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내가 배운 것들

윤하 | 기사입력 2003/05/14 [22:20]

학교에서 내가 배운 것들

윤하 | 입력 : 2003/05/14 [22:20]
나는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리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서울 근교의 작은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풀섶의 이슬이 채 거치지 않은 소나무 숲길을 걸어 대로변에 이르면, 농협 앞에서는 채소꾸러미들이 트럭에 올려지고, 자루에 말뚝을 쿡 찔러 쌀알들을 살펴본 검사관들은 쌀자루에 도장을 쾅쾅 찍으며 알 수 없는 말을 외쳤다. 그렇게 검사를 마친 쌀자루도 트럭에 실렸다.
 
어른들은 이것들 모두가 서울로 팔려 간다고 했다. 이렇게 도회지 사람들이 농민들이 지은 것들을 먹고 사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것은, 초등학교를 막 다니기 시작한 1학년 때의 일이다.

그렇게 학교를 다니기 시작해 그림일기를 쓸 때마다 매일 날짜들이 바뀌고 가끔씩은 월도 바꿔 쓰는데, ‘1974년’이라는 숫자는 왜 전혀 바뀌지 않고 계속 써야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나 보다 하면서 그 지루함조차 무뎌져 담담해질 무렵, 아버지께서는 이제부터는 ‘1975’년이라고 써야 한다고 일러 주셨다. 전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이 숫자도 더디지만 변하는 무엇이라는 것에 놀랐을 뿐, 여전히 그것이 무언지 모르던 나는 2학년이 되었다.

한 학년에 두 반뿐이었던 학급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올라갔지만, 담임 선생님이 바뀌고 교실도 바뀌고 배우는 책들도 바뀌었다. 아직도 새로운 변화와 분위기에 어리벙벙해 있던 학기 초 어느 날, 새로 배울 책들을 나눠준다는 것이다. 그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이었던 탓인지, 새 책과 상급생들로부터 걷은 헌 교과서들을 섞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주 소수의 몇 명, 즉 65명 중에서 한 다섯 명 정도는 모두 새 책을 나눠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걸 위해 우리는 가위바위보로 제비뽑기를 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가위바위보에서 졌고, 새 책만으로 공부를 할 수 있는 행운을 쥘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처음으로 밤 늦게까지 어떤 분한 감정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그것은 내가 제비뽑기에 져서가 아니었다.
 
그날 교과서를 나눠주려던 바로 그때, 때마침 한 학부모가 담임 선생님을 방문했다. 어이 없게도 담임 선생님은 그 학부모의 학생을 반 전체 학생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제비뽑기 대열에서 제외시켜 옆으로 빼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모두 새 교과서를 받았다. 나는 어른들이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그래서 내게 2학년은 좀 우울한 해였다. 다시 해가 바뀌어 학년이 오르고, 학급 친구들도 바뀌고, 또 담임 선생님들도 바뀌었다. 시험 때마다 컨닝은 도둑질이나 다름없다며, 못할 짓 중의 하나라고 목청을 높이던 선생님들은 학교평가 때마다 컨닝 작전을 직접 진두지휘하곤 했다.
나는 어느새 가끔씩 바뀌는 연도가 무언지도 알게 되었고, 이제 다 커서 세상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던 4학년도 지났다.

그러나 학교생활은 그래도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고학년생들만 했던 것들 가운데는 마음에 쏙 드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추수가 끝난 늦가을마다 하는 ‘벼이삭 줍기’였다. 4-6학년 내의 모든 학생들이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라면 봉지로 한 봉지 분량씩 주워온 벼이삭을 쌀로 찧어 가난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논둑을, 논둑을 타고 허리를 굽혀 논바닥을 헤치면 정말로 벼이삭들이 곳곳에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세상 모르게 논둑을 넘다, 문득 허리를 펴 뒤를 돌아보면 까마득히 먼 곳까지 다달아 있곤 했었다. 벼이삭은 방과후 꼬박 3-4일은 족히 다녀야 한 봉지를 구할 수 있었다.

 
그것을 다시 볕에 말리면서 붙어 있는 흙들을 털어, 친구들이 가져온 낯알 무더기 속에 내 것을 후루루 털어 넣을 때는 정말 뿌듯했었다. 애써 수고해 내가 구해 온 것으로 친구를 돕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논바닥에 떨어진 벼이삭 하나하나가, 그 한 봉지, 한 봉지가 모여 쌀자루가 되어 어려운 이웃의 식량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기만 했다.

그렇게 6학년 가을, 벼이삭 줍기를 막 마친 후였다. 그러나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거둬들인 벼이삭 대부분은 학생들을 돕지만, 선생님들도 그 일부로 해마다 떡을 해먹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어린이들이 허리도 펴지 못한 채 손이 곱도록 논바닥을 헤치며 주워온 것으로 떡을 해 먹을 수 있었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그때는 좀 울었다. 어른들이 얼마나 속되고 비겁한지, 그리고 부정의한지, 나는 그것을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다 알았고, 선생님들로부터 모두 배웠다.

우리 유년의 기억 속에 과연 ‘스승’이란 존재할까? 매년 이맘때면 옛날 같은 스승도 없고, 또 그렇게 스승을 존경하는 학생들도 없다는 탄식이 무성하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스승’이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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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존 2003/05/18 [04:10] 수정 | 삭제
  • 어렸을 땐 어른들이 정의롭다고 생각하잖아요.
    부모님은 모든 걸 다 알고 좋은 사람들인 줄 알구요.
    그렇지만 사실은 아이들보다도 정의롭지 못하단 걸 알게 되죠.
    자라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실망하고 무서웠던 것 같아요.
    그런 느낌들을 정리해보게 되는 글이었어요.
  • mana 2003/05/15 [01:49] 수정 | 삭제
  • 윤하님 글,
    너무 좋아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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