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한 개그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생뚱맞죠?”라는 말이 세간의 유행어가 되어버렸다. ‘생뚱맞음’은 ‘앞뒤가 맞지 않고 엉뚱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 전형에서 벗어나 있거나, 맥락에 닿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생뚱맞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어찌 보면 그 사람의 행동을 엉뚱하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행동을 자연스럽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맥락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생뚱맞음’은 김윤이(28)씨가 자신의 일과 삶, 아니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표현할 때에 즐겨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다. 건축과를 ‘얌전하게’ 졸업한 그녀가 지금처럼 주민운동과 관계를 맺게 될지는 정말이지 아무도,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 몰랐었다. 그러니 그녀의 생뚱맞은 전향(?!)을 보고 주위사람들이 놀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설계’에 회의 “어렸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제 꿈은 오로지 수학선생님이었어요. 그런데 중학교 때 인테리어 잡지를 보게 된 거에요. 그때 집을 설계한다는 것이 수학보다 더 멋지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꿈을 건축 쪽으로 바꿨어요. 그 후로 사찰처럼 유명하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많이 찾아가 보았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하나도 안 뛰는 거에요. 뭔가가 느껴져야 할텐데 그런 게 도무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어요. 하지만 그런 거 있잖아요, 원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은 휘황찬란한 건축물이 아니라 이름 없는 사람들이 지은 건물들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건물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그녀가 건축과에 들어간 이유는 ‘보다 나은 집장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실제 학교의 커리큘럼은 그녀의 “소박한” 꿈과는 차원이 다른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집은 원래 사람이 숨쉬고 살아가는 곳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대부분의 건축과 과목들은 사람냄새가 나는 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러니까 보통 저학년 수업에서는 집 설계 실습을 하는데요, 그 기준이라는 게 이래요. ‘남편은 의사이고, 아내는 가정주부이며, 자녀는 2명인 중산층 가족의 전원주택을 설계해라.’ 그러면 학생들은 최대한 근사한 아이템을 개발해서 ‘편안하고 안락한’ 집을 꾸미지요. 근사할수록 좋은 점수를 받는 거고요. 그리고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이제는 고층오피스텔이나 호화스러운 여가공간을 설계하게 돼요. 그런데 그런 곳은 부유한 사람들한테만 실현 가능한 공간이지 실제로 그런 공간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거든요, 그건 ‘이미지’로 존재하는 공간이죠.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어요.” “한국사회에서 문과와 이과의 간극은 너무나 큰 것 같아요. 이과생들은 사회문제를 접할 기회도 별로 없고,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참 낯설어요. 하지만 저는 어떤 분야의 학문이라도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사람 사는 주택을 다루는 건축과에서 사람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건 큰 문제잖아요. 하지만 공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엉뚱하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과 ‘걸리버 지도 그리기’를 해요 학부 4학년이 되었을 때 그녀는 건축과 한 교수님을 찾아가 ‘건축을 통해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싶다’는 ‘생뚱맞은’ 꿈을 털어놓았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운이 좋게도’ 지도 교수님이 그녀의 생각을 존중해주었고, 구체적인 길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사회정의라고 하면 진짜 거창하게 보이지만, 그건 그냥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연결고리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었어요. 제가 참여하는 일 중에 하나가 ‘공간’과 ‘사람’이 아우러지는 ‘마을 만들기’에요. 예를 들어 아이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라면 그 마을을 아이들이 편안하게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일이죠. 마을 만들기 프로그램에 ‘걸리버 지도 그리기’라는 게 있는데요, 쉽게 말해서 아이들이 마을보다 커다란 걸리버가 된 기분으로 이곳 저곳을 밟고 다니면서 ‘우리에게 위험한 곳’, ‘우리가 좋아하는 곳’을 표시해요. 그리고 그 지도를 가지고 함께 이야기하고, 공간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거죠.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사는 마을에서 걸리버 지도를 그릴 때에는 이와는 내용이 달라져요. 우물이나 느티나무처럼 ‘추억이 살아 숨쉬는 곳’을 표시하고, 만약 추억의 장소가 이미 사라져버렸다면 다시 만드는 일을 마을사람들과 함께 하는 거죠.” 주위에서는 홈리스 인권이나 쪽방개선 사업처럼 주거 빈민을 위한 운동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사회운동가’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자신을 ‘사회운동가’라고 부르는 것을 어색해했다. “언제가 집회현장에서 한 운동권 선배를 만났는데, 그 선배가 깜짝 놀래하더라고요. ‘네가 여기 있게 될지 몰랐다’고. 그래서 저도 그냥 ‘저도 제가 여기 있게 될지 몰랐어요’라고 대답했어요, 하하. 하지만 사실 그래요, 제가 사랑하는 건축일과 사람들의 삶을 연결시키는 일은 제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농사를 짓는 사람은 농사를 통해서, 집을 짓는 사람은 집을 통해서, 사람을 고치는 사람은 의술을 통해서 그 일을 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일상’이 곧 ‘사회운동’이고, ‘사회운동’이 곧 ‘일상’이 돼요. 문과와 이과를 나누거나, 사회활동가와 일반인을 나누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죠.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니까요.” “사실은 거대한 관념만이 아니라 작은 실천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저와 남자친구는 공동 저금통장을 만들어서 한 달에 각각 2만원씩 저축을 하고 있어요. 2만원은 데이트 비용으로 쓰고, 2만원은 차곡차곡 모아서 기부를 할 계획이에요. 이렇게 이벤트를 기획하고 함께 돈을 모으는 일이 쏠쏠한 재미를 주거든요.” 그녀가 꿈꾸는 삶은 대의를 위해 개인의 꿈을 포기한다던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엄청난 일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러한 ‘간극’이 더 ‘생뚱맞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현재 제가 하는 일이 ‘보다 나은 집장사’를 하고 싶다는 예전의 꿈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보다 구체화되었지요. 저는 그렇게 ‘변함없이 변화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무슨 연구나 활동을 하든지 지금처럼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지금은 많이 배우는 중이죠. 음, 그 외에 다른 바램은 없어요.”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과 사회운동 사이,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 사이를 메우기 위해서는 ‘멀리뛰기’처럼 엄청난 수고를 해야 한다고 믿곤 한다. 때문에 대부분이 그 간극을 뛰어넘는 일을 포기하고 한 범주에만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이’를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그녀는 ‘엉뚱하다’는 단어가 아니라 경계를 잇는 ‘자연스러운’ 사람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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