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입양을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부쩍 눈에 띈다. 공중파 방송에서 입양될 아이를 맡아 키우는 과정을 소개하기도 하고, 연예인들이 입양 홍보대사로 나서기도 한다. 또 여성연예인을 대상으로 ‘일일 엄마 되기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한다. 미혼모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강고한 한국에서 ‘버려지는’ 아이도 많을 뿐더러 경제적인 조건 등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부모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혈연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남의 아이’를 선뜻 받아들이려는 가정이 별로 없다. 그리고 정작 실제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도 입양하기 힘든 실정에 놓여있다. 입양자격, ‘혼인 중일 것’ 얼마 전 아침방송에서 탤런트 김혜수씨는 “결혼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아이 욕심은 많이 있다”면서, “입양도 생각해봤는데, TV에서 위탁가정 얘기가 나오는 걸 보고 전화를 걸었더니 자격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 안타까움을 표한 바 있다. 이유는 김씨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기 때문이다. 레즈비언 커플인 Y씨 역시 “입양자격도 안 되고, 아이를 가지려고 정자은행에 가려고 해도 한국에선 불가능하다”며 답답증을 호소했다. 각 입양관련 복지관의 사이트를 보면 “입양은 결혼한 사람만 할 수 있는지”가 ‘입양에 대해 자주 하는 질문’으로 올라있는데, 이에 대한 대부분의 답변은 “양부모 되기 위한 자격은 결혼한 부부가 기본 조건”이라는 것이다. 입양기관에 적용되는 입양촉진및절차에관한특례법(이하 입양특례법)에서 입양자격을 ‘혼인 중일 것’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입양을 추진하는 대부분 입양기관들이 이 법에 의해 입양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소위 ‘정상가족’ 모델에 기반해 입양자격이 한정돼 있는 셈이다.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에 비해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애초에 입양자격을 ‘결혼한 이성애자 부부’로 한정하는 자격조건은 과연 얼마나 합당한 것일까. 동방사회복지회 장은주 국내입양 상담원은 이처럼 혼인 중인 부부로 입양자격으로 두고 있는 것에 대해 “아이들이 미혼모로부터 버려지는 경우도 많고, 가정에서 엄마아빠 사랑을 골고루 받지 못한 결핍감이 있기 때문에 한쪽 사랑만 받게 하는 것보다 엄마와 아빠가 있는 가정에 보내 양쪽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한부모 관련 상담과 사업을 진행해온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 성상담소 이찬희 상담부장은 “우리 사회에는 아이는 엄마, 아빠 밑에서 커야 한다는 통념이 뿌리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성교육 나가거나 상담을 나가보면 엄마, 아빠와 같이 커도 가정폭력 등 문제를 겪는 아이들이 많고, 한부모 가정의 아이보다 안정적으로 큰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상담부장은 “단지 엄마, 아빠가 존재하는 정상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양육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며, 부와 모의 존재가 양육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고 얘기한다. 이어 “우리 머릿속에는 엄마아빠로 구성된 정상가정의 아이만이 정서적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지만, 실제 그것은 허구고 가상적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아이가 힘들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물론 입양 당사자인 아이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동방사회복지회 장은주 국내입양 상담원은 무엇보다 “비혼 여성이 아이를 입양하면 ‘부’(아버지)란이 비어있는 소위 ‘사생아 호적’이 되기 때문에 아이가 자라면서 상처를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정법률상담소 박소연 상담위원 역시 “사회가 발전하면서 여성의 사회활동도 많아지고 그만큼 여성의 경제력이 높아지고, 또 점차 비혈연으로 이뤄진 가정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입양을 희망하는 비혼 여성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타인의 편견과 사회 전반의 부정적인 인식이 없다면 이를 긍정적으로 봐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제반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혼 여성이 아이를 맡을 경우 아이가 감당해야 할 고통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강고한 한국사회에서 현재 한부모 자녀들이 겪고 있는 편견과 비슷한 맥락이다. 아직도 이들은 ‘결손가정’이라는 딱지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가족의 모습이 점차 다양해지며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이 ‘정상’이라고 보는 믿음이 도전 받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에 따라 호주제와 마찬가지로 입양자격을 ‘혼인중인 부부’로 고집하는 것은, 법과 제도가 현대인들의 삶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채 ‘정상가족’ 이외의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높다. 김엘림 교수(방송대 법학과)는 입양특례법상의 입양자격에 대해 “이는 법적으로 인정되는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만 입양자격을 부여하고, 현재 이성애적 혼인상태에 있지 않은 독신자, 동성애자 부부 등은 입양을 할 수 없게 하므로 혼인여부와 상태를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민우회 이찬희 상담부장은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이 자신만 이상한 가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다가 다양한 행사를 통해 점차 같은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 당당해지는 모습을 본다”면서, “이제는 사회적인 기반이 바뀌어야 할 때다. 다양한 가족선택권을 인정하고 다양한 가족형태를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법체계도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부모나 입양 자녀의 경우 “부모가 처한 현실을 알려주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상의하고 설명하면서 동등한 인격체로 아이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 편견 때문에 쉬쉬하거나 숨기기 보다는 아이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갖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편견이 부당하다면 아이들로 하여금 그 편견을 외면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편견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양기관장의 판단에 따라 예외 적용 가능 혼인하지 않은 자가 입양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유명 남성인사들 중에 입양을 통해 자녀를 양육한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는 경우도 있다. 현재 민법에 의한 일반입양의 경우 당사자가 합의하면 혼인 중이 아니더라도 입양은 가능하다. 단 이때에는 성과 본을 변경할 수는 없다. 민법에 의한 양자입적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례는 아주 드물다고 볼 수 있으며, 친부모와 양부모가 아는 사이일 경우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입양특례법상 혼인여부를 입양자격으로 두고 있긴 하지만 입양기관장의 재량에 따라 예외가 적용될 수 있다. 실제 한 사회복지회의 경우 입양기관자의 책임 하에 혼자 살고 있던 위탁모에게 아이를 입양시킨 적이 있다. 입양가정을 찾을 수 없는 아이의 상황에서 시설보다는 아이를 사랑하고 키우길 원하는 여성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나은 양육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입양기관장이 아이에게 더 나은 양육환경을 보다 현실적으로 판단해 예외를 적용한 경우다. 사실상 아이에게 좋은 환경이 진정 무엇인지는 ‘혼인 상태’라는 틀을 넘어 재고되어야 할 일이다. 국내입양이 저조한 원인이 한국의 혈연중심주의와 정상가족중심의 편견이라고 할 때, 입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연예인을 통한 화려한 홍보보다는 입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입양의 요건은 철저히 검증되어야 할 문제지만, 지금처럼 ‘혼인’을 입양자격으로 한정하고 있는 것은 법이 앞장 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공고화하여 국내입양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을 비껴가긴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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