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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초등학생 몇 명이 담임 교사를 경찰에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을 때린다며 폭력교사로 처벌해 달라고 했던 모양인데, 그 사건을 전하는 앵커도, 또 그 기사를 취재한 기자도, 게다가 학부모들조차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는 자세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에 나는 먼저 놀랐다.
앵커는 옛날에는 스승의 어쩌구 저쩌구 해가며, 오늘날은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 한탄조의 멘트를 곁들였고,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 하지 않느냐고 거들었다. 또 학생들을 체벌해 문제가 된 바로 그 교사는 한 학생이 말을 듣지 않아 나가서 반성문을 쓰라고 실갱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등을 몇 대 때렸을 뿐이라고 얼버무렸다. 아무튼, 경찰은 이들 학생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학교에서 알아서 처리하라고 결론냈다고 했다. 결국, 이 사건은 그저 일부 초등학생들의 맹랑한 행동 정도의 해프닝으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나는 이토록 가볍게 이 사건을 취급하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는데, 그것은 그 어린이들이 세상에 대해 느꼈을 답답함과 비슷했을 것이다. 우리는 권력이 가난한 사람보다는 부유한 사람의 편을, 또 여성보다는 남성의 편을, 약자보다는 강자의 편을 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상황들 속에서 수없이 많은 좌절감을 경험해왔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또한 권력은 어린이보다 어른들의 편을 드는 것 같다. 좀더 진지한 경찰관이라면, 우선 아이들에게 그 동안 그 교사가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차근차근 물어보면서 보다 분명하게 사건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야 한다. 또 좀더 진지한 기자나 방송사라면 이 사건을 통해 학교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체벌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이 사건을 다루는 것이, 누구보다도 바로 우리 어른들을 위해 더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는 어린이들을 때려야 한다, 아니면 때려서는 안 된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요구와 그들의 생각이 소통될 수 없는, 마치 벽을 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우리 어른들과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문제 삼고자 한다. 그 보도를 들은 바로 다음날, 내게서 공부를 배우는 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은 속상해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그저께 소풍을 갔는데요, 한 얘가 들고 있던 빈 과자봉지를 잘못해서 놓쳤는데, 그만 봉지가 바람에 날라가 다리 밑으로 떨어졌어요. 그걸 어떤 선생님이 보시고는요, 다짜고짜 그 학생을 막 때렸어요. 그 얘가 일부러 그런 건 정말 아니었는데….” 그 어린이는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기에 앞서 더 많이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데, 잘못해서 벌어진 실수에 대해 오해가 있었고, 그것이 설명되지 못한 채 맞아야 했던 그 어린이에게 이 일은 소풍 내내, 아니 앞으로 아주 오래 동안 상처가 될 것이다. 무조건 아이를 때리기에 앞서, 교사는 아이에게 왜 그렇게 했는지를 먼저 물어보았어야 옳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면 왜 빈 봉지를 놓치지 않도록 꼭 쥐고 있어야 하는지 설명해 준다면, 충분히 조심성 있는 어린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부모들도 교사들도, 또 사회 역시, 어느 누구도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데, 어찌 그들이 자라 다시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이들은 그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사람 이상으로 성숙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을지라도 그것이 어른들에 의해 이해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들 역시 그런 어른이 되기 쉽다. 우리가 어린 시절 수 없이 경험해 온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부당한 대우들, 그래서 속상할 때도 정말 많았던 그 안타까움들을 떠올려 보자. 그러나 우리들이 고스란히 그런 왜곡된 모습을 닮은 어른이 된 것은 아닌지, 우리 아이들 역시 그런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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