통한 여성 정치세력화를 추진할 수 있는 분기점이 될 수 있으리라는 전망과 함께.

현재 스웨덴의 녹색당 슬로건 중의 하나는 “알러지(allergy)가 정치”라고 한다. 도시와 공기, 먹거리, 살 집 모두가 우리 삶을 쾌적하게 하기는커녕 우리 자신과 아이들의 생활에 최대의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우리의 경우, 전혀 정치적 의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서형원 간사는 이러한 현실이 “아이들, 여성들이 정치적 주체로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이를 대변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지역여성의 정치 참여를 강조했는데, “풀뿌리 생활정치를 가능케 하는 여성주체를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지역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여성단체 활동이 그런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대를 비췄다. 이것이야말로 ‘끼어들기’가 아닌 여성정치의 ‘새판짜기’ 전략이라는 것이다.

여성이 정책개발 전문가 자격 가져야

이를 위해선 여성들의 활발한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기존의 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서형원 간사는 “일례로 방과후 학교 문제 등에 있어서는 여성이 전문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참여하기 어려운 구조”라면서 “여성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여성개발원 김양희 선임연구위원은 무엇보다 환경정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 여성들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범 부처 차원의 ‘여성과 환경정책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을 제안하면서, “관계부처의 공무원뿐만 아니라 여성 환경전문가, NGO, 여성기업인, 여성농업인 등이 참여해 환경정책을 개발하고 모니터링을 하는 등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양희 연구위원은 “환경운동 내부의 남성중심성과 여전히 낮은 여성의 지위 등으로 인해 여성의 입장에서 필요한 환경문제들이 아직 의제화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보다 많은 여성들의 참여를 가능케 하기 위해 “정책 개발 과정에서부터 여성 참여와 성평등 관점, 추진 과정에서의 민주적 방법 등을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집중화된 권력, 지방분권화 절실

민주노동당 최순영 부대표는 “실제로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한 여성들이 경선에서는 다 떨어지는 등 기성 정당에 들어가선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며 기성 정당에 편입하는 방식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어 “여성정치 ‘참여’와 진정한 여성정치세력화는 아버지, 남편의 후광을 입은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는 게 아니라, 여성의 삶의 정치로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순영 부대표는 지역정당에 여성의 참여가 높은 일본의 사례를 들면서, “이들은 생활협동조합 등을 통해 굉장히 조직되고 훈련된 여성들”이라고 말했다. 지역에서 활동으로 인정 받고 준비된 여성이야말로 삶의 정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곧바로 기득권으로 연결되는 권력의 집중 현상을 해체, 축소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여성의 정치참여 기반을 넓힐 수 있도록 “지방자치를 튼튼히 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연구원 김정희 연구교수는 “지역의 공공화, 풀뿌리 시도 없이 중앙에서 일거에 법 제정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법의 조건에 현실을 맞출 게 아니라 현실에 맞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책이 손 닿지 않는 곳에 여성의 현실이 존재한다”며 “여성 삶의 질의 상당 부분은 지역에서의 삶인데, 현재처럼 지방분권이 안 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정책들은 필연적으로 한계를 갖는다”고 못박았다. 지역여성의 삶을 정치적 의제로 만들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총선보다 지방선거가 관건

이날 토론회에서는 무엇보다 중앙 집중화된 권력을 지방분권화하는 것과 함께 지역여성의 정치 참여가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지역으로부터, 그 공간에 발 붙이고 있는 여성들의 참여를 활발히 유도하는 것. 그것이 여성들의 삶의 문제가 ‘정치적 의제’가 될 수 있는 실질적인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서형원 간사는 그런 의미에서 “당장 총선이 아니라 향후 2006년 지방선거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긴 호흡으로 멀리 보며 가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토론회 참가를 위해 창원에서 올라왔다는 경남 한살림의 한 회원은 “지역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주변인, 소외된 자라는 경험을 많이 했다”며 “주변인의 눈으로 세상 바꾸기에 적극적으로 노력하자는 게 바로 여성정치세력화의 의미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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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개 2004/03/29 [23:09] 수정 | 삭제
  • 좋은 이슈들이 많이 얘기가 된 자리였던 것 같네요.
    지방사람이라 참석을 못했는데 기사를 통해서 좋은 정보를 얻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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