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 노동자’상 문제있다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주변화되는 이유

김창연 | 기사입력 2004/09/19 [22:38]

‘이상적 노동자’상 문제있다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주변화되는 이유

김창연 | 입력 : 2004/09/19 [22:38]
<필자 김창연님은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센터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많은 경우 임신과 출산, 양육은 여성들의 노동권을 위협하는 문제가 되고 있다. 이것이 여성 한 개인만의 문제가 결코 아님에도 그 모든 짐이 여성들에게만 지워지면서 일도 하고 출산, 양육도 해야 하는 여성들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아이도 낳고 싶고 동시에 성차별적 노동시장에서 버티기도 해야 하는 여성들. 그들은 그래서 “내 스스로의 경쟁력을 낮추지 않기 위해 출산휴가를 2개월만 사용”하기도 하고, “출산 후 3일 만에 업무에 복귀”하는 엄청난 “전투성”을 보이기도 한다.


올 한 해 동안 일, 출산, 양육을 평등하고 조화롭게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의 다양한 경험을 접하고 있다. 그리고 제도뿐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들이 요구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문제제기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노동과 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가에 대한 물음, 그것이 무엇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여성노동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에는 “어떠한 사람이 바람직한 노동자이다”라는 암묵적인 정의가 있는 것 같다. 자신도 가정도 돌보지 않고 조직에만 충성하는 노동자, 회식자리에는 끝까지 남는 것이 절대 가치여서 다른 사람까지 붙잡는 노동자, 상사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예의바른 노동자, 언제나 일이 우선인 워커홀릭인 노동자가 바람직하다는 통념 말이다.

이러한 사람이 훌륭한 노동자라고 인식되는 한, 어느 누구도 직장과 가정을 동시에 조화롭게 만들 수 없다. 가정을 돌볼 것이냐, 아니면 이상적인 노동자가 되어 회사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할 것이냐. 양자택일을 해야만 한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은 내가 양육을 담당하는 날이어서 정시에 퇴근을 해야 하는데 그날 공교롭게도 회식이 잡힌다면, 혹은 부장님이 퇴근하지 않고 남아서 괜히 포트리스나 하고 있다면, 옆자리의 동료는 죽어라 키보드만 두드려대고 있다면, 나는 당당하고도 자연스럽게 정시에 퇴근하여 아이를 데리러 놀이방에 갈 수 있을까? 눈 딱 감고 그렇게 해도 욕먹지 않을 수 있을까?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내년에 승진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맞벌이 부부가 아니라면 이상적 노동자의 상에 맞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일을 도맡아 해 주는 전업주부가 있다면 말이다. 내가 나의 삶에서 가정이라는 한 조각을 챙기지 못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 이상적 노동자란 가정과 일터를 별개의 것으로 완전히 분리하고 가정이라는 소위 사적 영역(private sphere)을 전담하는 사람과, 또 일터라고 하는 소위 공적 영역(public sphere)을 전담하는 사람이 따로 있음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통념인 것이다.

