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 노동자들과 빈민들이 주체가 되어 빈곤에 저항하고, 인권을 보장 받기 위한 연대조직이 결성돼, 직접행동에 나섰다. 기존 시민단체와 정규직 중심 노조의 운동이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데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빈곤의 덫’에 빠진 당사자들이 자신의 공통의 요구를 내걸고 권리를 찾겠다는 움직임이라 주목된다.
가난한 이들, 빈곤의 악순환 끊겠다 ![]() 이에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지난 달 31일 숭실대학교에서 출범식을 열고 본격적인 연대활동을 결의하고 나섰다. 공동행동은 ‘안정적 일자리 창출’과 ‘기본생활을 영위하기 최저임금 및 최저생계 보장’이라는 2대 요구를 행동목표로 내걸었다. 공동행동은 비정규직, 실업, 이주노동, 장애, 산재와 관련된 개별 운동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2001년과 2002년 ‘민중복지한마당’을 그 전신으로 하는 운동조직이다. 빈곤사회연대(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비정규대표자연대회의(준), 인권운동사랑방, 이주노동자인권연대 등 15개 단위들이 공동행동 선언기획단에 함께했다. 출범식에서 빈곤사회연대(준) 유의선 사무국장은 “공동행동이 사회운동 진영에서 관성처럼 되어버린 형식적인 연대를 지양하고, ‘하나의 행동을 중심으로 모두의 요구’를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소통의 장이 될 것”이라며, “주류 ‘노조조직체’에서 배제된 개별 주체들이 ‘행동’을 통해 연대하는 투쟁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정부 일자리 정책, 불안정 노동 확산우려 공동행동은 출범식 이후 ‘사회적 일자리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 사회적 빈곤의 실상과 대책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다. 사회복지와노동 포럼팀 김종건씨는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장유연화의 첫 타깃이 되는 집단으로 70% 이상이 비정규직 상태에 있다. 이들은 사회적 안전망으로부터 배제된 채 괴로운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 비정규직의 평균임금(82만원)은 남성 비정규직 임금(125만원)에 비해 현저히 낮아서 노동을 해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들며, 심지어 위탁양육비가 임금을 능가해 노동을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집행위원장은 “(정부의) 실업률 계측방식이 ‘실망 실업자’(구직활동을 포기한 경우,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는다)의 실태를 은폐할 뿐만 아니라, 현재 임금을 받는지 여부만을 조사하기 때문에 불안정 고용상태를 정규 임노동과 동일한 차원의 ‘취업상태’로 측정하는 우를 범한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내놓고 있는 일자리 창출 정책들은 ‘안정적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불안정한 일자리를 양산하는 정책’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히 취약계층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보육, 간병인 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창출 정책의 경우에는 “본래 사회적으로 필요했던 일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시혜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해 준 것처럼 생색을 낸다”고 꼬집었다. 김혜진 집행위원장은 이어 “공익적 일자리라는 명목으로 간병인에게는 저임금을 감수할 것을 강요하면서도, 정작 서비스 이용비용은 환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이중적 태도를 지적했다. 덧붙여 “간병인과 환자가 간병인 수당을 놓고 싸우는 비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가 공공서비스 분야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해주고, 서비스 이용비용은 사회적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 노동시장 참여 늘어도 고용의 질 ‘하락’ ![]() 정지현씨는 2001년 개정된 모성보호법이 여성노동권을 ‘평등이 아니라 보호’라는 프레임으로 보고 있다는 점, 사회보험과 사회부조에서 여성이 수급권을 확보하기 어려운 점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리고 여성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으로 “여성이 스스로를 사적 영역의 소비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호명하는 이데올로기적 저항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공동육아처럼 재생산노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여성노동자를 지역단위로 조직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육아, 보육을 고려하는 이러한 전략이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를 고착화시키지 않을 수 있는 지혜로운 후속 대안들이 고민되길 바란다”고 첨언했다. 여성노동자 공동행동 핵심주체 맞나 의문도 공동행동 출범은 기존의 노동, 빈민운동이 보조적인 운동세력으로 간주했던 비정규직, 실업, 장애, 이주, 여성노동자들을 운동의 핵심주체로 선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운동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와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실천은 그 선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일자리 지지냐, 반대냐’를 두고 공동행동 참가들의 주장은 “평행선을 그었”고, 공동행동이 운동 주체로 상정하고 있는 장애, 이주, 산재노동자에 대한 논의가 막상 토론회에서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특히 여성노동권을 주제로 한 발표는 총 4섹션 중에 한 섹션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물리적인 시간으로는 전체 3시간에서 15분 정도만이 할애되었을 뿐이다. 마지막 토론순서로 잡혀있었던 ‘서울대 간병인 노조’ 사례와 ‘여성의 빈곤화’에 대한 논의는 생략됐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사회복지와노동 강동진 편집장은 “2001년 민중복지한마당에서부터 여성노동권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었으나, 여성노동권 운동을 이끌어나갈 주체가 서지 않아 연대운동 내부에서 공론화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미흡하지만 이번 토론회가 연대의 첫걸음을 내딛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자평했다. 주변화된 여성과 빈민의 관점 살려야 공동행동의 관건은 빈곤사회연대(준) 유의선 사무국장의 지적대로 먼저 “거대한 중심조직이 없이 사회적 물리적 공간에 분화되어 있는 개별집단들을 어떻게 운동의 ‘주체’로 조직해내느냐”에 있다. 나아가 조직된 운동주체들의 다양한 요구를 다시 ‘하나의 행동’으로 묶어내기 위해서는 단지 각자의 요구를 나열하는 데에 그치기보다, 이를 ‘불안정노동과 빈곤’을 바라보는 핵심 관점으로 인정하고 통합적으로 재구성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여성의 노동은 ‘권리’가 아니라 가족을 위한 ‘의무’로 여겨져 왔다. 1960-1970년대 여성노동자는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딸’로서, 현재에는 비정규직화된 ‘가부장’의 감소한 임금소득을 보충해야 하는 ‘아내’로 불릴 뿐, 독립된 노동자로 인정 받지 못했다. 또한 감정 노동, 보살핌 노동, 부업이라는 이름으로 저임금을 강요 받고 있기 때문에 동일시간을 노동하는 남성보다 언제나 가난했다. “현재의 정적인 ‘신빈곤’ 개념은 개인이 경험하는 빈곤의 역동성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사회복지와노동 김종건씨의 지적은 여성노동자에게도 유효하다. ‘개별여성’의 빈곤실태가 ‘가계’나 ‘가구주’를 중심으로 하는 빈곤 계측방식에 가려져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노동자와의 실질적인 연대는 단순히 운동지침과 선언에 여성노동권관련 항목들을 ‘많이’, ‘첨가’함으로써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간 ‘성별’을 고려하지 않고 문제제기 되어왔던 ‘불안전노동과 빈곤’을 다시 사고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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