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회 여성노동의 현실 파헤쳐

어슐러 휴즈의 <싸이버타리아트>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4/04/11 [21:50]

정보사회 여성노동의 현실 파헤쳐

어슐러 휴즈의 <싸이버타리아트>

김윤은미 | 입력 : 2004/04/11 [21:50]
“집안일은 노동이 아니”라는 편견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또한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집안일의 양이 줄었다고도 생각된다. 이는 서로 연결되어 가사노동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 즉 그다지 힘들지 않은 가사노동, 여성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청소기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절대적인 노동량은 분명 차이가 난다. 그러나 하나의 기기 유무로 비교할 경우 여성이 부닥친 노동의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즉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노동 양상의 변화와 함께 가사노동의 종류가 늘어나고, 가사노동의 성격 자체가 변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정보기술 발전으로 소비노동이 증가했다

어슐러 휴즈의 <싸이버타리아트>는 기술 발전에 따른 현대 노동 양상 변화를 맑시즘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책이다. 그녀는 고전적인 맑시즘이 잘 다루지 못했던 문제들 - 여성노동 문제, 가정의 문제, 사무 노동자 문제, 정보 통신 기술의 영향 등을 고찰한다. 때문에 <싸이버타리아트>에는 여성노동과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또한 저자가 출판업계 노조활동가 출신으로 동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를 추구했기에, 다른 노동 관련 이론서에 비해 접근도가 높다는 것도 장점이다. 제목 ‘싸이버타리아트’(Cybertariat)는 정보 기술의 발전에 따라 불안정한 노동 환경에 놓이게 된 사무 노동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저자는 20세기에 기술이 발전해서 고용이 줄어들어도, 대량실업사태가 야기되지 않은 원인을 화폐경제 밖에 있던 살림살이의 상품화에서 찾는다. 우선 자본주의 내에서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노동력이 상당부분 필요 없게 되어도, 대량실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규 사업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가 보기에 20세기에 등장한 신규 사업의 대부분-라디오, 텔레비전, 음향기기 같은 산업, 냉동식품 등 편의식품 산업, 세탁기, 냉장고, 기타 가전 산업, 화장품 산업 등-이 가내 노동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큰 소리로 글을 읽는 것, 전반적인 가족 오락 거리를 제공하는 것, 음식을 준비하고 보존하는 것, 가족을 돌보는 것,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 등의 일들이 이제 상품화됐다.

그런데 살림살이이의 사회화는 살림살이에 드는 전체시간을 줄이지 않는다. 그녀는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한다. 첫 번째로,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이른바 셀프 서비스라 불리는 ‘소비 노동’의 양이 늘어난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은 대형 슈퍼마켓의 상품 진열대에서 직접 물건을 담고, 채소를 직접 봉지에 넣고, 주유소에서 주유하고, 은행의 자동 입출금 기계에 줄 서는 일을 해야 하는데, 이 역시 노동이다. 이 소비자들의 대부분은 여성이다.

두 번째로 20세기에 등장한 가정학 운동, 미생물 병원설, ‘과학적 모성’의 발전으로 여성들은 더 많은 노동을 수행해야 했다. 저자는 이 상황을 “가을에 겨울철 속옷을 짓고 봄이 되어서야 풀어 빨던 이들은 매일 속옷을 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손자들을 낳고 말았다”라고 재치 있게 표현한다. 세 번째로 여성들은 공동체적 생활에서 이탈해, 각자의 집에서 고립되어 가사노동을 수행하기에 오히려 이전보다 노동 시간이 더 늘어난다. 그리고 ‘공적인’ 일터와, ‘사적’ 가정이 엄격하게 구분되고, 가정이 소외되고 짜증나는 노동 환경의 도피처로 여겨지면서 정서적 욕구의 충족역할 역시 주부에게 넘어가게 됐다는 것이다.

보살핌 노동과 여성건강의 상관관계

한편 살림살이의 사회화, 상품화를 통해 창출된 새로운 일자리의 대부분은 여성들에게 돌아간다. 여성들은, 그 이전보다 살림에 돈이 많이 드는 상황 속에서 맞벌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노동 시장으로 나서게 된다. 살림살이의 사회화는 처음에는 ‘사치’로 여겨지다가,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노동 계급에게로 전파되며 이는 생활수준의 향상이라고 환영 받는다. 시간이 지나면 이는 필수적인 것이 되는데, 이는 사회시설 등이 누구나 이를 갖추고 있다는 전제 아래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일자리들은 ‘미숙련’ 노동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가장 값이 싼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여성들에게 많이 돌아가는 것이다 특히 가난한 여성, 이주민들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여성들은 집중공략 대상이 된다.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여성의 건강에 대한 설명이다. 저자는 노동환경이, 의학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질병 이외에도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불편함, 긴장, 불행한 느낌을 포함한 나쁜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의 건강과 관련된 대표적인 이슈는 생리, 임신 및 출산 문제다. 여성이 생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노출할 경우 사회적인 불편한 시선에 노출될 수 있으며, 그렇다고 해서 아예 이슈화하지 않을 경우 여성들이 사적으로 다양하게 느끼는 불편함(생리통, 소화불량 등)이 드러나지 않게 된다. 임신과 출산 역시 어려운 문제인데, 특히 태아와 엄마를 분리하고 엄마를 태아의 운반자로 여겨서 엄마가 일하는 것 자체를 태아에게 위험을 끼치는 것으로 보는 보수적인 관점은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을 더욱 어렵게 한다.

