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에 몇 가지 잊지 못할 사건 사고들이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는 성정체성과 관련한 일들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두 명의 학생으로 인해 학교가 어수선해졌다. 유명한 커플이 생긴 것이다. 당시엔 레즈비언이란 말이 사용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모두들 그 두 학생이 보통 사이가 아니란 걸 알았다.
따지고 보면 학교에 커플이 한둘이겠는가. 반마다 커플이 있었고, 나처럼 ‘게이다’가 작동하는 사람의 눈에는 교사-학생 커플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를 모두가 다 아는 것은 아니란 점에서 이 두 사람과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인공들은 나와 같은 학년이었는데, 둘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가 2학년 와서 다른 반이 됐다. 그 애들의 사랑은 모두의 눈에 띄었다. 쉬는 시간에도 항상 만나고, 복도에서 껴안기도 하고, 점심 때마다 벤치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만지기도 했다. 나는 그 애들이 방과 후 운동장을 가로질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입맞춤을 하는 것도 봤다. 놀라운 일이었다. 남들이 보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애정표현을 하다니. 내 경우만해도 동성의 친구, 선배, 혹은 후배에게 느껴지는 감정이 당혹스러웠고 육체적인 접촉은 둘만 있는 경우에도 조심스럽고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당시 내 생각은, ‘도대체 저 아이들의 사랑은 얼마나 대단하기에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서로에게 끌리는 대로 행동하는 것일까’ 하는 데 치중해있었다. 그 애들이 나와 어디가 다르고, 어디가 같은지 궁금했다. 수소문을 해 보니 그 애들이 속한 반의 아이들, 혹은 친구들의 반응은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쟤네들 원래 그런 애들 아니었거든?”, “멀쩡한 애들인데, 공부도 잘 하고. 2학년 들어와서 갑자기 이상해졌어.” 이런 식이었다. 한 마디로 그 애들은 ‘이상한’, ‘정신 나간’ 애들로 취급 받고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반응은 그런 게 아닌데 말이다. 그런 반응들 속에서 나 역시 그 애들을 약간 이상한 애들로 보는 것처럼 맞장구를 쳐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매점에서 떡볶이를 사 먹고 나오는 길에 학교 벤치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아니, 어쩌면 그 애들이 보고 싶어서 매점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 즈음 그 애들이 그 곳에 있곤 했으니까. 둘이 딱 붙어 앉아서 오직 서로만을 바라보며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애들을 나는 먼 발치에서 바라봤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잠시 생각했던 것 같다. 갑자기 학교 위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위를 올려다 보니 4층 창문이 줄줄이 열려 있었다. 3학년 선배들이었다. “야, 이 년들아. 둘이 안 떨어져?”, “더러운 년들아!” 소리와 함께 선배들은 빈 음료수 캔들을 두 사람을 향해 집어 던졌다. 음료수 캔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너무나 충격적인, 너무나 무서운 광경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그 애들을 보고 ‘이상하다’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만 해도, 선배들과 선생님들까지 그 두 아이의 관계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조차 그것이 동성애자에 대한 극심한 혐오감이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었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동성 간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 때 처음 알게 됐다. 선배들의 욕설과 그들이 집어 던진 캔들이 내는 소리는 당시 나를 한참 동안 비틀거리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찔하게 만든다.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호모포비아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