혹은 맞벌이 부부여도 가능한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 나보다 월급도 적고, 직장 오래 다닌다고 해도 승진할 가능성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내 마누라가 매일매일 꼬박꼬박 정시에 퇴근해서 애 키우고 살림하면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사회는 살림이나 양육이란 남자보단 여자가 해야 될 일로 보니 말이다. 마누라는 그러다가 회사에서 눈 밖에 나고 조만간 해고가 되거나 영영 승진을 못하여 주변적 노동력이 되겠지만, 어차피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크기 어려운데 뭐가 다를 것이 있겠는가. 이처럼 이상적 노동자라는 상은 여성을 노동시장에서 주변화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니 이러한 이상적 노동자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러한 이미지가 아무런 도전을 받지 않는다면 임신이나 출산으로 인해 보다 “전투적”으로 일할 수 없는 여성들, 양육을 위해 때로는 정시에 퇴근하기도 해야 하고 회식도 빠져야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폄하는 사라지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직장과 가정을 누구나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리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일과 가정 모두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상적 노동자에 대한 문제제기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전제를 의심하는 노력, 그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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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리 2009/07/29 [10:56] 수정 | 삭제
  • '모든 노동자는 임신을 할 수 있다' '모든 노동자는 육아와 가사일을 한다' 이렇게 전제가 바뀌기만 해도 정말 많은 부분이 달라질것 같아요
    지금은 임신을 하는 노동자와 안하는 노동자, 육아와 가사일을 하는 노동자와 안하는 노동자를 나누고 그 사이에 선을 긋고 차별하고 있는 것 같아요
  • 무지개 2009/07/21 [21:14] 수정 | 삭제
  • 바람직한 노동자상은.. 아무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추구,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니... 그런듯합니다. 물론 운동사회도 예외가 아닌듯.
    여성뿐만이 아니라, 장애인도.. 주변화되는... 아니, 그 자본이 원하는 대로 빠릿빠릿 하지않으면 못하면. 다 그냥, 일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버리는...
  • 2004/09/22 [09:14] 수정 | 삭제
  • 직업노동시장에서 살아남으려는 여성들의 결혼과 출산 기피가 증가하고 있지요. 이미 저출산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고요. 그래서 그나마 기혼여성들의 직장생활조건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증가한 것 같습니다. 뭐, 아직도 형편없는 수준이긴 합니다만...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어쩔 수 없이 사회적으로도 이상적 노동자상이 변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그 사이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죽어나겠지요...
  • 빨간펜 2004/09/22 [00:23] 수정 | 삭제
  • 이상적인 노동자는 워커홀릭이어야 하고 늦게까지 회사에서 죽때리고 앉아있어야 하고 2차 3차 마다하지 않아야 하고..... 그 속에는 논리적이지 않은 효율성(재계의) 논리?가 숨어있습니다. 그걸 깨야할 것 같습니다. 노조에서도 그런 부분을 얘기하면 좋을텐데요... 여성노동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도 아닌데 남성들은 동지일 때에조차 느끼는 게 참 다른 것 같습니다.
  • Berry 2004/09/21 [05:09] 수정 | 삭제
  • 회사 시스템은
    회색 넥타이족들만을 만들어내고
    가정이라는 곳, 아이들,
    가사노동과 부양, 양육 같은 또 다른 이름의 노동..
    이런 것들은 깡그리 무시하는 곳입니다.
  • 기혼여성 2004/09/20 [15:13] 수정 | 삭제
  • 아래 분의 의견에 리플로 달려다가 좀 더 생각을 깊게 해보게 되었습니다.
    전 우리나라처럼 직장문화가 힘든 나라도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기혼자와 미혼자의 입장은 직장에서도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기사에서대로 표현한다면 '이상적 노동자'라는 게..
    노동자들의 삶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한다는 점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저도 미혼여성으로 직장생활한 적 있었죠.

    이런 부분은 있죠.
    미혼여성노동자들은 기혼여성노동자 때문에 피곤하다고 얘기하기도 해요.
    결혼하면 아무래도 일 결합력이 이전보다 떨어지니까요.
    그만큼 미혼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 커지거든요.

    그런 면에선 '이상적 노동자'상과 죽도록 일시키는 한국의 회사문화가
    미혼자들에게도 억압적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죽도록 일을 시키는데, 일을 하는지 잡담을 하는지 구분은 못하죠.

    늦게까지 회사 남는 거 남자들이 훨씬 유리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효율적으로 일하냐면 그렇지 않다는 걸 여직원들은 알죠.
    기혼/미혼 나누는 거 싫지만, 미혼여성노동자가 제일 일은 많이 해요.
  • 여성노동자 2004/09/20 [13:29] 수정 | 삭제
  • 그럼 어디에서 어떻게 문제제기할 수 있을까? 답답하네요.

    또한 '이상적 노동자'상 문제는
    기혼자를 전제로 한 것이네요.

    제 주변에는
    혼자서 자취하면서 직장생활하는 노동자들도 많은데
    위의 글은 이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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