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동물원 꿈꿀 때

전시용에서 종(種) ‘보존센터’로!

최이윤정 | 기사입력 2004/10/17 [22:10]

대안적 동물원 꿈꿀 때

전시용에서 종(種) ‘보존센터’로!

최이윤정 | 입력 : 2004/10/17 [22:10]
일생의 대부분을 철창에 갇혀 혼자 살면서 죽어가라고 한다면 어떨지. 다른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홀로 꽉 막힌 시멘트 방에서 철창에 갇혀서 살고 있는 친구를 알고 있다면, 우리가 과연 가만히 있을까. 불행히도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 주변 동물원의 야생동물들의 현실엔 침묵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 야생동물의 현실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두 편(황윤 감독의 2002년 작 <작별>, EBS의 2003년 작 <하나뿐인 지구-21세기 노아의 방주, 동물원>)을 보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동물원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왜곡되었으며, 그 속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현실이 얼마나 열악한지,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동물원에 대한 상상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는 계기였다.

‘휴식의 공간’으로서 동물원을 찾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을 찾는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동물원에 가서 사파리 구경도 하고 물개 쇼도 봤던 추억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대부분 가족 단위로 찾아 가서 평소에 텔레비전으로만 봤던 신기한 동물들을 ‘구경’하는 곳, 그리고 간간히 동물들한테 팝콘이며 과자를 ‘던져주는’ 재미에 재주를 부리는 동물들의 쇼를 보는 놀이터가 동물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란 영화도 있듯이, 동물원은 휴식과 낭만을 위한 인간의 쉼터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우리에게 휴식을 주는 동물원에 살고 있는 ‘동물들은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해본다면 어떨까. 동물들의 입장에서는 자기를 보고 웅성거리는 인간들의 목소리는 그저 소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던져주는 과자를 매번 받아먹어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일 것이고, 이러한 스트레스를 꽉 막힌 좁은 시멘트 공간에서 견디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것도 답답할 거다. 초원을 누비며 살아야 하는 ‘야생’동물이 매번 사육사가 주는 대로 먹이를 받아먹고 말 그대로 ‘사육’되면서 모르는 사이에 야생성을 잃어간다. 심지어는 밀폐된 우리 안에 계속 갇혀 있으면서 계속 왔다 갔다 하거나 하루 종일 벽만 쳐다보고 있는 등 강박적 이상행동(‘정향 행동’)을 보이는 동물들도 많다.

이쯤 되면, 거기 사는 동물들이 너무 ‘불쌍’해서 ‘동물원을 없애야 하는 건 아닌가’란 얘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동물들을 가둬두지 말고 동물원을 없애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우리 현실에서 동물원이 왜 필요한지 그 곳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별로 고민해본 적이 없다.

야생동물의 습성 그대로

사실 동물원은 신기한 동물들을 보여주는 ‘전시장’이 아니라, 야생동물의 ‘보존센터’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생태계 파괴로 인해 서식처를 잃은 야생동물은 동물원에서 내보낸다고 해도 살 곳과 살아갈 능력이 없다. 그들이 돌아갈 수 있도록 서식지를 복귀하거나 만들 때까지 그들의 야생성을 잃지 않도록 ‘잠시’ 보호해두는 곳이 바로 현재 동물원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의미보다는 동물들의 전시장쯤으로 여겨 그들을 가두고 학대하는 데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

보존센터가 동물원의 역할이라면 동물원의 환경도 달라져야 한다. 시멘트 바닥에 조잡하게 그려진 나무들과 빽빽한 철창, 야행성 동물이라고 밀실처럼 어두컴컴하게만 해두는 유리벽은 사실 동물 입장에서 보면, 전혀 그들이 살던 곳과 딴판이라 적응하기 어려울 거다.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동물이 아니라, 그들의 눈에 맞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무리생활을 해야 하는 고릴라를 한 마리씩 가둬두기 보다는 그들의 습성대로 무리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등, 그들의 야생 서식지에 가깝게 환경을 재현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예컨대, 미국의 몇몇 생태형 동물원에서처럼 그들이 살던 초원, 강둑에 가깝게 살 곳을 만들어주고 먹이도 그냥 사람이 던져주는 게 아니라 그들의 습성을 잃지 않게 찾아먹을 수 있는 작은 배려가 필요하다.