저자는 남성의 몸과 여성의 몸이 생리적으로 다르다는 점 이상으로 여성이 일터에서 겪는 불행이 많다고 지적한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수행하는 일은 집에서 하던 일을 직간접적으로 연장한 것이 많으며, 때문에 이 일들은 보살핌과 관련이 깊다. 보살핌 노동은 보살피는 주체에게 항상 시선이 주목되므로, 여성들은 자신의 복지를 등한시하고 보살피는 자에 의한 잘못이라는 죄의식을 내면화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환자들과의 접촉에서 일어나는 간호사들의 문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여성들의 직장이 더 열악하다는 점도 여성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가능성이 크다. 저자는 비서 임무와 문서 입력 등 여성들이 맡는 일이 남성들에 비해 비교적 좁은 범위에서 반복적인 움직임을 지속하는 일들이 많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남성노동자와는 또 다른 건강 상해를 가져온다.

좌파 남성지식인들의 허영 비판

이처럼 저자의 관심은 고전적인 사회주의 이론체계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노동 문제들을 풀어내는 데 있다. 그는 사회주의가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한 현대의 사무 노동자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전통적인 맑시즘은 사무 노동자를 프롤레타리아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유무로만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를 구분하는 것은 노동이 세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한계로 지적돼 왔다. 특히 그는 ‘화이트칼라’와 같은 명칭이 남성 사무직 노동자를 지칭하는 말이며, 정보통신기술의 변화에 따른 노동자들의 노동 양상 및 여성노동자들의 지칭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좌파 남성지식인들이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된 노동계급의 특징을 낭만화하고, 하나의 특정한 전형으로 만드는 태도에 대해 지적한다. 몇몇 남성 육체노동자에 대한 거의 물신 숭배적 집착, 자신들의 노동계급 선조를 경쟁적이면서도 집착적으로 내세우는 것, 여성주의는 중산계급적인 것이며 ‘진짜’ 노동계급 남성을 소외시킨다는 주장을 하는 것 등은 그들 지식인들의 역사적 위치와 관련이 깊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영국의 전후 복지국가 체제 덕분에 신분이 상승한 노동계급의 자식들로서, 아버지 계급을 배신했다는 불안과 ‘이상화된’ 노동 계급 남성의 존경을 받고 싶다는 욕구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현실에 대한 대안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비정규직화, 집안의 일터화 경향으로 인해 점점 분산되는 노동자들은,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국제적으로 비슷한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조직화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대안을 고민하는 저자의 방식은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집단들의 아직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분석하는 데서 대안이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신한 여성들이 태아 검사를 더 자주 하길 원하는가,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훈련된 산파를 원하는가? 살림살이에는 실제로 어떤 노동이 요구되며 그 노동을 가장 잘 사회화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노동과정을 더 만족스럽고 안전하게 바꿀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이 그것이다. 이는 소외된 노동자들이 당면한 현실과 그들의 경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출발지점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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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ngjum 2004/04/16 [11:22] 수정 | 삭제
  • 이 책의 장점은 여성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정치경제학이라는 점과 여성적 글쓰기의 힘이 아닐까 생각된다. 읽고 나니 다른 분들에게도 추천해 주고 싶다. 촣은책 추천에 일다에게 감사를^^!!
  • may 2004/04/14 [00:20] 수정 | 삭제
  • 어슐러 휴즈의 이 책의 내용을 보니까 정말 여성의 시각은 기존 남성들의 시각과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를 해도 다른 시각으로 한다는 생각이요.

    기존 사회주의 이론이 다루지 못하는 현실의 노동의 모습을 접근한다는 것이 멋진 작업이기도 하고,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데에서 더 의미있는 일 아니까 싶네요.
  • Quee? 2004/04/12 [23:35] 수정 | 삭제
  • 하는 얘기가 그 쪽도 우리랑 비슷한 것 같네요? 진짜 노동계급은 남성이라고 생각하죠. 별로 논리적이지도 않으면서 잘난 척 하고. 페미니스트들 욕하고. 어이가 없어서. 한국 좌파들만 그런 줄 알았는데 세계적인 현상인가 보네요.
    여성노동, 그 다름에 대해 관심 많이 갸지고 있었는데 정리가 되느 것 같아요. 일다에선 좋은 책 소개 많이 받아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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