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이 뭐길래

‘혈연주의’가 입양을 막는다

문이정민 | 기사입력 2004/08/30 [00:38]

핏줄이 뭐길래

‘혈연주의’가 입양을 막는다

문이정민 | 입력 : 2004/08/30 [00:38]
6년째 인공수정을 시도해도 임신이 되지 않아 입양을 고민했던 L씨(여, 48세)는 남편과 함께 입양을 결정했지만 시부모님의 반대로 입양을 할 수 없었다. “근본도 모르는 씨를 데려다가 키울 수 없다는 거죠. 심지어 저를 설득하면서 ‘씨받이’를 구해 낳자고 말씀하시더군요. 이왕이면 씨는 제대로 된 아이를 키워야 할 것 아니냐면서.” 이처럼 ‘핏줄’을 중요시하는 한국의 혈연중심 문화 속에서 ‘씨가 다른’ 아이를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국내입양을 어렵게 하고 있다.

“호적 있는 아동은 입양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설령 입양을 결정하게 되어도 남자의 호적에 올릴 수 있는 ‘친자입적’을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방사회복지회 장은주 국내입양 상담원은 “국내입양의 경우 아이를 못 갖는 부부가 온갖 노력을 다 하다가 마지막으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우리 나라는 친자에 대한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아직도 주변에 임신한 것처럼 하고 입양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국내입양은 거의 친자로 하고, 마인드가 열려있는 경우 호적에 양자로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흔치 않다”고 말한다.

대한사회복지회 사이트에는 ‘입양부모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아동결연은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라는 제목으로 “먼저 양부모가 원하는 아동의 성별을 보고, 혈액형을 양부모와 맞추고, 아동신체검사결과와 친부모의 배경 등을 참고하여, 가능하면 양부모의 이미지와 비슷한 친부모의 아동을 추천합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입양부모들이 갖고 있는 친자에 대한 욕구와 최대한 입양사실을 숨길 수 있는 조건에 들어맞는 아동을 추천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로 불임부부들은 ‘친자에 대한 욕구’를 기반으로 입양을 하기 때문에 국내입양은 거의 호적에 친자로 기입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 이뤄진다. 즉 이미 호적을 갖고 있는 아동의 경우 국내입양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부모가 시설에 맡기고 소식이 없는 아동이나 부모의 이혼이나 사망 등으로 입양이 요청되는 경우가 무수히 존재하지만 이러한 아이들은 이미 호적이 있기 때문에 국내입양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입양 관련 복지관 사이트에 올라온 상담리스트를 보면 호적이 있는 아이들의 입양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알 수 있다. 일과 양육을 병행하기 힘든 열악한 상황에서 보다 나은 조건으로 자녀를 입양시키고자 하는 이혼여성의 문의에 대해 “국내입양의 경우 대부분의 양부모님들이 나이가 어린, 특히 호적이 없는 아동을 입양하여 친자처럼 양육하길 원하며 해외입양의 경우에도 어린 아동을 입양하기 원하며 보호자가 있는 아동, 특히 호적이 있는 아동은 입양이 거의 불가능하다”라는 답변이 올라와 있다.

‘입양사실 밝히는 것이 좋은가’ 갈등

이처럼 입양가정에서 친자입적에 집착하는 것은 무엇보다 ‘입양’에 대한 편견이 난무하는 사회 속에서 입양사실이 들어날 경우 부모에게나, 아이에게나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배태순 교수(경남대학교 사회복지학)는 ‘국내입양부모들에 대한 권고’ 글을 통해 “한국의 문화적(文化的) 요소인 강력한 혈연의식은 부(父)와 혈연으로 연관되지 않은 자녀의 경우에, 그 자녀의 가계계승 및 자녀로서의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는 경향이 있다. 또한 정당한 혼인관계 외(外)의 출산은 사회에서 존경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입양이 밝혀지게 되면 입양된 자녀는 사회에서 이에 상응하는 낮은 대우를 받을 가능성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 국내 입양부모들이 입양사실을 밝히는 것과 관련해 빠지게 되는 딜레마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나 배 교수는 “입양부모가 입양의 사실을 끝까지 밝히지 않을 때에는 신뢰에 바탕을 둔 좋은 부모자녀관계를 입양아와 함께 형성할 수 없게 되며, 이것은 입양부모와 입양아 모두에게 고통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개인정보 공개하는 호적제도도 한 몫

한편, 양자입적을 하는 경우 이미 호적을 통해 입양시기 등 기타 모든 사항이 적나라하게 문서화되고 정보가 공개되기 때문에 입양부모들은 더욱 친자입적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법률상담소 박소연 상담위원은 “독일의 경우 열람 시 입양사실 등 개인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입양사실을 알 수 없도록 범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보유출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 입양기관의 상담원 김모씨는 “해외입양의 경우 호적이 별 문제가 안되지만, 일하는 입장에서 봐도 국내에서 양자입적은 걱정이 많이 된다. 입양특례법 상에 비밀보장이 돼 있어도 호적법상 호적에 입양신고가 됐을 때 아이가 언제 후견인 동의 하에 입양됐는지, 양부양모가 누군지 모든 정보가 호적을 통해 다 드러나기 때문에 받아들일 가정이 드물다”고 말했다.

김씨는 “공개입양이 점차 늘어나고는 있지만, 공개 입양을 하는 가정에서도 입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가진 사람이 아이를 차별하거나 불이익을 줄 까봐, 친자입적을 하기를 원한다. 양자입적은 호주제 폐지되고 호적법이 바뀐다고 하면 생각을 해보겠지만 지금 현실에서는 어려운 면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같이 반문했다. “사실 친자입적을 하는 것은 가짜가 아닌가.” 입양한 아이를 친자호적에 올려 ‘핏줄’로 각인시키려는 허구적인 혈연중심주의를 지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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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가 2004/09/01 [00:19] 수정 | 삭제
  • 핏줄이 뭐길래??? 문기자 당신 자식낳으면 알꺼야~~ 핏줄이 뭔지~~~혹시 기혼여성?? 그러면서 핏줄이 뭐길래??? 라고 이런 기사쓴다면 할말없다~~내가 졋다~~지새끼 놓고도 핏줄이 뭐길래 쓴 사람한테 무슨말을 하리요~~~
  • 풀피리 2004/08/30 [22:55] 수정 | 삭제
  • 너무 놀랐는데 제가 아는 집이 씨받이로 아들을 얻는 집이 있더군요. 요즘 세상에 그런 일이 있다는 게 너무 놀랐는데, 그런 걸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더 놀랐습니다. 진짜 핏줄이 뭐고 아들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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