생태계 현주소 알려주는 ‘사절’로서의 야생동물

21세기에 더 이상 살 곳이 없는 야생동물들, 점차 종(種)을 잃어가는 동물들은 최소한의 유전자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시적인 보호 차원에서 동물원에 수용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처해 있다. 현재 동물원에 살고 있는 아무르 호랑이, 코뿔소, 침팬지, 코끼리 등은 이러한 현실을 우리에게 전해주러 온 생태계의 ‘사절’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원은 그야말로 동족의 위태로운 현실을 알리러 온 대사이자 사절단이 모여 있는 대사관이다.

따라서 동물원에서는 생태계 현실을 알려내는 교육도 중요하게 이뤄져야 한다. 한번 머물고 가는 곳이 아니라, 야생동물의 현황을 보여주고 자기 주변의 생태계와 서식지를 보존해갈 수 있는 의미를 찾고 실천할 수 있는 교육적 공간이어야 한다. 야생동물 보호 제 몇 호라는 형식적인 안내문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스스로 보존할 수 있게 만드는 다양한 자료가 갖춰질 필요가 있다.

다행히 서울대공원이 생태형 동물원을 고민하고 있다고 하니, 대안적인 동물원에 대한 내용들이 충분히 고민되어 무감각한 ‘생태맹(盲)’을 교정해갈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동물원을 찾아가는 우리들의 자세도 조금은 달라졌으면 좋겠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하나의 ‘관람 대상’으로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들의 ‘눈빛’을 마주하고 소통해보는 시선을 갖는다면 어떨까. 그들이 전하는 “제가 위기에 처해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외면하지 말자. 잊지 말아야 할 건, 동물원에 살고 있는 동물들은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수용돼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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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 2004/10/20 [12:34] 수정 | 삭제
  • 한 번 들어본 말인 것 같긴 하네요.
    밀폐된 곳에 사람들에 둘러싸여있는 동물들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게 되는 게..
    동물들도 뇌가 없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겠죠.
    잠시 스쳐가는 관람객들이 신경을 안 써서 그렇지.
    잔인한 결과인 것 같아요.
  • 세상의끝 2004/10/20 [01:14] 수정 | 삭제
  • 잘 살고 있던 동물들의 땅을 빼앗아놓고, 동물들을 변두리로 몰아내고, 환경오염시켜서 수많은 동물들을 멸종시키고, 계속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늘어만 가고, 그것도 모자라서 관람용으로 동물들을 가두기까지 하는구요.
  • GoGo 2004/10/18 [23:22] 수정 | 삭제
  • 예전에 TV에서 다친 동물을 다룬 거 봤어요.
    대부분 관람하는 사람들 때문에 다친 거였죠.
    던져주는 거 받아먹느라 못 먹을 걸 먹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TV에서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걸 보는 동안 동물들이 참 외롭겠단 생각이 들었죠.
    집단으로 생활해야할 동물들이 기껏 한두마리..
    동떨어져서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면..
    왜 개들도 우울증에 걸린다는데, 그 동물들도..
    그런 것 같았죠.
  • 2004/10/18 [15:36] 수정 | 삭제
  • 저도 서울대공원은 가본 적 있는데, 지방에 있는 동물원에 비하면 거긴 천국이구요. 동물들 관리하는 예산이 줄어서 동물을 굶겨 죽이는 경우도 있고, 정말 열악한 현실입니다. 그렇게 되면 동물원이 없어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또 지역 차원에선 그럼 지역사람들은 동물원도 못 가냐고, 아이 교육권 차원에서 얘기가 나오고 그러더라구요. 그건 또 다른 가슴아픈 얘기죠.
  • 2004/10/18 [15:35] 수정 | 삭제
  • 그저 여러 동물들을 구경하는게 아니라 동물의 생리에 대해 알고,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거겠죠. 그러려면 지금의 동물원은 아니라고 봐요. '구경'하는 정도에 그치는 동물원이니까요. 종 보존센터로서의 동물원이라면, 야생의 습성도 간직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소중한 걸 배울 수 있겠죠.
  • R 2004/10/18 [09:45] 수정 | 삭제
  • 야생동물이 습성을 안 잃어버리고 살 수 있는 동물원을 만들기엔 땅 덩어리가 부족하지 않나? 동물 수를 줄여야 한다.
  • 방랑벽 2004/10/18 [09:34] 수정 | 삭제
  • 어렸을 때 가보고 안 가봤는데요.
    다 커서 친구들과 함께 가서 보니까 참 좋더군요.
    넓고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고 하루 종일 걸려도 다 보지는 못하겠더라구요.
    어렸을 땐 사자 같은 커다란 동물들이 신기해서 봤던 기억이 나는데,
    그건 호기심 이상은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사람에게만 좋은 환경이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편한 환경이 제공된다면,
    그러면 동물원이 동물감옥이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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