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속에 사람의 삶을 담을 때 왜 ‘대상화’를 고민할까. 어차피 카메라를 통해 비춰지는 모습이란 실제와 완전히 같을 수 없다. 문제는 실제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실상과 다른 모습을 전달할 때 폭력성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상화’는 화면에 담긴 사람의 실상이 사라지고 그 맥락이 거세된 ‘사물’처럼 보인다는 것을 뜻하며, ‘사물’처럼 보인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 아닌 기괴한 존재로 재현된다는 소리다.
두레방과 다큐 이야기에서 공동으로 제작한 <나와 부엉이>는 기지촌 여성들을 ‘대상화’하지 않고 최대한 실제에 가까운 여성들의 모습을 전달하기 위해 고민한 다큐멘터리다. 나 가면 안 쓰고 싶어 <나와 부엉이>는 홍대 클럽의 밤거리와 기지촌 클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나와 부엉이>의 주인공은 박인순씨. 박인순씨는 전쟁고아로 직업소개소를 거쳐 당시 기지촌이었던 파주 용주골로 팔려갔다. 이후 포주를 따라 의정부 캠프 스탠리 주변 기지촌으로 옮겨와 생활하면서 미군을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남편이 마약중독에 빠져 자신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폭행을 일삼자 결국 아이들을 남겨둔 채 남편과 이혼하고, 의정부 기지촌으로 돌아와 현재까지 생활하고 있다. 감독은 두레방의 표현예술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박인순씨를 비추면서, 알콜중독에 시달리는 인순씨가 주인공이 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다큐의 제목 <나와 부엉이>는 박인순씨가 그린 그림의 제목인 동시에 낮이 아닌 밤에 모습을 드러내는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의미하기도 한다. 박인순씨는 생계를 위해 밤을 줍고 감자를 캐며 살아간다. 그녀는 치료 프로그램에서 지점토를 만지면서 ‘내 안의 악마가 사라지기’를 빌고, 나이프로 거침없이 그림을 그리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비가 오는 날이면 "비 오는 날은 (술을) 아무리 먹어도 가지를 않아"라고 호소하며 눈물을 흘리고, 공동식사 도중에 ‘돈 받으면 막 벌릴 것 같은 얼굴이냐’고 슬프게 물어본다. 이처럼 여성들 마다 살아온 삶의 굴곡이 다르고 그 역사가 아픈 만큼 그녀들이 아프지 않고, 힘을 내어 일상을 살아가도록 이야기를 건네는 것은 힘든 대면이다. 박인순씨는 두레방 상담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파서 술 세병 반 이상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고 호소했다. 술을 왜 마시냐는 질문에, ‘술에 빠지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성매매를 하든 말든)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니까 상관하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상담자가 정말로 상관하지 말기를 바라냐고 질문했을 때 그녀는 "아니, 아는데. 챙피하잖아. 나 가면 안 썼어. 나 가면 안 쓰고 싶어. 나 얼굴 가면 안 쓰고 싶다고"라며 얼굴을 부볐다. 결국 카메라는 더 이상 인순씨를 따라가지 못한다. 기지촌 여성은 인간도 아닌가?
다큐를 찍을 시점은 한창 장갑차 사건으로 미군에 대한 적의가 폭발하던 무렵이었다. 한 언니는 ‘여중생’ 사망에 분노하는 한국사회에 대해 화를 냈다. 두 명의 죽음에 대해서 분노하는 사람들이, 그 이전부터 미군에 의해 죽고 다친 기지촌 여성들에 대해서 왜 일언반구도 하지 않느냐고. 그것은 기지촌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녀는 판사라는 사람이 맥가이버 칼로 기지촌 여성의 성기를 찢은 사건을 언급하며 그것이 기지촌의 실상이라고, 대학교수고 판사고 연예인이고 ‘전국구’ 단위로 기지촌에 몰려온다고 증언했다. 요즘의 경우 기지촌 클럽의 80%이상이 외국인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녀들을 바라보는 언니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예전(1970년대)만큼 폭행과 착취, 감금이 심하지 않은 지금 기지촌의 모습에서 외국인 여성들의 인권이 논의되는 상황 자체가 불편한 것. 언니들은 "필리핀 애들은 가수라고 왔어요. 근데 노래를 너무 못해. 그러니까 연습이 필요한 거야. 러시아 애는 댄서로 왔어. 근데 춤을 못 춰. 연습이 필요한 거야 (중략) 우리 자국민 인권도 무시하고, 박살내고 그렇게 살아 갖고 무슨 외국 년들 인권은 인권이야"라고 화를 내면서도 ‘왜 한국에 오는지 이해가 간다’라고 중얼거린다. 대부분의 기지촌 여성들은 10대-20대 초반 기지촌에 유입된다. 성산업의 구조 상 여성들은 빚을 많이 지게 되고, 빚을 미끼로 포주들은 여성들이 미군에게 얻어 맞아 다쳐도 계속 클럽에 나갈 것을 요구한다. 언니들은 “포주들은 우리를 돈 버는 달라 기계로 알아” “우리는 빚지고 살았으니까... 벌고 벌어도 빚졌으니까... 빚이 더 올라가지. 이자, 이자에 빚이 계속 올라가지. 내려가진 않아" 등 기지촌의 폭력적인 실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기지촌이 생계에 직결된 문제인 이상 미군의 존재에 대한 언니들의 시선은 완결되기 힘든데, ‘미군이 가면 여자들이 뭐 먹고 살겠냐’고 걱정하면서도 "그 가게들, 소개업자. 그 사람들 다 집어넣어야 되죠.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다면 다시 다 연결되는 거야. 직결이 되는 거니까"라고 말한다. 증언은 힘든 과정이다. 언니들은, 이렇게 실상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고백한다. 그녀들은 자신의 말이 '살아있지 않은, 죽은 말'이 될까 걱정하고, 화면에 자신들이 어떻게 비추어질지 고민한다. 이는 이 다큐의 원 주인공이 다른 언니들이었는데, 가족이 있는 관계로 주인공이 되기를 꺼려한 것과도 맞물린다. 마음이 드러나는 그림, 그리고 다큐멘터리
두레방 상담가에 의하면 박인순씨는 처음에는 팔 다리가 없는 그림을 그렸다가, 2년 정도 지날 무렵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되고 인간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면서 팔 다리가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고 했다. 박인순씨는 “쉬는 거야... 머릿속 복잡하고 그럴 때 아무 생각 없이 그리는 거야. 난 떠들고 잔소리하고 그런 게 좋아. 여러 사람이 같이 그리면 보고 그릴 게 있잖아.”라고 말한다. 그림들만큼 감독의 담담한 나레이션과, 인물을 정성스럽게 따라가는 화면은 인상적이다. 감독은 ‘더 이상 카메라를 담을 수 없다’ ‘촬영이 끝나간다’ 등의 담담한 어조로 소박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며 ‘대상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보여주기 위해 고심한다(참고로 감독 박경태씨는 2년 정도 두레방에서 자원 활동을 했다고 한다). 표현예술 심리치료를 담당한 심종선씨는 ‘치료는 만남이고, 그 만남을 이루어가는 여정이다. 밖에 있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내 안의 타자를 조금씩 알아보게 되는 일(중략). 삶의 도처가 치료 현장이 될 수 있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 속에서 불현듯 고해성사를 치르게 된다. 그녀에게 다큐멘터리는 그러한 장을 마련해주었다’고 이야기한다. <나와 부엉이>는 기지촌 여성들의 실상과 한 여성의 치유 과정을 진정 어린 시선으로 고민한, 잘 만든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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